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ad

김시연展 / KIMSIYEON / 金始衍 / photography.installation   2011_1111 ▶ 2011_1204 / 월요일 휴관

김시연_Thread_디지털 프린트_145×200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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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1111_금요일_06:00pm

작가와의 대화 / 2011_1111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현대_16번지 GALLERY HYUNDAI 16 BUNGEE 서울 종로구 사간동 16번지 Tel. +82.2.722.3503 www.16bungee.com

작고 연약한 것들의 소심한 위협 ● 인간이 거대한 사회와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다. 몸속에서 작동하는 수많은 면역체계들 그리고 심리적인 방어기제들 그리고 사회화된 여러 행동과 의식들이 개별적 존재들을 험한 생존의 각축장에서 겨우 존재를 지켜나가게 만들어준다. 여기까지는 생물학적, 의학적 그리고 사회학적 논리의 메커니즘으로 적당히 틀을 잡아볼 수 있는 생존의 공식이다. 공식적으로만 살아간다면, 인간은 단일 세포체의 미생물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 생존의 치열한 경쟁 사이에는 수많은 소통과 단절이 형성된다. '동물의 왕국'이나 기타 기록영상을 보아도 확인할 수 있듯이,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감정과 의지를 소통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 모든 행위와 현상들이야말로 어쩌면 가장 궁극적인 현존성이 아닐까. 그러므로 외형적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큰소리나 제스처 혹은 시위뿐만 아니라, 눈 깜빡임과 같은 미세한 동작조차도 위의 맥락으로 보면, 거의 같은 의미와 무게감을 지닐 수 있다. 아주 작은 행위나 소리 그리고 감정은 그 생태적 원리부터가 매우 정교한 전개과정을 지니고 있으며, 대상에 대한 미시성은 이성적인 차원에서는 미시적이며 동시에 우주적인 동시적 사유를 형성해 주지만, 감성적 차원에서도 보다 깊은 사유의 지도를 형성하게 해 준다. 작가 김시연의 지도는 곧 감성이 실타래가 되어 형성하는 매우 유약한, 그렇지만 의식상으로는 매우 거시적인 메시지로서 재현되고 있다.

김시연_Thread_디지털 프린트_40×40cm_2011
김시연_Thread_디지털 프린트_60×51cm_2011

쓸모없는 것들에 대한 경외심 ● 김시연은 열심히 지우고 나면 종이 위에 그리고 바닥에 때처럼 쌓이는 지우개 찌꺼기를 이용하여 조형을 한다. 고무가 종이에 밀려 벗겨진 살갗은 여전히 점성을 가지고 있어서 마치 유토처럼 조형이 가능하다. 하지만 지우개의 찌꺼기를 만들어내는 작업은 - 그 목적성에 있어 철저히 비합리적이다 - 현실성에 비추어 매우 부조리해 보인다. 이 찌꺼기를 모아서 뭉쳐 실을 만들고, 이 실로 타래를 만든다. 쓸모없는 찌꺼기를 만들어내기 위한 기초 작업은 그야말로 부단한 인내와 시간을 파하는 노동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쓸모없음을 향한 이 노력은 우선 그의 작업이 가장 예술적인 행태를 띤다고 평가하게 만든다. 이것은 시지포스의 신화에서 나타난 무한 반복적 노동에서 부조리의 원천을 읽어냈던 알베르 까뮈(Albert Camus)의 의식과 만난다. ● 일상사물(object trouvé)을 원료로 하는 미술은 뒤샹(Marcel Duchamp) 이후에 별로 신기하지도 않지만, 현대 미술사를 거치면서 일상에 숨겨진 여러 감응들을 사물에서 발견하고 재구성하는 일은 작가들에게는 매우 창조적인 실천으로 평가되었다. 예를 들어,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나 미니멀리즘(Minimalism)에서 일상의 물건 - 대체로 이것들은 용도를 다한 폐기물들에 가깝다 - 들은 새로운 구성과 맥락 그리고 부여된 환경 속에서 아우라(aura)를 지닌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하였다. 가까운 사조였던 팝아트가 대량생산된 상품이나 포장 그리고 대중적 이미지들을 사실적(?)으로 재현함으로서 예술작품을 일상용품인것처럼 만들었다면, 전자는 그 맥락을 역행하는 식으로 전개했다. 모리스(Robert Morris)가 사용하는 펠트 천이나 피스톨레토(Michelangelo Pistoletto)의 쓰레기 더미들은 일상에 잠재된 다른 차원의 미학을 제의적 상황으로 재인식하게 만드는 이벤트를 벌였다. 이 남성적 대가들의 권력과 같은 거시적 시각과는 달리 김시연의 소심한 작업은 그 일상성에 너무나 서정적으로 접근하는 편이라 하겠다. 이러한 시성은 부르주와(Louise Bourgeois)의 작품이 풍기는 다중적인 상징성이나 고차원의 심리적 자극에 더 가깝다.

김시연_Thread_디지털 프린트_100×100cm_2011
김시연_Thread_디지털 프린트_97×120cm_2011

Capriccio ● 그러나 이미 과거 소금을 이용한 설치작업에서 보여주었듯이, 작업의 미학적 속성인 멜랑콜리를 함유한 서정성과 여성적 정교함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김시연의 서정성은 말 그대로 서정적 스토리텔링에서 나온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서정적인 정조를 그대로 유지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는 말미에 이르러 급반전하여 초현실적인 서사구조로 바뀐다. 이러한 전환은 일종의 '카프리초(Capriccio)'와 같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래서 예상을 불허하는 파격을 가리키는 미술사적 용어인데, 카프리초는 김시연에게 약간은 심리적 공황과 같은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한 도구로서 사용된다. 카프리초가 지닌 들뜬 비애감도 김시연의 작품과 곧잘 상응된다. ● 고무찌꺼기로 실밥을 만들어 타래를 형성하면서, 그 타래는 또한 슬그머니 실밥을 풀어놓음으로서 어떤 상황을 연출하게 된다. 그 상황들은 매우 델리케이트(delicate)하다. 상황을 연출한 본원적 의도는 완고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실제는 우습고, 허술하고 때론 귀엽다. 작가는 자신이 기술한 몇몇 가상이야기를 통해 지루한 일상의 사건이 초현실적인 기이(奇異)로 반전되는 상황을 그려왔다. 이에 상응하는 조형언어도 가정용 물품이나 재료와 그것을 가가이하고 지냈을 법한 전업주부의 기괴하고 발랄한 상상력이 결합하여 생산되었다.

김시연_Thread_디지털 프린트_98×145cm_2011

바리케이트와 부비트랩: 소심한 자기방어 혹은 우울한 새디즘(Sadism) ● 불과 몇 년 전에 김시연은 가정이라는 공간 내에서 자기만의 공간을 설정하고 긋고 그리고 방벽을 쌓았다. 그리고 마치 벽사(辟邪)적인 의미를 지닌 장애물을 요소에 설치함으로서 자기 공간에 대한 배타성을 가시화하였다. 공간에 대한 조형학적 사고를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찾아낸 것은 훌륭한 시도였다고 말할 수 있다. 원래 조각을 전공했던 작가로서 공간이란 너무나 깊이 각인된 조형원리였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단순히 물리적인 차별이나 균제 등으로 관념화된 공간이 아니라 매우 심리적인 공간 그리고 더 나아가 세상의 모든 존재가 근원적으로 욕망하는 공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 막힌 벽이나 문지방, 창틀이나 바닥 등 집을 이루는 어떤 공간은 분할을 이루는 기점을 형성한다. 바로 이 지점에 작가는 바리케이트를 치거나 부비트랩을 설치하여 자기 외에 존재에 대한 공간의 침입을 방어하려고 시도했다. 하얀 소금으로 이루어진 원뿔형 기둥을 가득 세운 방안이나 찬장 내부도 그렇지만 소금 가루를 이용하여 카펫의 패턴으로 덮어진 바닥은 극도의 신중함을 불러일으키는 기제로서 작동한다. 물론 이에 선행하는 시각적인 수용은 미학적이지만, 다음 과정으로서의 행동에는 억압기제로서 인식된다. 그러나 소금이 지닌 물성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바리케이트가 지닌 허약함에 기인한 모순적 상황에 이르게 된다. 작고 부서지기 쉽고(fragile), 연약한 재료들과 겨우 한시를 버티지 못할 조형적 구조는 우리의 보편적 관념과 타성적인 현실감에 대비되어 혼란스러운 의식상태로 만든다. 이 작고 연약한 것들의 소심한 위협과 방어의식은 바로 작가의 방어의식을 보여준다. 필자는 여기서 약간 더 나아가 '우울한 사디즘'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이것은 작가가 이전에 사용했던 주제인 '우울증에 걸린 집'에서 착안한 것이다. 프로이트에 이르기까지도 우울증(혹은 히스테리)은 여성의 전유물이었으며, 여성 특유의 정신 병리학적 방어기제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이 맥락에서 김시연이 작품을 통해서 노출시키는 '우울함'은 자기의 삶을 통해 행해지거나 혹은 의도되어진 소심한 방어의지라고 본다. 그러므로 설치나 사진으로 제시되는 여러 상황들은 바로 이런 그의 미시적 심리세계의 편린이라고 하겠다.

김시연_Thread_디지털 프린트_102×145cm_2011

짧은 종언 ● 어쩌면 김시연은 필자의 예술론에 가장 근접한 행위와 사유를 하는 작가인지 모르겠다. 나는 항상 거시적인 대상이나 주제에 천착했던 예술이 가장 미시적이고 감각적인 영역에서는 맥을 못 추는 현대미술의 양상에 비판적인 거리감을 두었었다. 세계의 평화나 사회나 정치적 비평의 선상에서의 언변은 탁월하지만, 당장 제 손끝의 작은 상처에 대해서는 표현할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 내가 주장했던 현대미술의 한계였다. 이 맥락에서 김시연은 매우 적절한 의미를 형성시키며, 또한 적당한 방법론을 갖추고 있다. ■ 김정락

Vol.20111112j | 김시연展 / KIMSIYEON / 金始衍 / photography.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