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주황 지평선 Orange Horizon in November

양희아展 / YANGHEEAH / 楊喜雅 / installation.drawing   2011_0617 ▶ 2011_0707 / 월요일 휴관

양희아_김과 양배추가 달린 건물 풍경_ 사포, 마른 김 뭉치, 양배추, 자작나무 합판, 골판지_561×582×152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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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0617_금요일_06:00pm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사미술공간 Insa Art Space of the Arts Council Korea 서울 종로구 원서동 90번지 Tel. +82.(0)2.760.4722 www.arkoartcenter.or.kr

어눌한 사물들이 슬그머니 건네는 엉뚱하고 우스운 이야기 - 토끼 굴에 빠지기 ● 사포로 만들어진 지붕 같은 건물, 마른 김 뭉치 위에 올라가 있는 양배추, 날개 달린 빈 상자, 용도를 알 수 없는 도구들, 찢겨져 두루마리 휴지가 된 테이블 보... 양희아의 작업을 처음 대면한 관객은 도무지 평범하고 상식적인 구석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오브제들을 보면서 당황하게 마련이다. 이해를 위해 제목을 쳐다본들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잠시 먹다 남긴 음식 생각」이나 「스펀지 샌드위치 시멘트 도시로부터의 항해」는 비교적 조형물과 연관 짓기 쉬운 축에 속한다. 「소루브 지방 뚜르스 몽기뉴 자작나무 숲 사이에 있는 작은 나무 한 그루」, 「앞머리 털이 멋있는...」에 이르면 눈앞에 놓인 오브제와 제목을 연결 지으려는 시도는 방향을 잃기 십상이다. ● "도대체 무얼 의미하는 걸까,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라는 의문을 해결할 가장 쉬운 길은 (농담 같지만) 진지하게 이해하려고 하는 태도를 버리는 것이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서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분류하고 분석하고 구조화하려는 '어른'의 태도를 의식적으로 내려놓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성과 논리를 잠시 잊고 판단 정지한 채 공상과 백일몽, 농담과 우화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 그것이 양희아와 잘 놀기 위한 최적의 지름길이다. 이상한 나라를 구경하기 위해서는 토끼 굴에 빠져야 하지 않겠는가.

양희아_브로콜리 꽃다발 외 계속 이어지는 드로잉과 소루브 지방 뚜르스 몽기뉴 자작나무 숲 사이에 있는 작은 나무 한그루 등_ 빈 상자, 골판지, 식품 모형, 두루마리 휴지, 키친타월, 비닐봉지, 자투리 천, 노끈, 베개, 국자, 스펀지 등 혼합재료_가변크기_2011

물활론의 세계 ● 양희아의 세계에서 스펙터클하거나 강한 존재감을 과시하는 대상은 없다. 그녀가 재구성해낸 세상은 일종의 재활용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 '발견된 재료'들의 집합소다. 빈 상자, 골판지, 식품 모형, 두루마리 휴지, 키친타월, 비닐봉지, 자투리 천, 노끈, 베개, 국자, 스펀지... 주로 무언가를 포장하거나 보조해주는 용도로 쓰이는 흔하고, 소소하고, 일회적인 대상들은 양희아의 개입을 거쳐 친숙하면서도 낯선 존재로 거듭나는데, 이때 관계의 도치가 발생한다. 색칠된 바다 위를 헤엄쳐가는 스펀지 샌드위치(「스펀지 샌드위치 시멘트 도시로부터의 항해」)나, 날개 달린 빈 상자(「아주 가끔 허공을 잽싸게 헤엄쳐가는 녀석」), 방석 위에 올라앉아 건물 옥상을 점유하고 있는 배추(「배추가 있는 건물」)를 구경하고 있노라면, 바라보는 주체로서의 '나'의 입지는 흔들린다. 이곳은 사물들이 자신들의 잔치를 벌이는 장이지, 인간이 주도하는 공간이 아니다. 심지어 창조자인 작가조차 이들이 벌이는 정황을 가만히 내려다보는 관찰자일 뿐, 현장에서 사건을 이끌어가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사물들'이다. ● 느릿느릿 주변을 돌아다니는 종이 곽(「주변을 헤매고 다니는 기계」)과 형상화된 바람 위에 올라탄 숲(「바람을 타고 다니는 숲」)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이들의 속도에 우리를 맞추고, 자발적으로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 광장이 노래를 부르고(「노래 부르는 광장」), 상자에 앞머리가 달리고(「앞머리 털이 멋있는...」), 붓에 집이 있는(「흰 털 달린 붓의 집」) 광경은 사물이 살아 움직이는 물활론의 세계, 애니미즘의 장소다. 여기서 생물/무생물, 인간/사물, 식물/동물의 구분은 무너지며, 이들은 특별한 위계 없이 모두 다 동등한 지위를 점유한다. 내가 곧 사물이 되고 사물이 곧 내가 되는 시점의 혼융은 실상 양희아의 작업에서 늘 존재해왔다. 2000년도에 쓴 「에피소드 13」 중 한 꼭지에서 거실에 있는 주인공(나)은 선풍기가 체조를 하는 광경을 목격한다. 여기서 선풍기는 생각하고 행동하고 감정을 느끼는 존재로 인간인 나와 하등 다를 바가 없으며, 주인공이 벌이는 사건은 선풍기의 행동과 맞물리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다. 양희아의 독특한 면은 바로 이 점인데, 보통 사물의 시선을 강조할 경우 (라캉이 그러하듯) 사물의 응시가 기존의 인간 중심적 관점을 위협하고 균열을 가하는 단절과 역전의 의미가 두드러지는 반면, 양희아의 사물 세계에서는 그러한 권력 관계적 경쟁에서 오는 대립이나 긴장이 존재하지 않는다.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 자체가 흐려져 있는 그녀의 우화는 인간이 우월적 지위에 놓이기 이전의 세계, 대상과의 분리가 일어나기 이전의 원초적 합일의 세계기 때문이다.

양희아_약간 비슷하게 생긴 정물들 드로잉과 오브제 등_두루마리 휴지, 키친 타월 등_가변크기 2011

이접(異接)된 사물들 ● 사물이 살아 움직이는 비현실의 세계가 제공하는 이질감은 양희아가 오브제를 구성하는 방식에서 본격적으로 증폭된다. 양희아는 생물과 무생물을 혼란시킬 뿐 아니라, 서로 다른 맥락의 사물을 접합시키거나 용도 전환함으로써 합리적인 인과 관계가 지배하는 현실 세계와의 단절을 시도한다. 그녀의 세계에서 서로 만나는 두 대상은 기능이나 성격, 상황에서 개연성이 거의 없다. 「9월의 의자」는 등받이가 없는 둥근 의자(스툴)에 베개를 올려놓고, 다리에 원예용 장갑과 브로콜리 모형을 끼워놓은 설치물이다. 우리는 식품 모형인 브로콜리가 왜 가구인 의자 다리에 꽂혀 있고, 침구인 베개가 무엇 때문에 의자 위에 올라가 있는지 알 수 없다. 「9월의 의자」가 용도가 다른 사물을 이종 접합시켜 기이함을 유발했다면, 또 다른 작품 「도구들」은 대상의 본래 용도를 폐기시킨 경우다. 나란히 놓인 네 개의 도구는 도구라 이름 붙여졌지만 역설적으로 도구가 아니다. 본래 물감을 넓게 칠하는 용도로 쓰이는 스펀지 막대는 끈으로 곱게 묶여서 칠하는 기능을 상실했고, 흰 털이 달린 붓은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나 집 속에 갇혀 역시 기능 불능 상태이며, 길고 둥그런 원통과 나무로 만든 정체모를 물체는 아예 용도 불명이다. 이러한 상황은 기실 "수술대 위에 재봉틀과 우산의 우연한 만남"(로트레아몽)에 다름 아니다. 흔히 데페이즈망(dépaysement)이라고 불리는 이 기법은 서로 연관이 전혀 없는 동떨어진 사물들을 한 자리에 놓음으로써, 대상의 일상적 용도를 파기하고 의미를 전도시키는 초현실주의 특유의 전략이다. 하지만 양희아의 전치(轉置)는 의도적으로 사물이나 언어의 기능/배치를 바꿈으로써 기표와 기의를 분리시키는 의미론적이거나 기호학적 차원의 방식이라기보다, 직관과 자유 연상에 따라 기존의 규범 체계 밑에 억눌린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려는 쪽에 가깝다. 기괴하거나 공격적인 감이 있는 초현실주의자들에 비해, 그녀의 방식은 좀 더 따뜻하며, 보다 무해하고, 약간 더 익살스럽다.

양희아_아까 본 빗자루(현실과 애니메이션을 왔다 갔다 하는 빗자루)와 청소도구, 전선+호스에서 나오는 물과 드로잉 설치_ 플라스틱 호스, 옐로우 페이퍼, 기름 종이 등 혼합재료_2011

이접과 그에 따른 혼성은 오브제의 결합과 배치 뿐 아니라, 재료와 형식의 차원에도 적용된다. 여기서 일상 용품은 본래의 형태가 크게 바뀌지 않은 채 전유되어 해체되고 변형된다. 「약간 비슷하게 생긴 정물들」은 흰 색을 띤 원통형의 종이라는 공통분모로 두루마리 휴지, 키친타월, 수채화 롤, 건축용 기름종이를 모아놓은 것이다. 색을 칠하거나 찢는 등의 적극적인 개입 없이 있는 그대로 세우거나 쌓아놓은 갖가지 두루마리들은 끝에 꼬리인지 날개인지 모를 종이를 저마다 하나씩 달고 있다. 「비틀즈 공원」에서는 비틀즈의 유명한 'The White Album'의 앨범 커버가 잘리고 천연 해초와 도화지가 덧붙여져 재개발된다. 일상용품이 원형이 유지된 채 다른 재료와 이접되는 방식은 양희아의 오브제가 현실과 비현실의 틈새에 놓이게 하는 중요한 전략이다. 어디서 본 듯 익숙하면서도 낯선 사물들은 언캐니(uncanny)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데, 이 기묘한 이질감이 무언가 '다른' 영역으로 향하는 탈주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일상이지만 일상이 아닌 또 다른 차원이 열리는 것이다. 이종 접합은 조형적 형식에서도 이어진다. 이번 전시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거의 모든 작품에서 3차원 오브제와 2차원 평면의 결합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브로콜리 꽃다발 외 계속 이어지는 드로잉」은 두루마리 휴지가 풀린 모습이 곧 선이 되며, 병치된 동명의 드로잉은 평면/입체의 관계를 이중으로 교차시킨다. 「소루브 지방 뚜르스 몽기뉴 자작나무 숲 사이에 있는 작은 나무 한 그루」에서 칠판지우개와 끈은 바닥면에 놓인 동일한 그림과 뒤섞여서 실물과 이미지의 구별이 흐트러진다. 평면과 입체의 혼성은 「드로잉 바늘」에서 완전히 한 몸이 되는데, 여기서 플라스틱 바늘이 지나가는 궤적은 곧 바늘귀에 꿰어진 잘려진 선이 드로잉을 그리는 흔적이다. 서로 다른 두 장르의 접합은 고정된 틀에 균열을 내는 전략의 일부기도 하지만, 작가 개인의 이력에서는 2000년대 이전 작업과 이후 작업의 종합에 해당한다. 양희아는 대학원에 입학한 직후인 2001년부터 2005년까지 거의 오브제에 국한되던 이전 작품들(퍼포먼스 설치 「악당용 물병」(1999)이나 오브제 「꽁꽁 누에고치」(2000))을 버리고 돌연 큐브만 줄창 그리기 시작했다. 색채와 형식에 대한 기초 다지기의 결과는 혼합매체 오브제 뿐 아니라 지하에 전시된 투명한 드로잉에 선명하게 반영되어 있다.

양희아_얼음 회오리 드로잉_종이에 수채_100×71cm_2011

이야기/이미지 ● 현실과 판타지 사이에 비스듬히 걸쳐져 있는 양희아의 사물들이 불러일으키는 것은 결국 이야기다. 어디서 본 듯하면서도 서먹한 대상과 상황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자동으로 각자의 시나리오를 쓰게 만든다. 느닷없이 던져져 있는 키위 세 박스와 회오리 속에 툭 하니 놓인 키위 한 개(「키위 상자가 있는 풍경」))는 펼쳐진 풍경이 무슨 상황일지를 상상하게 한다. 실로 양희아의 전 작업은 이야기(내러티브)를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이야기의 비중이 크다. 이러한 경향은 초기부터 일관적인데, 일례로 2000년에 제작된 일련의 작업들(「원래 다시마」, 「벽 뚫고 닭발 새」, 「에피소드 13」)은 『Plant story』와 『Episode 13』이라는 자작 동화에 등장하는 대상 및 상황으로, 텍스트를 이미지화한 것이다. 여기서 시각 이미지와 이야기는 서로가 서로를 거울처럼 되비치는 관계로, 전후의 인과관계가 부재한 채 특정 사건이 장면의 형태로 느슨하게 이어져있는 텍스트는 만화의 그것처럼 그 자체로 이미지적이며, 무언가 일어나는 상황을 응결시켜 놓은 듯한 이미지는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즉각적으로 환기시킨다. 이미지 안에 이야기가 있고 이야기 속에 이미지가 있는 이중의 중첩 구조는 별도의 책 작업이 없는 「11월의 주황 지평선」의 경우에도 다르지 않다. 이 전시에 선보이는 사물들은 어떤 상황의 순간정지장면 같은 모습을 연출하는데, 관객은 다 먹은 하드 막대와 모형 치즈, 햄이 널브러진 「잠시 먹다 남긴 음식 생각」을 보며 밤샘 작업을 한 누군가와 그날 밤 상황을 상상하게 된다. 이때 제목은 연상이 시작되는 출발점으로, 일종의 짧은 텍스트로서 이후의 관자의 해석을 촉발하게 된다. 가령 「고등어의 죽음」이라는 제목을 보고 보는 이는 습자지를 수의로, 그 속에 든 무언가를 고등어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단편적이며 불연속적인 이미지의 특성상 해석의 방향은 자유롭다. 관객은 자유 연상을 통해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그 결과 하나의 오브제에서 양산되는 이야기는 관객의 수만큼 많아진다. ● 스토리텔링은 사물 하나에서 멈추지 않는다. 관객은 눈앞에 놓인 상황을 이해하고자 무의식적으로 하나의 오브제와 인접한 다른 오브제를 연결하게 된다. 각각의 오브제에서 이야기를 도출하는 과정이 그렇듯, 연결 과정 역시 우연한 조우와 즉흥적 연루가 논리적 인과 관계를 대신한다. 이때 오브제와 오브제를 연결하는 매듭(node)으로 작용하는 것은 소재나 표현방식, 형식의 유사성이다. 일례로 도시의 빌딩을 연상케 하고 세잔의 정물을 떠올리게도 하는 원통이라는 형태적 속성에서 「약간 비슷한 정물들」과 「어느 도시의 공장 건물 일부」, 「캔버스와 정물들」을 하나로 연결할 수 있으며, 끈으로 묶는 표현을 단초로 거의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9월의 의자」와 「묶여있는 스폰지」, 「도구들」, 「고등어의 죽음」가 이어질 수 있다. 「키위 상자가 있는 풍경」, 「잠시 먹다 남긴 음식 생각」, 「배추가 있는 건물」, 「웨하스가 담긴 컵과 작은 벽돌」은 음식 모형을 계기로 꿰어질 수 있고, 「브로콜리 꽃다발 외 계속 이어지는 드로잉」과 「휴지 드로잉 상자」는 두루마리 휴지를 매개로 엮일 수 있다. 사물과 사물, 이야기와 이야기는 관객의 자유 연상에 따라 무계획적이고 불규칙하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 과정은 마치 리좀(rhizome)과도 같다. 유동적이고 비선형적이고 비계층적인 시스템을 상징하는 리좀은 시작도 끝도 없고, 정해진 길도 없이, 이종적인 요소들이 자유롭게 연계되는 방식을 뜻한다. 양희아의 작업은 시각적 구조나 관객의 수용 방식, 작품의 기본 태도 모두 리좀적이다. 정합적 체계 없이 몇 가지 모티브들이 눈에 띄지 않게 반복·변주되는 형식, 이들이 자유 연상에 의해 이야기로 엮이는 해석의 양태, 고정 관념이나 체계적 논리를 거부하는 작업의 중심 테제가 전부 여기에 부합하는 것이다. 바닥 전체를 가로지르며 오브제와 오브제를 연결해주는 전선과 호스는 마치 이에 대한 시각적 상징과도 같다. 리좀의 어원인 뿌리줄기 류 식물처럼 전선과 호스는 무정형으로 뻗어나가며 서로 관계없는 이야기와 이야기를 접속시킨다.

양희아_먼지구름 드로잉_종이에 수채_58×42cm_2011

잃어버린 농담과 넌센스를 찾아서 ● 틀에 얽매이지 않은 상상력과 일상적인 사물의 비일상적 제시, 이로 인해 만들어지는 이야기가 향하는 곳은 어디인가. "사람이 만들어 낸 불필요해 보이는 인식과 사고"를 피하고 싶다는 작가의 말은 상징계로 표방되는 합리적 인과관계와 권위 체계에 대한 답답함의 토로다. 엉뚱함과 특이함이 용인되던 어린 시절에서 현실 원칙이 지배하는 어른의 세계로 불가피하게 이행하면서, 꿈과 농담, 시, 헛소리, 넌센스는 파괴되고 버려진다. 양희아의 다소 못난 듯, 느린 듯, 어눌한 듯한 사물들은 자기 과시와 영악함이 상찬 받는 현실에서 잃어버린 가치에 대한 항변이다. 현실 논리에 밀려 사라져가는 덧없고 미미한 존재들에 대한 애정과 감수성은 먼지를 구름으로, 바람을 시로 묘사한 그녀의 드로잉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먼지 구름 드로잉」, 「바람의 시」). 존재를 감지하기조차 쉽지 않은 대상의 흔적을 담아낸 양희아의 담백한 드로잉은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 때로 너무 무해하기만 한 것은 아닌지, 지나치게 착해서 무력하지는 않은지 하는 염려가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믿고 싶은 것은 대상을 바라보는 그의 따뜻한 시선이다. 우위를 점유하고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눈높이를 맞추고 배려하는 것,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조응하는 소통의 미학 말이다. 무생물을 정성스레 끈으로 묶어주고 아플까봐 방석을 대주는 바로 그 마음이 현실에서 추방된 모든 존재와 상상력이 숨 쉴 공간을 열어주며, 이렇게 만들어진 빈틈은 우리 정신에 휴식을 제공해 준다. 사실 예술의 본원적인 목적은 이것이 아니었던가. ■ 문혜진

Vol.20110617h | 양희아展 / YANGHEEAH / 楊喜雅 / installation.draw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