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수展 / PARKSUNGSOO / 朴成洙 / painting   2011_0223 ▶ 2011_0304

박성수_자화상 self-portrait_캔버스에 잉크_153×120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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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0223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09:00am~06:00pm

서신갤러리 SEOSHIN GALLERY 전북 전주 완산구 서신동 832-2번지 새터빌딩 B1 Tel. +82.63.255.1653 www.seoshingallery.co.kr

눈과 세계, 그 사이에 놓인 거리 ● 박성수의 회화는 투명하다. 그의 투명함은 원근법적 깊이로 이어지지 않고, 거의 평면적 심도(depth of field) 내에 머문다. 이미지는 텅 빈 공간 앞에 말없이 떠오른다. 그 투명함 속에서 사물은 존재라기보다는 존재의 흔적들에 가깝다. 나는 이러한 이미지의 출현 방식으로부터 즉각적으로 어떤 경이와 충격을 느낀다. 사물의 투명함에 이르는 것은 근대적인 인식의 소산일 것이다. 사물을 관통하여 그 본질을 꿰뚫는다는 자각이 사물의 투명함이라는 환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런데 박성수의 회화는 오히려 인식의 원근법 그 자체가 사라진 지형도를 보여준다. 그의 회화에서 인식의 원근법을 형성하는 주체의 자리에는 단지 세계와 우연히 맞닥뜨려진 존재가 놓여있을 뿐이다.

박성수_여자 woman_캔버스에 잉크_153×120cm_2011

"나의 작업은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것이다." 작업노트에 쓰여진 작가의 고백은 이러한 작업 태도를 잘 보여준다. 그의 회화는 인식의 자명한 지평에 서있지 않고, 그 세계로 옮겨오려고 하지도 않는다. 존재와 사건이 개념을 배제한 채 오히려 순수하게 피상적인 세계, 물질들이 빛 속에서 늘 흩어지고 있는 세계, 인식 이전의 세계, 앎과 모름 이전의 세계, 그 곳에 박성수의 회화는 있다. 그 곳에서 작가는 눈 앞의 대상을 정의하는 주체가 아니라, 매 순간 흩어지고 소멸하는 빛의 증인이고, 낯선 세계 앞에 선 목격자이다.

박성수_개 dog_캔버스에 잉크_130×162cm_2011

이 목격자의 증언은 객관적 진술이 아닌, 존재와의 만남 자체의 기록이다. 만남의 감각, 언제나 그 감각 속에서 나는 뭔가 다른 내가 되고, 또 무엇인가 세계의 흔적 같은 것이 그 감각 속에서 떠오른다. 내 몸은 그 감각의 주체이자, 대상이다. 흩어지고, 운동하고, 흐르고, 뒤틀리고, 흔들리고, 춤추는 살들, 잎들, 물결들, 빛들, 그 춤추는 사물의 감각 앞에서 나는 관객이자, 무용수이고, 안무가이다. 나타나고 소멸하는 존재들의 목격자이자, 절멸자이다. 이 조용한 혼돈, 침묵의 범람의 감각은 강렬하다. 박성수의 회화는 눈과 세계 사이에 놓여 있는 거리에서 생겨나는 길들여지지 않는 이 어지럼증을 정면으로 맞아들여 천착해 들어가고 있다.

박성수_나무 tree_캔버스에 잉크_153×120cm_2011

눈과 세계 사이에서 놓여있는 거리 속에서 박성수의 회화는 지금 막 벌어지고 있는, 착지되지 않은 사건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아직 의미를 획득하지 않은 이미지들은, 해명할 수 없는 고독 속에 홀로 분리되어 있거나, 격렬한 짝짓기의 힘 아래에서 하나의 형상으로 응결되어 있거나, 무심하다. 이 무심함이 그의 이미지들이 만들어내는 형상적 결절점의 특이성이다. 이 특이성은 어린 아이의 시선을 닮아있다. 유리창에 하얗게 피어 오른 수증기의 얼음 결정들에 꿈꾸듯 홀려있는 아이. 창문 너머의 허공과 창에 맺힌 형상 사이에서 유희하는 아이의 눈. 간혹 그 눈은 창에 비친 자기 자신의 눈동자를 바라본다. 스스로에게 아무런 권리도 허락하지 않는 겸손 속에 머물러 있는 듯이 보이지만, 모든 사태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이 유년의 시선이 갖는 매혹이자 혐의이다.

박성수_fighte_캔버스에 잉크_130×162cm_2011

작가가 되찾은, 혹은 지켜온 유년의 시선이 특유의 집중력으로 포착하고 있는 현재는 순간적이지만 강렬하다. 어른의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운 눈은 부단히 확인하고 건너 뛰어야 할 한낱 평범한 대상 앞에 문득 가만히 멈추어 선다. 의식의 연쇄도 멈추어 선다. 그렇게 강박으로부터 놓여난 시각은 지속과 증폭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며 점차 투명해진다. 그것은 참으로 한없이 투명하지만 얼마나 덧없이 흔들리며, 얼마나 흩어지기 쉬운가? 이제 그가 붓을 들고 그릴 때 그의 붓질은 형상의 거짓으로부터 도망치듯 허공으로 흩어지는 동시에, 흔들리고 흩어지는 감각의 결을 조심스레 고르며 간신히 하나의 형상을 드러낸다.

박성수_sex_캔버스에 잉크_130×162cm_2011
박성수_sex_캔버스에 잉크_130×162cm_2011

그의 회화는 관념적인 입체에 불과한 우리들이 영원히 알 수 없는 어떤 신비로운 평면을 드러낸다. 이 이미지들은 무언가를 구성하는 듯하지만, 아무 것도 구성하지 않는다. 명확함으로 명확함을 깨뜨린다. 투명함으로 들여다 볼 수 없음을 드러낸다. 인식의 지평을 증발시키는 이 투명하고 평면적인 이미지들 앞에서, 나는 웬일인지 날카로운 슬픔을 느낀다. 존재의 희미한 윤곽에서 묻어나는, 아주 얇고, 불투명한 슬픔을 말이다. 다시 한 번 들여다보아도, 나는 그 슬픔이 무엇인지 모른다. ■ 김창조

Vol.20110223d | 박성수展 / PARKSUNGSOO / 朴成洙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