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운 밤

김성철展 / KIMSUNGCHUL / 金成哲 / installation   2010_0122 ▶ 2010_0128 / 일요일 휴관

김성철_불편한밤_모기장, 스킬자수_5m이내 설치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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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철 홈페이지_nakari750.wixsite.com/mysite

초대일시_2010_0122_금요일_04: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요일 휴관

부산 공간화랑_서면점 KONGKAN GALLERY 부산시 진구 부전동 160-6번지 수양빌딩 B2 Tel. +82.51.803.4101 www.kongkan.kr

가려움이라는 시간 ● 김성철의 작업은 가렵다. 이는 비유가 아니다. 김성철의 작업은 가렵다는 말은 두 층위에서 가려움이 의미화되어 있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는 재현하는 대상이 가려운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완결된 형태 그 자체가 가렵다는 것을 뜻한다. 전자의 경우가 내용에 해당되는 것이라면 후자의 경우는 형식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는데, 특히 후자가 주목을 요한다. 왜냐하면 그의 작업이 가려움과 같은 사소한 감각/예민한 감각에 집중하고 있는 만큼 그의 작업 형식 역시 사소하거나/예민하게 응답할 수밖에 없는 탓이다. 일테면 김성철의 작업은 일반적으로 '작은 규모'로 구성되는데, 조형언어에서 '크기'가 작가의 역량을 판단하는 하나의 척도로 사용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그의 작업은 작은 '종기/부스럼/발진'처럼 여겨진다는 것이다. 요컨대, 그의 작업이 일반적으로 '드로잉'이나 작은 조형물에 밀착해 있다는 사실은 '종기/부스럼/발진'이 오히려 조형언어가 구축해야 할 중요한 장이라는 것을 의미한다.(독일 유학을 경험한 작가들이 흔히 드로잉에 대한 애정을 갖는다는 사실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김성철의 작업에서는 드로잉이 작업 전체의 맥락에서 필수적인 것으로 주어져 있다는 것은 주제와 형식이 긴밀한 관계로 묶여 있음을 뜻한다).

김성철_가려움_시바툴, 세라믹_35×16×20cm_2009
김성철_가려움_종이에 드로잉_39×31cm_2009

아니, 이상 열기로 과장되었던 미술시장이 급속하게 냉각된 이후에도 여전히 대규모 작업이 활성화되어 있는 형편에서(물론 이들 작업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아주 섬세하게 '가려움'을 다룬다는 것은 최근 조형언어 내에서 드문 경험을 선사해준다. 2호 정도에 해당되는 드로잉과 30cm를 채 넘어서지 않는 조형물은 시장에 의해 착종된 거대한 욕망에 아랑곳하지 않고 '가려움'이라는 기이한 체험을 포착하면서 전시장 곳곳을 가려움의 증상들을 산발적으로 때로는 집중적으로 흩뿌려 놓는다. 달리 말해, 김성철의 작업은 가렵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익명적 시선으로 하여금 작업으로부터 외면할 수 없도록 강제하는 효과를 낳는다. 눈이 가렵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 가려움이 의식을 가렵다는 바로 그 사실에 종속시킨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피부를 빨갛게 달아오르게 만드는 '발진'은 신체 일부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할 수 없고 오히려 몸과 의식 전체의 에너지를 통합시키고 집중시키게 만든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가려움이라는 증상이 출현하는 그 때, 몸과 의식은 그 증상에 압도당하고 우리가 알고 있던 신체의 이미지는 포기/폐기된다.

김성철_가려운관계_세라믹_1m이내 설치_2008~10
김성철_두드러기가 난 별_레진_5m이내 설치_2009

이 때문에 김성철에게서 인간의 형상이 '발진'에 의해 도리어 잠식되어가는 모습으로 표현되는 것은 전혀 우연이랄 수 없다. 가려움을 일으키는 원인에 대해서보다 증상이라는 사건에 더 집중하는 김성철에게 인간 신체가 '발진'의 덩어리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 무엇보다 김성철은 피부를 뚫고 나올 듯한 그 상태를 반짝이는 순간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일상적으로 가려움이 병이 되지 않는 이상 가려움이 생겼다가 곧 사라진다는 점을 기억하면, 가려움이 증상으로 표출되는 그 순간이 그에게는 빛나는 것으로 의미화되는 것은 그가 그 순간을 아름다운 것으로 포착하는 것을 뜻한다. 하여, '발진'의 순간은 사멸하거나 사라져버리는 대상에 대한 '애도(불) 가능성'을 사유하는 예술의 사유 영역에 격렬하게 육박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사라지고 순간을 통해서만 존재하는 가려운 증상을 지속적으로 파고들어가는 그의 작업이 보다 광범위한 세계와 맞닿을 것이라는 기대가 그래서 전혀 뜬금없는 것일 수는 없다. 가려운 증상이 돋아다는 그 순간, 반짝하고 의식과 몸이 통합되는 황홀한 경험을 하게 될 테니 말이다. 갑자기 세계의 모든 것이 가렵기 시작한다. ■ 김만석

Vol.20100122d | 김성철展 / KIMSUNGCHUL / 金成哲 / 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