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awberry's Issue

션팡정展 / SHEN FANGZHENG / 沈芳正 / painting   2011_1103 ▶ 2011_1204 / 공휴일 휴관

션팡정_it were true that there is an end of world, I would jump into the sea I painted_ 캔버스에 유채_205×253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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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1103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공휴일 휴관

갤러리 아트사이드 GALLERY ARTSIDE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6길 15 Tel. +82.2.725.1020 www.artside.org

파도처럼 경쾌하고 별처럼 가볍게 ● 중국의 젊은 신예작가 션팡정은 우선 작품을 제작하기 전에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대상들 - 그것이 사물이던 인물들이던 - 을 연출하여 촬영하고 그것을 근거로 최종 회화작품을 완성시킨다. 애초부터 최종 작품을 머리 속에 명확하게 그려 넣고 모델들의 복장, 헤어스타일, 액세서리 등을 감독한다. 이는 작가에게 회화의 전 작업이기도 하지만 작품의 전체적인 구상이 이루어 지는 시간이자 창작행위이기도 하다. 이때 작가는 세 대의 카메라를 운용한다. 이 카메라들은 각기 전체 제작 장면, 디렉팅된 모델 그리고 디렉팅하고 있는 작가를 촬영한다. 어쩌면 우리가 타자와 관계하는 종합적인 인식과정 즉, 대상을 통해 타자를 깨닫고, 그 타자와 소통하려고 하는 자신을 깨닫고 그 후 타자와 소통하고 있는 자신의 사고들을 객관화 하는 단계적 인식과정을 카메라의 눈을 통해 현실화 시킨다. 이렇게 현실화된 모델들은 그의 작품 속에서 다시 한번 인간 심리의 근원적인 질문, 자연이 주는 성찰의 기회 그리고 다시 인간 본성으로의 회귀를 위한 우주의 심연을 드러내기 위한 강력한 메타포로 탈바꿈된다.

션팡정_Actually, Mountain Fuji is a volcano_캔버스에 유채_110×220cm_2011

욕망, 영혼을 고갈시키다. ● 션팡정은 유아기 때의 기억과 어린 시절의 기억을 다양한 은유적 장치로 구분하여 현대의 심리적 상태를 표현한다. 그 심리적 상태를 좌지우지 하는 강력한 원인으로서 작가는 인간의 욕망을 그 문제의 핵심에 두고 있다. 좋은 의미에서의 욕망이라고 하는 것은 욕망하고자 하는 요소에 따라 성취를 이룰 수 있는 힘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주로 그 반대의 역할에 주요하게 작용하는 것이 바로 욕망이다. 작가는 이를 근거하여 모델들의 다양한 행동 패턴을 연출하고 그 연출된 내용을 토대로 자신만의 다이내믹하면서 드라마틱한 회화를 완성한다. ● 욕망의 주체자로서 인간을 작가는 가능한 한 백색의 피부로 연출하고 그린다. 백색의 피부는 그의 유아기적 기억들로 대변되는 표현 방법으로서 깨지기 쉬운 유아적 심리상태를 나타낸다. 말 그대로 백색은 외부로부터 오염되기 너무나 쉬운 색이다. 유아기의 많은 기억들 대부분이 막연한 상상의 시간으로 혹은 무의식의 공간으로 침잠해 버린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렇게 성장의 경험에 의해 백색의 기억들은 오염되어가며 끝내는 잊혀진다는 것이다. 작가는 그러한 유아기적 상상과 무의식에 근거하여 욕망의 근간에 놓여질 심리적 상황에 대해 다양한 액세서리와 메이크업 등을 이용하여 표현하고 있다. ● 또한, 그의 작품의 특성 중 하나는 백색의 피부와 함께 남녀 구별을 모호하게 하여 거세공포와 같은 유아기적 불안을 반영하고 있다. 거세 당했거나 거세 당할지 모르는 불안과 그 불안으로 자극된 욕망 그리고 그 충족의 결여는 작가로 하여금 성장에 대한 끊임없는 공포를 그려내게 한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표정은 공허하고 허탈하며 때로 공격적 성향을 띠게 된다. 작가에게 성장에 대한 공포는 새로운 상상력의 근원일 수 도 있지만 대상, 혹은 대상간의 관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이미 사회적으로 명백하게 결정된 관계를 부정함으로써 작가는 사실적으로 대상을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누군가의 창문을 엿보는 듯 한 불편하면서도 은근한 떨림을 보여준다. ● 이러한 떨림은 은근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우리를 흔든다. 그 흔들림은 어디까지나 사회적 안정과 상식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가능하다. 그러나 욕망의 자극에 의한 흔들림은 언제나 그 정도를 넘는다. 그것이 주는 쾌락은 그 어느 것과도 비교가 불가하다. 인간이기에 가능한 참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그리고 그 깊이와 강도는 점점 더 깊어지고 강해진다. 헤어 나올 수 없는, 헤어 나오려 하면 점점 더 빨려 들어가는 이른바 늪과도 같다. 그리하여 작가는 급기야 영혼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자신의 모델들을 끄집어내 영혼의 무게를 측정하는 특별한 저울 위에 올린다. 저울의 바늘은 제로에서 꿈적도 하지 않는다.

션팡정_Went to Heaven_캔버스에 유채_255×170cm_2011

자연, 반복적으로 성찰하다. ● 션팡정은 고갈된 영혼을 위해 반복적 성찰이라고 하는 미장센을 설계한다. 작가는 그 미장센의 중심 소재로 자연적 소재를 끌어 들였다. 야채, 과일, 꽃과 같은 우리 일상에 너무나 밀접해 있는 소재들이 그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물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이것들이 지니고 있는 자연의 본래적 성질이 아니라 우리 인간과의 관계다. 단순히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친근한 소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보다는 그 소재들의 기능이 이탈되는 순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모델들을 연출했듯이 션팡정은 이러한 친근하면서도 여전히 자연적 성질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소재들을 자신의 의도대로 연출한다. 그 연출의 메인 테마가 바로 기능전환이다. 작가의 연출로 인해 야채와 과일들은 거대한 산을 이루게 되고, 꽃들은 집채만한 파도를 만들고 있다. 이러한 기능전환을 통했을 때, 이 친근했던 자연물들은 우리의 일반적 감정들과 대립하고 대립은 우리의 바라봄을 이끌고 그 바라봄은 성찰의 기회를 만든다. 작지만 변증법적 논리가 진행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무엇을 성찰하게 되는가. 답은 의외다. 왜냐하면 그 답이 "반복"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작가의 연출과 계획에 의해 반복을 성찰한다? 쉬 납득이 가지 않는다. 반복은 수행이나 공부를 하는 방법의 일환이지 그것 자체가 수행을 통해 얻고자 하는 목적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가 찾고자 하는 것이 인간 존재를 위한 근원적 기능이나 방법이었다면, 반복은 충분히 그 해답으로서 무게를 지닐 수 있다. 이를테면, 자연은 인간이 존재하고 영원할 수 있는 힘을 반복이라고 규정하고 끊임없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예를 들어 반복을 생성의 에너지로 상정하고 그 에너지가 창조하는 피조물 중에 어쩌면 인간도 포함되어 있다는 가정이다. 야채와 과일들로 만들어진 산이 아직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활화산이며, 꽃들이 만들어 놓은 파도는 노아의 방주를 집어 삼킬 만큼 거세고 거대하게 몰아치고 있다. 이 묘한 아이러니 속에 감추어져 있는 것이 반복의 에너지라면 우리는 골이 깊어 동물조차도 접근이 어려운 첩첩산중의 꽃이 왜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이유를 따져 볼 수도 있을 것이다. ● 반복은 순환이고 순환은 결과론적으로 생산과 발전을 꾀하는 운동이라면 인류는 그 지난한 반복의 힘으로 인해 발전해 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류를 포함해 생명의 본질적인 패턴은 거기가 어딘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늘 그래왔듯이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이다. 여기가 바로 우리의 시선이 우주로 향하게 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정리하자면, 자연은 우리로 하여금 반복적 성찰을 깨닫게 하고 그 깨달음은 우리의 근원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또한, 욕망으로 점철된 우리의 삶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그 욕망의 충족으로 고갈된 영혼을 충만하게 할 수 있는 근거로서 작가는 자연이라는 해답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션팡정_Pinocchio's prophecy- Suke, Suke, Suke!_캔버스에 유채_140×510cm_2011
션팡정_Summer has gone_캔버스에 유채_110×220cm_2011

우주, 근원으로 회귀시키다. ● 우주의 별들과 지구의 생명체들은 일대일로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으로 인해 우리는 사후에 자신과 연결되어 있는 별로 돌아간다는 문학적 상상력을 품어 왔다. 션팡정 역시 그 믿음을 이성적으로는 아니더라도 감성적으로는 굳게 믿고 있는 듯 하다. 어려서부터 늘 올려다 보던 밤하늘의 별 중에 자신이 돌아갈 별이 있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이 세상을 사는데 감성적으로는 매우 든든할 것 같기는 하다. 실질적으로 생명은 우주 에너지의 파장에서 비롯 되었다고 하는 다소 비현실적인 이론들이 있기는 하나 별과 우리의 생명과의 관계를 과학적으로 따지기에는 그 둘 사이의 거리가 광년처럼 멀기는 하다. 하지만 각각의 별이 생성하는 기운 즉, 에너지와 태양계 사이에 미세하나마 관계가 있다고 한다면, 우리의 생명과 별은 막연하나마 나름의 관계를 지니고 있다고 점쳐볼 수는 있을 듯 하다. 작가는 우리의 생명과 일대일로 대치될 수 있는 밤하늘의 별들이 초콜릿처럼 달콤하고 때로는 꽃처럼 예뻤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 듯 하다. 소년처럼 매우 순수한 생각이기도 하면서 우리 근원에 대한 위트 있는 고민이기도 하다. 그 달콤한 별들에 대한 상상, 그것은 우리가 에너지의 형태로 우주에 속해 있을, 시간이나 공간과 같은 개념뿐 아니라 그 떤 개념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무엇으로, 초콜릿처럼, 꽃처럼, 단지 존재하고 있는 그 무엇에 대한 작가적 해석일 수도 있다. ● 션팡정은 인간, 자연 그리고 우주를 줄곧 같은 선상에서 고민해 왔다. 그 모든 것들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이 그의 작품들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또한, 그는 그 세 개의 꼭지점들을 잇는 선들이 종국에는 원을 그리는 식으로 순환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각각 꼭지점들의 개별적인 역할은 서로 다르나 그것이 하나의 원을 그리면서 전체적으로는 우리 인류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끊임없이 묻는 구조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적으로 작가는 하나의 작품에 집중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어떻게 이 구조를 연출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제작해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 우리는 과연 다시 근원으로 또는 어떠한 에너지로 회귀될 수 있을까 아니면 영혼이 지닌 에너지의 고갈로 인해 일회용처럼 소멸되어 버릴 것인가. 그 결과에 대한 결정은 우리 자신에 달려 있다. 생명임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욕망의 발현으로 살아 갈 수 밖에 없는 삶으로부터 일탈할 수 있는 단서로서 자연을 매개로 하여 전체를 구상하고 있는 작가는, 그 에너지의 본원으로서 우주를 그리고 다시 생명으로 욕망하고 자연으로 성찰하고 우주로 회귀하는 순환을 그리고 있다. 살아 온, 아니 욕망한 시간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젊은 작가가 짊어지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주제를 경쾌하고 가볍게 풀고 있다. 그럼에도 그 주제 자체가 갖는 무게로 인해 결코 가벼워지지 않는, 따라서 자연스럽게 그 양쪽의 밸런스가 잘 맞아 떨어지는 작품이 바로 션팡정, 그의 작품이다. 서늘한 가을 바람을 타고 리드미컬하게 떨어지는 낙엽처럼 생명이 다해 가벼우면서도 또 다른 생명을 준비해야 하는 무게가 동시에 느껴진다. ■ 임대식

Vol.20111103j | 션팡정展 / SHEN FANGZHENG / 沈芳正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