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의 지점

최제헌展 / CHOIJEHUN / 崔制憲 / installation   2010_1101 ▶ 2010_1117 / 주말, 공휴일 휴관

최제헌_빨간 정물이 있는 풍경_드로잉, 나무, 페인트, 고무호수가 든 박스, 카펫_설치, 가변크기_2010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90317f | 최제헌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9:00am~06:30pm / 주말, 공휴일 휴관

송은갤러리_SONGEUN GALLERY 서울 강남구 대치동 947-7번지 삼탄빌딩 1층 Tel. +82.2.527.6282 www.songeun.or.kr

본인과 작가와의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작가 최제헌의 작품을 가지고 설명할 수 있는 다양한 비평적 요소, 어휘 그리고 담론의 생산들이 충분히 존재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더 가까이 감히 작가와 작품으로 접근해보고 싶은 그런 생각으로 이 글을 시작해보고자 한다. 양해를 바랄 뿐이다. 피상적으로 봤을 때 최제헌의 작품들은, 단순히 공간 내 설치, 가변크기의 혼합재료 정도로 적당히 캡션을 붙이고 작품의 장르를 정의해도 어색하지 않은 작품들이다. 작가가 선택한 여러 가지의 조형적 형태 혹은 색체의 혼재들로부터 발생하는 혼성적 시나리오는 무규정적인 조화를 생성하며 분명히 하나의 내러티브를 구성하며 공간을 채우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사변적이고 개념적인 컨템포러리 아트의 형태와 닮아 있으며, 그렇게 어쩌면 우리들은 최제헌의 작업에서 얼핏 느껴지는 중후하기도 하고 어쩌면 난해하기도 한 세련된 예술적 이기심으로부터 감동을 받거나 의문을 가지거나 아니면 지나쳐버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좀 더 작가의 삶이나 성향을 이해한 후 다시 작품으로 접근한다면, 그 해석과 감상의 방향은 충분히 달라지게 된다. 나는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최제헌_빨간 정물-대인동 어느 시장골목_사진_2009

이동, 발견을 위한 필요충분조건 ● 작가 최제헌은 아이러니한 사람이다. 그런 모순이 그녀의 작업에도 고스란히 투사된다는 사실을 본인도 알고 있을지 의문이다. 최제헌의 작품은 마치 작가의 성격 마냥, 그저 침묵 일관의, 이해를 돕는 부가적인 설명조차도 그다지 너그럽지 않다. 하지만 짧게 끄적거린 몇 줄의 작가노트 혹은 첨가된 몇 장의 주변 풍경의 이미지들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건, 최제헌이 생산하는 것은 자신이 머무는 곳, 찾아간 곳을 향한 작가적 시선이 포착하고 추출한 요소들의 재발견이며 그 요소요소가 하나의 풍경으로까지 재현되는 결과라는 점이다. 하지만 이것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많이 했다. 여기서 어쩌면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이 위치한 다양한 장소들로부터 새로운 미학적 요소를 발견하고 또 다른 풍경을 창조하기 위해, 쉽사리 오랫동안 한 곳에 정주하지 않는, 침묵과 기묘한 대조를 형성하며 끊임없이 부유하는, 세상을 향한 끝없는 탐사의 일렁임이 아닐런지. 그래서인지, 담담히 주변과 조응하는 작가의 차분한 열정은 침묵의 이면에서 늘 쉼 없이 어디론가 새롭게 시선을 향하고, 멈추지 않는 호기심과 탐색을 계속 연결하고 확장한다는 느낌을 전달하고 있다. 다시 늘 어디엔가 자리 잡아 새로운 탐색의 지점을 발견하고 있는 작가적 삶의 방식은 결단코 자신이 보여주는 작품의 세계와 결부되어 있음에도, 늘 최소한의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늘 그냥저냥-이라고 설명하며, 어떤 열정이라든지 예술의 충동, 혹은 노마디즘 같은 어휘로 자신을 작가로 드러내는 것을 불편해한다. 그렇게 겸손함과 내숭이 적절히 혼합된 태도의 모순에서 나는 종종 최제헌의 작품을 읽곤 한다. 작가에게 있어, 이동이 먼저였는지 작품이 먼저였는지는 본인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미술관이나 갤러리 같은 닫힌 공간 내에 설치된 최제헌의 작품 속에는, 머물렀거나 스쳐간 장소에 대한 작가의 오마주의 감성이, 혹은 그 장소로부터 작가가 가져온 환영(illusion)이 분명 존재하기에, 최제헌이 옮겨놓은 그 곳에 대한 정취와 내러티브는 그 차분한 호흡으로 면면히 공간을 채우고 있다. 그렇게 이동의 자취를 통해, 기억하고, 수집하고, 보관하고, 재해석하는 그 과정을 위해 작가는 또 얼마나 수많은 이동을 자처할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최제헌_녹색 캔버스_녹색포장천, 나무, 페인트, 카펫_설치, 가변크기_2010 최제헌_노란정물이 있는 풍경_나무, 페인트, 포장천, 스티로폼_설치, 가변크기_2010
최제헌_검은 캔버스 / 파랑 캔버스-대인동 어느 시장골목_사진_2009

발견, 직관과 감각의 어느 지점에서 ● 최근 몇 년간 유행처럼 번진 도시성에 관련한 많은 프로젝트 혹은 작품들은 대부분 도시화 산업화 이후의 상실감, 문제점, 이를 극복하기 위한 도시재생 등을 이슈로 한 것들이 대부분인 반면, 최제헌은 이와는 다른 지역과 장소를 이해하는 방법론을 가지고 있다. 즉, 도시와 지역을 다루는 일반적인 방식은 통계, 수치, 문서의 기록 등과 같은 객관적 사실에 주로 기반하며 지역의 역사와 현재를 표현하거나 미래적 대안을 제시하는 반면에, 최제헌은 오로지 자신의 직관으로 도시를 해석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경험을 정보로서가 아닌 직관으로 감지하고 재해석하는 이러한 프로세스는, 그저 가감 없이 받아들임, 어떤 영화 속의 대사처럼 그냥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좋은 것만 보라-고 했던 시니컬한 태도와 적절히 타협한 세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에 주력한다. 하지만 객관적 자료에 의지하지 않는 직관적 표현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연스럽게 주변의 풍경과 자연스럽게 묻어가려는 감각적 태도를 동시에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렇기 때문에 최제헌의 작품은 왜곡이나 전복을 꾀하지 않으며, 어느 정도의 객관성은 늘 유지하고 있다. 압축되거나 생략되거나 첨가된 일련의 재해석, 재배치의 풍경은 분명히 그리고 결국, 그 곳들과 닮아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보게 된다. 그래서 최제헌이 자리잡은 장소들은 그 성격이나 범위가 제한적이지 않다. 물론 어느 정도의 개인적 취향은 있겠지만, 자신이 택했거나 혹은 머물러야만 했던 곳들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을 뿐이며, 그 곳에서 매력적인 요소들을 포착하고, 다시 직관과 감각이 짜임을 이루는 특유의 방법론으로 재현하는 자신의 역할을 받아들이고 수행할 뿐이다.

최제헌_파란 정물이 있는 풍경-대인동 어느 시장골목_사진_2009 최제헌_발견의 지점_나무, 페인트, 각종 사물들_설치, 가변크기_2010(전주 남부시장 쓰레기더미 주변)

다시 새로운 지점이 ● 이번 개인전의 키워드는 작가가 제목으로 명시하였듯이 '발견'이다. 그리고 이곳에 장소와 예술충동의 인터페이스가 작동하는 지점, 바로 '발견'이라는 직관의 이끌림이 조형적으로 완성을 이룬 몇 가지의 풍경들이 있다. 이곳은 이미지의 파편들, 색체와 형태의 수집과 나열들, 혼성적 요소들이 질서를 이뤄 재구성된 작가 최제헌의 선택들이 존재하는 이러한 탐색과 포착의 지점에서 발견된 요소들이 새로운 공간을 만나 작품으로서 재구성된 또 다른 지점이다. 이 지점에서의 공간과 요소가 이루는 기묘한 케미스트리의 발견, 그리고 직접 가보지 못한 그 곳들을 향한 각자의 향수(homesickness)들, 우리의 감상의 몫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한다. ■ 추명지

최제헌_발견의 지점展_송은갤러리_2010

공사장. 날것이 드러나는 공간. 만들어가는 공간. 기중기와 사다리와 가림막이 화가의 붓이 되고 물감이 된다. 그 색조형물로 드로잉을 한다. 그것이 풍경화가 된다. 시인이 시를 쓴다. 밖이 보이는 마루에 나와 앉아 시상을 떠 올린다. 본다 거미가 집을 짓는다. 실을 엮고 엮고 집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한참 쳐다본다 거미가 시를 짓는다_한다. 거미가 한줄한줄 엮듯 시인이 시를 짓는다_생각한다. 시다-. 한다. 내가 본다. 작가인 내가 본다. 공사장 모습을 본다. 기중기 팔이 움직이고 가림막이 둘러쳐진 그곳을 본다. 가는 선이 휙 그어져있고 넓은 면이 펼쳐져있다. 그림을 그린다_한다. 내가 그림이라 한다. 전시장으로 옮겨와 다시 그림을 그린다. 그림이다-. 한다. ■ 최제헌

Vol.20101107h | 최제헌展 / CHOIJEHUN / 崔制憲 / 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