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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9:00am~06:00pm
에이원 갤러리_A1 GALLERY 서울 송파구 송파동 116-9번지 Tel.+82.2.412.3699
시대는 급속도록 변화한다. 생활은 편리해지고, 과학이 발달할수록 편리함조차 느낄 수 없을 만큼 기술력은 삶에 녹아들어있다. 바코드를 예로 들면 생산년도, 제조일자, 출원일, 제품의 등록번호, 생산번호, 값 까지 세세한 정보를 담아낼 수 있는데, 이것은 정보화 사회의 단편적인 면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좋은 예이다. 사회는 점점 좋은 것을 추구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과주의적인 면목에서의 기능성일 뿐이다.)시간에 제약을 받지 않고, 기다림 없이 일의 능률을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데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오류가 발생 하기도 한다. 그럴수록 점점 더 강화된 프로그램을 만들고 오차의 범위를 좁혀나간다... 오류를 통한 발전의 반복이 과연 우리가 바라는 아름다운 미래인지 의구심을 느낀다. 우리가 구상하고 있는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 아날로그시대에 우리는 그토록 영혼의 감성을 머리위에서 발끝까지 채우고 살아왔다. 모든 것이 손으로, 몸으로, 감성으로, 움직이며 사람냄새가 진동하는 시장을 지나고, 르네상스적 시대를 살아왔다. 이제 세상은 디지털 화된 코드에 무자비하게 지배당할 것을 추측해본다. 결과적인 측면에서 문장은 단어보다 설득력이 강하지만, 반대로 단어를 채용하게 됨으로서 시간을 단축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게 된다.
대표적으로. 숫자는 어떤 사물을 지칭하거나 분류할 때 자주 사용된다. 또한 기하학적 인공물 또는 대량화된 생산품을 구성하고, 해석되는 필수요소로 쓰인다. 화초에 씨앗을 심고 싹이 트고 나무가 자라고 열매가 맺히기까지의 발생과정 또한 수치로 표현하게 된다. 과학, 수학자들은 이 발생과정을 숫자와 기호, 공식으로 나타낼 수 있고, 철학자들은, 아름다움, 생성, 미, 시간, 공간, 은유, 로서 나타낼 수 있다. 한 가지 문제를 던지자면, 자신 스스로의 탄생과 삶의 스토리 또한 수치로서 말할 수 있느냐 이다. 우리가 숱한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미래사회에는 인공적인 생명을 갖게 된 인간이 판옵티콘으로서 기록화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작업으로 나타내며 그와 동시에 발생과정에 따른 대상의 참된 근본과 진리를 구성하는 형상은 쉽게 분해, 분산되고, 쉽게 조합될 수 있음을 의미하고 곧 현사회의 보이지 않는 혼란스러운 현상의 단면을 표현한 작업이다.
내가 채택한 숫자는 산업사회에서 생산되는 물품이 생성되기에 필요한 모든 필요조건이며 그 수치는 가히 놀라우리만큼 기계공학의 공식으로 작은 것 에서부터 거대한 구조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현대에 들어서는 그러한 구조들이 인간의 생활에 밀접해 있는 만큼 물질을 구성하거나 분류, 표기하는 데에 숫자는 가장 큰 기호중의 하나이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 숫자로 지정된 표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가치에게까지 영향력을 뻗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테크놀로지, 정보의 홍수에서 빠져나오기란 쉽지 않으며... 점점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을 스스로 가치를 찾는 여행을 하지 않을 것이다. 기술을 빌린 여행은 할 수 있으나 그 기술에 가려 가치를 찾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도록 감성의 한 부분을 퇴화될 위기에 처해있다. 도로위에 자동차 디지털 it 소품 첨단 산업이 그러한 예이다. 즉 숫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완벽한 구조를 생성하는 동시에 점차사라지는 가치소멸의 단적인 예를 의미하는 바이다.
나의 작업전반에 사용되는 숫자는 사회를 구성하는 요소들 중에, 물질에 대해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외부에 드러나 측정되는(값), 결과주의적인 사회의 혼란 속 생성과 소멸에 대한 현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 추연신
Vol.20100223b | 추연신展 / CHOOYEONSHIN / 秋淵信 / painting.draw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