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PER BOAT 종이배 띄우고

銀波위의 상념과 노래 ● 내 너 있는 쪽으로 흘려보내는 저녁 강물빛과 네가 나를 향해 던지는 물결소리 위에 우리 사랑은 두 척의 흔들리는 종이배 같아서 무사히 무사히 이 물길 건널지 알 수 없지만 .......... 바람결에 종이배 실려 보냈다 되돌아오기를 수십 번 살아 있는 동안 끝내 이 한마디 네 몸 깊은 곳에 닻을 내리지 못한다 해도 내 이 세상 떠난 뒤에 너 남거든 기억해다오 내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도종환, 「종이배 사랑」)

김혜옥_종이배 띄우고_캔버스에 유채_112.1×162.2cm_2011

화가 김혜옥의 화폭엔 언제나 종이배가 외롭게 떠 있다. 소녀 같은 감수성과 서정이 물씬 묻어나는 그림들로 작가의 소박하고도 담백한 미의식이 그대로 묻어나는 화면들이다. 어딘지 모르게 허전하고 쓸쓸해 보이는 화면이 조금 무료해 보일 수도 있으련만, 오히려 신선하고 청량한 데가 있다. 자극적이고 현란한 오늘의 시각적 현실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작가의 화면은 자극보다는 조용한 사색의 경험을 주문하고 있으니 말이다. 노스탤지어와 감상에 젖기에 충분한, 그러면서도 무언가 또 다른 생각의 끈을 잡을 수 있는 것이 작가의 그림이다. 작가의 종이배 그림을 보노라면, 아슬아슬한 사랑의 애틋하고 애달픈 감정을 노래한 도종환님의 「종이배 사랑」이 떠올려진다. 작가의 화면은 일견 소녀적 감수성의 아기자기함으로만 어필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가의 화면은 사진적 묘사에만 희열을 느끼는 미의식을 노래한 것이 아니다. (물론 물결의 묘사라는 대목만으로도 적지 않은 볼거리가 됨에 틀림없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발견해 낼 수 있는 작가 심중에 도사리고 있는 미의식이나 미적 의도가 아니라, 화면을 통해 전달되는 상징성, 그리고 그것이 갖는 소통적 성취이다.

김혜옥_종이배 띄우고_캔버스에 유채_60×60cm_2011

김혜옥_종이배 띄우고_캔버스에 유채_60×60cm_2011

적어도 감정이입의 동기를 신뢰한다면 작가의 화면에서 드러나는 컨텍스트란, 존재가 처한 실존적 현실에 대한 암시로 다가온다. 망망대해 같은 물 위에 버들잎 같은 종이배 하나가 떠 있다는 그 정황은 미지의 세계, 광대무변의 세계에 던져진 존재의 실존적 상황에 다름 아니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흐름과 파도에 맞서 멈추고 안식하고자 하는 의지가 수용되지 않는, 언제 전복될지 모를 불안의 그림자를 안고 있는 실존적 현실이라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실존적 상황 속에서 헤쳐가야 할 존재는 바로 자아일 수도 있다. 다행히 작가는 그러한 정황을 그렇게 암담하게 그려내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목가적이고 희망적인 서정으로 귀결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기본적으로 품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 은파가 넘실대는 무한대의 수면을 보자. 화면상의 공간은 불교적으로 말하면 '없음'(空)과 '있음'(色)이 맞물려 순환되고 있는 자연이다. 망망대해는 관념적으로 '없음'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있음'을 넘어 '넘치는' 세계이기도 하다. 특히 사진처럼 생생하게 물결치는 모습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종이배가 대입된 맥락, 즉 대비적 맥락에서 물은 가히 무한의 상징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이 문맥에서 종이배는 무한의 세계로 보내지는 메신저 혹은 발신 그 자체이다. 미지의 누군가가 읽을지도 모를 메시지 말이다. 무한을 향한 발신이란 전달 불가능한, 혹은 수신 불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하기는 언어가 반드시 소통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라캉이 말하듯이 우리는 생각해서 말하는 주체라기보다 무의식이 말하게 하는 주체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의식은 우리의 무의식이 발신한 바를 미처 다 헤아리기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 우리의 사유와 감정을 담은 언어란, 세계라는 수면 위에서 정작 종이배처럼 표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김혜옥_종이배 띄우고_캔버스에 유채_60.6×90.9cm_2011

작가의 세계관이나 미의식의 요체가 아무리 적절히 투영되어 있다 하더라도, 범인의 눈에 화면이 허전해 보이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소재의 딜레마라 할까, 소재의 특성상 화면 내에서의 비례를 안배하기가 그리 쉽지도 않다. 캔버스가 커지면 물의 면적만 커갈 뿐 종이배가 비례적으로 확대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미니멀아트 작가들처럼 그렇게 논리적인 것을 즐기지도 않는 작가이고 보니 화면을 쉽게 관념에 양보할 게재도 아니다. 작가가 물결에 필요 이상이다 싶은 묘사의 공을 들이는 것도, 그림은 모름지기 작가가 온전히 화면에 투신하듯 뛰어들어 신체적 공양을 다해야 한다는 신념을 굳게 가지고 있는 듯하다. 고심 끝에 작가는 변형과 새로운 구성이란 요소를 조심스럽게 도입하여 종래의 사진을 확대한 것 같은 단조로움에 변화의 기운을 불어넣는다. 이에 작가는 신중하게 다양한 표정의 종이배를 그려내기 시작했다. 아니 종이배가 아니라 그것이 떠 있는 물의 표정이 다양해졌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종이배가 떠 있던 물이 오히려 종이배 형상의 프레임 안에서 출렁이는 화면들에서 잘 드러난다. 사실 화면 속의 종이배는 떠나가는 것만이 아니고 어디로부턴가 오는 배이기도 하다. 아울러 물 위에 종이배가 떠 있는 것이 아니라, 종이배가 물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하나의 단서이기도 한 것이다. 작가가 처음 종이배를 그릴 때 종이배가 가진 상징성에 역점을 두었다면, 이제는 우리의 관념에 도사리고 있는 상투적인 틀을 제거하는 생각의 깊이를 환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하나하나가 심도 있게 생각해내고, 고심 끝에 빚어낸 것처럼 진지함이 묻어나는 것들로만 채워져 있다. 생각의 깊이에 대한 자극, 그것이야말로 작가와 화면이 거두고 있는 소통의 성취인 것이다. ■ 이재언

김혜옥_종이배 띄우고_캔버스에 유채_112.1×162.2cm_2009

김혜옥_종이배 띄우고_캔버스에 유채_112.1×162.2cm_2009

Thoughts and Songs upon the Silver Ripples ● Upon the colors of the river in the evening that I send to you And the sound of the ripples that you cast toward me Our love is two paper boats rocking side to side No guarantee of safe passage across the water .......... Again and again my paper boat returns to me in the wind Should it never lower the anchor deep within you while I yet live Should you remain in this world after I am gone Remember, my dear, how much I loved you (Jong-Hwan Do, Paper Boat Love) ● On the canvas of the artist, Hye-Ok Kim, there is always a paper boat floating all alone. Strongly exuding the sensibilities and lyricism of a young girl, these artworks exude the artist's modest and uncluttered aesthetic consciousness. The scenery with a vague sense of emptiness and loneliness may seem somewhat boring to some, and yet, it is rather fresh and clear. Her works stand in stark contrast to the visual reality of the day that is stimulating and flashy, and command a moment of quiet contemplation. Sufficient to make the viewer engage in nostalgia and sentimentality, yet leading him to ponder deeper thoughts – that is what her works do. Looking at the painting of a paper boat, I am reminded of 'Paper Boat Love' by Jong-Hwan Do, which sings the heartrending sentiment of a fragile love. At a glance, some may only find appealing the charm of a girlish sentimentality. However, the kind of aesthetic consciousness which revels in the ecstasy only of photographic description is not what this artist's work portrays. (Of course, depicting ripples alone is sure to create something to look at…) What is important is not the aesthetic consciousness or intent deep inside the artist which we can discover, but, rather, the symbolism and its communicative value delivered through the painting. ● If her empathy were not in question at least, the context that emerges from the painting seems to imply the existentialist reality of being. The lone paper boat floating out on the open sea like a leaf of a willow tree does not differ from the existentialist circumstances of the being thrown out into the unknown, boundless world. One may see it as the existentialist reality in which the desire to stand up against the undeniable waves of fate so as to pause and rest is unacceptable, as the paper boat can overturn at any time, holding onto the shadow of insecurity. Of course, the being in question which must fight through the existentialist circumstances can be the self. Fortunately, however, the artist is not painting this reality in such a grim manner. It may be that, in essence, she intends to conclude her painting with bucolic and hopeful lyricism. Let us turn our attention once again to the boundless surface of the water with silvery ripples. The space portrayed in the painting is, in Buddhist terms, the nature in which 'nothingness' and 'existence' are engaged in a cycle. The boundless open sea can be interpreted as the notion of 'nothingness', which also transcends 'existence' into a world of 'overflowing'. This is even more so when the ripples are portrayed so dynamically as in a photograph. However, when the paper boat comes into the picture – that is to say, in the contrastive sense – the water can be said to symbolize boundlessness. In this context, the paper boat is the messenger who is sent out into the boundless world, or even the message itself – a message that may or may not be read by an unknown someone. Sending a message out into, or receiving a message from, the boundless may be an impossible feat. But, then, language is not something that must be communicated. As Lacan has pointed out, we may not be agents which think and then speak but we may indeed be agents which the subconscious causes to speak. It just may be that our consciousness has difficulty in fathoming all that our subconscious transmits. Perhaps our language, which contains our thoughts and emotions, floats like the paper boat upon the water surface that is this world. ● No matter how properly the artist's worldview or aesthetic consciousness is projected, it cannot be denied that this piece looks rather empty in the eyes of an ordinary viewer. One could call it the dilemma of the subject matter, perhaps. The nature of the subject matter is such that the proportion cannot be arranged easily. That is to say, even if the size of the canvas were to be increased, it is difficult to increase the size of the paper boat proportionately. And she is not like the minimal artists who enjoy logic in her art; she would not easily yield her piece to ideation. When she depicts the ripples with such detail above and beyond the call of duty, it seems to suggest that she has the firm conviction that an artist must jump into the work of art and devote herself wholly to it. After much deliberation, she carefully introduces change and new composition, providing the vigor of change to what once seemed like a simplistic enlargement of a photograph. With this, the artist began to paint paper boats with character. But, then, it is perhaps more accurate to say that the surface of the water – not the paper boat itself – took on character. Such change is portrayed well in that the water upon which the paper boat is floating seems to ripple within the paper boat-shaped frame. In fact, the paper boat in the piece is not simply going away to somewhere. It is also coming in from somewhere as well. At the same time, it is not simply that the paper boat is floating upon the water, but that the paper boat is a clue which confirms the existence of the water. If the artist put emphasis on the symbolism of the paper boat when she first began painting it, now she is rousing the depth of our thoughts which remove the trite paradigms that drive our thoughts. Indeed, this piece is filled with everything earnest, as though the artist thought and fashioned every inch with great effort and care. The stimulation upon the depth of our thoughts – this is the communicative essence of the artist and the art piece. ■ LEEJAEEON

Vol.20110425g | 김혜옥展 / KIMHYEOK / 金惠玉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