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ADMILL

양승수展 / YANGSEUNGSOO / 梁承秀 / vedio.installation   2010_1020 ▶ 2010_1107

양승수_TREADMILL_영상설치_00:02:30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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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10_1020_수요일_05:00pm

후원_인천문화재단

관람시간 / 09:00am~10:00pm / 주말_10:00am~07:00pm

인천아트플랫폼 C동공연장 다목적실 INCHEON ART PLATFORM 인천시 중구 해안동1가 10-1번지 Tel. +82.32.760.1005 www.inartplatform.kr

자발적 놀이의 잔인함 - 훈련된 욕망 ● 온전히 잡히지 않는 그 무엇을 따라 숨이 끊어질 때까지 달려가는 투견의 잔인하면서도 처절한 초점 없는 눈동자와 힘없이 벌어진 입에서 양승수는 채워질 수 없는 욕망으로 시들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발견한다. 니체가 그러했듯이, 그는 인간의 욕망을 반동적이고 노예적인 정신의 징후라 보는 듯하다. 인간은 충만히 채워질 수 없는 그 무엇을 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뛰어가며, 마치 투견처럼 어느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훈련된 욕망에 억압되어 자발적으로 위험한 놀이에 흠뻑 빠져버린다. ● 양승수의 작품에 드러난 개인의 욕망에 대한 집착은 사회적이다. 동시대의 사회, 정치, 역사, 종교, 도덕적 신념들에 따라 형성된 존재의 내밀한 구조에 욕망이 자리한다. 특히 자본주의라는 외양 속에서 표류하는 관습, 신념, 편견에 의해 부서진 욕망의 파편들에 따라 온전한 주체는 그 존재의 결핍을 경험하게 된다. 투견 역시 투견으로 훈련되기 이전에는 때타지 않은 하나의 생명체, 그 자체로 순전한 본능적 주체를 지닌 존재였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싸워야만 하는 그들의 운명은 차츰 그들이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반응보이는 틀 안에서 새로이 훈련된 욕망에 의해 사로잡힌다. 작동하지 않는 러닝머신 위에서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태세임에도 계속해서 달음질하는 투견은 더 이상 그 행위 자체에 자신의 목숨을 지키고자 하는 순전한 본능을 연동시키지 못한 채, 상대를 죽여야 한다는 훈련된 욕망의 슬픈 현실을 어떠한 거부도 없이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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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질서 안에서 끝없이 충족되지 않는 욕망이 어느새 주인 행세를 한다. 양승수의 작품에서 조정된 욕망의 틀은 작동하지 않는 기계로 등장한다. 더불어 이 기계는 주체라는 복잡 다양한 개념을 포함하기도 하며, 실질적인 주체와 가상적 혹은 훈련된 주체 사이의 갈등의 온상이기도 하다. 자발적 의지와 훈련된 의지, 즉 훈련된 분열증적인 무의식 중 어떤 것이 과연 투견의 진정한 주체라 볼 수 있는가. 들뢰즈와 가타리는 욕구적 생산을 정신병자의 경험으로부터 가져온다. 그들은 자신의 신체를 스스로 다양하게 분리된 상태로 느끼며 무언가에 의해 침범되고 억압되는 기계들로 경험한다. 원시적인 속령적 기계와 야만적인 군주적 기계를 지나 등장한 문명화된 자본주의적 기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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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욕망에 의해 조정되는 놀이터라는 러닝머신 위의 투견은 자신이 침범되고 억압된 기계임을, 또한 놀이거리임을 느끼지 조차 못한다. 의미 없음의 반복에 따라 더 이상 자신의 다리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며, 상대의 목숨을 끊어야 한다는 잔인한 욕구를 위해 움직일 뿐이다. 자신의 목숨이 끊어져 회복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러서야만 멈출 수 있다. 다리가 연결된 근육의 피곤함도, 늘어진 신경으로 인한 고통도, 피범벅이 된 상처도 느끼지 못한 체 욕구하는 기계로 작동한다. 양승수는 바로 이러한 투견의 처참한 모습을 통해 훈련된 자본주의의 욕망에 사로잡혀 자발적으로 잔인한 놀이를 하고 있을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여준다. ■ 정상희

Vol.20101022h | 양승수展 / YANGSEUNGSOO / 梁承秀 / vedio.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