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에나展 / SUENA / painting   2010_1030 ▶ 2010_1108

수에나_Self-portrait_혼합재료_73×50cm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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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0_1103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화인 GALLERY FINE 부산시 해운대구 달맞이길117번길 53 (중2동 1511-12번지) Tel. +82.(0)51.741.5867 www.galleryfine.com

열린 시각으로서의 슬픈 미학 ● 현대미술의 주된 흐름은 이성적 사고를 강조하는 미술과 감정을 중시하는 미술 사이를 끊임없이 넘나들며 변화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1970년대 개념미술의 유행이후, 신표현주의는 폭발적인 감정표현을 특징으로 하여, 포스트모더니즘미술로서는 처음으로 표현주의적 경향을 전면에 다시 등장시키게 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역사상 정신적인 불안의 시대에는 표현주의적 회화양식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 좋은 예로 1970년대 말 신표현주의(新表現主義 new expressionism)의 대두는 그 운동이전의 회화에서 주류를 이루었던 초연하고 내적이며 지나치게 지적이던 네오다다(neo-Dada)와 개념미술(conceptual art)에 대한 반동으로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1960년대와 70년대 초 아이러니(irony)하게도 미술계에서는 무엇인가를 그리면 가장 시대에 뒤떨어진 형편없는 미술가로 취급되었었다. '그리다'는 행위가 미술의 가장 원초적인 본질이면서도 말이다. 오랫동안 캔버스위에 무엇인가를 그리면 촌놈취급을 당해오던 화가들이 형상성과 묘사성에 대한 회복을 추구하며 반기를 들었으니 그것이 곧 신표현주의이다. 이 운동은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의 절정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신표현주의는 모더니즘과 모더니즘 이전의 미술에서 영감을 찾은 반면 미니멀리즘의 절제와 개념미술의 냉정함을 버렸다. 그리고 알레고리(比喩 allegorie)나 제스처(gesture)적인 물감처리 같이 이전에 금기시되던 수단을 통해 격렬한 감정을 표현하게 된다. 특히 인간의 육체를 비롯해 알아볼 수 있는 대상을 묘사하기 시작했는데, 작품은 표면상으로 무척 다양하면서도 공통된 특성을 갖고 있다. 오늘날의 도시생활과 가치관을 반영하는 모호하고 종종 연약한 감정 상태를 드러냈으며, 대체로 전처럼 그림을 이상화시키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또 선명하지만 서로 어울리지 않는 흔해빠진 배색을 사용했고, 내면의 혼란, 긴장, 소외감, 모호함에 대한 느낌을 전달하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부자연스럽고 우스꽝스럽게 대상을 묘사했다. 구성과 구도에 있어서도 전통적 기준을 거부하여, 이상과 규범, 질서의 틀을 거부하고 자유스러운 개인의 상징체계를 구축하려고 애썼으며, 이 때문에 종교와 사상에 관계없이 누구나 보편적으로 상정할 수 있는 범세계적인 메타포(隱喩 metaphor)를 사용하게 된다.

수에나_Self-portrait_혼합재료_73×50cm_2009

수에나의 작품세계도 위에 언급한 시대상황(時代狀況)의 선상에서 논의 되어야 할 것 같다. 천성이 환쟁이로서의 그는, 그린다는 행위와 그려져 나오는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하여 탐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소 진부한 주제와 장르인 자화상과 풍경화 또는 정물화로 표현하고 있으니 말이다. 많은 화가들이 아직도 개념미술의 늪에 빠져 사변의 유희에서 희희낙락할 때, 또는 유행을 따라 영상미술에서 그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골몰하고 있을 때, 그는 새로움과 충격은,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아주 오래되고 일상화된 것으로부터 나온다는 신념하에 작업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작품이 아주 충격적이거나 전혀 새로운 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오히려 그는 그와 그의 기억, 그와 그 안에 있는 사회적인 현실측면이 비밀스러운 자신의 내면세계로 녹아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가 자기 예술세계의 아우라(靈氣 aura)를 굳이 꼭꼭 닫아놓지 않고 활짝 열어놓은 것은 세상과의 소통을 원활히 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의 이런 열린 자화상은, 작가는 완성된 존재가 아닌 세상과 마주하며 계속해서 자신을 성찰해가며 성장해 나가야 할 과정적인 존재라는,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되어 진다. 그가 말했듯이 그의 작업은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불평등에 대한 개혁의 메시지라기보다는 너와 나간에 소통할 수 있는 또 다른 이해와 세계로 향한 내면적 성숙에 관심을 두었다는 대목에 잘 나타나고 있다.

수에나_Landscape_혼합재료_73×61cm_2010

화면을 종횡무진으로 달리고 있는 그의 선은 막힘도 얽힘도 없다. 그러므로 시작과 끝이 없는 점, 선, 면의 조화로운 구성만이 있을 따름이다. 그렇다고 그의 작품들은 추상은 아니다. 드로잉이 된 형상들은 무미건조한 포즈를 취하고 있거나, 병적인 듯 수척하며 괴기스런 얼굴의 모습들을 하고 있는 데, 의도된 대로의 결과가 아니고, 선들의 교차로 인하여 파생된 면, 즉 화면속의 또 다른 만남으로서의 공간인 것이다. 그 공간들은 서로 연관되어 구성을 이루게 되며, 주변의 면들과 어떤 때는 화합을 또는 적대하여 화면에 긴장감 있는, 추상과 재현의 관계가 오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작품으로 완성하게 된다. 그는 자화상을 통해 여리고 쉽게 상처받는 우리의 모습을 그린듯하다. 슬픔에 온전히 몰두해서 감정을 쏟아내지 못하는 여인의 자화상이 있는가 하면, 슬픔보다는 외로움에 더 크게 자극받는 현대인들의 고독한 얼굴도 있다. 원초적 본능에 몸을 내맡긴 야한포즈의 누드는 홍등가에서 몸을 파는 여인의 허연 넓적다리처럼 애달프다. 하루일과가 끝난 지친 여인이 있는가 하면 절규하는 얼굴도 있다. 이런 얼굴 저런 포즈의 여인들은 하나같이 슬픔에 잠긴 모습들이다. 지금을 사는 우리는 이렇게 외로움에 찌든 슬픈 존재들인가? 그의 그림들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화두인 것이다.

수에나_Landscape_혼합재료_120×240cm_2010

그의 풍경화도 같은 방법으로, 크고 긴 화면에는 시원스런 선들이 종횡으로 마구 달린다. 그러나 그렇게 그려진 파편들은 어느새 집이 되고 언덕이 되며 나무, 하늘 , 들판 등 시원스런 그러나 심상치 않은 분위기의 경치가 전개된다. 표현적 특징은 자연의 현상을 인간 내면의 세계에 담아 이미지화하여 다시금 조형의 수단으로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즉 자연의 형상을 빌어 그가 천착(穿鑿)하고자 하는 나름의 방식으로 화면을 전개시켜 나갔음을 볼 수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작품속의 들판은 그냥 넓은 공간이 아니고 인간 공허함을 상징하는 텅 빈 가슴이다. 외롭게 서 있는 나무는 소외된 인간의 비애를 담고 있다. 산(山)은 많은 조각의 편린(片鱗)으로 채워져 있는데, 그 하나하나에 가지각색의 절망이 담겨져 있는 듯하다. 끝없이 깊을 것 같은 호수는 그 속에 몸을 담그면 금방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슬픔의 늪이다. 하늘도, 집도, 절벽도, 길도 이렇게 예사롭지가 않은 것이다.

수에나_Landscape_혼합재료_120×120cm_2010

이번에 새롭게 선보이는 그의 정물화는, 사발시리즈와 과일시리즈 모두, 맥락을 조금은 달리하고 있다. 그림에 있어 '그리고(drawing)''칠한다(painting)'는 이분법적인 사고는 서구의 전통이다. 이에 반해 동양의 전통은 '획(劃)'이라는 한마디로 족한 즉 그리는 것이 곧 칠함을 의미하는 '긋는다'는 의미가 함축되어있다. 시행착오는 틀이 있는 캔버스 내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서구의 그림에서는 구성(composition)의 논리가 한정된 크기의 화폭 내에서 합리적으로 철저히 행해지지만 화선지 위에서 전개되는 전통적인 수묵에서는 포치(布置)의 개념과 아울러 여백이 우선임이 서구와 대조적일 뿐만 아니라, 제작과정 또한 화면 위에서의 시행착오가 허용되지 않는 일필휘지(一筆揮之)의 의미처럼 일순으로 그치는 즉발성이 우선함이 그 특징이다. 그의 기조는 즉발성이 돋보이는 시원한 붓질작업이다. 투명하게 미끄러지듯 매끈하게 화면의 바탕위에 거의 감추임 없이 자유롭게 노닐기 때문에 붓질놀림 자체에서 오는 총체적인 느낌은, 음밀한 속삭임이 있는 명상적인 것이 아니고, 색채와 더불어 시원한 느낌을 주는, 이른바 생기발랄한 감각적 표현을 우선적으로 표방하고 있다. 활기찬 붓질이 우선하는 이러한 수에나의 작품은, 아무래도 인간본성에 연루되는 감수성이나 감각의 귀중함을 새삼스럽게 일깨워주는 신표현주의의 경향과 궤도를 같이하고 있다. 한 획의 빠른 붓질 속에서 감정이입(感情移入)이 이루어지는 우리의 전통방법을 이러한 붓질작업 속에서 의식적으로 탐색하고 있음이 분명하게 보인다. 그러나 그래도, 그 힘찬 붓놀림에도, 그의 사발은 슬픔을 담고 있으며, 과일도 알알이 애환으로 영근 듯하다.

수에나_Landscape_혼합재료_120×240cm_2010
수에나_Landscape_혼합재료_53×73cm_2010

구상과 추상이라는 구분을 초월하여 동등한 차원에서 자유롭게 수용하는 열린 표현수단은 결국 인간내면세계라는 주제에 중점적 의미를 두었고 그것은 결국 그의 정체성을 찾는 일과 연결되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는 회화의 힘이란 바로 절대적 평면 안에 생멸하는 이치를 돌발적으로 표출할 수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화면위에 빠르게 움직이는 붓질, 힘찬 속도감으로 그어진 드로잉 또 자연스레 입혀지고 흘려진 물감들은 선과 면 그리고 색채와 형상들과 어우러져 생기는 우연성과 함께 그 깊이와 맛을 더해주고 있다. 이제 막 미술계에 발을 들여놓은 작가로서 그의 정체성이 쉽게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머지않아 그러한 두려움마저도 끌어안고 크게 성장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임봉규

Vol.20101022k | 수에나展 / SUENA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