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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배展 / LEEJEONGBAE / 李正培 / sculpture.photography   2010_1103 ▶ 2010_1128 / 월요일 휴관

이정배_홀리데이 Holiday_레진, 나무_15×15×264cm_2009_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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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10_1103_수요일_05:00pm

이정배 작가와 이선영 평론가가 함께하는 Artist Talk_2010_1106_토요일_03: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현대_16번지 GALLERY HYUNDAI 16 BUNGEE 서울 종로구 사간동 16번지 Tel. +82.2.722.3503 www.16bungee.com

가학 피학적인 산수풍경 ● 거대한 산수와 미소한 인간들이 등장하는 이정배의 산수풍경은 전형적인 동양화에서 지배적인 물아일체나 무아지경 등, 관조적인 미학에서 멀리 벗어나 있는 욕망의 풍경들이다. 이 풍경에는 과도한 욕망으로 추동된 너무나 구체적인 장면들이 펼쳐져 있다. 'More'라 붙여진 전시부제는 끝없는 욕망을 상징한다. 하기야 어차피 내려올 산을 계속 오르거나 좀 더 높은 곳을 정복하려 하거나, 그것을 사진이나 그림을 통해 전유하려는 일반적 태도에도 욕망이 내재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전시에서 그러한 욕망은 무의식에 깔려 있는 것이 아니라, 전면화 된다. 사진과 입체 세트, 라이트 패널 그림, 영상 등으로 채워져 있는 전시장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작가의 흔적을 찾기는 힘들다. 그러나 자신에게 오랫동안 익숙해 있는 방식을 접고, 현대적 요소를 강조하기 위해 시도하는 낯선 형식들은 지금 여기의 삶을 효과적으로 들여다봄과 동시에, 전통적 어법을 새롭게 조명하는 이중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정배의 특이한 산수풍경의 출발이 되는 소재, 예컨대 인수봉이나 대청봉 등, 보기만 해도 멋진 산봉우리와 산자락은 설치 작품 뒤에 사진작품으로 깔린다. 사진은 한지에 인화되어 약간 번져 보이며 산수화 같은 느낌을 준다.

이정배_컬렉션 Collection_한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45×89cm_2009
이정배_컬렉션 Collection_레진, 나무_100×25×80cm_2009

사진들은 약간 변형되어 있지만 그 앞에 설치될 같은 기원을 가지는 풍경의 원본 역할을 한다. 이상한 각도로 잘려진 거대한 덩어리는 다름 아닌 사진 속 멋진 풍경의 일부이다. 나란히 놓인 사진과 설치작품은 전체와 부분 간의 변증법이 있다. 그러나 부분이 전체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고 뚝 떨어져 나와 있는 그의 자연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향유하지 못하고 손 안에 소유하려는 인간 욕망을 표현한다. 작가는 실제 존재하는 멋진 풍경의 일부를 크로스 섹션하여 그 굴곡 면들에 욕망이라는 악의 꽃들을 심어 놓는다. 라이트박스 안에서 점멸하는 산수화는 풍광 좋은 국립공원 내에 공적 규제가 사라지면 독버섯처럼 번질 자본의 힘을 상점과 간판들을 통해 강조했다. 이정배의 작품에서 풍경에 투사된 욕망은 선점의 개념으로 나타나다가 점차 원하는 장면을 도려내 오는 소유의 방식으로 심화된다. 그는 임의적으로 잘라온 산수풍경에 돈, 권력, 여자 같은 상징을 박아 놓았다. 거기에서 그들은 캠핑과 섹스를 즐긴다. 잠시 머무른 그곳에 한 없이 추가되는 물건들이나 갖가지 도구들이 등장하는 변태적 성행위는 이러한 충동이 자연스러움의 도를 넘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정배_마이 하비 My Hobby_레진, 나무_70×55×22cm_2010_부분

자연 또한 왜곡된다. 오직 열매만을 잘 맺기 위해 괴상하게 진화한 과실수, 인간에게 길들여진 동물인 가축, 축소모델을 통해 산수를 소유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든 수석 등이 그것이다. 총이나 기름통 같은 것들은 욕망의 이면인 공격성을 상징한다. 잘려진 산봉우리 위에는 건축 중인 작가의 작업실, 변태적인 성행위 도구들이 둥둥 떠 있는 온천, 묶인 여자들을 포함하여 술과 고기가 곁들여 있는 질펀한 잔치가 있다. FRP로 만들어진 산의 일부들은 놀이공원으로 전락한 상태다. 여러 도구들을 꽂았다 뺐다 할 수 있는 구멍들, 자체의 형태 유지를 위해 박아놓은 보강재들, 암벽타기를 즐길 수 있게 조성한 코스들은 산이라는 자연적 대상에 취해진 인공적 조치들이다. 이리저리 잘려지고, 수없이 뚫려지고, 밧줄이나 그물망으로 포획된 산은 대지 위에 누워있는 거대한 인간상 같은 자연을 포르노그래피 속의 파트너처럼 잔인한 쾌락의 대상으로 변모시킨다. 영상작품에는 부엌칼로 케익을 잘라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먹기 위해 잘 장식된 대상을 무자비하게 잘라내는 모습은 자연과 인간 간에 설정된 관계와 비슷하다. 자연에 새겨진 특유의 표면은 연마되고 닦여지고 도색되어 사라진다. 욕망의 흐름은 자연적 대상물을 온통 이물적인 것으로 변모시킨다.

이정배_Festival_레진, 합성수지_50×120×145cm_2010_부분

이정배의 작품에는 인간의 욕망에서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욕망은 동물적인 것을 벗어나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고, 인간은 이미 오래전에 자연으로부터 벗어났다. 이것이 더 이상 평범한 산수화를 그릴 수 없는 한국화가의 입장이다. 가령 그의 작품에서 산수의 일부를 이루는 초목은 지극히 인공적이다. 보다 많은 수확을 위한 가지치기를 통해 직선으로 가지가 올라가는 배나무가 그렇다. 전형적인 동양화에 등장하는 멋진 나무들이 보철물로 조작된 분재 같은 것이듯 말이다. 성적 파트너와 보다 많은 만족감을 얻기 위해 필요한 규칙은 무한대로 늘어나 있다. 욕망의 대상을 특정한 형식으로 고정시킴으로써 소유욕을 만족시키는 방식은 하드코어 포르노그래피로 극단화되고 있으며, 이정배의 산수풍경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장면들이다. 쾌락을 위해 묶여진 여자 피규어는 일본에서 자판기로 구입한 것이다. 소비자의 성적 판타지를 충족시키기 위해 세분화된 각종 부속기구들은 욕망이 상품의 형식과 결합하여 뻗어나가는 방식을 보여준다. 성적 파트너는 축소모델로 만들어져 이리저리 입맛대로 조립되고, 기계에 투입된 동전을 통해 유통되는 사실 자체가 현대 인간의 욕망이 흘러가는 방식이다.

이정배_Thermal Bath_레진, 합성수지_89×150×40.5cm_2010_부분

이정배의 작품에서 이러한 성적 하위문화의 코드는 욕망에 의해 절단되고 변형된 산수풍경에 적절히 배치된다. 자르고 묶고 갈아내고 구멍을 뚫는 식의 방법론이 관철된 산수풍경은 먹을 담뿍 머금은 붓이 미끄러지듯 나아가며 자연스럽게 형상이 만들어지는 방식과 큰 차이가 있다. 그의 방식 자체가 가학 피학적이다. 사디즘과 마조히즘으로 나타나곤 하는 이러한 충동은 굴욕과 학대를 야기하는 난폭함과 연결된 욕망을 드러내준다. 그러나 객체에게 투사되며 때로는 주체에게 되돌아오는 이러한 욕망은 성적인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헤겔)을 떠오르게 하는 이러한 관계는 인간이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원초적 형태이다. 도구화되고 소유되며, 때로 보호의 대상이 되는 자연은 파괴이든 배려이든 전능해진 주체에 휘둘리는 무엇이 된 것이다. 현대인은 일개 대중에 불과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유아론적 공간 속에서 폭군처럼 군림한다. 이정배의 작품에서 자연은 전통적인 산수풍경처럼 인간에 비해 거대한 스케일을 간직하고 있지만, 자판기에서 팔리는 성적 피규어처럼 욕망에 의해 이리저리 절단된 플라스틱 덩어리라는 존재 방식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드가 '성적 절정은 살해'에 있으며, '극도에 다다른 사랑의 충동은 죽음의 충동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듯이, 욕망의 극단은 삶이 아니라 죽음을 닮아 간다.

이정배_L씨의 분재_Light Panel, 한지에 수묵, 필름_지름 30cm_2008

이정배의 작품에서 자연과 인간의 몸통은 고깃덩어리나 시체로 사물화 된다. 허연 덩어리로 환원된 세계라는 무대와 그 안에서 역할연기를 하는 등장인물들은 물질의 상태로 환원되는 것이다. 권력과 욕망이 게임의 형태로 얽혀 있는 가학피학적인 관계는 지배적인 가부장제 문명이 어머니인 자연을 다루는 방식을 압축한다. 그의 작품에서 인간이 만들어낸 규칙은 쾌락의 증진과 더불어 파괴 또한 만들어낸다. 새롭게 설정된 인간의 규칙은 자연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위반의 충동으로 가득하다. 잘려나간 몸통과 연마된 표피에 피어싱(piercing)처럼 박혀 있는 도상들은 유기물과 무기물을 접속시키며, 쾌락의 원천이자 귀결점인 몸을 고통이라는 역설적 방식으로 환기시킨다. 자연의 한계를 위반하기 위해 그어진 한계들은 고도로 인공적이며 폭력적이다. 무정부주의적으로 폭주하는 욕망에 일련의 흐름을 만드는 구속의 장치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풍경은 폭력과 위반의 장이 되고 여기에서 도착적 장면들이 펼쳐진다. 결코 만족됨 없이 무한정 늘어난 욕망의 흐름은 마찬가지로 공포와 연관된 쾌락인 숭고(sublime)와 연결된다. 이정배의 산수풍경에서 욕망의 질주는 인간문명을 이루는 제어와 순화의 장치들을 무너뜨리고 거대한 폭력과 권력으로 점철된 또 다른 자연을 향하고 있다. ■ 이선영

Vol.20101109c | 이정배展 / LEEJEONGBAE / 李正培 / sculpture.photography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