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00223b | 추연신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기획 / 아트 스페이스 사파
관람시간 / 10:00am~08:00pm / 토요일_10:00am~05:00pm / 일,공휴일 휴관
갤러리 사파 GALLERY SAPA 서울 서초구 서초동 1660-1번지 강우빌딩1층 Tel. +82.2.2278.8334 blog.naver.com/gallerysapa
태초에 인류에게 물체는 그 자체로서 존엄성을 갖고 있는 영적인 커뮤니티의 대상이었다. 대륙을 횡단하고 종족을 만들고 영토를 확장해나가며 분쟁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물체와 사물은 지정된 공간에 자리 할 수록 근본적인 형태의 순수성에서 벗어나 부피의 구분에서 점차 세분화되어 구체적인 개체로 고착되기 시작하였다. 그것이 유독 현대사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형상>실체>분류>도출 의 단계처럼 현대화는 물질적인 가치가 더욱 명확한 위치에 자리하게 되었다. 과학, 공학, 은행, 주식시장, 인권, 정치,등 인간의 삶에서 필수불가결한 숫자들로 작품을 만들어냈다.
인간 생활에서 숫자가 차지하는 부분이 순수하게 물질을 담당하였고 text는 숫자를 통해 전혀다른 의사를 전달하면서 사회를 형성한다. 언어가 형상을 만드는 면적을 가진 프레임의 역할을 숫자는 프레임과 프레임을 연결하는 볼트와 너트의 역할을 하고있는 것이다. 이처럼 숫자와 언어는 상호작용으로 인해 건설적인 제국을 설계하는 것을 가능케 하였다. 그러나 현대화에 가까워질수록 Code는 스스로 분리되어서도 충분한 개체로 자리잡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되어 조금 더 원초적인 부분에서부터 인간내면에 깊게 자리한 욕망을 자극하고 물질에 또 다른 물질을 덧대어 인간 스스로의 행위에 제한을 두게 한다.
그 예로 미디어 기술은 이미 시각과 청각의 극대화로 감각을 통제하고 컨트롤하기 시작하였고, 육안을 통한 시각의 간접적 경험을 미디어는 모두 생략한 채 망막에 투영해내는 기능만을 수행하게 된다. 결국 과거에 행해오던 실제의 경험과 감각을 통해 대뇌에 저장될 실존하는 이미지들을 모두 간과한 채 사실과 닮은 결과적인 측면만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화면을 통해서 보는 복제된 b.사자를 사실 그대로의 A.사자 라고 믿은채 결부 짓고 말아버린다. 19세기를 시작으로 문명은 그 전환기를 두고 유쾌하지 않은 기로에 서있는 셈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아차리면서도 좀처럼 문명의 이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소멸하는 것은 재생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현상이다. 현대화로 인해 사라지는 것들의 표본을 채취하여 박제시킨다. 수집은 오히려 그 소멸에 방해가 되는 것이지만, 모든 역사는 소멸되었고 한때 실재했던 것이어야만 그 가치가 더 아름답다 말한다. 문명의 이기 앞에 보존이라는 개념이 오히려 사실을 이용해 진실을 들여다보지 않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사실 그대로를 위장막으로 사용하고있다.) 이것은 죽은 지렁이와 납작해진 꿀벌과 새치 처럼 노랗게 탈색되어 떨어진 나뭇잎과 깨진 유리병 조각에서 시작되었다. 분명한 것은 소멸하는 것을 똑같이 재현하려는 것은 그어떤 기술에서도 표방할 수 없는 것이다.
산책하던 길가에 쓰레기가 버려졌다. 쓰레기는 썩어 없어지거나 풍화작용에 아니면 충돌에 의해 부서지고 깨지거나 균열이 생기고 주저 앉는다. 사람들에 의해서 없어지기도 할 것이다. 늘 걷던 길 인데도 말끔한 모습을 보게된다. 어떻게든 그 형태가 유지되지 않는 이유는 시멘트 길 위의 굵직한 돌 보다 유기질의 토양이 차지한 면적이 더 많기 때문에 온도와 습도 대기 상황에 따라 생물들(분해자)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콩을 심어놓은 길의 가장자리는 늘 메뚜기나 벌레들, 쉬어가던 뱀의 쉼터이다. 아니 오히려 그 시멘트 바닥의 경계를 아우르지 못해서 국경의 사이에 체류되어 있는 모양새를 갖춘다. 어디서 날아들었는지 모르는 벌레들이 계단에 보기좋게 내동댕이처져 있다. 급격한 날씨 때문인지 고립에 의한 생존의 박탈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내 앞에 덩그러니 놓여있다는 것만 알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소멸될 것이다. 조금 더 계산된 방법 또는 그렇지 않게 방치될 것이다. 둔탁한 것에 의한 압착으로 인해, 빗자루에 쓸리거나, 먼지에 붙어 날아온 균의 유기물이 될 것이다. 기어이 나는 습기 가득한 곳에서 싸늘하게 생장을 멈춘대상을 주워다 놓고 장소를 옮겨 소멸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습기에 압도당해 곰팡이가 뒤덮히고 벌레가 하나둘씩 기어나오기 시작한다. ● 바누아투(Vanuatu)족 사람들에게 드로잉의 의미는 드러나지 않는 무의 형질에 가까운 행위로 영적인 대상과 교감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잠시동안 나무 막대로 긁어나간 문양은 파도의 포말에 뒤덮인 채 바닷물에 의해 사라진다기 보다 옮겨가는 쪽을 닮아있기 때문에 영적인 잔상으로의 색상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그러나 그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문명사회의 시스템은 철저한 시각적 일루젼에 노출되어 있어서 정작 소멸되어 존재하지 않는 진리 와는 동떨어져 있는 모순된 풍경을 드러내곤 한다. 그들이 해변에 그리는 것은 애초부터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을 이루는 것은 바닷물과, 나뭇가지와 모래 알갱이와, 태양에 의한 빛의 명암, 즉 실재하지만 현재와 가까운 문명에서는 인지하지 못하는 대상들인 것이다. ● 실재하는 것은 미술의 영역에서 새로운 전환의 역사을 기록해왔다. 건축물과 하나가 되고, 회벽에 내맡겨지거나, 대지와 그 영역의 장벽을 대담한 메시지로 허물기도 하였으며, 고도로 발달된 문명보다 명석한 시야로 분석하는 등, 시대를 비판하는 다양성의 시대에서 나는 숫자조각을 통해 미술이 갖는 시각적 영향력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소멸을 통한 존재의 특수성에 대한 탐구를 시도해 본다. ■ 추연신
Vol.20110316h | 추연신展 / CHOOYEONSHIN / 秋淵信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