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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0916_금요일_07: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토,공휴일 10:00am~06:00pm
무심갤러리 MOOSIM GALLERY 충북 청주시 흥덕구 사창동 253-5번지 Tel. +82.43.268.0070 www.moosimgallery.co.kr
하나의 상징과 열의 실재 - 장백순의 생명과 탐욕의 조각 ● 탐욕이 문제다. 불교는 깨달음에 장애가 되는 첫 번째 번뇌를 탐욕에 두었고, 기독교는 탐욕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를 유황불로 멸했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탐욕이 문제이고 그것은 지칠 줄 모른다. 멈추는 것은 고사하고 더 노골적이며 광폭하다. 지난겨울과 봄 사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가축들을 땅에 묻어야 했던가! 집에 치는 축생(畜生)들은 악업을 짓고 우치(愚癡:어리석음)가 많은 중생들의 환생이라는데, 이 또한 탐욕의 비극이 아니고 무엇일까?
장백순의 조각이 본질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탐욕의 문제도 그와 같다. 그는 축생들의 전염과 살처분의 비극을 다루고 있지는 않으나, 역설적으로 숟가락을 조각적 오브제로 등장시킴으로서 탐욕의 의미를 배가시켰다. 숟가락은 밥을 뜨는 도구다. 밥을 떠먹는 도구로서 숟가락의 의미는 '생명'과 '살림'이다. '숟가락-밥-생명살림'의 의미는 장백순의 작품에서 '숟가락-탐욕-생명죽임'으로 바뀌어 있는데, 밥 뜨는 도구일 뿐인 숟가락이 예술적 오브제로 전환되는 순간 이처럼 그 의미는 비중(比重)을 형성한다. ● 대형 숟가락 조각위에 나체의 여인이 앉아있는 작품이 충족의 욕망이라면(그것이 성적 욕망이든 욕망의 일루전이든), 일상의 숟가락이나 국자 등 요리용 도구의 식구(食口)위에 올려 놓은 맑고 투명한 생물들-청개구리, 개구리, 도마뱀, 새, 가재, 거미, 자라, 올빼미 등-은 보신의 욕망이다. 닭, 돼지, 소는 물론이고 온갖 생물들을 잡아서 입에 처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이 야만의 욕망은 오직 인간에게서만 발견되는 '괴물적 과욕'이다.
그는 숟가락과 생물들의 상태를 너무도 싱그럽게 구성함으로써 인간의 탐욕을 우회적으로 비틀어 놓는다. 누구도 이들 작품에서 내면 깊숙이 자리한 과욕의 욕망 따위를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그저 자연의 아름다운 미물들로 보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 미물의 아름다움은 단지 보신의 욕망에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근원적으로는 생태환경의 위기를 타전하려는 것에 있다. 올해 전국 각지에서 발생했던 물재앙의 원인은 무분별한 인간의 생태파괴와 무관하지 않다. 이타적 삶과 생태를 배려하지 않는 인간의 야욕이 재앙의 원인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 장백순의 작품들은 우회하지 않았으나 그 은유가 깊고, 사실적이다. 사실적이라 하나 적나라하지 않고 그 상징이 넓다. 탐욕을 다루고 있으나 난폭하지 않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시적인 표현으로 읽힌다. 축생이 아닌 작은 미물들과 밥생명의 숟가락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탐욕의 중심을 꿰뚫고 있지 아니한가! 그러니 그의 작품들은 하나의 상징으로 열의 실재를 이야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 김종길
Vol.20110919h | 장백순展 / JANGBACKSOON / 張伯淳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