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위 66도 33분 _ 잠들지 않는 땅

임승천展 / LIMSEUNGCHUN / 林承千 / sculpture   2009_1118 ▶ 2009_1201

임승천_표류자_혼합재료_85×25×20cm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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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모로갤러리 개관 10주년 기념 기획展 후원_서울문화재단_경기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7:00pm

모로갤러리_GALLERY MORO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8-16번지 남도빌딩 1층 Tel. +82.2.739.1666 www.morogallery.com

끝나지 않은 이야기 ● 눈을 세 개 가진 아이. 내가 처음 맞닥뜨린 임승천의 작품이다. 낡아빠진 허름한 런닝셔츠를 입고 좌대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그 아이는 눈이 세 개였다. 처음엔 내가 잘 못 본 것이거나 현기증 같은 것에 의해 순간적으로 사물이 이중으로 보이는 현상인가 싶었다. 가녀린 팔다리를 한 그 아이는 조그만 좌대에 올라 앉아 나를 쳐다본다. 아니, 나를 쳐다보는가 싶었던 그 아이의 시선은 내 몸을 그대로 뚫고 지나쳐 더 먼 어딘가를 향한다. 서로 부딪히지 않는 시선을 불안해하며 그 앞에 어정쩡하게 서서 묻는다. 넌 누구냐, 대체… ● 임승천은 과거에 했던 자신의 작품과 이번 전시를 연결짓는 고리로 이 아이를 데려왔다. 그의 전작을 모른다면 우리는 그 아이가 갖는 상징성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도시 팽창과 무리한 개발 공사로 인하여 살 곳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태우고 희망을 향하여 남태평양 해역 내 무인도로 떠난 거대한 배 "드림호"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어디서든 권력과 욕망은 인간을 움직이는 동력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유토피아를 향해 떠난 드림호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떠났던 땅의 흉한 모습을 그대로 반복한다. 바다 한가운데서 풍랑으로 손상된 배를 복구하면서 뱃머리가 세 개인 배를 만들었으나 그 배는 움직이지 않는다. 완벽의 숫자라고 생각하여 3이라는 숫자를 인용하였으나 뱃머리가 세 개이니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들은 그걸 모른다. 그리고 그 위에 겹겹이 쌓아올린 달동네 같은 집들의 무더기를 만들어 낸다. 그들은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며 권력다툼을 하다가 어떤 이들은 희망이 없는 배를 떠났고 남은 이들은 스스로 자멸의 길을 걷는 것이다. ● 이 비극적 자멸의 과정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가 바로 눈이 세 개 달리고 등이 굽은 "낙타"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이다. 그 소년이 이번 전시에 다시금 등장한다. 그러므로 작가 임승천은 전시를 그 자체로 완결된 일회적인 사건으로 끝내는 대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연속되는 이야기들로 엮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이번엔 그가 좀 희망적인 이야기를 해 줄 것인가?

임승천_검은낙원_혼합재료_270×900×500cm_2009

임승천은 이번 전시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이번엔 북국과 관련된 이야기다. 하루 종일 해가 뜨지 않는 극야와 하루 종일 해가 지지 않는 백야가 있는 북위 66도 33분 위쪽에 있다는 북극 말이다. 느닷없이 북극이라니, 뜨악해 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욕망과 욕망이 충돌하다 벌어지는 비극적 결말이라는 점에서는 앞의 이야기와 닮았다. 그 뿐인가? 현실을 냉정한 눈으로 관찰하고 거기에 작가적 상상력을 덧붙여 적절히 뒤섞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킨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부터가 가상인지, 우리들은 정신 차리고 작가가 해주는 이야기를 따라가야 한다. ● 북극에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막대한 양의 원유와 천연가스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소유권 경쟁, 그리고 온난화의 영향으로 빙하가 녹아 항로가 열리면서 벌어지는 항로 개척을 위한 쟁탈전, 이들의 분쟁을 막기 위해 북극점에 세워진 중계소인 산타 존, 협약을 깨고 무리한 개발을 추진하다 벌어지는 무력 충돌, 사상자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세워진 위령탑 등의 이야기다. 어디가 허구인지, 무엇이 현실에 기반한 이야기인지 헷갈린다. 나는 그동안 신문을 꼼꼼히 읽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북극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치열한 정보 전쟁과 영토싸움, 온난화 영향으로 2004-2008년 사이 57%나 줄어든 북극의 다년빙 이야기와 그에 따른 해상항로 선취경쟁, 북극의 천연가스 개발에 뛰어든 한국을 포함한 각국의 회사 등에 관해서는 이미 신문에 보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윤을 추구하는 우리 인간들은 자연이 파괴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것을 이용해 돈을 벌 생각만을 한다는 것 또한 불행히도 픽션이 아닌 사실이다. 그것의 최종 결말은? 가상의 공간 산타 존에서의 생존자를 남기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나지만 그 다음은 모른다. 작가는 그것까지 이야기하고 있지 않고, 그래서 이야기는 열려있지만 우리는 불안하다.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을 굳건히 믿고 희망적인 낙관론을 펼치기엔 지금까지 인간들이 보여준 현실이 너무나 답답하기 때문일 것이다. ● 그 이야기를 작가는 어떻게 시각적으로 풀어냈을까? 우리가 전시장에서 보는 건 대기업 로고가 가득 찍힌 검은색 광고판과 손으로 눈을 가린 채 두려운 듯 쪼그리고 앉은 어린아이의 몸뚱어리다. 희생자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세운 위령탑은 그것을 위해 돈을 댄 대기업들을 광고해 주느라 회사 로고들로 뒤덮여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되었다. 거기에는 희생자를 기리는 그 어떤 이미지도 찾을 수가 없다. 그리고 작가 임승천은 그 광고판을 뒤덮은 회사 로고들 사이사이에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폭력의 이미지들을 숨겨 놓았다.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는 거대한 이미지의 홍수 속에 인간 역사의 불행한 단면을 감추듯이 박아놓은 것이다. 그리고 그 주변에 가상의 중계소 산타 존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L이 있다. 그는 한 손으로 눈을 가리고 쪼그려 앉은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이다.

임승천_잉여가치-L_혼합재료_35×20×25cm_2009

물론 이 이야기는 작가 임승천이 만들어낸 이야기이고 그러므로 허구이다. 하지만 지난 전시에서 보여준 드림호의 항해일지와 북극 산타 존에서 벌어진 참사 등의 이야기는 가상과 현실을 오가며 우리를 섬뜩하게 만든다. 작가는 일본의 공상과학 애니메이션을 연상케 하는 암울한 이미지를 이용하여 우리들의 현실과 미래를 오버랩 시킨다. 그리고는 현대 미술에서 사라진 서사적 구조를 다시 가져와서 관객들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 전시장에는 쫓겨날 걱정에 온통 집 생각으로 머리가 터져버릴 것만 같은 작가 본인의 얼굴도 놓여있다. 그의 머리는 고만고만한 집들로 산을 이루었고 그 집은 머리를 뚫고 나와 터져버린 뇌수처럼 쏟아진다. 그의 얼굴은 내부의 긴장과 걱정을 견디다 못해 금이 나 버렸다. 가만 보니 그 얼굴은 바로 내 얼굴이고 또 당신의 얼굴이 아닌가. ● 이제 곧 겨울이 닥칠 것을 예고라도 하듯 며칠간 반짝 춥더니 다시금 포근한 날씨가 지속된다. 이대로 내처 봄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기도 한다. 그 포근함이 임승천이 이번 전시에서 제시하듯 인간들의 무분별한 개발경쟁으로 인한 지구 온난화의 결과라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추운 겨울을 어디서 나야할까 하는 근심으로 가슴이 타들어가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기 때문일 거다. 자기가 살던 곳에서 쫓겨나 거리로 나앉은 사람들과 그 터전을 지키려다 폭도로 몰리고 그 끝에 목숨을 잃고 만 사람들, 그리고 새벽이면 을지로 지하도를 빼곡히 점령한 노숙자들을 내 눈으로 본 이후, 겨울이라는 계절에 낭만이 끼어들 여지는 없어져 버리고 말았다. 이상하다.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를 향하고 세상은 그에 따라 점점 발전하고 있다고들 하는데 왜 사는 건 갈수록 힘겹게 느껴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갤러리 안에 걸린 화사한 빛깔의 아름다운 그림들과 내가 피부로 느끼는 삶과의 거리가 느껴지면서 그림에서 위안을 받기보다 역겨움이 밀려온 이후 나는 갤러리 나들이를 그만 두었었다. 아우슈비츠 이후 예술은 불가능하다고 했던 이는 아도르노였던가? 이 시대에 예술이 도대체 뭐란 말이냐, 하는 한탄이 한숨처럼 새어나오던 때, 경박단소 기치의 시대에, 말초적 자극과 형식적인 미에만 집착하는 이 시대에 그는 가능성이 희박한 장밋빛 유토피아로 손쉽게 타협하지 않고 현실의 남루한 모습을 숨기지 않으면서 우리에게 말을 건다. 하지만 그 암울한 겉모습과는 달리 그의 이야기 속에는 한 가닥 희망이 보이기도 한다. 그는 언제나 생존자들을 남겨 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낙타"는 두 개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어느 지점을 볼 수 있도록 세 개의 눈을 가지고 태어났고 굽은 등에선 날개가 돋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 어린 생존자들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조이한

Vol.20091119c | 임승천展 / LIMSEUNGCHUN / 林承千 / sculpture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