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우展 / KIMJEONGWOO / 金正雨 / painting   2011_0622 ▶ 2011_0630

김정우_redunderwear201003_장지에 혼합재료_91×135cm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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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0622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화인 GALLERY FINE 부산시 해운대구 달맞이길117번길 53 (중2동 1511-12번지) Tel. +82.(0)51.741.5867 www.galleryfine.com

나는 타자다 ● 예술은 경쟁이 아니라 소통이다. 하지만 우리 예술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다소 단정적 평가일지 모르겠지만, 바로 그것이 작금의 예술이 대중들에게 외면 받는 이유다.  ● 세계 지성의 주요한 추구들이, 사제권력이나 왕정의 속박 같은 '낡은 체제'로부터의 이탈을 지향해 왔다. 하지만 소위 고급예술 분야라고 분류되는 것들만은, 민주주의 시대에 들어서도 여전히 그 잔재에 깊숙히 종속되어 있다. 아니, 오히려 자본이라는 새로운 패트론에 압제되어 있다 할까. 클래식 음악, 발레, 순수문학, 그 외에 또 무엇이 있던 간에, 그것은 동시대 대중과의 직거래를 통해 자생한다기 보다, '대중이 아닌 누군가'의 지원에 의해 보호되어야 하는 의존성을 갖고 있다. 즉, 오페라좌 객석의 극히 일부만이, 그것 자체를 소비하기를 즐기는, 특별히 고상한 취향을 타고난 이들에 의해 채워진다. 나머지는 소위 '고급문화라고 그들 스스로 규정해온 허위관념'을, 독점적으로 즐긴다는 허영에 함몰된 이들에 의해 채워지며, 그들의 유희를 위해 그것은 형식적 명맥만을 유지하도록 보호 받으며 점차 화석화 되어 간다. 그 중에서도 특히 '현대미술'이라는 자본주의 시대의 새로운 발명품은, 패악에 가까운 금융자본의 장난감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예술의 본질은 어느새 사라지고, 형식만이 차용되어 악용되어 왔기 때문이다. ● 쉽게 생각해 보자. 한때 바나나가 선과(仙果)였던 시절이 있었다. 신선들만 먹는 줄 알았다. 어쩌다 그것이 하나 생기면, 아까워서 씹어먹지 못하고 핥아 먹었다. 선망의 눈길을 보내는 친구들에게, 좀 더 오래 자랑하기 위한 요량에서였다. 하지만 그것은 과육이 아닌 관념의 맛이었다. 바나나라는 과일의 실제보다는, 그것의 사회적 관계에서 파생된 가치를 탐닉한다는 의미다. 작금의 예술이 소통이 아닌 경쟁으로 작용하는 것도 동일한 원리다. 그림이 아닌 다른 의미로서 이 시대에 역할한다. 부르주아들이 가장 사랑하는 단어, '희소가치'를 충족시키는 자원으로서. ● 그러다보니 허무맹랑한 일이 생긴다. 그림을 통해 동시대와 무엇을 '소통'할까가 아닌, 동시대의 이해를 초월하는 난해함이 '경쟁'하기 시작한다. 예술은 실로 육상과 같은 기록 경기가 아니겠건만, 100m 경기에서의 초 단위 정도의 알량한 차이를 두고, 누구는 우월감을 느끼고 누구는 열등감을 느끼는 해괴한 착시에 빠져든다. 당최 작가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는 벽지들을 잔뜩 걸어놓고, 그 화폭 안에서 붓질의 테크닉이 어쩌니 물감활용의 완숙도가 어떠니, 자폐적인 기준들을 적용하며 누군가 상승하는 동안 누군가는 하강한다. 예술로서 무엇을 나눌 것인가의 고민이 아닌, 어떻게 타자 우위에 서는 위대한 예술가가 될 것인지에만 촉각을 세운다. 공허한 피라미드의 정점에 서고자 치열한 경쟁을 하며, 자기가 최고라는 자만심이 널리 인정되기만을 바란다. 

김정우_redunderwear20104_장지에 혼합재료_61×50cm_2010

그 와중에 김정우를 만났다. 그와의 만남은 여러 우연의 중첩에 의해서였다. 그의 은사인 조환 교수가 박종갑 교수에게 전시장을 알아봐달라는 부탁이 있었고, 이어서 박교수가 미안해 하며 내게 부탁을 해왔건만 냉정한 대답을 돌려 줄 수 밖에 없었다. 당최, 작품을 모르는데 어떻게 전시를 하냐고! 그 항변은 그 자신조차 작품에 대해 모르는 상황에서 작가를 추천하지 말라는 단호한 경고였다. 하지만 그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그렇다면 바쁘더라도 작업을 좀 보러 가달라는 황당한 당부였다. 작업실이 2호선 전철을 타고 가는 교대역도 아니었고, 거기서 3호선으로 갈아타고 가는 수서역도 아니었다. 부산이었다.  ● 추후 비평가 김백균에게도 같은 말을 했다만, 부산까지 가서 보게 된 그의 작업은, 내가 근래에 보았던 어느 작품보다 절박해서 충격적이었다.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다면 쉽게 수긍과 공감이 가능할 거다. 내 몸이 아픈 것도 아닌데 내가 더 아프다. 가능하다면 대신 아파주고 싶은데 그럴 수조차 없다. 그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실체가 허망한, 신이라는 존재에게라도 매달릴 수 밖에. 생전 안가던 교회나 절을 찾게 되고, 기도를 하게 되며 백팔배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 모든 신비주의의 공정과 같은 심정의 경로로 그림에 매달렸으니 절박하게 보일 수 밖에. 아픈 아이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림 그리는 일 밖에 없다는 자괴가 드러나니 가슴이 미어지게 절박할 밖에. ● 레드 언더웨어. 굳이 왜 영어로 제목을 적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말로는 빨간 내복. 그것의 사전적 의미 이전에, 그것의 정서적 의미를 우리는 공유한다. 우리가 김정우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일한 사회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즉, 김정우의 작업을 모르는 상황에서도, 그 제목이 주는 정서적 공감대만으로도, 우리는 서로 소통을 시작한다. 그것은 우리가 보통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첫월급을 받았을 때, 부모님께 드리는 선물의 의미로서 공유된다. 하지만 김정우의 경우, 그림이라는 방법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하며, 자기 그림의 제목이라는 방법론으로서, 빨간 내복을 어린 자식에게 입힌다. 그 행위에는 그 아이가 자라나도 자신은 빨간 내복을 선물 받을 일이 없을 것이라는 체념이 전제되고, 그 이전에, 그 아이가 자라나도 그 아이에게는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공유하는, 사회 생활의 첫시작도, 선물로서 그것을 알리는 풍습도, 소통하기 불가능하리라는 도저한 절망이 전제된다. 그 아이는 자폐증이라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고, 우리 사회는 그 존재들로부터 격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는 선천적으로 소통의 능력이 부재하지만, 우리 사회는 후천적으로 소통의 의미를 망각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 새롭게 선보일 아가씨 연작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마음은 자라지 않아도 아랑곳 없이 몸은 무럭무럭 자라날 텐데, 사춘기도 겪게 되고 첫사랑의 열병도 앓게 되고 몽정도 경험해야 할텐데, 일반의 범주로부터 제외된 개체는 사회에 뒤엉키지 못하고 끝없이 겉돈다. 물리적으론 중첩되고 병치될지 몰라도 심리적으론 거부되고 외면 당한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그 아이만의 문제였던가? 작가는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이를 그림으로써, 자기 자신의 현실에 대해서도 돌아보고,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 모두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김정우_redunderwear20105_장지에 혼합재료_81.7×80cm_2010

즉, 우연의 중첩에 의해 만나게 된 김정우라는 작가는, 자신의 그림을 통해 최소한 절망이라는 자신의 심정을, 누군가와 소통 가능하게끔 작업하고 있었다. 현대미술의 저 거창한 개념과 요사스럽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실험이 아닌, 자기 일상의 아픔으로 누군가에게 편안히 말을 걸고 있었다. 따라서 현대미술의 허위에 대해 익히 비판적 설파를 해왔던 철학자 홍가이에게 연락을 했었다. 드물게도, 소박한 자기 이야기로, 그림을 그려 말을 거는 작가를 보았노라고. 평소 동료처럼 허물없이 지내지만, 실제 나이는 대선배인 그가 자의로 기차를 타고 부산을 다녀 갔다. 그리고 얼마 후 서울에서 열리게 된 김정우의 전시에 글을 쓰게 됐다. 글을 쓴다는 건, 활자의 형식만이 오고가는 것이 아니다. 인쇄 이전에 원고가 있고, 원고 이전에 발언하고픈 절실함이 있으며, 누군가의 그림에 대해 글을 쓸 정도의 절실함이 있었다 함은, 소통을 전제로 요한다. 따라서 그의 그림이 그의 글로써 공명되었다면, 또 다른 누군가와도 소통의 여지가 있다. 자기 가족의 아픔에 대해서 그릴 수 있다면, 남의 가족의 아픔에도 시선을 줄 수가 있다. 독백에 대답하면 대화가 된다. 고통 끝에 내던지는 타인들의 신음에, 그림으로 호응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예술이다.  ● 자폐 아이를 둔 부모로써, 아이 그림만 영원히 그린다면 그 스스로가 자폐다. 김정우는 아이로부터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자기 자식을 바라보던, 그 내장이 끊겨 나갈 것 같은 심정으로, 누군가의 자식이며 또 누군가의 아비일 이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들은 작가 자신이 속한 사회의 역사이자 미래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기가 어떤 역사적 맥락에 의해 지금의 모습으로 존재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 또한 자신의 지금 선택이 미래에 어떻게 작용할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됐다. 그가 속한 사회의 과거가, 부조리와 불의에 대한 끊임없는 저항과 투쟁으로 점진적이나마 지금의 모습으로 이어졌다는 역사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그가 속한 사회의 미래 또한, 잠재되어 있는 저 수많은 부조리와 불의를 극복해 나가야 할 것이라는 사회인식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종적으로는 역사적 주제로서 그의 작품에 반영이 되었고, 횡적으로는 사회적 관심으로 폭넓게 소통할 방향성을 타진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시선에 대한 성찰이 불가피 했을 것이다. 그 자신에게조차 그 이전에는 없었던 세상에 대한 시선이, 여전히 확보되지 않은 무수한 눈들에 대한 관심.

김정우_redunderwear20113_장지에 혼합재료_207×600cm_2011

즉, 우연의 중첩에 의해 만나게 된 김정우라는 작가는, 자신의 그림을 통해 최소한 절망이라는 자신의 심정을, 누군가와 소통 가능하게끔 작업하고 있었다. 현대미술의 저 거창한 개념과 요사스럽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실험이 아닌, 자기 일상의 아픔으로 누군가에게 편안히 말을 걸고 있었다. 따라서 현대미술의 허위에 대해 익히 비판적 설파를 해왔던 철학자 홍가이에게 연락을 했었다. 드물게도, 소박한 자기 이야기로, 그림을 그려 말을 거는 작가를 보았노라고. 평소 동료처럼 허물없이 지내지만, 실제 나이는 대선배인 그가 자의로 기차를 타고 부산을 다녀 갔다. 그리고 얼마 후 서울에서 열리게 된 김정우의 전시에 글을 쓰게 됐다. 글을 쓴다는 건, 활자의 형식만이 오고가는 것이 아니다. 인쇄 이전에 원고가 있고, 원고 이전에 발언하고픈 절실함이 있으며, 누군가의 그림에 대해 글을 쓸 정도의 절실함이 있었다 함은, 소통을 전제로 요한다. 따라서 그의 그림이 그의 글로써 공명되었다면, 또 다른 누군가와도 소통의 여지가 있다. 자기 가족의 아픔에 대해서 그릴 수 있다면, 남의 가족의 아픔에도 시선을 줄 수가 있다. 독백에 대답하면 대화가 된다. 고통 끝에 내던지는 타인들의 신음에, 그림으로 호응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예술이다.  ● 자폐 아이를 둔 부모로써, 아이 그림만 영원히 그린다면 그 스스로가 자폐다. 김정우는 아이로부터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자기 자식을 바라보던, 그 내장이 끊겨 나갈 것 같은 심정으로, 누군가의 자식이며 또 누군가의 아비일 이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들은 작가 자신이 속한 사회의 역사이자 미래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기가 어떤 역사적 맥락에 의해 지금의 모습으로 존재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 또한 자신의 지금 선택이 미래에 어떻게 작용할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됐다. 그가 속한 사회의 과거가, 부조리와 불의에 대한 끊임없는 저항과 투쟁으로 점진적이나마 지금의 모습으로 이어졌다는 역사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그가 속한 사회의 미래 또한, 잠재되어 있는 저 수많은 부조리와 불의를 극복해 나가야 할 것이라는 사회인식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종적으로는 역사적 주제로서 그의 작품에 반영이 되었고, 횡적으로는 사회적 관심으로 폭넓게 소통할 방향성을 타진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시선에 대한 성찰이 불가피 했을 것이다. 그 자신에게조차 그 이전에는 없었던 세상에 대한 시선이, 여전히 확보되지 않은 무수한 눈들에 대한 관심.

김정우_la belle epoque-Rimbaud_장지에 혼합재료_207×200cm, 207×200cm_2011

아름다운 시절-랭보(la belle epoque- Rimbaud). 이번 전시를 통해 새롭게 선보일, 그의 새로운 작업의 주제는 그간의 고민들에 대한 압축이다. '아름다운 시절'은 19세기 말로부터 20세기 초반으로 이어지는, 그 이전에도 없었고 그 이후에도 없을, 풍요와 평화의 시기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향수를 함축하고 있는 상징어다. 하지만 그들이 누렸던 풍요와 평화의 이면에는, 인간으로서 인간에게 도대체가 가능할 수 없었던, '식민주의'와 '인종주의'라는 짙은 그늘이 있었다.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김정우의 작품을 보라. 보석처럼 빛나고 호수처럼 푸르른 눈으로, 아름다운 시절을 바라보았던 랭보의 동공에 숨겨진 또 다른 그림이 의미하는 바를.  ● 나는 생각한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누군가 나를 생각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말의 유희를 용서하라. 나는 타자이다-조르쥬 이장바르에게 보내는 편지, 랭보 ● 랭보의 시학은 견자이론(le voyant)이다. 그는 아름다운 시절에 함몰되어, 일상에 숨겨진 또 다른 이면들을 바라보고 감각적인 시어들로 전환해 냈다. 하지만 김정우의 그림은 랭보의 말의 유희를 '용서는 하지만 잊지는 않는다.' 그리고 '나는 타자이다'라는 랭보의 선언을 다른 식으로 '직시'하며 실천한다. 소외되고, 고립되고, 힘 없는 이들 간의 연대(連帶). 그것은 자신의 약하며, 아무도 보호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이들만의, 마지막 처절한 생존법이다. 바로 딱 일주일 전. 김정우와 그의 고향인 부산 영도를 갔었다. 그리고 새벽녁까지 졸음을 참고 기다리며, 우리 사회가 소통을 해가는 진통을 함께 바라 봤다. 폭력용역을 고용하여 합법적 파업을 하는 고용자들을 구타하는 사용자의 위용을 보았으며, 그것에 굴하지 않고 그들이 켜켜히 높게 쌓은 담을 뛰어넘는 민중들의 연대를 보았다. 그 와중에, 우리 사회의 소위 위대한 예술가들이라는 자들은, 자기가 속한 사회에서 그런 비극과 희열의 순간이 교차하는지도 모른 채, 아름다운 시절을 누리며 평안히 잠들어 있었다.  ● 이제그만 깨어나라. 그날 새벽, 한진중공업은, 소통을 막기 위해 컨테이너로 담을 쌓고, 물이라도 셀까봐 꼼꼼하게 용접까지 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 같이 살아가자는 약자들의 열망이, 그 견고한 성문을 허망하게 밀어제꼈다. 예술도 그런 것이다. 지금까지 아니었다면, 앞으로는 그래야 한다. 예술가들 스스로가 자신의 마음 속에 쌓아올린 오만의 벽을 허물라. 위대한 예술가로서 조명 받고 대접 받으려 말고, 약자의 고통을 감싸안고 함께 견뎌내는 예술을 하라.  이제 막 시도하는, 무명작가 김정우처럼... ■ 우단

Vol.20110624h | 김정우展 / KIMJEONGWOO / 金正雨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