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풀

임현락展 / LIMHYUNLAK / 林賢洛 / painting   2010_1124 ▶ 2010_1215 / 일, 공휴일 휴관

임현락_들풀展_렉서스갤러리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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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락 홈페이지_www.limhyunlak.com

초대일시_2010_1124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 공휴일 휴관

렉서스갤러리 대구시 수성구 지산동 1000-1번지 렉서스 5층 Tel. +82.53.770.7551

지상의 들풀 하나, 그 생명의 결을 실어내는 영성(靈性)의 묵흔 - 1. 시선 - 나무로 일어서 들풀로 눕다 ● 임현락은 수묵 설치작업 「나무들 서다」로 주목을 받아온 작가이다. 반투명 실크천에 일획의 먹으로 그린 나무들을 바닥으로부터 천정까지 설치하여 작가의 호흡과 대자연의 내재율(內在律)을 느끼게 했으며, 매체의 조율과 공간 해석에 있어 현대 한국화의 지평을 넓힌 작업이다. 그는 특유의 필묵법으로 나무의 골기(骨氣)와 생명의 기운을 표현해오고 있으며, 소나무그림이 고등학교 미술교과서에 소개되고 있기도 하다. 그의 주된 작업 모티브는 일관되게 인간과 자연의 관계, 우주의 시공간과 생명의 순환에 대한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대상의 형태를 넘어 우주적인 호흡을, 그 비가시적인 생명의 프로세스를 그대로 생생하게 가시화하여 보여주고자 한다. 그런 그가 이 번에는 가장 낮은 데로 시선을 돌려 들풀들을 그린다. 숲에 누워 바라보았던 키 큰 나무들이 품고 있던 바람과 하늘이 아니라, 지상에 엎드려 크고 있는 이름 모를 들풀들에 시선을 두고 있다. 작고 사소한 것들이지만 거기에 더 큰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생명의 순환에서 보더라도 낮은 곳에서 더 넓은 하늘을 품고 있다는 것을 작가는 보여주고자 한다. 그러한 예술의지에 걸맞게 화지도 4호에서 8호 사이의 작은 크기로 일관하고 있으며, 투영된 생명의 결에 따라 설치하여 갤러리 벽면을 대지와 같은 것으로 해석해내고 있다. 이를테면 하이데거(Heidegger)가 언급한 바 있는 예술의 자리(topos)가 '대지 한가운데 일으켜 세워지고' 있다. 미망(迷妄)의 어둠을 가르고 들풀들이 예술가의 마음과 손을 통해 또 다른 세계를 열어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예술의 길을 제대로 간다면 영육(靈肉)의 치유(治癒)에도 이르는 것이다.

임현락_들풀展_렉서스갤러리_2010
임현락_들풀_종이에 수묵, 혼합재료_42×30cm_2010
임현락_들풀_종이에 수묵, 혼합재료_42×30cm_2010

2. 물화(物化), 호흡, 부서지며 빛나는 영성의 붓길 ● 역시 작은 사이즈의 그림이라 하여 소품은 아니다. 그의 그림들이 그렇듯, 우주를 품고 있는 들풀들과 작가의 일치된 호흡을 음미하다보면 깊은 영성을 느끼게 된다. 수도자들이 땅에 친구(親口)하는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이제 작가는 가장 낮은 곳의 들풀들을 통해 자연의 섭리와 생명의 은총을 지대한 환희심으로 화답하고 있다. 동양의 화론에서는 인간과 자연, 주관과 대상의 이원적 관계를 넘어 성취되는 물화의 경개를 설파하고 있다. 서구적인 물성과 신체성의 개념이 아니라 우주와 소통하는 한 호흡의 경지를 일컬으며, 이를 바탕으로 해서만 진정 자연의 섭리를 형상화할 수 있다고 한다. 진정한 형상의 자리가 바로 마음자리인 것이다. 작가는 들풀들을 그림의 객체나 대상으로 본 것이 아니라 우주의 생명결, 즉 자아와 일체가 된 호흡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영성은 '정신의 깊은 살(肉)이 감각에 와닿는' 그런 경지라고 할 만하다. 수묵의 매체가 지니는 잠세태는 그런 경지의 표출에 있어 큰 장점을 지닌다. 물기를 품고 번지고 뿌려지고 스며드는, 그리고 고요하게 침묵까지 이르게 되는 기운 자체를 지니고 있는 것이 수묵이다. 이같은 매체의 특성을 살리면서도 작가는 또 한편 나무가 죽어 이루어내는 목탄의 묵흔 뿐 아니라, 수성안료와 콘테, 파스텔, 커피가루, 볼펜 등, 습성매체와 건성매체를 아울러 사용한다. 자생자화(自生自化)하는 자연의 섭리를 떠올리는 일에서 작가는 '자연이 이미 다 해놓고 있는' 이치를 한 호흡으로 풀어내 보여 줄 뿐이다. 그 흔적들이 이 번의 들풀 그림이다.

임현락_들풀_종이에 수묵, 혼합재료_30×21cm_2010
임현락_들풀_종이에 수묵, 혼합재료_42×30cm_2010
임현락_들풀_종이에 수묵, 혼합재료_42×30cm_2010

3. 생명결의 회화, 무게를 덜어낸 낮은 곳의 사유 ● 그의 들풀들을 통해 우리는 삶과 생명을 결을 느낀다. 거기에는 바람결도 있고, 하늘결도 있고, 시간의 결도 있고, 마침내 가을노래도 있다. 조형예술인 그림의 음악성에 대하여 일찍이 동양의 화론은 운(韻)을 언급하고 있지만, 이 작가의 작품에서 필획의 기운은 들풀들의 내재적 기운을 직관적으로 전해주고 있다. 작가는 모필이나 갈대 붓으로도 담아올리기 어려운 지점에서는 자신의 신체성을 담지하기 위해 직접 손가락으로 문질러 그리기도 한다. 때로 나뭇가지의 운을 살리기 위해 목탄 오브제를 부착한 그림도 눈에 띈다. 이처럼 전통 필묵법의 깊이를 체득해가면서도 서구적 매체나 현대적 의식을 아우르고 있는 것이 이 작가의 작업의식 폭이다. 아주 예민한 감각을 지닌 가운데서도 때로 자연을 길러내는 농부처럼 갤러리 벽면에 들풀을 심는 작가, 모든 삶의 무게를 덜어내듯 가장 낮은 곳에 엎드려 땅에 친구하는 작가가 바로 그이다. 생명에 대한 외경심과 환희심, 그리고 모든 존재에 대한 연민을 함께 느끼면서, 미세한 바람결 하나에도 찰나의 자유와 행복을 체득해온 이 작가의 영혼세계가 많은 이들에게 전이되어 삶의 치유에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실로 차 한 잔을 마시는 일조차 영원을 마시는 일, 빛나며 부서지고 부서지며 빛나는 생명의 영겁회귀를 떠올린다면, 작가가 건져올린 들풀들이 품어내는 생명의 춤과 노래는 바로 영원을 향한 춤이고 노래이기도 할 것이다. "아직 덜 익은 사람은 익어가는 때, 이미 익은 사람은 서러워지는 때...". 이 가을의 시처럼 역시 "아름다운 것은 어렵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기쁨과 슬픔, 목숨에 대한 연민까지도 동반하기 때문이다. 사라지면서 사라지지 않는 것들, 생명은 한 줌의 재처럼 소진되지만, 작가의 작품에서처럼 녹색가루 알갱이로 그 푸르름이 다시 살아난다. 이미 형성되어진 물리적 자연이 아니라 부단히 형성되어가는 자연, 바로 나투라타(naturata)가 아닌 나투란스(naturans)를 그리고자 하는 작가의 열망이 투영된 이 번 들풀의 사유는 그래서 그리기 이전의 그림이면서 이후의 그림이기도 하다. 그만큼 들풀을 통해 대자연의 원형질, 회화의 원형질, 아름다움의 원형질을 더듬어가는 구도(求道)의 흔적들이기 때문이다. ■ 장미진

Vol.20101127f | 임현락展 / LIMHYUNLAK / 林賢洛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