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MIGRATION, IN-

남궁환展 / NAMGOONGWHAN / 南宮桓 / painting   2009_1119 ▶ 2009_1209 / 일요일 휴관

남궁환_Transmigration_종이에 먹_100×70cm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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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1119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토요일_10:00am~05:00pm / 일요일 휴관

앤디스 갤러리 ANDYS GALLERY 서울 강남구 청담동 117-8번지(네이처포엠 뒤) Tel. +82.2.575.2575 www.andysgallery.com

도곡동에서 청담동으로 이전한 앤디스갤러리의 첫 전시 ● 2008년 도곡동에 문을 열었던 앤디스갤러리가 관객과 더욱 가까이 호흡하고자 청담동으로 확장이전하게 되었다. 이전 첫 전시는 유기체의 생명력과 에너지가 느껴지는 묵점(墨點)작업으로 알려진 남궁환의 신작 개인전으로, 묵점작업을 비롯하여 형광안료 작업, 사진 등 「Transmigration」시리즈 20여점 출품된다. 무한한 정신성과 에너지가 느껴지는 먹그림으로 알려진 남궁환의 신작 개인전 ● 서울대 서양화과와 파리국립미술학교를 졸업하고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불교에서 윤회를 뜻하며 단어이면서, 보이는 것 이면의 정신성, 혼을 의미하는 「Transmigration」연작을 해오고 있는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묵점들의 역동성으로 인해 엄청난 에너지의 발산을 느끼게 했던 이전의 「Transmigration, EX-」작업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강렬하면서도 단단한 구조적 응집성을 띈 「Transmigration, IN-」작업을 발표한다.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시작된 점찍기가 숨결의 장단을 따라 마무리되기까지의 기(氣)의 흐름을 보여주는 남궁환의 작품은 이러한 작업방식과 신비하면서도 기괴한 모양 때문인지 '무한순환하는 다양체의 메타포'로 읽혀진다. 빛에 따라 다른 색의 극적공간을 만들어 내는 「숨의 방Chambre du Souffle」 야광작품 설치 ● 물과 아크릴, 야광성 안료가 겹겹이 중첩되어 빛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작품인 「숨의 방Chambre du Souffle-Transmigration 2009」은 이번 전시를 위해 설치한 작업으로, 어두운 공간 속에 설치되어 빛에 따라 드러나지 않았던 문양이 보이고 숨겨지는 과정을 통해 가시적인 것 너머에 대해 생각하는 경건함과 명상의 시간을 제공한다. 10년 가까이 일관된 작품세계를 심화시켜가고 있는 젊은 추상작가의 전시 ● 이번 전시의 의의는 미술계의 흐름에 흔들리지 않고 10년 가까이 일관된 작품세계를 심화시켜가고 있는 젊은 추상작가의 전시라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 앤디스갤러리

남궁환_Transmigration_종이에 먹_100×70cm_2008

남궁 환의 작품에 대하여 : 윤회하는 다양체(多樣體)의 포트레이트 ● 수 없이 많은 점(點)들, 구멍들, 심연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입구들이 표면을 뒤덮고 있는 구체(球體). 남궁 환은 해면(海綿)이나 배아(胚芽), 혹은 동물이나 식물의 다공성(多孔性) 표피를 연상시키는 이름 붙일 수 없는 그 무엇을 그린다. 때로는 폭발하는 듯 보이기도 하고, 또 때로는 우주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는 블랙홀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원형체를 작가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마치 수행을 하는 선승(禪僧)처럼 매일매일 그리고 있다. 수행(修行)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것은, 이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나는 집중과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신체적 통제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 그림은 수묵화나 수채화의 기법과 동일하게 붓과 물 그리고 먹을 사용하며, 수 천 개의 동일한 점을 찍어나가면서 단 한 개의 실수라도 있다면 곧 눈에 띌 수밖에 없는 형태로 그려진다. 하나하나의 점들은 먹(墨)의 선염(渲染)으로 인해 아주 작은 공간에 짙은 검정과 흐릿한 번짐을 빠짐없이 지니고 있다. 미리 적셔진 종이의 표면 위에 극도로 집중하여 먹물을 한 점, 한 점 찍어나가는 이 동양적 스푸마토(spumato) 기법으로 인해 화면은 구체의 사실성과 붓질의 반복이 빚어내는 몽환(夢幻)이 뒤섞인 강렬함(intensity)으로 채워진다. 변성(變成)하는 유기체의 생명력, 에너지의 응축과 내파(內破, implosion), 심지어 종교적인 법열(法悅)을 추상화한 듯한 이 강렬함은 바로 퍼포먼스에 가까운 제작과정의 몰입과 완벽한 기법적 숙련에서 기인한 것이다.

남궁환_Chambre du Souffle-Transmigration_가변설치_2009

남궁환은 2007년부터 묵점(墨點)을 이용한 이러한 드로잉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가 「Transmigration」이라고 이름 붙인 이 프로젝트는 사실상 그 이전부터 해오던 같은 명칭의 작업들의 연장선상에 있다. 남궁환은 1998년부터 '숨결'이라는 의미의 불어 'souffle'를 키워드로 작업해 왔으며, 1999년에 있은 서울대학교의 졸업전 작품을 위해 이미 「환궁(桓宮) : Palais du Souffle」라는 제목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곧 바로 프랑스로 유학한 그는 2001년부터 제스츄얼한 붓질로 제작된 대형 회화들을 제작하였는데, 2002년에 파리국립미술학교에서 제작한 역시 동명의 설치작품 「환궁(桓宮) : Palais du Souffle」이나 2005년에 있은 금호아트갤러리에서의 전시를 위해 제작한 「Transmigration - l'arc-en-ciel」은 이들 가운데서 가장 커다란 작품들로서, 정사각형의 캔버스 위에 그려진 수없이 많은 작은 원들 위에 다시 동심원들로 이루어진 원들을 그리고 그것으로 거대한 벽면을 만들어 다시 신전을 방불케 하는 원형의 방으로 만든 것이다. 같은 해 우덕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그는 갤러리 내부의 천장과 바닥 사이에 회전축을 만들고 양면에 그림을 붙여 전시공간에서 회전할 수 있게 하였다. 이 작품들은 이후 2008년 환기미술관의 「환궁」 연작과 이번 2009년 전시의 모태가 되고 있다. 독특한 것은 작가가 이들 설치작업에서 사용한 형광안료의 작용이다. 각각의 작품들은 실제로 밝음과 어두움이 교차하는 실내의 조명 하에서 상이한 극적 공간을 연출해낸다. 이것은 다소 환각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남궁환의 경우, 이러한 환각효과는 그의 먹 작업들에서 작업의 밀도를 통해 보여주는 시각적 압도(壓倒)와 상통하는 것이다. 2008년에 제작된 「환궁」의 경우 이중으로 제작된 원형 벽면들 내부에는 서로 다른 크기의 동심원들이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빛의 상태에 따라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과정이 반복되었으며, 벽과 벽 사이의 공간은 서로 다른 설치 드로잉 작업으로 채워져 관객들이 나아감에 따라 변화하는 공간을 연출하였다. 이 작품들은 작은 회화적 단위(unit)들과 그것들이 모여서 이루는 거대한 구조의 대비와 반복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이후의 '묵점' 회화가 지니는 집적(accumulation) 혹은 프랙탈(fractal) 형식을 예고하고 있다. 부분은 전체를 포함하고 전체는 부분과 동일하다는 프랙탈의 특성상, 그의 작업이 지니는 유기적 반복은 모든 것이 모든 것을 포함한다는 불교의 '인드라망' 사상이나, 라이프니츠의 '단자'(單子, monad)가 지니는 내부의 재현체계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들뢰즈에 따르면, 단자는 그것의 내부에 세계를 근방역(近方域, voisinage)의 위계에 따라 재현하는 빛과 어둠의 입자들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반복'은 단적으로 말해 세계가 입자 안에서 반복되는 것이며, 그것의 집적은 아직 가시화되지 않은 더 크거나 훨씬 더 작은 다른 차원에서의 세계의 반복을 함축하는 것이다.

남궁환_Transmigration_종이에 먹_각 76×56cm_2009

남궁환은 자신의 작업 초기에서부터 이미 'transmigrati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윤회'(輪回), 전생(前生) 혹은 영혼의 '이주'라는 의미를 지닌 이 단어는 불교와 같은 오래된 신앙의 형태들 속에서 종종 발견되곤 한다. 마차의 바퀴가 끝없이 돌듯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무한한 생성과 소멸의 과정 속에 놓여 있다고 하는 이 생각 속에는 인과관계의 무한한 확장과 연결, 존재와 세계의 필연적 복수성, 중층(multi-layered)으로 이루어진 재현 등의 관점들이 함축되어 있다. 동일한 대상의 가시화는 시간의 흐름과 시점에 따라 수없이 다른 양태로 이루어질 수 있다. 따라서 반복은 각각 존재의 상이한 양상을 나타낼 뿐 아리나 그 자체가 상이한 존재들로 분기(分岐)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동일하면서도 상이한 존재의 양태, 이것이 인연의 날실과 씨실을 따라 끝없이 업(karma)의 순환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윤회의 양태인 것이다. 이 때문에 남궁 환의 작업 속에서 동심원을 그리며 반복하는 원의 형태가 나타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설치작업들인 「환궁」, 「무지개」 등에서 나타나는 건축적 구조는 이러한 윤회의 의미와 그것에 대한 깨달음의 위계를 설명하는 불교의 '만다라'와 유사성을 보여준다. 만다라는 불경의 시각적 버전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이면서도 함축적인 구조물이다. 만다라는 가루안료를 이용하여 그것을 만들거나 그리는 숙련된 승려(僧侶)들의 의식 속에서 비롯되는 형태들로 이루어진다. 모든 것은 이미 결정되어 있지만, 동시에 그것을 그리는 이의 수행의 정도에 따라 그 내용이 완전히 다른 양상을 띠기도 한다. 그것은 과정 속에서 현현되는 그림이자 일시적인 몰입과 충만함의 표현이기도 하다. 만다라가 완성되는 순간 그것을 문질러 파괴한다는 것은 바로 영원의 현재성에 대한 강력한 지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남궁 환의 경우, 그가 그리는 각각의 그림들은 다른 어떤 것을 향한, 다른 어떤 것에 대한 재현이기 이전에 그것이 그려지고 있는 시간의 완전한 기록이라는 특질을 지닌다. 화면의 한 가운데로부터 시작하여 나선을 그리면서 가장자리로 퍼져나가는 동안 작가는 단 한 번의 먹물을 붓에 머금게 할 뿐이다. 먹은 주변으로 나아가면서 조금씩 흐려진다. 그 동안 단 하나의 흐트러짐이 없이 완벽하게 하나하나 찍어나간 붓자국들은 커다란 구형(球形)의 대상을 만들게 되는데, 그려나가는 가운데 작가가 느끼거나 의도한 패턴에 따라 서로 다른 형태들이 떠오른다, 매번 다른 모습의 만다라가 그려지는 것처럼.

남궁환_Transmigration_종이에 먹_76×56cm_2009

남궁환의 그림들이 단지 종교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사고의 양태들을 가시화한 것이라면 그것은 지나치게 재현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리는 그림들은 재현적이기 보다는 훨씬 수행적(performative)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무언가를 그리거나 어떤 생각을 표현하려고 하는 대신 그것이 그려지는 과정 속에서 작가가 선택한 행동들의 기록으로서 더욱 커다란 의의를 지닌다. 먹을 이용하여 매우 신체적인 통제를 통해 점을 찍어나가는 과정 자체는 마치 시타오(石濤)의 「千卒墨點」을 떠올린다. 시타오가 훨씬 자유분방한 점들을 찍으면서 회화적 유토피아를 그려냈다면 남궁 환은 보다 커다란 몰입을 통해 정신적 해방의 경지를 체험적으로 보여준다. 다른 한편으로 이 수행적 회화는 매우 정신분석학적인 징후들로 내부를 채우고 있다. 아마도 그 대표적인 요소로서의 '구멍'(pore)에 대해 말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다공성(porosity)은 불안, 의심, 허무함 등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형태의 충만함에도 불구하고 내면의 텅 비어있음을 암시할 뿐 아니라 각각의 구멍들이 독립된 개체들로서 그것 내부의 심연 혹은 그것으로부터 튀어나올 존재들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2006년에 그린 「Transmigration, de centre」 연작들에서 마치 핵을 지닌 세포들, 혹은 개구리의 알무더기 같으면서도 가운데가 비어있는 환상(環狀)의 입자들을 그렸을 때, 각각의 입자들은 구멍이라기보다는 개별적인 덩어리들로 다루어졌었다. 그러나 최근의 동명 연작들에서 개별적 입자들은 하얀 골질(骨質)로 이루어진 표면의 함몰(陷沒)에 의해 형성된 구멍들처럼, 가파도키아(Kappadokia)의 암벽들에 나있는 동굴 주거지의 구멍들처럼, 절대적 어둠으로 이어져 있는 통로들처럼 밝은 표면과의 강렬한 대비를 일으키며 무수히 화면을 뒤덮고 있다. 화면에 재현되어 있는 대상은 그 내부로부터 무한히 표면으로 향하는 힘의 결과인 것처럼 보인다. 방사상으로 나있는 점들의 선염은 괴체(塊體, mass)의 내부와 그것을 둘러싼 밝은 빛의 경계를 이루면서 허공으로 퍼져나간다. 태양의 코로나(corona)처럼 그것은 내부에서 표면으로 솟구치는 에너지의 최종적인 광휘인 것이다. 구멍과 불꽃은 안으로의 하강과 바깥으로의 분출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표면을 형성한다. 화가는 중심으로부터 동심원을 그리며 점을 찍어나가며, 그렇게 그려진 대상은 완벽한 평면인 화면(畵面) 위에서 중심과 표면의 강렬한 운동을 지닌 추상적 사물로 거듭난다.

남궁환展_앤디스 갤러리_2009

남궁환은 이것은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그려진 어둠과 빛의 괴체가 얼굴처럼 둥근 모양으로 그려지기 때문만이 아니라, 표면을 덮고 있는 수많은 분열적 구멍과 불꽃들이 자아내는 정신적 양상이 작가의 의식을 닮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아가 매번 동일하면서도 복합적이며 중층적인 회화적 연작으로 구성된 다양체(多樣體) 역시 주체의 변화하는 양상을 잘 드러낸다. 남궁환의 회화는 작가 자신의 자화상일 뿐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모든 이들의 실존적 순간을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의 회화가 지닌 독특한 추상적 특질은 무엇보다도 보편적인 정신의 얼개를 드러내는 수많은 재현적 시도들 가운데서도 매우 독보적인 것이다. 그것은 처음에는 놀라움과 두려움을 자아내지만 이내 그것의 요소들이 자아내는 공감으로 인해 더욱 강력한 유사성과 반영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남궁환이 'transmigration'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은 마치 장구한 시간 동안 끊임없이 매번 다르게 태어나면서 다시 스스로를 갱신(更新)하는, 무한한 겹으로 무한히 중첩하는 다양체로서의 주체의 윤회를 의미한다. 그것은 표면 위로 솟아오르는 내부의 에너지로 인해 시시각각 표면의 모습을 바꾸는 초신성(super-nova)의 작렬하는 표면 같은 것을 떠올린다. 전통적인 소재와 재료를 이용하여 이러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작가의 작업모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히 고요하면서도 절제된 상태로 이루어져 있다. 마치 각각의 이미지들이 일종의 정신적 각인(刻印)인 것처럼 단호하고도 명확하게 종이 위에 투사되는 것이다. 고조(高潮)와 적요(寂寥), 이 두 가지 상태의 모순된 공존이 그의 작업에 그대로 기록된다. 아마도 윤회란 그런 것일 것이다 - 강렬함과 내밀함의 혼재와 같은 것. 남궁환이 새로운 유형의 회화적, 전통적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면 바로 이런 점에서라고 말할 수 있다. ■ 유진상

Vol.20091122f | 남궁환展 / NAMGOONGWHAN / 南宮桓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