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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주말, 공휴일 휴관
이랜드 스페이스 E-LAND SPACE 서울 금천구 가산동 371-12번지 이랜드빌딩 Tel. +82.2.2029.9885
슬픈 나르시시즘 ● 수에나의 자화상 형상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의 강렬한 선과 물감덩어리가 기이하게 어우러져 있다. 순간적인 에너지와 폭발적인 힘을 그대로 화면 안에 안착시키려는 듯, 절규하는 붓질이 넘쳐난다. 또한 뭉게진 이미지가 화면 안에 부유하고 있다. 독일 추상표현주의작가들의 작업에서 익숙하게 보았던 것처럼, 수에나 작가의 작품에는 감정이나 넘쳐나는 에너지를 화면 안에 담아두고 있다. 이러한 수에나의 중후하고 빛 바랜 색채, 가라앉은 톤, 드로잉적인 선은 수년간의 드로잉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납작한 캔버스에는 드로잉과 가벼운 붓질로 만들어진 선이 넘실대면서 어스름한 형상을 만들어내는데, 눈을 지긋이 감으면 한 여인의 형상이 나타나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작가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수에나의 자화상을 통해 그를 바라보듯이 수에나는 여러 포즈로 나를 관찰하고 있다. 반항적이고, 수줍고, 체념한 듯하고, 절망적인 눈길로 바라보는 수에나의 자화상은 지극히 자전적인 작업이다. 모든 예술작품이 창작자의 분신과도 같지만, 자화상은 더욱 리얼하게 그 작가의 정신과 감정, 혹은 그 삶을 고스란히 대변해 준다. 그러니까 자화상을 그리는 작가는 대개 그림 속 자신의 감정을 전이시키기 마련이다. 그래서 감상자는 화면 속 작가의 눈을 통해 그 작가의 환희와 고통, 분노와 두려움, 희망과 그리움을, 그리고 영혼까지도 전달받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수에나의 자화상 앞에 서면 그의 삶에서 느꼈을 슬픔과 애잔함이 전해진다.
대학시절 에곤 쉴레(Egon Schiele, 1890-1918)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수에나는 그의 영향으로 다양한 인물화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쉴레는 강박적으로 많은 자화상을 제작하였다. 이때 자신의 내면에 스며있는 인간의 병적인 부분들을 뒤틀린 선, 혹은 거친 색채로 표현하였다. 또한 그는 성의 적나라한 표현을 통해 자신과 내면이 지닌 이중적인 위선을 그대로 드러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에곤 쉴레의 작품에 나타난 에로티시즘과 광기어린 불안이 수에나 작품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수에나의 인물화는 대부분이 여성의 누드나 혹은, 정면을 응시하는 흉상이 그것들인데, 하나같이 자화상이라고 제목이 붙여있다. 그런데 화면 어디에도 작품들이 주인공이 한 사람, 그러니까 수에나 자신임을 알아채기란 여간 쉬운 것이 아니다. 작품의 명제표를 바라봐야지만 그림들이 모두가 작가 자신을 그린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수에나의 그림은 그리스 로마신화의 나르키소스(narcissus)처럼 샘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흐뭇해 하는 듯 하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얼굴의 눈에서는 액체 같은 것들이 흘러나온다. 울고 있거나, 눈에는 몸 안의 진액이 빠져 나오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왜일까? 자신에 대한 집착과 나르시시즘(Narcissism)은 강한 에고(ego)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겠다. 예술가들은 자기애(自己愛)가 누구보다고 강한 자들일 것이다. 자신을 지켜줄 누군가가 부재할 때, 인간은 스스로를 사랑하며 자기 안으로 빠져들게 마련이다. 이처럼 자신을 바라보는 수에나의 자화상은 그녀를 향한 스스로의 진한 자기애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녀의 자화상은 그녀 안으로 칩거하는 것이자, 부정하고 싶은 현실로부터의 이탈공간일지도 모른다. 어떠한 경험이 그녀를 이토록 자기 안에 가두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만의 트라우마(trauma)는 수에나로 하여금 그림 그리기라는 치유적 행위에 몰입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자화상은 슬프고 애잔하다. ■ 고경옥
Vol.20110503d | 수에나展 / SUENA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