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형상의 구축

권기범展 / KWONKIBEOM / 權起範 / painting   2009_1111 ▶ 2009_1117

권기범_AMBIGUITY-09-2_한지에 혼합안료_140×140m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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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1111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주말_11:00am~06:00pm

미술공간현 ARTSPACE HYUN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6번지 창조빌딩 B1 Tel. +82.2.732.5556 www.artspace-hyun.co.kr

자연의 관념적 실체와 의식의 관성 혹은 흐름 ● 권기범의 작업은 대략 유리꽃 시리즈(2004), 충돌 시리즈(2006), 중력 시리즈(2007)를 거쳐 근작의 모호한 형상 시리즈(2008 이후)에 연이어지고 있다. 영어로는 각각 Glass Flower, Crash, Jumble Painting, Ambiguity에 해당한다. 이 일련의 주제들은 그동안 작가의 작업이 변화해온 주기별 특정성에 대해 말해줄 뿐만 아니라, 작가의 작업 전체를 관류하는 생리적이고 개념적인 현상을 재구성할 수 있게 해준다. ● 이를테면 작가는 유리꽃 시리즈에서 유리와 꽃을 대비시킨다. 그리고 대비는 기하학적 형태와 유기적 형태, 인공과 자연, 도시와 자연, 문명과 자연의 대비로 확대 재생산된다. 서로 대비되는 극성의 개념을 세계의 존재방식을 이해하고 설명하고 재현하고 표현하는 도구로서 차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항 대립적 대비개념은 연이은 충돌 시리즈에서 서로 충돌하며, 그리고 Jumble Painting 시리즈에서 마침내 하나로 섞인다. Jumble은 화해와 혼돈의 양가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말이다. 대비되는 개념들이 알고 보니 같은 뿌리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의 인식일 수도 있고, 작가 개인적으론 일말의 개념상의 혼돈에 직면한 시기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Jumble Painting 시리즈에서 촉발된 상호간 이질적인 계기들의 섞임과 혼돈에 대한 인식이 근작의 모호한 형상 시리즈를 위한 사실상의 자양분이 되고 있다. 말하자면 대비와 비교와 분열에의 인식이 작업의 전반부를 지배했다면, 혼돈과 섞임과 유기적 통섭에의 인식이 근작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 실상 이항 대립적 개념을 도구로 세계를 이해하거나 설명하기는 쉽지만, 대개 그 이해나 설명은 단편적이고 일면적이기 마련이다. 이에 반해 통섭의 개념을 도구로 세계에 접근할 때 주체는 자칫 혼란에 빠질 수 있는데, 모든 차이 나는 계기의 지점들을 아우르는 혼돈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여하튼 작가는 세계의 존재방식에 대해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의 단계를 거쳐(엄밀하게 말해 세계를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데, 설혹 있다고 해도 그것은 대개 의심스러운 경우가 많다), 이제 좀 더 복합적이고 중층적이며 혼란스런 설명방식에 직면해 있는 것 같다. ● 유리꽃 시리즈. 유리꽃 시리즈에서 권기범은 깨어진 유리파편의 이미지와 꽃의 형상을 하나의 화면에 중첩시킨다. 여기서 유리파편의 이미지는 기하학적인 색면으로(자를 대고 그린), 그리고 꽃의 형상은 유기적인 선으로(엄밀하게는 전통적인 사군자에서의 난을 백묘법으로 그린 것으로서, 여러 겹으로 중첩시킨 한지에 충분히 스며들 정도로 먹을 올린 연후에 그 위에 낱장의 한지를 대고 손톱으로 그려 그 이면의 먹이 선으로 배어나오게 한) 각각 표현된다. ● 이 일련의 그림들에서 작가는 그 실체를 알아볼 수 있는 구체적인 어떤 꽃을 재현하는 대신 꽃으로 총칭되는 관념의 실체를 그리는데, 이러한 사실은 작가의 2004년 논문 「꽃의 형상을 통한 심상표현 연구」와도 상통한다. 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다만 자신의 관념을 투사하고 표상하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 관념은 덧없는 삶에 대한 자의식으로 표출된다. 이를테면 유리꽃의 개념(혹은 유리와 꽃의 초현실적 결합)은 전통적인 바니타스 정물화를 떠올리게 한다. 주지하다시피 바니타스 정물화에서 유리소재의 용기는 화려하고 장식적인 만큼 깨어지기 쉬운 허영심을 경고한다. 아마도 작가는 꽃이 아름다운 만큼이나 감각적인 아름다움의 덧없음을 경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권기범_AMBIGUITY-09-2, 3_한지에 혼합안료_각 90×90cm_2009

충돌 시리즈. 2005년 국제교환 입주 프로그램에 선정돼 중국에서 작업한 것을 계기로 작가는 향후 자신의 작업을 평면에서 더 나아가 영상과 설치작업으로까지 확장시킨다. 현지의 도심과 그 변두리의 정경을 영상으로 기록하고 편집한 일련의 작업들에서 작가는 서로 비교되는 이미지를 대비시키는 방법으로 상호간 이질적인 문화주체들 간의 소통문제(혹은 문화적 충격현상)를 다루는 한편, 차이 나는 개념의 지점들 간의 접점 가능성을 모색한다. ● 이와 함께 기왕의 작업에서의 대비개념을 바탕으로 상호간 이질적인 두 항 사이의 관계에 대한 관심을 표출한다. 이를테면 자연과 인공을, 자연과 도시 혹은 문명을, 유기적인 형상과 기하학적인 형상을, 연속성(그 자체 유기적인 흐름에 바탕을 둔 자연의 생리를 표상하는)과 불연속성(그 자체 고도로 문명화된 도시의 생리를 표상하는)을, 그리고 정적인 화면과 동적인 화면을 대비시킨다. 이처럼 대비되는 이미지를 하나의 화면 속에 병치하거나 중첩시키는 방식은 사실상 작가의 작업 전체를 지배하는 결정적인 코드로 보이며, 충돌 시리즈에서 그 경향을 극대화하고 전형화한 것이다. ● 이와 함께 특히 흥미로운 사실로는 자연을 소재로 한 영상작업에서 일종의 움직이는 사군자가 시도되고 있는 점이다. 수면에 이는 파문과 그 위에 드리워진 버드나무 가지가 어우러진 화면에서 자연의 유기적인 흐름이 암시되고 정중동의 정서적 관념이 감지된다. 전통적인 사군자에서 느껴지는 격조와 아취, 그리고 서정적인 분위기 그대로를 영상문법으로 옮겨놓았다고나 할까. ● 중력 시리즈. 진작부터 작가는 자연에 대해 재현적인 대상으로서보다는 관념적인 대상으로 이해해온 만큼, 자연성 곧 자연의 본질로 부를 만한 물리적이고 개념적인 현상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것이 중력이다. 말하자면 작가에게서 중력은 자연에서 발견한 자연의 고유한 성질인 것이며, 이로써 가급적 자연의 원리와 법칙에 작업의 초점을 맞추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이렇듯 중력이 자연의 원리며 법칙인 만큼 그 계기를 작업의 안쪽으로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효과와 같은 우연성이 개입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한편으로 우연성이라고는 했지만 그 자체 전적으로 무의지적 현상으로서보다는 일종의 의식적인 우연성, 계획적인 우연성에 가깝다. 이를테면 작가는 화면 아래쪽으로 흘러내려 굳어진 물감자국으로써 중력을 표현하는데, 물감이 반복적으로 흘러내리고 번지면서 만들어낸 우연한 흔적이 여러 겹의 레이어를 형성하고 있는 중층화된 구조의 그림을 보여준다. 그리고 전통적인 수묵화의 기본형을 선이라고 보고 그 선을 다변화하는데, 그 과정에 우연성의 계기와 함께 중력을 도입한다. 고무줄 다발(그 자체 중첩된 선들의 다발에 해당하는)이 자연스레 엉킨 형태 그대로 확대해 벽면에 드로잉하기도 하고, 고무줄 다발을 위에서 아래로 늘어트려 설치하기도 하고, 고무줄을 팽팽하게 당겨 고정시키거나 한다. 이렇게 공간에 세팅된 고무줄은 시간이 지나면서 탄성이 약해져 점차 아래로 쳐지게 되는데, 바로 중력의 작용현상을 가시화한 것이다. 이로써 작가는 자연현상(중력)을 도입해 전통적인 먹그림에서의 준(모필)을 재해석하는 한편, 그 형식을 벽면 드로잉과 설치작업으로까지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권기범_AMBIGUITY-09-4_한지에 혼합안료_90×90cm_2009

모호한 형상 시리즈. 권기범은 모호한 형상으로 명명된 일련의 작업에서 단편적인 이미지의 편린들을 모아 하나의 전체 형상을 일궈낸다. 이를테면 인체와 같은 유기적 형상을, 권총이나 하이힐 그리고 별과 같은 사물 형상을 재구성하는데, 그 이면에는 의외의 만남 내지는 예기치 못한 결합에의 인식(그 자체 초현실적 비전에 그 맥이 닿아있는)이 자리하고 있다. 이로써 하나의 전체 형상이 단순한 부분들의 총합으로 환원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이런 불일치에도 불구하고, 여하튼 부분 이미지들이 모여 하나의 전체 형상으로 재구축된 경우가 있는가 하면, 다만 상호간 이질적인 이미지의 편린들을 무분별하게 배열하고 배치해놓은 경우도 있다. 작가는 이 이미지와 형상들 그대로 시트지를 오려 붙여 벽면에 재구성하기도 하고(설치), 벽면에 직접 그리거나 한다(드로잉). 실루엣으로 드러난 부분 이미지들을 보면 여자의 가슴이나 손처럼 그 형태를 알아볼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추상적이고 암시적인 형태가 대부분이다. 보기에 따라서 그 형상들은 선사시대의 암각화 같고 상형문자 같다. 사실은 장기와 파편화된 신체의 부분 이미지들인데, 그것이 추상적인 기호처럼 보이는 이유는 신체의 부분 이미지들이 전체와의 유기적인 관계의 맥락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그 자체만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에 기인한 것이다(보통 사물에 대한 인식능력은 부분과 전체, 혹은 타자와의 유기적인 관계정보에 의존하는데, 그 관성에서 벗어날 때 사물은 구체적 대상성을 잃고 추상적인 기호처럼 읽힌다). 작가는 이 일련의 작업들을 벽면 드로잉으로, 그리고 타블로 작업으로 변주한다. 특히 타블로 작업에서 이미지의 편린들이 모여 중첩되면서 이미지들은 점차 최소한의 암시적인 형상만을 남긴 채 그 이면으로 잠수한다. 실루엣과 실루엣이, 형상과 형상이 중첩되면서 그 세부가 지워지는 것인데, 그 자체 형상이 평면 속에 해체되고 환원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평면성이 강조된 단색조의 화면이 미니멀리즘과 팝아트의 경향성이 하나로 융합된 것 같은 인상을 주는데, 그 이면에선 일종의 종합적 인식 내지는 방법론이 엿보인다. 이와 함께 작가는 일부 그림에 안료와 함께 실제의 신체 추출물을 섞어 그리는데, 이를테면 자신의 혈액과 할머니의 유품을 화장한 재를 소량 섞는다. 이러한 행위에 대해서는 다만 상징적 제스처로 지나쳐 볼 수도 있으나, 적어도 이를 통해서 이 작업이 인체에 대한, 인간의 존재론적 조건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유발되고 촉발된 것임을 강조하는 자의식의 표출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작업들에 작가는 수집 혹은 채집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아마도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상상의 조각들을 채집해 재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때의 조각들은 규정되지 않은 가변적인 가치체계(혹은 인식론적 틀)에 연유한 이미지들로서 현상한다. 이 작업을 계기로 작가의 관심의 축이 자연성(혹은 자연의 본질)으로부터 인간의 존재론적 조건으로, 그리고 재차 무의식으로 옮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라 점차 모호한 형상에 대한 인식이 그 심도를 더해가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그 강도는 이 타블로 작업들에 연이어 등장하는 일련의 연필 드로잉에서 본격적으로 개화하지 않을까 싶다. 흡사 의식의 흐름기법이나 자유연상기법을 떠올리게 할 만큼 사유의 흐름과 표출에 막힘이 없고, 자유자재로 만나지고 예기치 못한 방법으로 결합하는 이 친근하면서도 생경한, 유기적이면서도 섬세한 이미지들이 작가의 지금까지의 작업과는 사뭇 다른 생리의 지점을 예감케 한다. ■ 고충환

권기범_AMBIGUITY-Aoki-09-1_한지에 혼합안료_90×90cm_2009

모호한 형상의 구축에 대하여 ● 나는 인간의 삶 속에서 존재하는 여러 가지 형상과 현상 그리고 사고의 독특한 이미지를 극대화시켜 혼합되어진 이미지들을 평면과 공간 속에 다각적으로 표현한다. 이 형상들은 대부분 존재하고 있는 물상들의 이미지와 조형감을 가지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확한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애매모호한 이미지들이 많다. 이것은 기존에 있었던 사상과 정의들에 의문을 던지는 이 시대의 질문들이며 모든 것을 분명하게 정의 내릴 수 없는 진행형의 가치 체계에 기반을 둔 표현들이다. ● GLASS FLOWER 시리즈는 문인화의 소재인 화훼의 잎들을 총체적으로 집적시켜 현실 속에 존재하는 이항대립적인 개념을 표현한 꽃과 인물의 이미지이다. AMBIGUITY 시리즈는 인체의 미세한 부분을 단면화 시켜 다양한 형상을 채집한 후 직관적인 조합의 원리를 바탕으로 인체가 아닌 또 다른 모호한 형상을 구축하는 작업이다. 이 두 가지 작업에서 보이는 형상들은 꽃, 인물, 정물과 기호 등 다양한 이미지를 가지게 되지만 작업의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의 형상과는 상관없는 또 다른 이미지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결국 인체의 부분들을 묘사하여 인간의 모습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입자로 형성되는 존재태의 원리를 이해하고 이를 인체와 화훼의 형상을 통해 또 다른 이미지로 가시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모든 이미지들이 익숙하지 않은 애매모호한 형상성을 가지게 된다. 이것은 이 시대가 가지는 모호한 가치 체계에 대한 접근이며 시대적 가치 개념을 시각적 이미지로 전환시키는 과정이다. ● 끝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기존의 가치들은 동 시대에 그 의미가 변하고 있고 앞으로도 많은 변화와 전이가 예상된다. 내가 그리는 이 혼란한 이미지들은 이렇게 규정지어지지 않는 가변적 가치체계들에 그 근간을 두고 있으며 정의되어 질 수 없는 동시대의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한 두터운 믿음이기도 하다. 작은 인체의 파편들이 집적되어 큰 파노라마의 형상을 이뤄내듯 나의 작업 속에 가시적인 물성은 분석적 해체와 결합의 과정을 통해 예상하지 못했던 또 다른 형상과 의미를 찾아 총체적 이미지를 구현한다. ■ 권기범

권기범_JUMBLE PAINTING-09-1_벽면에 회화_400×1500×320cm(Print 84×172cm)_2009
권기범_JUMBLE PAINTING-09-2_벽면에 회화_360×3100cm(Print 84×131cm)_2009

Regarding the Construction of the Ambiguous Form ● I express in various angles, on a plane as well as in space, the images that were mixed by maximizing the unique images of various forms, phenomena, and thoughts that exist in the life of a human. Although most of these forms have the image and shape of objects in existence, when viewed in detail, there are many images that are ambiguous and without definite form. This represents questions of this age thrown at the preexisting thoughts and definitions, as well as expressions based on the on-going value systems that are unable to define everything clearly. ● The GLASS FLOWER series consists of images of flowers and persons that express the binary concepts that exist in reality by generally accumulating the flower pedals that are the subject matter of paintings of various literary artists. The AMBIGUITY series is a process of constructing another Ambiguous form apart from the human body based on the intuitive principle of compounding after collecting various forms by sectionalizing the minute details of the human body. The forms seen in these two processes have various images including flowers, people, still life, as well as signs. However, if the different parts of each process are observed in detail, they are full of other images unrelated to these forms. Ultimately, instead of explaining the human features by describing the different parts of the human body, it is about understanding the principle of existence composed of numerous particles and attaining another image through the forms of flowers and the human body. All images end up with unfamiliar, ambiguous forms during this process. ● This is an approach towards the vague value held by this age, as well as a process of turning the value concept of the age into a visual image. Preexisting values are changing in their meaning in the same era throughout the endless flow of time, and a great amount of change and transition is expected in the future. The confusing images that I draw are rooted upon the variable, unstimulated value systems, as well as a firm belief of another possibility of the same era that cannot be defined. Just as the fragments of the small human body accumulating and accomplishing the form of a large panorama, the viable properties of matter in my work embody a whole image in search of another unexpected form and meaning through the analytical process of dissolution and combination. (19 May 2009) ■ KWONKIBEOM

Vol.20091111a | 권기범展 / KWONKIBEOM / 權起範 /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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