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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10_0902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09:00am~06:00pm / 토_10:00am~05: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LVS Gallery LVS 서울 강남구 신사동 565-18번지 쟈스미빌딩 B1 Tel. +82.2.3443.7475 www.gallerylvs.org
침묵하는 '욕망' , 그림으로 ' 발설(發說)' 하기 ● 이번 전시와 관련된 글을 쓰기 위해 '나는 잘 모르겠어요.' 라는 전시제목을 처음 받아들고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작가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것을 내게 규명하라 한다면 그것이 하나의 공상(空想)에 그칠 공산(公算)이 크기도 하거니와, 전시제목이 반증하듯이 말과 언어의 세계에서 개작할 필요가 없을 작품을 글로 남기는 것 같은 이율배반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설(說)을 풀기로 결심한 것은 일종의 공상 같은 유현경의 그림에 공상 같은 글 하나가 덧붙여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유현경의 그림을 언어로 풀어내는 데에는 몇 가지 어려움이 있다. 첫째로 유현경의 그림은 사전에 개념적으로 다층적인 체계를 갖추고 시작하는 형태의 그림이 아니며, 둘째로 그로 인해 대상 또는 경험을 해석하는 방식이 다소 자동기술(automatism)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현경의 그림에 대한 이 글이 어느 정도 자의적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 분석적으로 바라보면 본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은 크게 세 가지 유형의 작업태도로 구분되는데 그것은 다루고자 하는 소재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유현경의 이전 작업을 살펴보면 작가가 화가와 대상(모델)이라는 특별한 관계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 왔음을 알 수 있다. 주로 화가와 대상 간의 특정한 관계, 상황이 설정된 상태에서 진행된 이 그림들은 '화가와 모델' 이라는 전통적인 관심사를 반영하면서도 성(性)적 코드와 여행, 대상을 해석하는 시지각적 접근과 표현, 감정적 해석, 시선의 권력문제 등에서 본인만의 독특한 아우라를 내포하고 있다. ● 그러다가 최근에 제작된 그림들에서는 그 대상이 외부 공간에 놓여 져 있는 피사체가 아닌 기억과 경험이 어우러진 작가의 머릿속에 있는 풍경들로 옮겨져 있다. 장시간에 걸쳐 기억에 저장된 풍경들에서 추출된 기하학적이고 건축적인 요소들이 마구잡이로 병치되고 그 안에서 사건들이 재구성된다. 예컨대 「학교」라는 그림에서 미로처럼 조합된 풍경과 마치 동서남북 4방위를 나타내듯 등장하는 임의의 인물이 화면의 중심에 있는 작가 본인 주변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데, 이는 특정 공간에 대한 본인의 기억과 감정의 풍경들을 그려내는 회화적 장치로 작용한다. ● 위의 그림들이 외부의 대상을 소재로 하거나 혹은 축적된 경험과 감정, 상상들을 머릿속에서 다시 재구성하고 표현하는 그림들이라면 몇몇 그림에서는 자동기술법적인 요소가 면면이 보인다. 다소 신화적인 분위기로 비춰질 수도 있는 '알 수 없는 풀밭' , '사슴' 등의 소재는 무작위적으로 선택된 듯 하면서도 기표적인 지시성이 명료하다.(하지만 기의성은 불분명하기 때문에 신화적인 분위기로, 성적 코드화로, 혹은 그 외의 다의적인 해석이 가능해 보인다.) 「분열」이란 그림에서는 자동기술법적인 드로잉 요소들이 전면적으로 등장하는데, 마치 무의식을 토해내듯 그려진 이 드로잉들은 어린아이의 그림이나 낙서를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싸이 톰블리나 바스키아를 떠올리게 한다.
지금까지의 설명이 소재적인 측면에 기인했다면 또 다른 관점에서 유현경의 그림에서 변화된 요소는 화면에서 ' 말(word)' 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몇몇 그림에서 문자와 말은 의성어나 의태어적 기능을 가지고 그림을 설명하기 위한 요소로 작용하거나 문자의 외형을 빌려온 드로잉의 전술로 비춰지기도 하는데 「그림일기」라는 그림에서 문자와 말은 다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 다른 그림들에서 문자가 작업 후에 부가적 요소로 덧붙여진 느낌이라면 이 그림에서 문자는 기억과 상상의 편린들을 붙잡아두고 화면 안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재빠르게 토해내기 위한 일종의 스케치 기능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즉, 작가가 캔버스 위에 줄을 그어 여러 개의 칸을 나누고 각각의 칸에 기억과 감정의 조각들을 채워놓는 과정에서 문자는, 머릿속에서 너무 빠른 속도로 그려져 곧 잊혀 지거나 사라질 것 같은 이미지를 우선적으로 잡아두는 기능을 한다. 문자는 훌륭한 스케치로 기능하고 채색하는 과정에서 이 스케치는 덧칠되어 사라지기도 하고 바탕을 고스란히 유지하기도 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 모든 것을 차치(且置)하고 유현경의 그림을 대할 때 관람자가 즉발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역시 회화의 강한 물성이다. 경우에 따라 튜브물감을 캔버스 위에 직접 짜 놓은 듯 보이는 강한 물성은 '재현과 지시방식' 이라는 관점에서 작가의 개성임과 동시에 철저하게 회화적인 결과물이다. 이것은 작품을 촬영한 사진ㆍ디지털이미지로는 온전하게 파악되지 않는 것으로 실제 그림을 마주했을 때만이 본래의 모습을 오롯이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분히 '촉지적(haptique)' 이다.('촉지적' 이란 말은 '촉각적인' 이란 용어와는 구분되는 개념으로 눈으로 만진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유현경은 기억과 경험, 상상의 소재들을 신체와 감각의 문제에서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신체의 오관이 인지하는 경험과 기억, 그리고 그것을 화면에 드러내는 육체의 운동방식(예컨대 두터운 물감의 노출도 은유적으로 육체적이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점에서 유현경의 그림은 감상자에게도 논리적 귀결이 아닌 감각이 받아들이는 대로 그림을 대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화면 안에서 빈번이 등장하는 성적 코드와 회화표면의 강렬한 물성은 작가가 지각의 주체로서 ' 몸' 을 선택했음을 짐작하게 한다.(구태여 퐁티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지각의 주체로 '몸' 을 선택했음이 단순히 '성(性)' 적인 의미만을 내포하는 것은 아니다.) 경험과 지각, 무의식에 근거한 유현경의 작업은 물성 강한 하나의 그림으로 기능할 뿐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는다. 이 그림들은 관람자에게 단지 작용(作用)하고 있다. 그래서 유현경이 너스레를 떨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잘 모르겠어요' 라고. ■ 지세민
Vol.20100908g | 유현경展 / YOUHYEONKYEONG / 劉賢經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