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에 매달려 현실 밖으로 올라가다

유희선展 / YOOHISUN / 兪熙善 / painting   2011_1102 ▶ 2011_1112 / 일요일 휴관

유희선_떠있는 편안하고 부드러운 실크 의자_캔버스에 유채_53×65.1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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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1102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09:30am~06:30pm / 일요일 휴관

웅 갤러리 WOONG GALLERY 서울 강남구 논현동 96-4번지 삼경빌딩 B1 Tel. +82.2.546.2710 www.woonggallery.com

어릴 적 가슴 졸이며 들었던 옛날 동화 가운데 하나는 할머니를 잡아 먹은 호랑이에게 쫓기던 남매가 허공에서 내려 온 동아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달님, 해님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동아줄은 현실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구원의 손길이었지만 다시는 현실로 돌아오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말았다. 달님, 해님의 세계는 결국 이 땅의 세계가 아닌 천상의 세계이자 죽음 이후의 세계이다. 아마도 이것이 불완전한 인간 존재가 갖는 영원한 이율배반일 것이다. 오늘날 많은 이들은 고된 일상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 하지만 궁극의 벗어남은 불가능하다. 단지 동화에서나 가능하다. 혹은 그림에서나 가능할지 모르겠다.

유희선_분리_캔버스에 유채_116.8×91cm_2011

유희선 그림에 늘 상 등장하는 끈이 앞 이야기의 동아줄이다. 유희선의 동아줄은 끌어 올려지는 대상과 같이 연결되어 붉은 노끈, 신발끈, 링겔튜브, 기름호스 등으로 변화하지만 그 끈의 역할과 목적은 모두 같다. 그것은 대상을 하늘로 끌어 올리는 것이다. 그런데 유희선 그림에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 이점이 초현실주의 그림의 상징과도 같은 르네 마그리트 그림과 차이나는 부분이다. 눈밝은 감상자라면 유희선 그림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푸른 하늘과 흰 뭉게구름이 마그리트 그림의 중요 배경이었다는 것을 알 것이다. 화가의 그림 소재인 빵, 자동차, 의자, 탁자, 옷, 신발 등은 사람을 은유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것들은 일상에서 누구나 매일 사용하는 것들이니 현실의 가장 충실한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소재들은 사실기법으로 묘사해서 사진 같은 느낌이 난다. 그래서 초현실주의지만 현실감, 실재감이 느껴지는 것이 유희선 그림의 묘미이다. 또한 네 다리가 잘린 의자, 하반신만 남은 몸뚱이, 곰팡이 핀 식빵, 뼈대를 훤히 드러낸 차체 등 현실의 고통에 대한 은유 또한 생생해서 그것을 바라보는 것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그래서 끈은 구원의 필요성을 더 정당화시켜주는 대비로 작용한다.

유희선_Fly_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11

2년 전 유희선의 첫 번째 전시를 보면 화가는 허공에 뜬 자신만의 섬에 갖혀 낚시 줄 이라는 또 다른 끈으로 수 많은 물건들을 낚아 올리는, 역시 초현실의 그림을 그렸다. 그러던 것이 이번에는 땅으로 내려왔으며 사물들이 끈에 의해 하늘로 올라가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질문은 저 끈은 과연 누가 끌어올리는가 일 것이다. 이것은 그림 안에 답이 암시되어 있다. 커다란 두 개의 발끝부분이 허공에 매달려 있다. 이것은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발을 형상화한 것으로 해석 될 수 있다. 즉 화가는 신의 은총과 구원과 같은 의미로 끈을 제시한 것이다. 물론 유희선 그림의 끈은 보는 이에 따라 여러 의미로 읽을 수 있다. 꼭 신이 아니어도 막연한 미래에 대한 희망, 소망일 수 있다. 이것은 동화 속의 동아줄이 남매의 염원이었던 것과 같은 것이다.

유희선_rapture_캔버스에 유채_72.7×53cm_2011
유희선_때로는 잠시 떠있고 싶다._캔버스에 유채_72.7×60.6cm_2011

그런데 신에 의한 구원이든 희망에 의한 상승이든 유희선 그림이 담고 있는 의미는 현실에서 탈출하여 벗어나는 것이다. 이 땅에 발을 딛고 서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을 떠나는 염세성향이 강하다. 화가는 현실에서 벗어나 위안을 삼으려는 마음으로 그림에 임하였고 작가에게 그림은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탈출하는 비상구였다. 그래서 화가의 그림은 초현실이자 탈 현실이다. 하지만 화가의 그림처럼 우리는 하늘의 동아줄을 잡고 올라 갈 수 없다. 이곳을 떠나서, 여기를 떠나서의 극락의 존재는 매우 동 떨어져있다. 그래서 옛 성현은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딛고 일어서라"라고 말 하였던 것이다.

유희선_Untitled_캔버스에 유채_65.2×90.9cm_2011

어쨌든 유희선은 두 번째 전시회에서 첫 번째 보다는 훨씬 성숙한 화풍을 이루었다. 이전에는 섬에 갖혀 온갖 물건들에 파묻혀 절망에 빠져 있던 상태에서 구원의 희망을 갖게 된 것은 큰 진전이며 그림 구성에 있어서도 화면을 빼곡히 채웠던 잡다한 물건들이 하나로 수렴, 정리되었으며 덕분에 사물묘사가 질감까지 느껴질 정도로 사실성을 이루었다. 결국 화가의 초현실, 탈 현실주의 화풍이 다음에는 어디로 흘러 갈지가 궁금하다. 그것은 화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장차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라는 질문과 같다. 나아가서는 초현실, 탈 현실이 아니라 다시 현실, 재 현실을 찾아야 할 때가 아닐까. 아무리 삶이 고달퍼도 낙천성을 잃지 않았던 우리 민족의 깊은 뿌리를 안다면 현실을 껴안고 그 안에서 재미와 의미를 찾는 작업을 화가들이 먼저 해야 하지 않을까. 백남준이 말하지 않았는가."인생은 싱거운 것입니다. 재미있고 짭잘하게 만들려고 예술을 합니다." 혹시 모르겠다. 유희선의 다음 전시 제목이 "굿바이, 마그리트"가 될지. ■ 탁현규

Vol.20111102g | 유희선展 / YOOHISUN / 兪熙善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