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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0921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30pm / 주말_10:30am~06:00pm
제이에이치갤러리 JH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29-23번지 인사갤러리빌딩 3층 Tel. +82.2.730.4854 www.jhgallery.net blog.naver.com/kjhgallery
얼마 전 친구로부터 회화 작품의 평론을 부탁받았다. 종종 갤러리를 드나들곤 하지만, 겨우 팜플렛 챙겨 오기에 급급한 내게 평론이라니... 거듭 거절했지만 그의 집요함에 못 이겨 결국은 이렇게 펜을 들고 말았다. 평론이 아닌 친구의 시각에서 바라본 가벼운 단상(斷想)임을 단서로 붙이고서 말이다. ● '형식 없는 정돈', '자유분방한 절제', '느슨한 성실함', '낙천적인 고뇌'...
며칠 전 그의 작업실을 방문하고 돌아온 날 밤, 그를 생각하며 떠올린 이미지들이다. 어찌 보면 이율배반적인 단어들의 조합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중용지도(中庸之道)의 경지에라도 오른 듯 치우침 없이 자유롭고 편안한 그의 모습 속에서 발견한 이 이미지들은 흥미롭게도 그의 작품을 대면할 때마다 떠오르는 심상들과도 많이 닮아있다. 크고 시원스러우면서도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밀도감 있는 붓의 터치나, 조용하면서도 화면 전체를 압도하는 과감한 원색조의 색감은 그에게서 느껴지는 이미지만큼이나 매력적인 그만의 작품 스타일이다. ● 그의 캔버스 속에 담긴 풍경의 소재는 구도나 색채가 특별하거나 시각적으로 주목할 만한 대상인 경우가 드물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대상과의 교감이다. 그것이 순간적으로 생겨났든 오랜 시간을 거쳐 만들어졌든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는 타고난 관찰력과 인내심을 갖고 대상과의 소통을 시도한다. 세상에 많고 많은 자연물 중에서 그에게 선택 받은 대상은 이윽고 자신의 속내를 조심스레 캔버스 위에 털어놓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 혹은 한 달이 지나 캔버스의 빈 공간이 사라지는 어느 시점에선가 작가 개인의 이야기로 화제가 바뀌어있다.
그래서일까? 그의 풍경화 속에는 작가의 시점 뿐 만아니라 작가 자신이 포함되어있다. 때로는 화면 전체를 뒤덮은 엷은 터치의 잿빛 구름아래, 때로는 화면 중앙에 홀로 서있는 검푸른 나무의 두터운 등 뒤에... 그의 풍경화 속에서 숨겨진 자화상을 찾는 일은 그래서 흥미롭다. 그의 그림을 보면 그의 근황을 알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작품 속 대상을 향한 끊임없는 관심과 소통을 위한 노력의 흔적이 바로 그의 작업 과정이자 또 결과물인 이유이기도하다. ● 히브리어로 사랑을 지칭하는 몇 가지 단어 중에 에로스와 아가페가 있다고 한다. 에로스는 가치를 소유하기 위한 행위로, 아가페는 가치를 부여하는 행위로 설명되곤 한다. 그래서 흔히 남녀 간의 사랑을 에로스에, 신이 인간을 향한 그리고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을 아가페에 비유한다. 그가 작품의 대상과 나누는 교감이 바로 이 아가페와 닮아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가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은 근본적으로 긍정적이며 포용적이다. 너무나 흔해서 눈길조차 가지 않는, 때로는 말 못할 상처를 품고 가슴앓이를 하는 일상의 풍경이 그와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은 거룩하기마저 하다. 켜켜이 쌓인 두터운 안료 사이사이에 녹아있는 인내의 생채기들은 더 이상 고통의 상징이 아니다. 그에 의해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부여받은 선택된 대상은 이제 새로운 피조물이다. ● 신이 피조물을 만든 후에 느낀 감정은 기쁨이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지 않았던가... ● 창조의 기쁨과 설레임이 친구의 일상에 가득하길 소망한다. 때로는 힘들고 때로는 아픔도 수반되겠지만, 궁극적으로 그의 창조적인 작업이 그에게 마르지 않는 기쁨의 샘이 되기를 두 손 모아 소망한다. ■ 김한신
Vol.20110921c | 배병규展 / BAEBYUNGKYU / 裵炳奎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