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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_경기문화재단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_12:00pm~05:00pm
갤러리 담_GALLERY DAM 서울 종로구 안국동 7-1번지 Tel. +82.2.738.2745 www.gallerydam.com cafe.daum.net/gallerydam
공감의 땅에 새로운 뿌리를 뻗는 식물, 잡초 ● 윤진숙은 거대한 자연 속에서 스스로, 그리고 타인에 의해 그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 한없이 연약한 생명체, '잡초'에 주목한다. 잡초는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미물로, 누군가의 발에 쉽게 밟히고,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되어 뽑히기 일쑤지만, 무관심 속에 살아남는 그 생명력만큼은 예상 외로 강해, 비주류, 서민들의 힘겨운 인생에 비유되곤 한다. 윤진숙은 그러한 잡초들을 주인공으로 전면에 등장시켜 의미 있는 존재로 만들어내는 작업을 한다. 또한, 이름을 알 수 없는 이런 저런 잎들이 겹쳐지고 포개지며 만들어내는 공간과 선들, 그리고 그 내밀하고 즉각적으로 촉지할 수 있는 작은 만남들에 의해 자연적으로 실현되는 의미의 관계에 집중한다. 그녀가 자신의 작업노트에 밝혔듯이,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라는 불필요한 식물들"이라는 잡초의 사전적 의미는 그 자체로 역설적 개념을 내포하며 불확정적이고, 유동적인 실체로서 "상황에 따라 필요한 식물들"로 뒤바뀔 수 있다. 화선지 위에 식물의 형태를 따라 선을 그어 공간을 만들고, 배경은 식물이 가진 고유의 색으로 채색되어 또 다른 형태와 공간을 만들어내는 화면 구성은 바로 이러한 반기념비적 융통성, 반계급적, 반목적론 개방성에 기인하는 그녀의 의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잡초'라는 미명의 풀은 그 연약함과 비존재감으로 인해 미묘하고 감성적인 서사들을 불러일으키며, 문화적으로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시적인(poetic) 소재이다. 이처럼 치명적일만큼 보호와 방어가 결핍된 불완전한 상태를 화면의 중심에 위치시키고 아무런 미사여구 없이 직설적으로 묘사하는 작업은 그 자체의 불완전함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성적으로 열린 실체를 새로이 구성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것은 공감을 토대로 한 상호적인 교감으로 인해 관대하게 포용되는 실체이다. 주변의 상황에 유연하게 반응하고 적응하는 사고의 개방성은 실체의 불완전함과 그 시적 효과에 의해 더욱 확연히 드러나게 된다. 또한, 이 불완전함은 배타적이고 뚜렷한 목적을 지니며 기념비적인 모든 경직된 체계를 거부하는 동시에, 다양한 현실에 대한 단편적인 접근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윤진숙의 '잡초' 작업에서 보여 지는 불완전함과 유연성 역시 다양한 현실에 대해 미묘하고 공감적인 이야기들을 건네면서도, 그 어떤 계급적이고 단일화된 세계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불완전함과 유연성은 한편, 타인과의 만남 그리고 타인에 대한 인정을 유도한다. 타자를 이해하고, 다른 문화의 다양성과 풍요로움을 인정하는 것은 타자와의 내밀한 만남을 가능케 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확장시키는 계기가 된다. 이렇게 경직되고 배타적이며 이기적인 경계를 허물고 타인들을 향해 연대감과 동감을 키우는 것은 일종의 열린 상황으로의 진입을 의미한다. 여기서, 시적 효과를 지닌 예술적 표현은 탄탄하고 일관성 있게 주제를 드러내는 '거대서사'가 아닌, 작은 일상, 개인과 사소한 것들이 중심이 되는 '미시서사'의 담론을 고양시킨다. 리오타르(J.F. Lyotard)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가 오면서 유토피아적이고, 공상적이며, 휴머니즘적인 담론들은 힘을 잃은 대신 감각적이고, 사적이며, 파편적인 담론들이 힘을 얻었다고 단언했다. 이데올로기나 세계관 또는 총체성을 토대로 하는 거대서사보다는 개인의 감성과 같은 미시서사가 중요하게 대두된 것이다. 이 '미시서사'들은 운명적 필요성에 의한 목적론적 구성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친밀하고 복합적이며 즉각적인 유대관계와 인간적 공감을 토대로 하는 극도로 유연한 구성이다. 힘보다는 연약함을, 결정론적인 필연성보다는 즉흥적이고 자발적이며 참여적 공감을 우선으로 하는 것, 바로 이것이 미시서사의 특성들이다.
윤진숙의 작업은 주말 농장에서 잡초를 뽑는 일상으로부터 자신만의 서사를 구성해나가며 관람객의 공감과 연대적 감성을 호소하고 있다. 관람객은 예술 작품 속에서 더 이상 하나의 이야기, 공인된 이야기의 재현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공감, 참여, 전복의 과정을 통해 내밀하고 개별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오늘날의 예술가는 더 이상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향한 보편적 주체라는 이름 아래 행동하는 보편적 지식인이 아니다. 한마디로, 거대서사가 개인의 인생보다 중요했고, 개인의 감정은 거대서사의 명령 앞에서 절제되어야 했던 근대적 사고에서 벗어나, 인류의 다양성을 강조하며 개별 현실에 대한 공감적 시각과 타자의 세계 속으로의 참여를 통해 새로운 관계와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오늘날 예술가들의 운명이다.
오래된 앨범 속에서 우연히 발견된 잎사귀처럼 윤진숙의 잡초는 시적이고 연약해 보이지만, 그녀 스스로 "존재감이 확실한 잡초 하나를 길러 보며"자신이 만나는 잡초들을 "의미 있는 존재로 만들어 주고 싶다"고 밝히고 있는 작가의 태도는 철저히 아이러니하고 비평적인 의도를 속에 품고 있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겉으로는 절대 거드름을 피우지 않는 겸손함이 바로 그녀의 작업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요인이 되고 있다. 윤진숙의 작업은 묘하기도 하고 시적인 연약함을 보여주는데, 스스로를 보호하려 하기 보다는 함께 나누려 하고 스스로를 드러내며 타인을 향해 자신을 내맡기려 한다. 즉, 잡초의 불완전함은 헌신, 공유, 개방을 의미한다. 윤진숙의 잡초들을 통해 우리는 참여와 공감의 경향이 자기방어와 기념비적 성향을 앞선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작가 윤진숙이 추구하는 궁극적 이상은 척박하나 개척의 가능성이 보이는 공감의 땅에서 헌신하는 태도로 서로 얽히고 관계를 맺으며, 조금씩, 새로운 뿌리를 뻗어나가는 불완전함일 것이다. ■ 조주현
Vol.20100925c | 윤진숙展 / YOONJINSUK / 尹珍淑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