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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상설전시
처음 사진을 시작할 때부터 내가 발견한 것은 대상(피사체)이 아니라 구도였다. 이것이 지금까지도 내가 사진을 다루는 태도다. 소재의 내용(이슈, 스토리, 사연, 역사, 함의)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다. 아마 소재라는 개념도 몰랐을 것이다. 그러므로 주제라는 개념도 의식하지 않았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형식'이었다. 그것이 나를 사진 찍게 만드는 원동력임은 그때도, 지금도, 앞으로도 부정할 수 없기에, 나는 내용으로부터 작품설명을 시작할 수 없다.
그렇다고해서 작품의 내용적인 설명을 안 할 수는 없다. 작품에는 반드시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형식만으로 시작하고 완성한 작품이라고 할 지언정 그 형식에 대한 내용은 존재한다. 나에게 있어서 내용이란, 이미 완성된 형식을 두고 오랜 시간 동안 통찰을 거쳐 찾아내어지는 자기분석의 결과다. 이는 작업을 하기 전에 어떤 주제를 정해놓고 그것에 맞는 형식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직관적으로 형식을 먼저 완성한 후 그 형식이 탄생하게 된 원인을 논리적으로 역추적하는 방식이다. 이 작업은 2006년부터 시작했는데, 2012년이 되어서야 '최종구도'라는 제목을 짓게 되었다. 즉, 6년 동안 내용이 부재한 채로, 형식만을 생산했고, 이제서야 그 내용을 찾아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사진이라는 매체에서 이러한 작업방식이 얼만큼 어떻게 가능한지, 또 과연 정당한지에 대한 무의식적 실험이었으며, 다른 한 편으로는 '기획'된 예술작업에 대응하는 태도라 할 수 있다.)
이 작업의 내용은 구도에 있다. 구도 자체가 형식이자 내용인 것이다. 처음부터 저런 구도로 사진을 찍은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구도, 입체감이 느껴지는 구도, 대각의 다이나믹한 구도 등등 여러가지 구도들을 다 시도해봤지만, 그저 잘 찍은 사진 정도로 그치는 상태였고, 잘 찍은 사진으로는 예술이 될 수는 없으므로,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변수를 상수로 고정시킬 필요성을 느꼈는데, 대상을 고정시키는 것보다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고정시키기 시작했다. 소재성에 본능적으로 무관심 했던 나로서는 당연한 결정이었다.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곧 구도를 의미한다. 즉, 어떤 구도가 나의 기억 속에서 최종적으로 남을 것인가에 대한 예술적 선택이었다. 수없이 다양한 구도들이 있지만 과연 어떤 구도가 특정한 평면 바탕 위에 놓여있는 특정한 사물의 존재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는가를 두고 접근해본 결과, 가장 보수적이고 단순한 구도로 수렴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작업의 내용은 내가 가진 '시각적 욕심의 끝'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을 통해 시각적 최종성, 극단성, 종결성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 쉰스터
『최종구도-평면편: 낙엽』의 더 많은 작품들은 다음 링크에 있습니다. www.schinster.com/p002.html 자매작업, 『최종구도-평면편: 원형』은 다음 링크에 있습니다. www.schinster.com/p002-1.html
선택의 눈 ● '무엇을 찍을 것인가? 어떻게 찍을 것인가?'는 작가의 직관적 선택에 의해 구성된다. 우리는 눈을 통해 무언가를 본다. 본 것을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분명한 것은 시선은 계속 움직이면서 전체나 부분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몇 가지를 기억하고 있음으로"보았다"라는 말을 하게 된다. "보았다"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무의식적인 선택인 것이다. 거리 위의 하찮은 것, 그냥 지나 칠 수 있는 것들 중 시각적 새로움을 발견하고 선택하는 일들에 대해서는 관찰자의 개인적인 직관력과 의지가 없다면 창작물은 탄생할 수 없다. 그래서 「최종구도」는 그 여러 가지 순간 중, 작가가 남기고 남긴 것에 대한 절대적인 구도를 담아내려는 자신의 '선택적 의지'의 최종 결과물이며, 카메라 프레임 안에서의 구성적 완성도에 대한 자신감이라고 여겨진다. ● 「최종구도」는, '평면편'이라는 추가 제목을 달고 있다. 이는 능동적인 관찰자로서의 일방적인 관계에 대한 평면적 설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최종구도」에는 복합적인 상황, 또는 관계에 대한 감정표현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고정된 대상과 배경이 밀착되어 있고, 찍고자 하는 구도와 작가의 시선 사이의 공간만 존재할 뿐이다. 여러가지 변수와 환경들 중에 한 장면을 선택했다는 것과 그 사물에 대한 모든 결정권을 작가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물은 "고정적이다"라는 느낌이 강하다. (마치 「최종구도」의 사물들만 stop motion된 느낌이 들 정도다.) 때문에 사물에 대한 시각적 절대권이 작가에게 있으므로, 「최종구도」의 시각적 관계는 평면적이라 할 수 있다. ● 물론 겉으로 드러난 의미는 카메라 프레임을(캔버스를) 통해 2차원적인 표현을 한, 결과물에 대한 평면성이다. 구도를 말하는 것은 사실"디자인적이다"의 의미에 더 많은 무게를 싣지만, 작품에 대한 최종 느낌은, 평면성과 함께 회화성이 강하다라는 결론이다. 왜냐하면 대상을 단순화, 구도화 시킴으로서 비일상적인 표현을 하고 있고, 이 관계의 단순함은 대상의 형태와 색, 질감, 패턴을 부각시키기 때문이다. ● 일상과 비일상, 형식과 내용, 복잡한 것에서 출발한 단순함의 결과물은 작가의 직관적인 선택과 사물의 본질을 보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더 해져 완성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술가는 끊임없이 바라보고 관찰하면서 좋은 것을 선택해야하고 때로는 더 좋다고 생각되어지는 것들도 가차 없이 포기할 수 있을 때, 작품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예술가로서, 작가로서의 눈인 것이다. ● 그러나 「최종구도」의 평가를 작가의 직관력과, 형식적인 측면으로만 정의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무의식적인 선택의 결과물이 왜 하필, 그런 보잘 것 없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것들을 카메라 프레임 속에 담는가에 대한 내용적인 측면은 설명되어야 하기 때문이다.일반적으로 대상의 선택에는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각이 담겨있다. 「최종구도」는 세상의 합집합이 아닌, 여집합에 대한 관심이자, 무엇을 바라보는가에 대한 삶의 진지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소한 것에서 느끼는 작가 개인적인 특이성과 존재성에 대한 미적 발견이 다시 세상의 합으로 만들어지는 순간,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무의식적인 선택은 의식적인 표현과 진정성이 더해져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좋은 작품은 반드시 창작자의 태도와 맞다을 때 탄생된다. 그리고 자신의 예술성과 특수성을 보편적인 언어로 확장시켜나갈 때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최종구도」의 형식미는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도구로 사물의 본질에 가까이 가려는 노력과 태도가 더해져 완성된 작가의 최종 작품인 것이다. ■ 손지희
Vol.20120325a | 쉰스터展 / Schinster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