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10308b | 조해영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1115_화요일_06:00pm
광주신세계미술제 수상작가 초대展
후원/협찬/주최/기획 / ㈜광주신세계_광주신세계갤러리
관람시간 / 10:30am~08:00pm / 금~일요일_10:30~08:30pm
광주신세계갤러리 GWANGJU SHINSEGAE GALLERY 광주광역시 서구 광천동 49-1번지 신세계백화점 1층 Tel. +82.62.360.1270 department.shinsegae.com
직관의 사유 ● "시간의 무늬처럼 어른대는 유리 저편 풍경들… / 어스름이 다가오는 창가에 서서 / 붉은 저녁해에 뺨 부비는 / 먼 들판 잎사귀들 들끓는 소리 엿들으며 / 나 / 잠시 빈집을 감도는 적막에 몸을 주네……" (남진우, 「저녁빛」에서)
조해영의 회화는 적막하다. 공간은 대체로 텅 비어 있거나, 일정한 패턴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간혹 건물이 등장하지만, 화면의 단색과 흐릿한 배경, 그리고 건물의 특수성이 제거된 입방체 건물은 그 정체를 모호하게 한다. 반면 제목은 수다스럽다. 「Stadium」, 「Pool」, 「Garden」, 「Nuclear Power Plant」 등의 제목은 공간과 건물이 무엇인지 명증하게 드러낸다. 제목의 수다스러움이 화면 전체를 장악하던 적막함을 깨고 자신의 정체를 공표한다. 즉, 화면의 적막함과 모호함은 제목의 과도한 찌름에 의해 산산조각 난다. 조해영의 작업의 이러한 모순적인 구조의 병립은 오히려 그의 작업을 '공간의 수집'이라는 측면에 한정시켜 관측하도록 유도한다. 그 결과 화면 전체를 장악하는 적막감과 추상성은 부가적 존재로 전락한다. '공간의 수집'이라는 측면에서 조해영의 작업을 본다면, 그의 수집의 논리는 엉성하다. 객관적 지표는 부재하며, 수집의 치밀함도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수집에 관한 작가의 말은 주목할 만하다. 작가는 자신의 수집의 논리에 대해 '주관적 직관'에 의한 수집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는 '공간'을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직관을 부여하는 공간'을 수집하는 것이다. 질러 말하면, 그의 작업에서 공간은 중요하지 않고, 자신과 공간간의 관계가 중요하다.
다시 공간을 지시했던 제목으로 돌아가 보자. 'Stadium', 'Pool', 'Garden' 등의 제목이 명증하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듯하지만, 이들은 단순한 명사이다. 명사에 내재할 수 있는 특수성이 제거됐다. 화면의 공간은 전체가 아닌 부분을 색과 선으로 형상화한다. 그곳이 제목이 지시한 장소인 것에는 변함없지만, 그것만으로 구체적 정보는 알 수 없다. 'Stadium', 'Pool', 'Garden'이기는 하지만 어떤 'Stadium', 'Pool', 'Garden' 인지는 알 수 없다.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이러한 태도는 공간을 단지 '스쳐 지나가는 풍경'으로 인식한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2009년 작품 「house」를 보면, 뚜렷한 건물의 형상과 스쳐지나 가는 듯 미세하게 흔들리는 자연이 대비된다. 제목에서 'house'라는 명사를 지시하여 이 건물의 형태와 의미를 더욱 뚜렷하게 한다.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house'일 필요는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작가와 이 풍경이 언젠가 스쳤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작가는 수많은 스쳐간 것들 중에서 이러한 형상 자체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다. 즉, 대상과 나의 어떠한 관계를 통해 화면이 구성됐다는 점이며, 이것이 그의 회화가 '공간의 수집'이 아닌 '어떤 직관을 부여하는 공간의 수집'인 이유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조해영 작업을 관통하는 '어떤 직관'의 정체가 무엇인가이다. 초기 작업인 「교실 1」(2005), 「교실 2」(2005)는 작가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장소'를 다뤘다. 두 작품은 얼핏 보면 동일한 공간에서 본 다른 각도의 이미지로 보인다. 그러나 두 작품의 책상과 의자의 배열을 본다면 다른 공간 혹은 다른 시간대의 (혹은 같은 공간, 같은 시간대이지만 작가의 기억에서 발생하는 오해의) 이미지이다. '잘 안다고 생각하는 장소'이기에 쉽게 확신하고 인식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내재한다. 조해영은 이후 작업에서 사적 경험을 배제하여 '오해'의 여지를 줄이고 자신의 '직관'에 의존한다. 그리고 스치듯 지나가는 그 이미지에서 작가는 공간의 내재된 특성을 지우고, 스쳐 지나 갔지만, 자신에게 인지된 표면의 패턴에 주목한다. 'Stadium', 'Pool', 'Garden'을 그린다기 보다는 자신의 스쳐지나 가는 시선을 붙잡았던 패턴에 주목한다. 공간의 특수성을 지우면서 조해영은 무엇이라 부를 수 없는 그러나 자신의 시지각에 포착된 그 무엇을 어떠한 오해도 왜곡도 없이 담아내고자 한다.
「Nuclear Power Plant」연작과 「Green」연작은 이전 작업에서 애매하게 줄타기를 했던 작업이 갈림길에서 각자의 길을 가는 듯하다. 「Nuclear Power Plant」연작은 흐릿한 추상성을 버린다. 조감도를 바탕으로 제작된 이 작업은 그가 원자력 발전소에 관심이 있다기보다 여타 원자력 발전소 조감도의 건물들의 유사함과 다름에 있다. 그러나 원자력 발전소가 제목과 화면 전면에 배치되면서 건물들의 차이보다는 '원자력 발전소'에 강조점이 찍힌다. 건물의 추상성도 사라지게 되면서 「Nuclear Power Plant」연작은 공간에 대한 수집인지, 직관의 수집인지 애매한 방향으로 흐른다. 반면 골프장 잔디 패턴을 바탕으로 제작된 「Green」연작은 그 바탕이 된 '골프장'의 지표를 삭제함으로 명명할 수 없음과 부재, 그래서 파악할 수 없음 그러나 자신에 인식된 그 패턴만을 보여 준다. 앞서 지적했듯이 그곳이 어디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같으면서도 다른 것들이 미끄러지며 인식의 지평을 확대하듯이 「Green」연작이 보여준 다양한 패턴은 끊임없이 변모하며 자신의 정체를 관객에게 유추하도록 한다. 관객들에게 스쳐 지나갔던 그 무엇들을 떠올리게 하며 말이다. 우리는 그의 회화를 통해 직관이 만들어내는 사유를 경험하고자 한다. 지금 조해영에게 필요한 것은 "잠시 빈집을 감도는 적막에 몸을 주"는 시간이 아닐까. ■ 이대범
Vol.20111116k | 조해영展 / CHOHAEYOUNG / 趙海瑛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