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적 주체의 환상

양승수 영상설치展   2007_0727 ▶ 2007_0916

양승수_원숭이_혼합재료, 인터랙티브 디지털 이미지_가변설치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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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727_금요일_05:00pm

성곡미술관 별관 1전시실 서울 종로구 신문로 2가 1-101번지 Tel. 02_737_7650 www.sungkokmuseum.com

인간의 바깥은 인간 안에 있다. 언어의 바깥은 언어 안에 있다. 질서의 바깥은 질서 안에 있다. 여기서 바깥은 무엇을 뜻하나? 도무지 메울 수 없는 결여다. 고칠 수 없는 불완전성이다. 그런데도 이를 어떻게든 해결해보려고 부질없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바로 욕망이다. 욕망은 욕망할수록 증폭하고 가속이 붙는다. 그것은 무한한 인접성의 고리를 잇는 환유적 운동의 노예다. 제어장치도 없고 종착지도 없이 욕망의 전차는 오늘도 달린다. 기실 기표(記表)의 연쇄만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하지만 욕망이 올라탄 기표는 결코 기의(記意)에 이르지 못한다. ● 기의에 이르지 못하는 기표들의 범람으로 지금-여기, 세계가 이루어진다. 현대사회는 화려하지만 공허한 기호들의 난장이다. 텅 빈 상징의 무대다. 청각적 영상인 낱말(기표)은 이제 그것의 대칭물인 의미(기의)를 모른다. 욕망은 의미를 모르는 낱말의 허허로운 승화와 질주다. 기표와 기의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의미작용(signification)은 더 이상 불가하다. 기표와 기표의 연쇄로 이루어지는 의미화(significance)가 있을 뿐이다. 무한한 유사성의 고리를 잇는 은유적 운동으로, 그로 인해 남는 상징의 흔적들로 인간의, 언어의, 질서의 종잡을 수 없는 증상이 거듭 점철한다. 이는 영락없는 결여의 증명이다. 도무지 메울 수 없는 바깥의 노출이다. ● 바깥을 메우려는 각고의 노력이 있어 왔다. 체계적인 분류와 논리적인 규정의 절차를 만들었다. 정연한 과학적 인과의 법칙을 세웠다. 형이상학적 정합성의 이념을 굳건히 했다. 이를 반석으로 하여 순수한 형식적 관계의 메커니즘을 작동해왔다. 다분히 선험적인, 거대한 상징적 질서의 권능을 이룩할 수 있었다. 그러한 권능으로 수도 없이 주체를 양산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스스로 인식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역설·약점·균열의 양태로 바깥이 뜨악하게 드러났다. 주체의 역사는 이 난감함과 곤혹스러움에 긴박하게 대처해온 첨예한 자기 방어와 기만의 궤적이랄 수 있다. 도무지 메울 수 없는 결여로서 주체에게 시시각각 밀려드는 바깥은 오늘날 신랄한 기표의 위력으로 특성화했다. ● 기표는 모든 것을 낳고 거둬들이는 거대한 상징적 질서의 미립자다. 더욱이 그 질서의 근성(根性)처럼 숙성되는 무엇이다. 우리 시대의 근본적인 질서는 기표로써 구성된다. 동시에 기표로써 제 기능을 발휘한다. 정보통신기술과 복제기술, 전자매체, 대중문화가 발달한 현대사회는 자유로운 자기 지시 활동, 여기에 연유하는 의미화 운동으로 거듭 표출하는 온갖 기표들의 천국이다. 자유주의 정치경제학의 깃발을 꽂은 자본주의 시장에선 상징 혹은 기호의 가치가 연일 상한가를 친다. 상품을 둘러싼 상표-이름의 가치(name value)가 선정적(煽情的)인 활갯짓을 하는 것이다. 교환될 수 있는 모든 것 사이에서 짝짓기(결합)와 짝풀기(분리)가 쉴 새 없이 일어난다. 이 이중적 운동은 기표의 자율성을 매개로 더할 나위 없이 활력을 띤다. ● 무의식적 주체의 기원은 바로 거기에 있다. 무의식적 주체는 기표적 자율성의 활력 속에서, 무궁하게 반복하는 결합과 분리의 이중적 운동의 문맥에 뒤섞여 탄생한다. 그것은 기표로써 이룩되는 상징적 질서의 부산물이다. 상징적 질서는 굳이 왜 그와 같은 부산물을 내놓는 걸까? 질서 자체가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상징적 질서는 그 질서의 권능에 필적하는 간극을 발생시킨다. 애초부터 상징의 비밀은 짝짓기와 짝풀기 운동이 야기하는 어떤 간격 혹은 거리로부터 싹텄다. 오늘날 기표의 위력은 그 틈에 몰려들어 유독 진작한다. 자신에게 고유한 환유와 은유의 법칙을 따라 자연스레 무의식적 욕망과 증상을 부추긴다. ● 두말할 것도 없이 주체는 이제 그 어떤 것의 기원이나 중심이 아니다. 그것은 기표적 파생물 내지 효과에 지나지 않게 됐다. 근대적 이성이 구축한 실체적 존재 이해와 재현의 형이상학은 도저한 기표의 힘으로 타격을 입었다. 자기를 완결하는 체계지향적인 힘의 탁월성은 오히려 체계내적인 함몰의 징후를 북돋았다. 그만큼 상징적 간극이 불거졌다. 주체는 견고한 자기 이해와 실현의 기반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메울 수 없는 결여가, 그 바깥이 주체를 수렁에 빠뜨렸다. 그로부터 주체는 극렬한 기표의 연쇄로써만 연명하는 무엇이 됐다. 아울러 무의식적 욕망으로 흘러넘치는 무엇이 됐다. 현대사회는 욕망하는 무의식적 주체의 분열적 증상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 왜 분열적인가? 이미 말했듯 해결할 수 없는, 채워질 수 없는 욕망의 본질 때문이다. ● 무의식적 주체보다 먼저 있는 것은 무엇인가? 거대한 상징적 질서다. 그렇다면 그보다 먼저 있는 것은? 그 질서의 간극이다. 메울 수 없는 결여다. 그것은 단순한 부족함이나 불충분함을 뜻하지 않는다. 따져보라. 그 결여는 질서보다 먼저 있다. 게다가 다분히 유동적이다. 무질서한 것이다. 그런데도 마치 가늠할 수 없이 큰 숨을 고르듯이 임시적 안정성을 띤다. 이내 질서를 낳는 큰 이치와 기운을 마련한다. 결합과 분리의 힘은 질서를 낳는 그 힘의 유동성, 나아가 무규정성에 기인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생산하는 결여의 충만함 속에서 오묘한 간격 및 거리가 조장된다. 그럼으로써 그 모든 상징의 비밀이 싹튼다. 이 비밀이야말로 무의식적 주체의 조건이 아닐까? ● 미술가인 '나'는 수시로 벌어졌다 좁혀드는 상징적 간극에서 비롯했다. 영상이 현실보다 앞서가고, 현실에 대한 인식이 앞서가는 그 영상을 뒤따르는 이 시대가 나의 무의식적 욕망의 진상이라고 본다. 이미 원본을 초과해 무궁한 자가 증식의 절정을 뽐내는 기표적 영상, 이 영상적 기호의 시대를, 그 비밀을 곰곰이 헤아려본다. 지금 시간을 앞질러 도착하는 무수한 영상적 구성물의 혼돈이, 무질서가, 그 충만한 결여만이 미술가인 내 작업의 동인(動因)임을 밝힌다. 참 무모한 인생이 아닐 수 없다.

양승수_강아지_혼합재료, 인터랙티브 디지털 이미지, 가변설치_2007

네개의 LCD모니터 공간안에 한마리의 개가 어슬렁거린다. 개는 무뚜뚝한 표정으로 관람자를 맞이한다. 네개의 모니터중 관람자가 서있는 모니터로 개가 반응을 보이고 어떤 메세지를 말하듯 짖여되며 람자의 행동에 따라 여기저기 모니터를 쫒아 다닌다. 여러 관람자의 반응은 최초의 관람자를 우선 순위로 응을 일으키며 관람자의 퇴장시 개도 안정을 찾는다. 이 작업의 비주얼(개:dog)은 3D 모델링과 애니메이션에 해 제작되었으며, 인터렉티브는 프로그래밍에의해 제어된다.

양승수_회전목마_혼합재료, 인터랙티브 가변설치_2007

엔틱느낌의 다섯마리 목마가 동그란 회전축과 함께 수직과 수평의 움직임을 반복하며 움직인다. 마의 표정에선 무거운 시간의 무게가 느껴진다. 또한 목마의 움직임은 웹캠에 의해 프로젝트에 투영된다. 객의 관람은 곧 아날로그 센서에 의해 감지되며 이는 목마와 시간과 인터렉티브의 출발을 의미한다. 전목마의 움직임은 관람자에 있어 현재의 시간이 되며 빔 프로젝트에 투영된 목마의 영상은 현재가 아닌 지나간 움직임으로 투영된다. 이 작업은 실제 목마 조형물과 아날로그 기계와 센서로 만들어 졌으며 로젝트의 영상은 프로그래밍에 의해 실시간 영상이 아닌 과거의 영상을 제어한다.

양승수_원숭이_혼합재료, 인터랙티브 디지털 이미지, 가변설치_2007

네개의 빔프로젝트 화면에 목각인형을 연상시키는 장난감 인형과 원숭이가 보인다. 장간감 인형들은 마치 주의 무중력 상태를 연상하게 하는 공간에서 천천히 움직인다. 원숭이는 실제 나무막대의 림자(빔 프로젝트에 비친)에 메달려 있다. 고요하고 한가로운 네개의 빔프로젝트 공간에 관객의 등장은 인터렉티브의 시작을 의미하며 다양한 상호작용이 일어나게 된다. 첫번째로 공간을 떠도는 목각인형 치와 이동을 가하면 부딧침과 방향성의 인터렉티브가 일어나고 원숭이가 메달려 있는 나무막대를 움직이면 숭이가 다양한 행동을하며 반응이 일어난다. 일상의 시간과 다른 공간의 인터렉티브는 관객과 작업이 나가 되어 작품을 완성한다. 이 작업의 다양한 그래픽 비주얼은 3d 모델링과 애니메이션에 의해 제작되었으며, 인터렉티브 프로그래밍에의해 제어된다. ■ 양승수

Vol.20070727e | 양승수 영상설치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