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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기획 / MORRIS GALLERY
관람시간 / 10:00am~07:00pm
모리스 갤러리 MORRIS GALLERY 대전시 유성구 도룡동 397-1번지 Tel. +82.42.867.7009 www.morrisgallery.co.kr
침묵의 바람이 짓는 풍경, 그 사유의 이미지 ● 작가 박진명의 그림 속엔 바람이 머문다. 거칠지 않게, 조용히 숨죽이고 있어야 들릴 수 있을 만큼 천천히 떠도는 미풍(微風)이 작품 전반에 휘돈다. 침묵에 가까운 이 바람은 무심한 듯 숨겨진 고요를 일깨우고, 그 유속은 부드럽게 공간을 어루만지듯 느리게 느리게 돌고 돌아 우리네 감춰진 미감을 흔들어 놓는다. 그러나 때로 그것은 부서진 보석처럼 흩뿌려진 화사함으로, 만개한 꽃송이들이 나부끼듯 반짝이는 잔상들로 자리한다. 우리가 그의 작품에서 낮고 여린 여운을 체감할 수 있는 것도 꽃망울을 끌어안은 채 산화되고 있는 그 보이지 않는 풍속 탓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박진명의 작품에는 묵의 향연이 배어 있다. 이름 없는 무명초의 흔들림도, 활짝 피어난 매화 혹은 벚꽃의 생감(生感)도 그 묵에서 비롯된다 해도 그르지 않다. 검거나 하얀 바탕 위에 자릴 잡는 묵의 운용은 난을 치고, 꽃을 피우며 이슬과 공기를 머금고 흘러 다니며 서정(敍情)을 채록한다. 나아가 사물의 가치를 기록하고 자연 생명의 본질을 심는다. 이것들이 박진명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이랄 수 있다. 허나 보다 중시해야할 건 다름 아닌 그의 작품에 녹아 있는 이러한 여감이 어떻게 생성되었느냐에 있다. 그것은 작가의 작업 환경을 비롯한 사물에 대한 시선, 그리고 그 표현성을 좇다보면 확인할 수 있다. ● 그의 작업실이 있는 청주엔 강이 있고 산이 있으며 턱 낮은 제방이 있다. 그 강과 제방 사이엔 갈대가 자라고 이름 모를 자연물들이 사시사철 무심한 듯 지나는 바람에 흔들리며 서있다. 헌데 남들은 그냥 지나칠 것만 같은 그것들에서 작가는 생명의 경이로움을 발견하고 미적 잔상을 읽는다. 이리저리 서걱거리며 요동하는 여러해살이풀, 쉽게 눈길조차 받지 못하는 다양한 무명초들에서 심상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생명체들과 혼재된 자연물들은 모두 그의 그림의 화두(畵頭)가 됨과 동시에 새롭게 작명(作名)된다.
망막에 맺힌 자연과 기억 속에 안주된 자연물은 작가의 손길을 타고 화폭(畵幅)에 오롯이 앉아 파릇한 새순을 피운다. 거칠거나 때론 부드러운 붓질, 화선지를 담금질하는 수묵의 놀림이 따사로운 봄빛 스쳐가듯 화면을 누비면 휘영청 달빛이 놓이고 어둠이 빛을 발한다. 깊고 짙은 어둠에서 더욱 도드라지는 밝음이 이끄는 길을 따라 메마른 공간(空間)에 생명이 안착(安着)되며, 스며들어 보이지 않거나 가시적으로 내리 앉은 꽃잎들이 조용하게 싹을 틔운다. 등골 시리게 춥고, 뙤약볕보다 뜨거운 작업실에서 밤새도록 그림과 마주 앉아 일종의 의식(意識)과 무의식(無意識)이 뒤섞인 과정을 거쳐 비로소 그 이름 없는 것들은 그렇게 하나의 이미지가 되어 세상에 얼굴을 내민다. 가끔은 크거나 작은 화면에 녹엽과 이름 모를 꽃들이 어울려 피어나 살포시 고개를 떨어뜨리며 뜻밖의 서정을 읊는다. 그러는 사이 하얗던 공간은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마주하던 들판이 되고, 흔들리듯 착시된 공간은 명암도 음영도 없는 이상(理想)의 세계로 다가서고 있음을 목도하게 된다. 이처럼 희미하게 미동하는 사물들과 배경의 어울림은 작가에 의해 일차적으론 일정한 미의식의 선형으로, 그리고 보다 넓게는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직시한 언표인 익숙한 것을 낯설게 읽는 사유이미지와 풍경으로 재창조된다. 이것이 박진명 작업의 매력이다. ●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2010년과 2011년 근작에 해당하는 「shimmery-photogene」 연작을 꼽을 수 있다. '망막에 맺힌 아른아른하게 빛나는 잔상(殘像)' 정도로 풀이할 수 있는 이 작품들은 필자의 시각에 과거 전통적이랄 수 있는 그의 한국화들과 두 가지 측면에서 변별성을 지닌다. 첫 번째는 수묵의 짙음이 사물의 형상을 거둬들이지만 그것이 되레 실체와 존재성을 더욱 부각시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 예를 들어 2009년 열린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의 작품전에 선보인 「난」이나 노송이 드문드문 놓인 몇몇의 작품들, 그리고 2007년도 작품인 「unmoving-shimmery」 시리즈와 오늘날의 「shimmery-photogene」 연작은 확연히 다른데, 지필묵의 일반적 활용과 보편적 형상성, 그리고 여백의 미와 같은 통상적 표현에서 변별의 이유를 제공한다. 더구나 근작들은 유별난 시각적 충격을 주진 않으나, 반면 은은하고 신선한 개안을 제공하고 있으며 일종의 시각적, 감흥적 판타스마고리아(Phantasmagoria)와 유사한 현상을 들춰낸다는 사실은 과거 일부 작품과 일정한 간극을 둔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또 다른 신작인 「shimmery-moon jar」나, 2008년도 작 「shimmery-embroider」와도 차이를 유지한다. ● 뿐만 아니라 「shimmery-photogene」연작의 경우 무엇보다 고정되어 불변하는 모든 명명으로부터 자유로운 개별적 실존성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여타 작품들과 다름을 발견토록 하며, 특히 자신의 주위에 있는 미약한 존재들(생명들)을 포용하려는 작가 의지와 그 투영이 구차한 설명 없이도 가장 잘 드러나고 있음은 남다른 의미부여를 가능케 한다. 이는 결국 더불어 존재하는 사물의 가치와 본질에 다가서려는 박진명의 관념을 보다 확연히 읽을 수 있도록 하기에 그것에 대한 의미부여는 특별할 수밖에 없다. ● 두 번째는 그의 지난 화사(畵史)를 엿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그의 2007년도 작품들을 보면 현재의 작품에 이르도록 하는 전후변별의 시메트리(Symmetry)를 염두에 두도록 한다. 또한 2008년부터 2009년도에 제작된 그림들은 오늘날의 「shimmery-photogene」연작을 포함한 외형성이 중첩된 「shimmery-moon jar」와 같은 여러 실험적인 시도를 풍성하게 만들 수 있게 한 과정이었음을 판단케 만든다. 이들은 하나같이 먹의 활용이나 공간의 구성, 그리고 의미를 남기는 흔적들이 작금의 작품과 일정한 흐름 아래 놓여 있음을 일러주며, 일종의 차연(差延)으로 다가섬을 부정하지 못하도록 한다.
박진명의 그림은 꽃과 식물이라는 형상의 단순한 재현이 아닌, 보잘 것 없는 대상에 생기를 불어 넣고 그것을 의미화 한다는 점에서 값짐을 동반한다. 작화를 이어가는 주된 심상(心想)의 재료가 되는 그 자연물들의 호흡과 손길을 거부하지 않는 심성에 진정한 가치부여도 아쉽지 않도록 한다. 그러면서도 그 동력이 되는 주요 소재인 다양한 대상들이 작가의 생각과 느낌을 특정한 도화로 드러내는 언어로마저 부족함이 없다는 것은 조형성의 추구에서도 눈길을 외면하기 힘들게 한다. 특히 작은 것에도 소중한 가치를 부여하려는 작가의 태도야말로 그의 그림을 관통하는 진정성이라 해도 그르지 않다. ● 마지막으로 필자는 비록 완전한 사실성을 지니지 않으면서도 인식적인 형태에서 벗어나지 않는 박진명의 작품 속 이미지들을 보며 새로운 풍경이 펼쳐짐을 인식한다. 아름다운 상과 향을 지닌 실체에 머물기를 수용하기 보다는 존재성에 관한 고찰에 더욱 무게를 두고 있는 개화한 풍경을 연상한다. 다시 말해 보일 듯 보이지 않게 삐죽거리듯 드러난 채, 또한 숨바꼭질하듯 자신의 위치를 확연히 각인(刻印)시키며 먹빛에 갇힌 꽃들과 외형을 갖춘 달 항아리, 구체적인 도상을 하고 있는 자연물들 모두 결국은 작가의 관념과 삶, 자연에 대한 태도와 미적 조형성과 평행선을 긋는 표상(表象)이요, 현실의 내외성을 그림으로 잇는 풍경이 아닌가 싶다는 것이다. ■ 홍경한
Vol.20110526f | 박진명展 / PARKJINMYUNG / 朴眞皿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