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미展 / KIMYOUNGMI / 金英美 / painting   2009_1008 ▶ 2009_1031 / 일요일 휴관

김영미_Book Club at the Library(서가의 독서클럽)_캔버스에 유채_130×261cm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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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 블로그_blog.naver.com/painter1234

초대일시_2009_1008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pm~06:00pm / 일요일 휴관

필립강 갤러리_PHILIPKANG GALLERY 서울 강남구 신사동 533-13번지 (가로수길) 부강빌딩 3층 Tel. +82.2.517.9014.9015 www.philipkanggallery.net

소통을 위한 형태와 색채의 교직(交織) ● Ⅰ. 김 영미는 실험적인 의식을 지닌 작가다. 회화를 기본으로 삼지만 작품을 펼치는 방식은 비단 평면뿐 아니라, 레코드판을 이용한 설치에서부터 일상적 오브제의 표현과 조각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작업을 전개한다. 이 모든 방식은 어떻게 하면 소재로부터 받은 작가의 회화적 영감을 가장 극대화하여 효과적으로 표현하느냐는 문제와 직결돼 있다. 작업에 임하는 그의 태도가 예술에 대한 치열한 열정을 보여주는데, 이는 드로잉을 바탕으로 사물의 본질에 육박하고자 하는 작가의 예술의욕(Kunstwollen)을 보여준다. ● 작업실 구석에 수북이 쌓여있는 드로잉 작품 더미들은 드로잉에 대한 수련의 정도가 어느 수준에 이르는지를 알려주는 객관적 지표다. 실제로 작품을 통해 확인한 바에 의하면 실로 엄청난 수의 드로잉 작품에서 보여주는 내용 또한 양에 부합하는 그 이상의 질적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 드로잉에 대한 김영미의 관심과 시간의 투자는, 그의 자신이 글 속에서 밝히고 있듯, 드로잉이 단순히 본격적인 그림을 그리기 위한 밑그림 정도가 아니라, 독립된 회화의 한 장르로서의 중요성에 대한 믿음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그녀의 작품에서 중요한 기초를 이루고 있으며, 그것을 토대로 오늘날 보는 것과 같은 탄탄한 조형의식이 갖추어졌으리라고 짐작한다. 얼핏 보기에 현란해 보이는 그녀의 그림들은 집요함으로 그려낸 활달한 서예의 필력과 드로잉을 바탕으로 대상을 즉발적인 필치로 직조해 낸다. 드로잉을 할 때 그녀가 즐겨 다루는 재료는 연필인데, 때로는 먹과 콘테가 곁들여지기는 수많은 드로잉은 다양한 표현기법이 뒤따라 특유의 느낌과 맛을 잘 드러내고 있다. 사실 붓 그림은 서예가 일종의 수행으로 여겨지듯 그린 사람의 수련정도를 숨김없이 보여주는 회화의 장르다. 붓은 그만큼 다루기가 까다롭고, 또 거기에 덧붙여 작가의 인격이나 문기(文氣)가 실리기 때문에 전공한 사람이 아니라면 기피의 대상이기도 하다. 김영미가 그런 붓·그림에 도전하여 현재와 같은 수준의 드로잉의 세계를 구축하였다고 하는 사실은 일단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김영미_Jeff Koons' House on House(쿤스의 집위의 집)_154×60.5cm_2009
김영미_기념일_캔버스에 유채_2009

Ⅱ. 그 다음 살펴봐야 할 요소는 색채다. 색채는 영성적인 분위기와도 관계가 깊다. 그러나 그녀가 구사하는 색채를 도식적으로 한국의 전통 오방색에 대입하여 해석하는 태도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내가 보기에 김영미의 색채는 그 보다는 인간이 지닌 근원적인 감정들, 예컨대 슬픔, 고통, 연민, 사랑, 우수, 권태, 분노 등을 표출하는 매우 중요한 기능을 수반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색이야말로 선과 면에 의해 형성되는 형태 못지않게 감정을 전달해 주는 중요한 조형 요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영미가 구사하는 색채의 특징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그것이 대상의 형태와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를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 김영미의 그림에서 인물은 자화상이나 첼리스트를 그린 경우에서 볼 수 있듯, 단독으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작품들에서 두 사람 이상 다중의 복수로 나타난다. 이는 그녀가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증좌다. 그런데 한 가지 두드러진 특징은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소통보다는 오히려 고립감에 휩싸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이 특징은 그의 그림들 전편에서 검출되는 것인데, 이 단절의 분위기는 정면을 향하고 있는 얼굴과 몸의 위치와 시선에서 발산된다. 관람객은 그처럼 정면을 향하고 있는 포즈에서 소통보다는 단절의 느낌을 강하게 인식하게 된다. 그러한 형태에 푸른 색, 붉은 색, 초록색 등의 단색조와 혹은 적과 청의 강한 보색이 첨가됨으로써 그림은 때로 그로테스크해 보이거나 영성적인 특징을 띠게 된다. 여기서 '영성적(靈性的)'이라고 한 표현의 진의는 '샤마니스틱'에 가까운 뜻을 지니고 있으나 그 보다는 인간의 의식에 내재된 근원적인 감정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김 영미는 그러한 감정을 과연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우선 주목해야 할 것은 오랜 기간에 걸쳐 쌓은 드로잉의 탄탄한 기본기에 토대를 둔 인체의 표현을 의도적으로 허물고 있다는 점이다. 즉, 인체에 대한 유려한 묘사를 거부함으로써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역설적인 표현술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그녀의 그림을 표현주의적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는 비평적 단서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김영미가 그려내는 현실은 구체적으로 이 땅의 현실이다. 등장인물도 그렇고 소재도 그렇다. 그녀가 그려내는 현실은 '여기 그리고 오늘(here and now)'이다. 그녀는 자신의 몸이 터 잡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 대해 발언하고자 하며, 애정 어린 시선으로 이웃들을 바라보고자 한다. 그러나 그러한 애정에도 불구하고 종국에 그녀가 확인하는 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깊이 드리워진 단절의 심연이다. 이 심연은 그녀의 그림에서 화해나 해소가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인간조건으로 상정되고 있다. 김영미의 그림은 일단 이러한 인간조건을 암시적으로 드러내는데 성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예술가의 역할이 무기력이나 상황의 용인이 아니라 적극적인 소통의 의지라고 한다면, 김영미의 그림이 풍기는 강한 인상은 일종의 영적 소통과 관련돼 있으며, 정신적 교감을 암시한다. 그녀는 많은 수의 작품에서 칸막이 구조를 중요한 형식으로 차용하고 있는데(「사유 공간-소통」, 「사유 공간-커플」 등), 이는 오히려 작품이 지닌 강력한 비의적 힘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 즉, 화면 중앙에 있는 푸른 색조의 배경을 바탕으로 한 인물상들의 좌우에 칸막이를 설정하고 간략한 드로잉으로 인물을 묘사한 것은 주제를 보완하는 일종의 참고는 될 수 있을지언정 사족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보다는 오히려 「사유 공간-너의 미래의 방」이나 「사유 공간-때론 돌아보지 마세요」에 설정된 폐쇄적 공간 구조가 주제를 더 효과적으로 드러내는데 조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영미_Gaze(응시)_캔버스에 유채_116.5×72.5cm_2009
김영미_소풍(Picnic)_캔버스에 유채_72.7×91cm_2009

Ⅲ. 인간의 내면 깊숙이 내재된 근원적인 감정을 폭발적인 색채와 이미지로 드러내는 작업이 바로 김 영미 회화의 특징이다. 그의 그림에서는 대상에 대한 작가의 연민과 애정이 진하게 읽혀진다. 최근작품들 가운데 책을 소재로 한 그림에서는 차분히 가라앉은 색채감과 엄격한 화면구조로 변환되고 있지만, 이는 그녀의 전 작품을 관류하는 공통된 정서라고 할 수 있다. 그녀의 그림에서 흔히 눈에 띄는 해체적인 인체의 이미지는 「생각하는 한 쌍의 남녀(Thinking Couple)」(2007)에서 보는 것처럼 탄탄한 인체의 묘사와 세련된 색채의 구사를 초월하여 나타난 것이다. 나는 「사유 공간-사색」(2008)에서 보는 것과 같은 광포한 표현이 그녀가 구사할 수 있는 세련된 표현을 떠나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짐작컨대 거기에는 어떤 계기가 있었을 것이다. 「사유 공간-사색」, 「사유 공간-뒤안길」, 「사유 공간-현재」와 같은 일련의 「사유 공간」 연작은 부유하는 것 같은 인체의 광포한 이미지를 통해 인간의 존재에 대한, 그리고 그것이 가져다주는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들에 대해 재고하도록 우리의 손을 이끄는 것 같다. 그것은 많은 부분이 인체 표현의 의도적인 조악함이 주는 강렬한 시각적 충격에 기인하는 동시에 일정 부분은 음산한, 따라서 영성을 극대화하는 색채감에서 비롯된다. ● 최근 들어 김 영미는 소재와 화풍에 일련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동물을 의인화하여 그린 그림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녀는 이 우의적인 화풍의 근작들을 통해 은유된 소, 당나귀, 개, 부엉이, 원숭이, 새 등등의 동물들을 등장시킴으로써 그 이전의 작품들에 나타났던 단절의 심연, 즉 인간 소외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도를 보여주고자 한다. 이는 근작에 나타나고 있는 차분히 가라앉은 필법과 난색 계열의 사용에서 뿐만 아니라, 도시에 내리는 인간, 소풍이라든지 독서클럽과, 소풍을 떠나요, 기념일, 서가의 즐거움 같은 주제에 잘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부응이라도 하듯 사물의 형태 또한 구체적인 모양새를 갖춤으로써 풍자내지는 우의화(愚意畵)에 걸 맞는 구체성을 띠고 있다. 김영미의 그림이 보여주는 형태와 색채의 교직은 그의 작품세계가 현실의 용인이나 안주보다는 충격적인 표현을 통해 소통 부재의 현실을 돌아볼 것을 권유하고 있는 듯하다. ■ 윤진섭

김영미_Different Thoughts(동상이몽)_캔버스에 유채_117×73cm_2008

대상을 재빨리 포착 화면위에 옮기는 작업들이 근간이 되어 대부분 많은 작업들이 작품으로 만들어진지 어느덧 20년이 훌쩍 넘었다. 그렇게 드로잉을 바탕으로 기본적인 작품생성과정이 인간의 감정이든 동물의 감정이든 그 부분을 담아 생명력 있는 작품으로 형상화시키려 했던 것이다. 가끔씩 그리는 것에 대한 통속적인 카르마 대신에 인간과 동물에 대한 무대 밖 동정을 무대 안 주인공으로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 핵심적으로 다룬 대상들은 아무래도 인간과 동물이 가장 활발하게 다루어져 왔다. ● 따라서 어떤 대상을 화면 위에 포치하여 그릴 때 때때로 자칫하면 화면을 편 가르기 십상이다. 사람과 동물이라는 이분법구조아래 절대적으로 인간만이 여타 생명체에 비해 위대하다는 인간의 편중된 시각을 배제시키고 한쪽으로 쏠리는 극단적 시각을 해체시켜 인간의 반대편에서 살아가는 다른 생명체에 대한 존재감에 무게를 두고 작품을 풀어왔던 것이다. 이는 가능한 우리 인간의 시점이 아닌 동물시각으로 자연스럽게 형상을 통한 메타포를 이입하여 작업의 방향을 이끌어왔다. ● 생성 공간위에 펼쳐지는 일상은, 때때로 아주 사소한 일이겠으나 그 작품들이 우리 인간에게 주는 일종의 기침을 마친 상태의 평온과 안온함을 표현하고 싶은 것이 작가로서의 바램이다.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 언제까지나 은퇴하고 싶지 않은 인간의 열정이나 욕망을 동물에게 이입하여 우리 삶의 한 부분이라도 생동감 있는 동물의 형상을 통한 인간가치의 승화된 구현 같은 일종의 인간해체다. ● 그 구원이 어디쯤에서 출발했는가는 딱히 기억해 낼 수 없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동물을 보는 시선이나 생명체에 대한 경외감은 상당히 깊이 있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새를 통한 자유와 그들과 함께 날 수 없던 인간의 소소한 슬픔까지도 간헐적으로 동물을 통해 우리 인간들의 고독이나 슬픔을 읽어내고자 했다. 인간의 존재마저도 어쩌면 동물을 통한 또 다른 형상이며 그것은 동물로 변장시킨 인간사회를 그림으로서 사유공간에 채집된 일련의 인간사의 한 드라마를 흥미롭고 재미있게 그려 나가고 있다.

김영미_Family(가족)_캔버스에 유채_91×61cm_2009

드러나지 않는 삶이 더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이 작품의 방향은 환하게 웃을 것이며 우리 인간처럼 더 깊이 있게 움직이고 풍자화 되고 의인화 될 것이다. 변화무쌍한 인생의 무대를 모델삼아 귀엽고 사랑스런 동물인 나귀나 개, 소, 말, 새 등 의인화된 동물들의 캐릭터를 이미지로 채집하여 인간내면을 화면 위에 자연스럽게 포치시키고 그리는 작업이 대부분이다. ● 초창기 작품들은 거의가 동물을 개별적으로 그리고 나열하여 일종의 동물원 창살 넘어 있는 구경꾼의 시각에서였다. 동물들이 가지고 있는 인간보다 더 드라마틱한 사회와 때때로 흥미진진한 그들 세계가 있었을 것이다. 동물을 통한 자연의 구원과 성장하지 못한 인간의 몸에서 풍기는 미성숙한 부조화의 밸런스라든가, 동물 하나하나에 깃들어있는 천진난만한 행동을 형상화시켜 사람으로 분장시켜 인간사회를 그려나가고 있다. ● 12년 전부터 우연한 기회 매일 산책을 하게 되었는데, 산책 중에 만나던 동물무대를 우리 인생의 무대로 단지 옮겨놓았을 뿐이다. 인간이 사는 이 무대 위에 현재성을 시발점으로 인간의 본성과 행동을 적나라하게 역할 바꿔 동물의 무대로 표현영역을 옮겨 놓은 것이다. 때때로 인간을 등장시키거나 다시 동물을 등장시켜 인간처럼 생각하고, 책을 보거나, 여행을 하거나, 하늘을 날거나, 소풍을 간다든지,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린다든지, 독서를 하는 일상적인 소소함까지도 작품의 주제로 끌어들이고 있다. 여기에 이솝우화를 곁들인 또 다른 인간을 의인화하는 그런 작품을 그리고 싶은 욕심을 하나 더 추가하고 있는 요즈음이다. 어차피 우리 인간사는 동물이든 인간이든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누구나 다 중요한 생명체이므로 말이다. ■ 김영미

Vol.20091017d | 김영미展 / KIMYOUNGMI / 金英美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