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한 사물들

김성철展 / KIMSUNGCHUL / 金成哲 / mixed media   2008_0704 ▶ 2008_0716 / 월요일 휴관

김성철_커어어다란거어어억정_세라믹, 침핀, 트레싱지_가변설치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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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08_0704_토요일_06:00pm

작가와의 대화 / 2008_0704_토요일_06:00pm

관란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대안공간 반디 SPACE BANDEE 부산시 수영구 광안2동 169-44번지 Tel. +82.(0)51.756.3313 www.spacebandee.com

파편화된 감각들 ● 방 안에 혼자 있을 때, 방바닥에 기어 다니는 벌레를 보고 깜짝 놀란 경험을 할 때가 있다. 휴식을 취하는 도중에 나타난 낯선 침입자는 과연 어디에서 온 것일까? 오로지 인간만이 거주할 수 있는 방 안에 벌레의 생뚱맞은 출현은 당혹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면 전시장에 출현한 벌레 떼들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그것들은 왜 하나가 아니라 무정형으로 무리를 지어 벽면 곳곳에 붙어 있는 것일까. 더군다나 다른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공간까지 스멀스멀 기어들어가 떡하니 버티고 있기까지 하다.

김성철_커어어다란거어어억정_세라믹,침핀, 트레싱지_가변설치_2007

김성철은 전시장 입구 벽면에 수많은 벌레들을 포진시킨다. 벌레들의 전시장 습격은 다양한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이 벌레 떼들은 더 이상 총체적 인식으로 세계를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 단일한 의미와 시장으로 수렴되는 시각언어들을 갉아먹는 매개체로 등장한 것은 아닐까. 이런 의문으로부터 김성철의 작품을 바라본다면 주 전시 공간과 바깥 공간은 이질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김성철의 다른 작업들은 벌레떼 작업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의미로 수렴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파편화되어 있다. 따라서 드로잉, 사진, 설치, 조각, 영상 등 대부분의 미술 장르들이 이용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단일한 의미로 환원되는 형식이 아니라, 모든 것을 분절시키고 변형시키며, 이종교배가 가능한 전시공간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김성철_가려움_종이에 드로잉_가변설치_2005

먼저 드로잉과 콜라주 작업들은 파편화된 몸의 상처를 드러낸다. 수 십장의 드로잉에는 발진으로 시달리는 신체의 각 부위들과 감염된 사물들이 등장한다. 발진은 둥글고 붉은 형상을 띄며 피부 주위에 포진하거나 물이나 음식물까지 전이되어 나타나기도 하며, 수많은 돌기들이 곳곳에 솟아나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 발진과 돌기들은 외부적 요인으로 피부에 상처가 난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가해진 고통이나 스트레스의 증상들이 몸의 표면으로 도드라진 것들이다. 이 증상들은 인간의 신체와 사물들에 스며들어 무한증식하며 파편화된 인식을 출현시킨다.

김성철_가려움_종이에 드로잉_가변설치_2005

「피곤한 과제」와 「피곤한 관계」의 관계는 미묘하다. 두 작업 모두 반복된 형태로 형상을 만들어 낸다. 「피곤한 과제」는 두상(세라믹으로 만들어진)을 깼다가 다시 붙이는 작업이다. 그런데 이것은 온전한 형태를 욕망하지만, 단일한 체계로 수렴되지 않는 균열과 틈을 그대로 노출시킨다. 얼굴의 뒷면을 일렬로 나열한 「피곤한 관계」에는 '힘들다', '피곤하다'라는 단어가 랜덤으로 적혀 있다. 얼굴의 앞면과 뒷면들은 나란히 양 쪽 벽면에 붙어 있지만, 이들을 언어화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렇듯 김성철의 작업은 언어나 의미망으로 환원되지 못하며, 여전히 이질적인 감각들이 부딪히고 있음을 느끼도록 만든다.

김성철_피곤한 과제_세라믹_가변설치_2007

이것은 「관계」시리즈에서도 마찬가지다. 굳이 해석을 해보자면 이 작업들은 신체의 일부가 외부세계와 만나는 혹은 만나지 못하는 지점을 보여주는 사진작업이다. 팔 위에 그어진 검은 선은 외부에 있는 대상들을 잇는 하나의 지표이다. 몸과 세계를 일치시키려는 노력은 사실상 이질감을 발생시키는데, 카메라-눈은 가까운 신체를 선명하게 보이도록 만들고 외부 세계의 초점을 흐림으로써 분리된 두 개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때, 몸은 세계 내에 있지만 여전히 세계 바깥을 사유할 수 있는 긍정의 공간으로 기능한다.

김성철_유토피아_사진_14×40cm_2007_부분

영상작업 「야간비행」은 탄탄한 내러티브가 있는 것이 아니라 독특한 시, 공간의 이동을 보여준다. 이 영상은 6분 동안 종이로 만든 모형 비행기가 이륙하고 착륙하는 전 과정을 보여주지만 탄탄한 서사를 구축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눈여겨 볼 것은 모형비행기는 카메라-몸에 부착되어 카메라와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외부의 수많은 물리적 방해물들이 나타나도 비행기 자체는 흔들리지 않으며, 프레임만 흔들릴 뿐이다. 모형 비행기가 날고 있는 밤하늘은 시, 공간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특정한 상황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김성철_야간비행_DV 6m 비디오_00:06:17_2008

김성철의 다양한 작업들은 총체화하거나 단일한 서사로 초점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것은 그의 작업들이 형태적으로는 작지만, 과잉되거나 분열될 수밖에 없는 지점을 상기하도록 만든다. 구성된 전시는 내러티브를 구축하지 않으며 분열적 상황만을 파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벌레 떼의 습격, 발진, 돌기와 같이 호명될 수 있는 것들과 너무 분절되어 있어 사유체계로 환원되지 않는 작업들을 통해 김성철은 다양한 세계와 조우하는 방법을 관찰하고 탐구하는 방법을 던져 준다. 새로운 삶의 양식이 도래했을 때 새롭게 몸을 재편해야 하는 것처럼, 그의 작업에서 무한 증식하고 끊임없이 변형되는 이미지들은 단일한 욕망이나 서사를 부추기는 총체적인 조형 언어 내부에서부터 균열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 신양희

Vol.20080707b | 김성철展 / KIMSUNGCHUL / 金成哲 / mixed media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