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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10_0531_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7: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분도_Gallery Bundo 대구 중구 대봉동 40-62번지 P&B Art Center 2층 Tel. +82.53.426.5615 www.bundoart.com
Time Capsule : 김태준의 근현대 역사 복원 프로젝트 ● 예술을 미(美)의 영역에만 한정시켜 바라보는 것은 너무나 순진하거나 게으른 태도이다. 근대 이후 구축된 예술의 질서 속에서, 능숙한 기교로 작품을 꾸며 귀에 착착 감기는 선율을 들려주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꾸며내고, 눈으로 봐서 쾌적한 그림을 그리는 것은 공허한 기술이 되어가고 있다. 여기에, 사진 예술이 하나의 쟁점으로 떠오른다. 사진술에 관하여,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중간예술이라는 개념을 통하여 사회 계급과 개인의 취향 사이의 관계를 설명했다. 사진은 오랜 시간이 투여되어 숙련도를 끌어올리는 다른 예술 장르들의 기법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일반인들이 형식적인 측면에서 접근하기 쉬운 예술 매체이다. 또한 사진술은 예술적 표현에 앞서 순간을 포착해내는 기록 수단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이, 사진은 예술과 일상, 직업과 취미, 표현과 기록 사이에 고르게(혹은 어정쩡하게) 걸쳐진 중범위 영역의 예술이다. 최근 들어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기업들의 마케팅 속에서 하이엔드 급의 디지털 카메라가 가진 매력이 대중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일종의 딜레탕트(dilettante)로서 성능 좋은 사진기를 소유한 비(非)예술가들은 자신이 '완성한' 이미지를 보면서 스스로가 예술가의 수준에 다가선 것이라고 의미를 과도하게 부여한다. 그렇지만 예술계의 작동방식은 딜레탕트들의 기대와 달리, 매우 배타적이다. 일반인들이 예술계의 중심으로 진입하려고 노력할 때, 예술 체계는 사진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며 예술 담론을 선도하려고 한다. 그래서 사진은 카메라가 가지는 기술 집약의 성취를 과시하며 기계의 성능을 찬양하는 데 머물지 않고, 고유한 조형 언어와 예술가적 의식을 드러내는 부분적이며 보조적인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더 많다. 김태준의 사진 작업이 그렇다.
작가 김태준의 평면 작업 「타임캡슐」 시리즈는 아주 독특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장소의 공간성을 살린 대규모 설치 작업으로 대치되기도 하는 평면 작업을 구성하는 요소들 중에서 컴퓨터 삼차원 그래픽 작업을 빼면 그 바탕에 사진 기술이 깔려있다. 나는 회화를 전공한 김태준이 사진기를 가지고 찰나적인 지점을 잘 잡아내지 못하는 작가라고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다. 조금 달리 보면, 그의 작업은 순간을 세밀히 포착하는 일이 크게 필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는 오랜 시간에 걸쳐서 축적과 파괴가 거듭된 장소에 카메라를 갖다 대기 때문이다. 김태준의 미술 작업을 통하여 재현된 장소들은 예전의 영광스러움 혹은 수치스러움을 상기시킨다. 더 나아가 거기에 얽혀서 찬란했거나 불편했던 우리의 잃어버린 기억도 반성적으로 되살아난다. 따라서 작가가 선보이는 일련의 작업은 우리 사회의 근현대사를 예술에 준거하여 다시 복원하는 과정인 셈이다.
작가가 행하는 역사 도큐먼트(document) 작업의 출발은 독일 카셀에서 시작되었다. 이 작업은 베를린을 비롯한 서구의 여러 도시들을 거쳐 서울로 이어졌고, 2010년 대구에서도 근현대사 복원 작업이 선을 보이게 되었다. 작가는 시 도심이나 외곽지에 있는 한 공간에 있는 의미에 관하여 관련된 여러 텍스트들을 수집한 다음, 자신의 해석을 새롭게 첨부하고 투영하는 유사(quasi) 근현대사 프로젝트를 작품에 담아왔다. 그는 예컨대 실제로 존재하지 않고 설계 도면으로만 남아있는 건물을 형태화 한다든지, 오래된 건축물의 초기 모습을 재현했다. 또한 철거되거나 붕괴되어 사라진 장소를 복원하기도 하고, 용도가 바뀐 공간의 과거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작업도 설치 혹은 사진 작업을 통하여 이미지로 나타내는 시도도 펼쳐왔다.
최근에 이르러, 작가는 타임캡슐 시리즈를 연달아 발표하고 있다. 이들 작품에는 주로 삼차원 입체로 나타난 투명한 용기 속에 사람이나 의인화 된 동물을 삽입시켜서, 주변 경관이 가지는 의미가 뒤틀려 보인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경관을 화면 속에 옮길 때, 가급적 그것이 가진 아름다움이나 숭고함을 돋보이게 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그는 조금 다르다. 사진에 잡힌 경관은 예컨대 조감도처럼 장소나 시간, 용도만을 지시한다. 그렇다고 지도처럼 구체적인 입지나 속성을 설명해주지도 않는다. 별다른 미적 흔적이나 암시조차 잘 드러나지 않는 그 화면은 매우 생경스럽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도, 작가가 타임캡슐에 넣은 생명체들은 사람이든 동물이든 어떤 것이란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지만, 하나 같이 자기 충족성이 결핍되어있다. 그것들은 매우 간략한 기호 체계로 구성되어 있거나 의도적으로 완벽한 묘사를 중단한 것처럼 보인다. 시조새처럼 보이기도 하고 외계인처럼 보이기도 하는 날개 달린 동물만 봐도 그러하다. 가령 망치나 풍선, 사람의 형태는 그자체로 우리에게 특별한 미적 쾌를 주지 못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못 주는 게 아니라 일부러 하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엉성해 보이는 그 피조물들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구성된 상징들이다. 우리의 기억은 그렇게 탄탄한 구성물이 못된다. 현실에 바탕을 둔 어떤 기억조차 그것은 원형에 가까운 것에서부터 만들어진다. 그래서 작가는 그 투명한 캡슐이 가지는 부호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고 전체를 바라보라는 뜻을 작품 속에 설정해두고 있다.
이번 대구 프로젝트 또한 작가가 지닌 역사관과 사회관을 바탕으로,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기억을 조형적인 언어로 바꾸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고 있다. 역사와 사회 그리고 예술에 대하여 그가 가진 세계관은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정치 체계나 문화 영역에서 어느 정도 합의가 이루어진 가치이다. 그렇지만 대구를 비롯한 한국에서 그러한 관점은 보수적인 입장과 부딪히며 논쟁을 낳을 수 있다. 바로 그 점이 우리가 추구하는 현대 예술의 방향이다. 이성적 판단이 개입되는 예술의 논쟁은 결국 윤리와 아름다움의 본질에 대한 탐구까지 건드리며 우리의 미적 인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 것이다. ■ 윤규홍
Vol.20100531b | 김태준展 / KIMTAEJUN / 金泰俊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