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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6층 Tel. +82.2.720.4353 www.insaartcenter.com
일상의 발견, 그 고요한 사색의 전개 ● 일상이란 어쩌면 삶의 그물과도 같은 것이다. 그것은 촘촘한 듯 하나 성글기 그지없어 고운 모래처럼 덧없이 흘러내린다. 그러나 그 그물은 또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만큼 크고 넉넉하여 담아내지 못하는 것이 없다. 그것은 늘 그렇게 반복되며 일상을 축적함으로써 삶을 풍부하게 하고, 또 부단히 지우고 비워냄으로써 내일을 담을 수 있는 여지의 공간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과정은 바로 생로병사라는 근본적인 순환의 고리 속에서 이루어지는 희로애락의 또 다른 이름인 셈이다. 삶이란 바로 이러한 일상이 씨줄과 날줄로 엮이며 이뤄내는 조각보와도 같은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그것이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모두 필연의 의미를 지니고 있게 마련이다. 어제는 오늘의 조건이었으며, 내일은 바로 오늘의 반영일 것이다. 비록 일상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무수한 조건과 원인이 서로 작용하여 성립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이루어진 일상의 결과는 또 다른 조건과 원인이 되어 또 다른 결과로 표출되게 마련이다. 삶은 어쩌면 바로 이러한 필연의 그물로 이루어진 인과의 산물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일상과 일상 사이에서 드러나는 현상과 현상의 관계를 꿰뚫어 보고 명찰할 수 있음은 바로 깨달음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티끌 없이 잘 닦인 거울처럼 명료할 수 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바로 오늘이라는 일상을 그렇게 살며 내일을 기약하는 소이일 것이다.
작가 정지아에게 있어 일상은 바로 작업의 원천이다. 그것은 특정한 지향이나 목적성을 지닌 것이 아니라 눈앞에 펼쳐지는 평범한 일상 그 자체이다. 작가는 이러한 번다한 일상의 부스러기들을 통해 사유하고 사색하며 자신만의 씨줄과 날줄을 물들인다. 두텁고 견고한 화면의 바탕에 무심한 듯 스쳐 지나가는 여린 필촉들은 일상의 기록이자 사념의 흔적들이다. 그것은 꾸미고 가공하여 장식되는 작위적인 것이 아니라 눈길이 머물고 생각이 떠오르는 평범한 곳에서 비롯된다. 극히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삶의 한 양태를 담백하게 드러내는 작가의 감성은 여리고 소박하다. 그것은 마치 동시나 가벼운 에세이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작고 나지막하게 속삭이듯 이야기하고, 조심스레 내미는 찻잔처럼 수줍음이 가득한 온기를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작가의 화면이 지니고 있는 특질일 것이다.
여리고 담백하지만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화면에 돌연 등장하는 부처는 일종의 화두와도 같은 것이다. 그것은 작가의 작업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것의 실체일 것이며, 반복되는 일상에서 작가가 찾아낸 내밀한 자신의 언어일 것이다. 불상은 그 자체로 대단히 강한 상징성을 지닌 것이다. 그것이 일상의 상황에 놓임으로써 화면은 돌연 평범한 일상의 틀을 깨고 비범한 또 다른 것으로 변환된다. 물론 불교라는 특정한 종교적 내용을 조형으로 해석하여 표출함은 대단히 난해한 것이다. 형상에 집착하면 종교색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형상을 벗어나면 지향이 모호해진다. 그러므로 형상의 그물에 걸리지 않으면서 자신의 조형언어를 표출해 낼 것인가가 작가에게는 관건인 셈이다.
작가가 차용하고 있는 석채(石彩)라는 재료는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천연 암석을 가공하여 안료로 만든 석채는 특유의 질감과 발색이 두드러지는 안료이다. 석채는 일정한 입자를 지니고 있기에 두텁고 견고한 바탕을 담보해 준다. 더불어 명징한 색감은 여타 안료로는 발현하기 힘든 독특한 품격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석채의 운용은 일단 장인적 기능과 수고를 전제로 하며, 이를 통해 구축된 바탕은 일견 벽화의 그것을 연상케 할 만큼 견고한 광물적 특성이 두드러진다. 작가는 이러한 석채의 독특한 특성을 통해 일상의 평범한 풍경들은 물론, 오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벽화들을 통해 자신의 조형언어를 표출하고자 한다.
석채가 지니고 있는 재료적 특징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바로 불변성이다. 광물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일반 화학적 기술을 통해 만들어진 안료들과는 달리 불변의 시간성을 지니고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시간은 자연의 언어이다. 자연은 바로 시간을 통해 인간의 작위로 완성되어진 것을 무작위로 환원함으로써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시키며 또 다른 완성을 지향한다. 즉 인간이 일상의 축적을 통해 삶을 완성해 가듯 자연은 시간이라는 일상을 통해 작위적인 것을 무작위적인 자연의 것으로 다시 되돌림으로써 궁극적인 완성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일상이 인간의 시간 단위라면 이러한 영겁은 바로 자연의 시간 단위이다. 비록 인간에게 무한, 불변의 것으로 인식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자연에 있어서는 일정한 유한의 단위이자 과정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작가가 석채의 불변성과 자연의 시간성을 병열시켜 대비코자 함은 아니겠으나, 이러한 조화는 작가의 작업이 지니고 있는 전반적인 의미와 함축된 내용들을 통해 볼 때 짐짓 흥미로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작가의 화면에 나타나는 불상들은 빼어나고 정치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졸박하고 수수한 분방한 형상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남쪽 운주사의 부처님들임이 여실하다. 세월의 풍상을 거쳐 모난 것을 둥글게 하고 선명했던 것을 은근한 것으로 돌리며 미소조차 희미한 부처의 형상들은 어쩌면 그래서 더욱 정겹고 살갑게 다가온다. 특히 이러한 부처들을 표현하는 선의 맛이 편안하고 구수하여 여유롭다. 연필이나 먹 선으로 흘리듯 무심하게 그어댄 정연한 필선들은 고른 호흡을 연상시킨다. 그것은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은 고요함이다. 차분하고 안정적인 절대 정적은 일상의 표정이 아니다. 그러나 작가는 이러한 독특한 선의 표현으로 일상의 번잡함 속에서 고요를 찾아내고 있다. 있는 것과 없는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는 반어법과 같이 작가는 평범한 일상에서 문득 깨달음 같은 고요와 적막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일상이라는 평범 속에서 발견해 낸 일상의 의미와 삶에 대한 단상에 다름 아닌 것이라 할 것이다. ● 소박한 이상과 석채 특유의 견고하고 명료한 색채 감각이 어우러져 이루어내는 작가의 화면은 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듯 하다. 하지만 이러한 화면은 단순히 상황을 묘사하고 현실을 반영하는 구상의 틀에서 읽혀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은 형상의 그물에 얽매여 본질을 망각하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상황을 통해 표출하고자 하는 일상에 대한 따뜻한 시각과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삶에 대한 애정에 더욱 주목하여야 할 것이다. 그것은 화면 전반을 관류하고 있는 나지막하고 은근한 것이기에 보다 세심하게 귀 기울여 들어야 할 것이며, 꾸밈없이 소박하고 여린 것이기에 더욱 조심스레 마주하여야 할 것이다. ■ 김상철
Vol.20120222c | 정지아展 / JUNGJIA / 鄭至娥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