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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대화(인터넷상)및 퍼포먼스 2010_0521_금요일_12:50pm_길상사
기획/주관_갤러리피그 도움_화우테크놀러지(주)
2010_0517 ▶ 2010_0528 관람시간 / 11:00am~06:00pm
갤러리 피그 청담_GALLERY PIG 서울 강남구 청담동 93-11번지 KOON 빌딩 B1 Tel. +82.2.545.7082 www.gallerypig.com
2010_0515 ▶ 2010_0521 작가와의대화(인터넷상)및 퍼포먼스_2010_0521_금요일_12:50pm 관람시간 / 10:00:00am~06:00pm / 주말 길상사 설법전내 행사시 관람불가
길상사_KIL SANGSA 서울 성북구 성북2동 323번지 Tel. +82.2.3672.5945 www.kilsangsa.or.kr
2010_0312 ▶ 상설전시 관람시간 / 10:00am~08:00pm
백암아트홀_BAEKAM ART HALL 서울 강남구 삼성동 170-5번지 로비 Tel. +82.2.559.1333 www.baekamhall.com
지노를 위한 명상 비구 명본 합장 옴(옴 : 불교의 진언(眞言)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으로 여겨지는 신성한 음절.) ● 우주의 문이 열리면서 순수한 정신 푸루샤(purusa)(푸루샤(purusa) : 인도 베다교(Veda敎)의 원인(原人)을 상징하는 인도철학상의 개념.)는 빛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 빛이 사라진 자리는 본질적 욕망의 파라크리티(prakrti)(파라크리티(prakrti) : 물질적 원리. 순수 정신원리인 푸루샤(purusa)와 대치(對置).)가 차지해 버렸다. 순수의 시대가 사라지고 욕망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히말라야 설산에서 잠들어버린 순수한 영혼들은 대지 속으로 숨어들어 나무의 정령이 되었다. 그들은 나무 속에서 새로운 꿈을 꾸며 긴 기다림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욕망의 시대를 사는 인간들 역시 자신의 욕구를 통제하지 못한 채 탐욕과 어리석음과 분노에 길들여지고 말았다. 동질적 이성을 잃어버린 채 파괴적 본성으로 치달았다. 자신의 사지가 갈기갈기 찢기어도 그 욕망의 바다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길을 걸어가는 작가 지노. ● 지노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작가다. 이 메마른 대지 위에 살면서, 인간의 순수정신이 상실된 이 시대 욕망의 어두운 뒤편에 숨어 있는 니르바라(nirvana)를 꿈꾸는 아티스트다. 처음에 그는 달마를 영혼의 메시아로 삼았다. 달마를 찾아 타클라마칸의 사막을 지나고, 천산산맥의 설산을 넘었다. 그의 앞을 가로막는 그 어떠한 난관도 불타오르는 그의 구도적 열정을 식힐 수 없었다. 마침내 그는 달마를 만났다. 그러나 그는 이미 순수한 달마가 아니었다. 달마는 정신의 세계 대신에 인간의 욕망세계를 선택한 것이다. 그가 만난 달마는 탐욕에 눈이 튀어나왔으며, 귀는 세상의 혼탁한 소리로 가득찼고, 입은 달콤한 꿀맛에 취해 있었다. 순수한 달마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지노는 달마의 육신을 잘게 잘게 쪼개어 대지에 버리고, 달마의 붉은 피를 뽑아서 강물에 띄웠다. 그래도 순수한 달마는 보이지 않았다. 순수한 달마를 찾기보다도 더 아픈 현실과 더 깊은 고통만이 지노의 동무가 되어 있었다. 지노는 문득 자신의 내면을 관조하면서 지금까지의 기나긴 시간들을 되돌아 보았다. 그 옛날 인도 붓다가야(붓다가야 : 인도 북동부 비하르주(州)에 있는 마을.)의 깨달음의 나무 아래에서 있었다는 수행자를 생각하면서 깊은 명상에 잠긴 것이다. 마음은 바다처럼 고요하고 저 하늘에 순백의 달이 떠 있는 깊은 어느 날 밤, 그는 한 송이 꽃에서 달마를 보았다. 그것은 환희이자 기쁨이었다. 마침내 그는 순수한 달마를 만난 것이었다. 달마 얼굴의 백호 미간에 한 줄기 서광이 비쳤다. 달마의 일그러진 눈 속에 순수의 정신이 깃들었다. 달마의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일어나고, 머리 위로는 수많은 대지의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달마를 버림으로써 달마를 만난 것이다.
욕망의 시대에 순수정신의 맑은 미소를 만난 작가 지노. ● 지노는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작가다. 현실의 온갖 타오르는 욕망 속에서 그 자신의 욕망을 잠재우고, 태초에 잃어버린 순수한 영혼을 찾아서 길을 다니던 그는 이 시대의 끝에서 달마를 만났다. 지노가 만난 달마는 세상의 끝없는 욕망과 집착과 아집을 벗어버린 모습이었다. 달마의 얼굴에는 더 이상의 욕망이 존재하지 않았다. 달마는 이미 순수한 세계를 보여주는 꽃이 되어 있었다. 달마의 눈은 깊은 호수보다 고요하며, 달마의 마음은 이미 순수 정신과 합일한 상태였다. 그곳에 그가 서 있다. 붓다가 깨달음의 나무 아래에서 고요한 니르바나(니르바나(nirvana) : 열반(涅槃)의 원어.)를 성취하신 대지. 달마가 양자강을 갈대로 건너서 만난 어머니의 대지. 그 대지 위에서 지노는 맑고 순수한 정신을 알아차렸다. 마치 아침 이슬 같고, 물거품 같으며, 환상처럼 다가오는 아지랑이처럼 스쳐 지나가는 삶 속에서 잃어버린 정신을 찾아낸 그의 뜰 앞에는 이제 한 그루의 잣나무가 서 있다. 그 잣나무를 통하여 지노 박은 자연과 소통하고, 나무의 정령을 만나며, 우주와 합일되는 순수의 세계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정신이 곧 우주와 하나임을 알아차린 순간 더 이상의 욕망도 없는 그 속에 달마가 있고, 이미 하나가 된 그 자리에 나무의 정령만 남은 것이다. 이제 지노는 그곳에 더 이상 없다. ■ 명본 스님
달마 ● 범어(산스크리트어)로 [보리다르마]이기에 音寫해 [보리달마], 줄여서 [달마]라 한다. 인도 향지국 왕자로 인도 불교의 석가모니부터 28대 조사로 중국에 이주, 포교함. 중국 선종의 初祖로 9년 면벽 후 바로 2조 혜가에 전법하고 사망했다. 중국에서 활동한 인도인이라는 특이한 이력과 용모 덕분인지 달마에 얽힌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 내려온다. 서역에서 중국으로 갈 때 갈댓잎을 타고 강을 건넜다든지, 면벽수련 중에 졸음을 피하려 눈썹을 잘라냈는데 그것이 자라나서 차나무가 되어 스님들이 차를 즐겨마시기 시작했다는 등의 여러 일화가 있다. 이런 일화들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달마의 용모에 얽힌 내력일 것이다. 달마도에서 보듯 달마는 무섭게 생긴 것이 특징이지만, 전설에 의하면 달마는 원래 아주 잘생긴 미남자였다고 한다. ● 달마는 젊은 나이에 이미 깨달음을 얻어 자신의 몸과 영혼을 자유자재로 분리할 수 있었는데, 한 번은 영혼이 빠져나간 달마의 몸을 발견한 아수라가 자신의 몸을 버리고 달마의 몸속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몸을 도둑맞은 달마는 하는 수 없이 아수라의 몸을 빌어 살게 되었고, 그 후로 달마는 악귀들이 보이는 족족 때려잡았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귀신들은 달마의 얼굴만 봐도 멀리 달아나기 때문에 달마도는 축귀의 효력이 있다고 한다. ●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달마는 악마의 몸에 깃든 성자인 것이다. 내가 달마에 관심을 가지게 된 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나는 2007년부터 '다이달로스의 일생'이라는 큰 제목으로 다이달로스를 중심으로 그리스 신화의 여러 일화들을 재해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달 아래 이카로스'를 시작으로 '투우장의 미노타우로스'까지 두 가지 이야기를 끝냈다. 지금까지 했던 이야기는 다이달로스의 아들인 이카로스 세대의 이야기였고, 그 다음으로 할 이야기는 다이달로스 본인에 관한 이야기다. 그러자니 다이달로스의 모습을 형상화해야 했다. ● 내가 본 다이달로스는 '사람으로 살아남은 자'이다. 그는 신과 짐승의 사이에 인간이 존재해야 한다고 믿고 그것을 지켰다. 미노스, 파시파에, 아리아드네, 이카로스, 미노타우로스 등은 얼핏 다이달로스 때문에 변을 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스스로 자신의 자리를 벗어난 때문에 파멸한 것이다.● 신과 짐승, 선과 악, 삶과 죽음의 한가운데 있는 것. 그것이 다이달로스라고 느꼈고, 그것을 그리려 했지만 좀처럼 풀리지 않던 차에 달마도를 접하게 되었다. 미추와 선악이 공존하는, 악마의 몸에 깃든 성자. 나는 곧바로 이 주제에 빠져들었다. 달마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나는 꽃, 바람, 보석 등의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그렸다. 달마의 얼굴이라는 종착점은 정했지만 그곳으로 가는 길은 정하지 않은 채 그저 꽃밭으로, 숲으로, 강으로 의식을 옮겨 떠오르는 것들을 그렸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엄혹한 죽음의 얼굴을 한 달마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즐거운 그림 그리기를 끝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는 것이다. 살고자 할수록 죽음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는 숙명을 지닌 인간처럼. 어쩌면 다이달로스의 얼굴이 달마를 닮았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린 달마는 이렇게 생겨났다.
달마나무 ● 잠을 잔다는 것은 작은 죽음을 경험한다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합니다. 날마다 우리는 잠에 들고 - 죽고, 날마다 우리는 깨어 - 살아납니다. '사람'은 '삶'을 다르게 발음한 것이라는 말처럼, 사람은 살기위해 애쓰지만,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깨어날 수 없게 됩니다. 꿈은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잠이라는 작은 죽음 속의 작은 삶입니다. 꿈을 꾸는 것은 살려는 것이고, 가끔은 그 꿈에 놀라 깨어납니다. 살아납니다. 그리고 그 생생함에 놀라합니다. 나쁜 꿈, 악몽에는 그런 생생함이 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악몽을 그려왔습니다. 익숙한 것들이 낯설게 보이는 순간의 그 생생함을 담으려 했습니다. ● 오랫동안 어둠 속을 들여 보다 만난 것이 '달마'입니다. 달마는 제게 어둠과 밝음, 아름다움과 추함, 삶과 죽음의 경계로 여겨졌고, 이 독특한 성자를 그리기 위해 저는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로 이루어진 악인의 초상'을 그리고자 했습니다. 이 시도를 통해 오랫만에 '밝음'과 '빛깔'을 다루게 되었고, 나무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나무에 점점 빠져 들었습니다. ● 지난겨울 이사 온 이 곳 팬실바니아는 '팬의 나무'라는 그 지명처럼 나무가 많습니다. 완만한 경사를 이룬 산에는 언덕을 따라 어지간한 이층집은 가볍게 내려다볼 만큼 큰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고, 델라웨어 강가에 끝도 없이 늘어서 있는 나무들의 모습 또한 장관입니다. 차를 타고 강변을 달리면, 도로를 뒤덮은 나무그림자에 햇빛이 눈부시게 깜박이고, 그 박자에 맞춰 길가의 나무들이 춤추듯 크게 팔 벌려 몸 뒤트는 모습은 수천의 샤만이 치르는 의식처럼 황홀하기까지 합니다. ● 집에도 나무가 많아서, 제가 묵으며 작업하는 별채에서 마당을 가로질러 본채로 가는 중에도 수시로 멈춰 서서 나무를 우러러보게 됩니다. 나무는 보면 볼수록 감탄이 절로 납니다. 천변만화하는 선의 아름다움은 말할 것도 없고, 수많은 성상을 버틴 그 생명력은 경이롭기조차 합니다. 게다가 자신이 살아온 이력을 낱낱이 밝히며 당당히 서 있는 나무를 보면 자연히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하늘과 태양을 향해 솟구치듯 자라던 때, 울창하게 잔가지를 뻗으며 차양처럼 넓게 나뭇잎을 펼치던 시절, 푸르고 울창하던 날, 갑자기 불어 닥친 태풍에 맞서 싸우던 일. 결국 그 힘을 견디지 못해 바람에 팔을 내밀어 큰 가지 하나를 꺾어낸 일, 힘을 잃고 곤두박질치던 가지에 새로 여러 줄기를 내던 시절, 그 줄기를 덩굴이 타고 오르던 일, 마침내 다시 잎을 맺고, 가지 끝에 새들이 둥지를 틀던 날... 이런 모든 삶의 변천사를 그래프처럼 꼼꼼히 그려 넣은 것이 바로 나무입니다. ● 제가 만난 나무들 중에는 잊히지 않는 나무들이 있습니다. 새의 날개처럼 가지를 펼친 나무. 동양화 대가의 날렵한 붓놀림인 듯 한 나무. 삶의 의지의 화신인 것처럼 하늘로 수많은 가지를 올려붙인 나무. 요정처럼 눈밭에 선, 수만의 반짝이는 연둣빛 잎새를 팔랑거리던 나무. 강물 속에 쓰러져가는 나무. 산비탈에 꺾여 넘어진 채 말라가는 저 많은 나무둥치들. 그 허벅지 뼈를 닮은 것들. 큰 바람 분 다음 날 아침, 바람을 그려 놓은 듯이 한 방향으로 가지런히 누운 수천의 가는 버드나무 가지들... 이 나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하나하나가 밤을 새워 이야기해도 끝내지 못 할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그 이야기는 책에 적힌 글처럼 한 방향, 한 줄로 이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나무의 온 몸에 새겨져 나뭇가지를 따라 사방으로 뻗어나가고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나무는 입체를 이루고 서 있는 살아 숨 쉬는 서사입니다. 제가 언젠가 이루고자하는 '다면서사조형체'의 모형입니다. ● 나무를 그리는 동안에는 능률적이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나무처럼 천천히 그립니다. 능률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은 그림 그리는 행위를 노동으로, 벗어나야 할 고통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적어도 나무를 그리는 동안에는 능률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나무는 능률적으로 자라지 않으니까요. 나무를 그리는 것은 첫 눈 쌓인 벌판을 걸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길이 없으니 지도도 없고 계획도 없습니다. 그저 해를 따라 뽀드득 뽀드득 걸어가면 길이 생겨납니다. 천천히 한발 한발 눈밭을 걸어가듯이 점을 찍고 선을 그어나갑니다. 나무를 그리는 것이라기보다 나무를 행위하는 것입니다. 나무를 따라 그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잘못 그리거나 틀리게 그릴 일도 없습니다. ● 나무를 그리는 일은 나무를 상상하는 것입니다. 언젠가 만났던 나무를 기억하고, 그 나무가 보낸 시간을, 그 세월을 상상하는 것이 제가 나무를 그리는 법입니다. 우선 나무가 자라는 방식을 상상합니다. 어긋나기 건, 마주나기 건, 규칙에 따라 가지가 뻗어가는 모습을 상상하고 그것을 따라갑니다. 잔가지가 늘어날수록 점점 가지는 휘어지고, 가지가 휘어질수록 더 큰 바람이 입니다. 바람은 다시 새로운 규칙이 되어,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고, 휘어지고, 꺾여나갑니다. 나무에 구름이 밀려듭니다. 이리 저리 변하는 구름 뒤로 해가 뜨고 달이 집니다. 별이 쏟아져 내립니다. 어느새 나무 한 그루 종이 위에 서 있습니다. 달마나무입니다. ■ 지노
Vol.20100515d | 지노展 / JINO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