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

임승천展 / LIMSEUNGCHUN / 林承千 / sculpture   2011_0316 ▶ 2011_0501

임승천_유랑 Wandering_혼합재료, 가변크기_2011_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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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0316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공간화랑 GALLERY SPACE 서울 종로구 원서동 219번지 공간사옥 B1 Tel. +82.2.3670.3500 www.space-culture.com

임승천(1973~)은 가상의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그 스토리 구조를 기반으로 드로잉부터 대형 설치에 이르는 다양한 형식의 작품들을 창작함으로써 내면의 개념을 시각화 시켜온 작가이다. 세상의 멸망 이후 존재하는 디스토피아의 암울한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분위기를 가진 임승천의 이야기들은 미래를 가정한 허구이지만 그 면면은 동시대의 현실적 맥락들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것들이다.

임승천_유랑 Wandering_혼합재료, 가변크기_2011_부분

임승천의 스토리 구조는 각각의 스토리들이 연결되며 이어지는 서술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의 매 국면들은 그 동안의 개인전 등을 통해 단절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져왔던 것이다. 이번 공간화랑에서의 전시 또한 앞서 그가 발표했던 네 개의 스토리들에 이어지는 다섯 번 째 스토리에 기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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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천이 풀어내는 이야기의 서막은 대규모의 개발공사나 수몰 등으로 인해 삶의 터전이 소멸되어 정착이 불가능해진 사람들이 자신들의 재산을 모아 배를 장만하여 (드림쉽3호) 남태평양 해역 어딘가에 있는 무인도로 이주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긴 항해도중 폭풍을 만나 배가 파손되는데, 항해를 지속하고 목표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가장 안전한 구조로 배를 개조하게 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격론 끝에 결국 뱃머리가 세 개로 만들어지게 되면서 어느 방향으로도 나아갈 수 없는, 스스로 초래한 고립의 상황이 연출된다(에피소드 1). 망망대해에 갇혀버린 사람들은 공포와 공황 상태에 빠져 분열과 대립을 반복하며 극한 상황에 치닫게 되고, 정신적 피로감 속에서 고립은 더 깊어져만 간다(에피소드 2). 공황상태에 빠진 이들은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들이 떠나온 사회와 비슷한 수직적 위계관계를 구축하고 기형적인 증식을 통해 스스로의 안전을 도모하게 된다. 그러나 외부와의 소통이 단절된 이들은 점차 비이성적인 논리에 함몰되고, 오해와 공포로 말미암아 전체가 자멸하는 결과로 치닫게 된다(에피소드 3). 이 드림쉽 3호에서 유일하게 살아 남은 '낙타'라는 소년은 희망과 좌절을 번갈아 경험하며 홀로 표류한다. 그는 표류중 우연히 북극에서 벌어지는 자원 전쟁의 참상을 경험하게 된다. 멀지 않은 미래, 북극의 얼음이 녹아내리며 새롭게 드러난 북극점 아래 매장된 엄청난 자원을 차지하려는 주변국들의 분쟁은 결국 '산타존'이라는 국가간 협의지대를 창설하는 것으로 이어진다(에피소드 4).

임승천_유랑 Wandering_혼합재료, 가변크기_2011_부분

이렇게 전개되어온 그의 이야기들은 '낙타'의 '유랑'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새로운 국면으로 이동하는데 그 내용들이 이번 공간화랑 전시에서 발표된다. 작가 스스로 염두에 두고 있었던 다섯 번 째 이야기는 공간화랑이라는 전시 장소가 결정되면서 장소적 성격과 조우하는 새로운 작품들로 구체화된다.

임승천_유랑 Wandering_혼합재료, 가변크기_2011_부분

표류를 거듭하며 피로에 지친 낙타는 어느 날 새로운 희망의 날개가 자신의 등에서 돋아난 것을 알게 되고 기쁨에 젖게 되지만, 잠시 잠든 사이 날개는 어떤 물고기가 먹어버리며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 마지막 희망을 잃어 버린 낙타에게 세월의 흔적이 더해지며 변화된 모습은 공간화랑 중간층 한쪽에서 관객들을 맞게 된다. 또한 소년의 희망의 날개를 먹어버리고 비대해진 자신을 주체할 수 없게 된 거대한 물고기는 소극장 공간사랑 한쪽에서 가쁜 숨을 몰아 쉬는 키네틱 작품으로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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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번 전시의 중심은 전시장 끝 부분의 무대 설치이다. 유랑을 상징하는 서커스 천막 형태의 무대에는 몇 명의 인물 군상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이 서 있는 판의 회전과 사이키 조명의 반복되는 암전으로 마치 인형들이 움직이며 춤을 추고 있는 듯 한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인류가 최초의 동영상을 만들기 위해 회전하는 장치를 고안해 내었던 수 세기 전의 상상력이 새로운 연극적 무대로 재현되고 있다. ● 임승천은 독특한 감수성과 특별한 형식미를 가진 작가이다. 그의 이야기들은 암울한 심리적 통로의 내부로 들어가는 여타의 작품들과는 달리 현상적인 차원을 초월하여 상상의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내는 것을 지향한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들은 본인이 발을 딛고 서 있는 현실 세계의 비루한 모습들과 부대끼는 것에서 시작한다. 손댈 수 없이 꼬여버린 탐욕과 갈등의 고리들은 현재의 암울한 모습들을 만들어 내고, 그러한 현실에 임승천의 상상력이 더해져서 그려진 미래의 모습들이 바로 그의 작품들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임승천의 작품세계가 갖는 중요한 미학적 특별함이다. ■ 고원석

Vol.20110316i | 임승천展 / LIMSEUNGCHUN / 林承千 / sculpture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