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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10_0703_토요일_04: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아트사이드 베이징_SPACEⅡ GALLERY ARTSIDE Beijing_SPACEⅡ C area, 798-DaShanZi Art District No. 4 Jiuxiangqiao Road Chaoyang District, Beijing P.O. Box 8503 P. R. CHINA Tel. +86.10.8459.9335 www.artside.org
의지(意志)와 정념(情念)의 화해 ● 오윤석은 종이를 오리거나 잘라내어 형상을 보여준다. 특히 문자나 매란의 형상이 나타났고 추상적 문자가 주류를 이룬 나머지 음성 중심적 예술로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의 예술은 단순히 종이를 오리거나 캔버스의 평면을 도려내면서 어떤 시각적 형식을 취합해 얻어내려는 시도가 아니다. 오윤석은 시간의 본질에 접근한다. "슬픔 속에 행복이, 행복 속에 슬픔이(in hilaritate tristis, in tristitia hilraris)"라는 르네상스의 천재 브루노(Giordano Bruno)의 문구는 시간이라는 오묘한 섭리에 대한 해석이다. 지금 행복한 시절도 곧 불행으로 화할 것이요, 불행한 마음도 곧 행복으로 화할 것이라는 것이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 그러나 이 세상에 변화하지 않는 진리가 있다면, 그것은 오직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뿐이다. ● 시간이 흐르고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을 알 때, 인생은 덧없음이다. 이 유약하고 유한한 만 가지 물상 가운데 유일하게 굳건한 본성을 찾는 것이 오윤석이 견지하는 예술의 노정이었다. ● 오윤석이 오리는 시와 경구는 시대의 물결에도 좌초되지 않고 늘 그 자리에 정박하는 굳건함이다. 그가 파냈던 매란(梅蘭)의 지조가 또한 그렇고 심금을 울리는 한마디의 농축된 성인(聖人)과 필부(匹夫)의 말씨가 그렇다. 그런데 이러한 작업을 오윤석이 선택한 것은 아주 오래 전이다. 그가 어째서 이렇게 지리하고 고된 작업 과정을 선택했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한국의 80년대는 전통적 문양과 서구 모더니즘의 이상한 취합이라는 어설픔이 미술계에 주도적으로 자리했었다. 그 반대 대척점에는 민중미술이 자리했다. 이 두 대별점이 모두 식상해지고 생명력을 다하자 새로움에 대한 목마름이 타올랐고, 90년대를 기점으로 한국에는 포스트모더니즘 열풍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 포스트모더니즘은 예술가 각자가 개별적 완성을 위해 수용한 가치가 아니라, 기존 화단에 반기를 들기 위한 반기였다. 한국에서 수용한 이 포스트모더니즘은 옛 유럽의 정물화에서 다룬 바니타스(vanitas), 즉 죽음의 불가피성의 연장선이었다. 모더니즘의 엄격성은 대중을 몰아냈고 한국의 전통에 의한 한국성(koreanness)이라는 낱말은 무의미했다. 죽음의 불가피성, 바니타스, 혹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와 같은 개념은 자유로운 형식처럼 보였으며, 한국의 정치적 국면이나 사회적 모순을 대처하는데 요긴한 상징형식으로 다가왔다. 이때 풍요로워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예술가 개개인은 실존의 결여라는 벽에 부딪혔다. 자기 삶에서 체득한 스토리 전개가 아니라 서양의 형식에서 취합한 형식의 변장에 불과했던 점을 오윤석은 일찍이 간파했다. 오윤석은 한국만의 가치를 찾아 헤맸다고 술회하곤 한다.
그는 한국 미술이 여타 대외 미술과 다른 차이점을 자기수양에서 찾았다고 한다. 회남자의 "문불승질지위군자(文不勝質之謂君子)"는 형식이 바탕, 즉 예술가의 인정이나 마음씨를 넘지 않는 경지이다. 이 회남자의 경지를 알려면 구미 등 외부세계에서 수용된 형식의 즉각적 이식이 아니라, 자기 인생을 수련을 통해 자기 정념(情念)을 덜어내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자각으로부터 오윤석의 예술은 시작되었다. 따라서 오윤석의 예술은 전통과 모더니즘의 취합도 아니고, 더욱이 포스트모던의 얼굴도 아니며, 다만 자기의 완성 과정으로서의 매개체가 된다. 즉 예술가 본인의 대리물(agent)이다. 자기 수양의 대상이며 자기 인격의 통행증이다. ● 그런데 이번 중국 전시의 특기할 점이 나타난다. 위에서 말했던 내면적 작업 인과의 상당 부분을 벗어나려고 시작하는 점이다. 자기 수양의 근원으로 삼았던 오리기에서 비롯되었던 페인팅의 해체로부터 페인팅의 회복이 목도되는 부분을 짚어봐야 한다. 문자 자체가 지니는, 시공을 초월한 진리 전달성에도 의문을 제시한 측면이다. 여태껏 그가 다루고 믿어왔던 문자 세계의 견고성, 문자가 지니는 시간의 물결에도 좌초되지 않고 버티는 강인한 전달력 조차 무의미하다는 결론이다. ● 여태껏 오윤석이 견지한 세계는 '물을 덥히어 나의 발을 씻기며, 종이를 잘라 나의 영혼을 초대한다(暖湯濯我足, 剪紙招我魂)'는 두보(杜甫)의 시에 나오는 감동적 순간이었다. 그러나 "내 마음을 다하는 자는 마음의 본성을 알 수 있고, 본성을 알면 하늘을 알게 된다(盡其心者知其性也, 知其性則知天矣)"는 맹자의 말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간 지지체를 오리는 정밀한 행위를 통해 자기 감정의 절제를 꾀했고 정념의 살을 발랐다. 이 정념의 살이 발라진 자리에 의지의 뼈가 남았다. 이렇게 의지적 예술에서 부드러운 살을 다시 찾기 시작한 것이다. 첫째 페인팅의 회복, 둘째 형상의 회복이 그간의 작업과 다른 부분이다. 그는 정념과 감정 역시 나의 본성이라는 뉘우침을 드러내고 싶다고 발언한다. 즉 문자의 세계든지 형상의 세계든지 나약하고 부수어지건 견고해서 영원하건 그 종류의 차이가 무색해진다는 것이다. 나의 마음이 진실이라고 느끼는 순간 그 어떤 매체와 대상도 나의 일부분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변화하는 것의 공허함과 불변하는 것의 최상적 가치가 나름으로 화합하는 분수령으로 볼 수 있다. 그 어느 것에도 가치를 편중(偏重)시키지 않고 모든 대상에는 나름의 변환자재(變換自在)의 가능성이 있다고 파악한 결과이다. 즉 변화와 불변의 화합의 장이 이번 전시에서 오윤석이 느끼고 절실하게 보여주려 했던 역점이라 하겠다. 그리고 변화와 불변은 동양에서 파악하는 현상의 두 가지 날개다. ■ 이진명
Vol.20100705f | 오윤석展 / OHYOUNSEOK / 吳玧錫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