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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요일_02:00pm~07:00pm 화요일 전시마감_01:00pm
사이아트 갤러리 CYART GALLERY 서울 종로구 안국동 63-1번지 B1 Tel. +82.2.3141.8842 cyartgallery.com
넝마철학조각가 리씨와 그 후원자들의 21세기 "오 이 땅의 사람들아 예언자의 말을 잘 들어보라, 나의 말을 새겨듣는 사람들을 위한 좋은 계획을 들어보라" _퀸, 「예언자의 노래」 중. "니네 자꾸 이러면 땅이 죽고 흉년들어 기나긴 보릿고개 다시 온다." _아나킨 프로젝트, 「지렁이의 유언」중.
다른미래 ● 2030년 석유생산량이 정점에 다른 시기. 20세기 초 타이타닉호의 침몰로 석유문명위기의 징조가 드러났다. 두차례의 세계대전이 끝나며 과학기술을 신봉하는 돈많은 나라의 사람들은 핵무기에서 가지쳐 나온 원자력 발전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류는 채르노빌, 후쿠시마의 대참사를 격고도 국가의 강권아래 원자력을 확대해 갔다. 그것이 극에 달해 있을 즈음에 곳곳에서 원자력발전소의 원자로가 녹아내리는Melting Down 참사가 일어나고 이후 원자로는 점차 폐쇄되어 방사능 오염을 비롯한 생태계 파괴가 극에 달하고 전기생산과 소비도 원활하지 못하게 되었다. 돈이 없는 가난한 사람과 돈을 많이 가진 사람들의 양극화도 심해져서 지구별에서는 숲과 사막에 사는 사람들과 많은 돈으로 과학기술을 이용해서 첨단 소도시의 돔 안에서 펑펑쓰면서 사는 인간들의 두 세계로 나뉜다. 소, 돔 밖에 남아있는 숲과 논밭, 강들까지 분할된다면 생태계가 더 망가지는데, 기계와 돈을 바탕으로 돔 안의 인간들은 남은 자연마저도 잠식해 오면서 생태계를 파괴한다. 자연이 필요한 사람들은 돈이 없고, 돈을 불리는 사람들은 '자연은 모두 인공적으로 조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돈과 자연은 좀처럼 조화를 이루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다. 이에 급진생태주의 '가난뱅이모임'에서는 자본을 유입해서 유기농터전을 확보할 묘책을 마련한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것보다 까다로운 이 계획의 실행을 위해 해결사 '리씨'를 과거로 보낸다. ● 마르크스에게 자본(미국에서도 금융파탄 이후 '자본론'의 도서판매고가 올라갔다)의 작동원리를 주워들은 다음, 아미쉬족, 윌리엄 모리스, '방망이 깎는 노인'에게 오염 없는 방식의 생산을 전수받은 후 봉이 김선달에게 친환경 마케팅 원론를 사사한 그가 도달한 시대는 마야력에 인류의 마지막 해로 표시된 바로 그 '2012년'을 목전에 둔 때였다. 이때는 계몽시대와 근대화 시대를 통해 탄생한 대중화시대로 새로운 인류의 도구로 예술이 부상하던 때이기도 하다. 이에 예술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리씨는 마몬이라는 돈의 신을 교란하고 유혹해서 유기농지를 만들 수 있는 종자돈을 마련할 계획을 세운다.
「이카루스 계획」 ● 이카루스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 주인공이다. 태양을 향해 날다가 아버지인 다이달로스가 밀납으로 만들어준 날개가 녹아 추락한 비운의 주인공이다. 2011년 이카루스는 재활용의 황재 '넝마철학조각가 리씨'의 손에서 부활해서 자본의 태양이 관장하는 세계 속으로 보내어 진다. 높은 하늘엔 자본을 상징하는 태양이 밑에는 급진적 생태주의를 상징하는 바다가 놓여있다. 이카루스는 태양과 바다 사이를 지혜롭게 날 수 있을까. ● 2011년 7월 27일에는 다른미래에서 급파된 리씨를 알아보는 후원자들이 모이게 된다. 생태빵, 지렁이와 사과나무싹, 다른 전기를 만드는 자전거 발전기 아이템을 보태주어 리씨의 작업을 더욱 튼튼하게 한다. 미래를 우려하는 이 사람들은 겉보기에 조촐한 이 전시에 중요한 회합을 하게 되는데, 이곳저곳 거리를 탐사하며 조심스레 불러 모은 나무와 물건들에 연금술적인 방법으로 만든 시대를 알 수 없는 조각품들로 화폐자본을 불러 모으는 리씨와 그의 후원자들의 손에 지구의 다른 미래가 달려 있을 줄이야! 다른미래의 소식이 있는 전람회의 현장으로 가보자.
다른미래를 꿈꾸는 넝마철학조각가의 예술적 가치의 재생에 대하여 ● 작가 리혁종의 작업에는 예술과 사회 혹은 자본과 가치와 같은 예술가로서의 본질적 질문이라 할만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이러한 근원적 문제를 꺼내놓을 경우 끊임없는 질문이 이어지거나, 해답을 구하기 힘든 논쟁 빠져 빈번히 혼란스러운 상황 머물러 있기 쉽기 때문에 많은 작가들이 이를 외면하거나 표면적 문제의 일부에만 국한하여 자신의 작업을 풀어내는 모습을 보게 된다. 특별히 작가로서 자신의 논리를 실천적 삶이나 작업의 내용으로 연결시키는 문제에 있어서는 깊은 생각을 하지 못하거나, 여러 가지 부담감 등으로 인해 일정한 거리 두기를 하고 본질을 다루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 그럼에도 작가 리혁종은 전면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자신의 작업 속으로 끌어들여 작가적 문제 제기와 함께 실천적 작업을 시도 한다. 특별히 이번 전시에서는 암울한 신자유주의 시대에 후기 자본주의의 환경적 상황에서 촉발되는 자본의 여러 가지 문제와 관련된, 어느 정도 심각해 보이는 내용을 다루면서도 자신을 리씨라는 가상적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자본주의가 종말적 상황을 고하는 미래의 한 시점에서 중요한 임무를 부여 받고 활약하게 된다는 상당히 유머러스한 상상력을 발휘한다. 이를 통해 마치 연극의 시나리오를 쓰고 그 무대를 꾸며내는 듯한 독특한 연출로 자신의 작업담론에 대해 일종의 서사구조를 갖는 형식으로 조형적 번안과 재해석을 시도하는 등 흥미로운 작업과정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러한 그의 작업 속에는 외양적 스케일이나 다루는 매체의 물질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임에도 무게가 실린 이야기를 담아내어 보여주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예술가들에게 있어서 후기 현대적 상황에서의 특이점은 예술가 역시 자본주의의 한 일원이 되어 미술시장에서 하나의 상품을 생산하는 생산자의 위치에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작가들은 이에 대해 정면으로 저항하거나 이를 적극 활용하는 등 여러 가지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상업적'으로 거대한 자본을 축적해냈다고 언급되는 앤디 워홀, 제프 쿤스, 데미안 허스트로 이어지는 이른바 시장 활용론자의 입장에 있는 작가들과 대지미술, 퍼포먼스, 개념미술과 같이 상품화 자체를 하기 어려운 반시장적 방향으로 향했던 작가들처럼 극단적 입장의 작가들이 최근의 미술사에서 특징적으로 발견되었던 것이 이제까지의 상황이었지만 반시장적 예술 작업 대부분을 영상물이나 사진 혹은 오브제등 어떠한 형식으로든 물질화시키고, 자본화시키고 있는 것이 최근의 경향이고 보면 리혁종 작가가 '자본주의와 생태주의', '마이너스 자본주의'와 같은 화두를 작업 명제로 채택하고, 예술에 있어서 대안적 가치, 대안적 자본의 활용에 대한 상징 언어를 제시하고 다른 미래를 대안으로 제안하고자 시도하는 것은 미술 내부의 담론적 상황이나 사회경제적 논의에 있어서도 의미가 있는 일이라 할 것이다.
작가 리혁종은 '넝마철학조각가'를 자처한다. 사전적 의미에서 보면 '넝마'라는 것은 해진 천처럼 조각나고 누더기가 된, 사용하기 힘든, 이미 어느 정도 마모되고, 소모된 물질을 의미한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작업관을 드러내는 방식 역시 재활용이라는 그의 개념처럼 화려한 것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 원리가 담겨 있는 상징적 체계 속에 제시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사고를 만들어 내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고자 하는 것이다. ● 다른 한편 작가는 이러한 재활용으로 창출해낸 가치들을 화폐라는 교환가치로 변환하여 예술가치의 사회적 리사이클링 혹은 예술과 자본의 생태학적 재분배를 시도하고자 한다. 과연 이러한 시도가 현실적 상황에서 어느 정도 실현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나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거대한 쓰나미가 몰려온 것처럼 자본주의라의 블랙홀과 같은 거대구조와 충돌하여 예술 자체가 시장이라는 경제적 가치 속에 잠식되고 분해되어 버린 듯 한 작금의 상황 속에서는 하나의 나비효과와 같은 변화의 촉매제가 되어 주기를 희망해 보게 된다.
가격이 싼 물건 보다는 비쌀수록 소비가 많아지는 극단적 자본주의 시대에서 상품을 팔기 이전에 욕망을 팔아내고자 센세이션(sensation)이나 스켄들(scandal)을 먼저 팔아치우는 광고기법과 마케팅의 하부구조로 끌려들어가 욕망적 희소가치의 대체물로 전락한 미술품의 위치에 대해 아무 비판 없이 자본축적을 위한 욕망의 대상으로만 열광하는 이들이 넘쳐나는 시대이다. 예술적 가치보다는 '과시소비'라는 물신주의 대상물로서 가치의 거품을 양산하는 도구가 되어 버린 미술품이 다시 예술이 무엇인가를 교육하고 그 생각을 주입하고 있는 시대이다. 이러한 속물적 소비시대에 리혁종의 작업은 욕망과 소비 그리고 예술적 가치에 대한 반성적 시각을 제공하고 이 시대를 되돌아 보게 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 이승훈
Vol.20110727g | 리혁종展 / LEEHYEOKJONG / 李赫鍾 / sculpture.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