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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1006_화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3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현대 강남 GALLERY HYUNDAI GANGNAM SPACE 서울 강남구 신사동 640-6번지 Tel. +82.2.519.0800 www.galleryhyundai.com
"당신은 무진읍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 우리는 우리가 찾아가는 집에 도착했다. 세월이 그 집과 그 집 사람들만은 피해서 지나갔던 모양이다. 주인들은 나를 옛날의 나로 대해주었고 그러자 나는 옛날의 내가 되었다.(김승옥, 『무진기행』)
'오래된' 것은 대체로 자연스럽게 잊히는 법이지만, 개중에는 잊히지 않고 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며 현재에 끊임없이 개입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 대상으로 한 작업에서 작가들이 쉽게 기대는 지점은 사라지는 것에 대한 과잉 감정 이입으로 발생하는 막연한 낭만적 향수이다. 이러한 낭만적 향수는 달콤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매우 위험하다. 어떤 것은 사라지고, 어떤 것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필연적인 편견은 무모한 개발 논리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역설적이게도 무모한 개발 논리에 악용되는 묘한 상황을 야기한다. 결국, 낭만적 향수라는 달콤한 포장은 문제를 총체적으로 통찰하지 못하게 한다. 청계천이 그러했으며, 황학동이 그러했으며, 근자에는 숱한 뉴타운 건설 현장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러하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조국 근대화'라는 미명아래 지금까지도 우리 귓가를 떠나지 않는 포크레인 삽질 소리에는 필연적으로 이러한 모순적 시선이 따르기 마련이다.
다큐멘터리와 초현실의 사이에서 ● '오래된(혹은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막연한 낭만적 향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냉정한 자세로 감정이입 자체를 배제해야한다는 전제 하에 첫째, 대상을 객관적 존재(삶의 부박한 실재를 누출하는 것이 아닌)로 바라보거나, 둘째, 대상을 현실 세계에서 초월시켜 환상적 세계에서 재인식해야 한다. 정재호는 그간의 작업에서 잊히지 않는, 잊힐 수 없는 것을 찾아 현재와 과거의 내밀한 길항 관계를 반복적으로 추적했다. 여기서 그가 주목한 것은 현재를 대변하는 인간의 '삶'보다는 인간(현재)과 유령(과거)이 공생하는 '삶의 체취'이다. ● 정재호는 이렇게 획득된 대상을 객관적 존재로 바라보거나, 환상의 세계에서 재인식하면서 자신의 회화적 완결성을 구축했다. 『오래된 아파트』(금호미술관, 2005)에서는 1970년대 광폭한 개발의 산물인 시민 아파트를 다큐멘터리 접근법으로 조사·관찰해 객관적 존재로 다루었으며, 『황홀한 건축』(관훈갤러리, 2007)에서는 단층 주택을 중층적으로 쌓아올려 초현실적 집적물로 재구성했다. 그렇다고 각각의 개인전에서 한 가지 방법론으로만 일괄한 것은 아니다. 어디에 무게 중심을 두는 지는 다르지만 상충하는 것처럼 보이는 '다큐멘터리 접근'과 '초현실적 접근'은 그의 작업에서 상호보완적이다.
정재호는 '현실'이라는 자료를 철저한 조사를 통해 배면에 깔고 있지만, 그것을 직접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회화 자체가 참혹함을 참혹함으로 그려야 하는 것이 아니고, 회화가 사실적으로 대상을 재현하다고 그 대상이 '현실'의 영역에 들어가는 것 역시 아니다. 또한 '현실'을 리얼하게 제시하지 않았다고 해서 '현실'의 맥락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우선, 그의 작업에서 '현실'이 직접 드러나는 것은 「회현동 기념비」, 「대성 맨션」, 「천변 호텔」, 「청계 타워」, 「창신 타워」 등의 작품 제목과 사실적 묘사에 기반을 둔 건물의 구조이다. (정재호의 작업에서 작품 제목과 화면은 동어반복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는데, 우선 작품 제목은 '현실'에서 접할 수 있는 건물 그 자체를 지시한다면, 화면은 '현실'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것은 현실과 삶의 체취가 어우러져 '초현실적'이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오히려 '현실'의 맥락을 훌쩍 벗어난다. 단층 건물이 「적산 타워」, 「현대오락장」에서처럼 반복 혹은 집적하여 거대한 몸집으로 구축하거나, 「오래된 아파트」 연작에서처럼 가시적 세계에 비가시적 세계가 절충한다. 이러한 태도는 '골기(骨氣)'라 부를 수 있는 것으로 즉, 사진이 포착한 가시적인 표면의 재현이 아니라 표면에 스며든 '삶의 체취'를 포착한 것이다. (건물을 그리는 작업 이외에도 정재호는 낭만적 향수를 자극하는 소재인 '누군가 떠난 빈 집에서 발견한 사소한 일상의 소품'을 적극 활용한다. 그러나 정재호는 이 사물을 단순히 '버려진 것' 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을 다룰 때와 마찬가지로 이 소품이 내재한 지난 시간의 '삶의 체취(내력)'를 기록한다.)
아버지의 날, 그리고 나의 날 ● 프로이트에 의하면, 사소한 말실수든 보다 심각한 증상이든 반복은 억압된 것의 귀환이다. 『오래된 아파트』, 『황홀한 건축』에서 정재호는 '오래된'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릴 법한 대상이 반복적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앞서 살펴봤듯이 정재호는 '오래된' 대상 그 자체보다는 그것들의 '삶의 체취'에 방점을 둔다. 그렇다면 정작 그의 작업에서 반복되는 것은 '오래된' 대상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 삶의 주변에서 기거하며 체득한 그들의 '삶의 체취'이다. 이번 『아버지의 날』은 그간 반복적으로 사용했던 (그러나 '현실'에 중심을 두면서 다소 부가적으로 사용했던) '삶의 체취'를 전면에 드러낸다. 이번 전시 작품의 근간은 195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의 기록 사진이다. 일본식 건축물인 조선은행 군산지점, 6·25의 상처를 간직한 노동당사의 벽면, 평양 시내, 취재를 위한 경비행기, 제1공화국 선거, 경부고속도로 개통식, 1980년 5월의 전남도청, 실미도, 신촌역, 동두천 등 한국현대사의 굵직한 얼개에서 선택한 사진이며 그것들은 과거에는 존재했으나 현재는 사라진, 그럼에도 현실에 끊임없이 개입하는 유령과 같은 이미지이다. 그러나 작품은 이러한 현실에서 '훌쩍' 벗어난다. 이전 작업들과 다르게 제목도 특정 대상을 지시하지 않으며, 화면 역시 특정 대상을 지시하는 요소는 삭제했다. 「지지자들」에서 철교에 걸려 있는 선거 플랭카드의 텍스트를 지웠으며, 「종점」의 건물은 실미도 군인들이 탈취한 버스가 마지막으로 멈춰서 자폭했던 유한양행 건물이지만, 그 이름 역시 지웠으며, 취재용 경비행기를 그린 「새장」에는 신문사의 로고를 지우고, 비행장을 폐허로 만들었다.
1980년 계엄군이 점령한 전남도청을 찍은 사진에 기반을 둔 「휴가」에서는 계엄군이 지워지면서, 모호한 시간대를 지시한다. 더 나아가 그 사진과 관련이 없는 다양한 요소(사진과 다른 시간대의 이미지, 사진과 다른 공간의 이미지, 그리고 작가의 상상력)를 통해 재조합한다. 국제적인 것의 동경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광화문 국제극장 사진에 기반을 한 「인터네셔널」에는 사라진 건물을 복원하고 전후 불안한 시대상을 담은 「오발탄」과 국제극장의 마지막 상영작인 「사막의 라이언」을 한 화면에 담았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실제 동두천의 건물과 한국전쟁의 이미지, 그리고 최근 동두천에서 발생한 사건 등의 이미지를 한 공간에 중층적으로 다룬다. 이와 같이 이번 작품은 그저 특정 시간과 공간을 단순히 유추할 수 있을 정도의 최소 정보만이 남아 있는 모호한 공간이다. 즉, 화면의 시공간은 특정 재현물이 아니라, 기억을 환기시키는 장치이다. ● 『아버지의 날』은 모호한 시·공간을 폐허로 제시한다. 그것은 마치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며 위안과 불안이 교차했던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에 등장하는 무진의 특산물 안개와 유사하다. 『무진기행」의 안개는 이승의 한(恨)을 품은 "여귀(女鬼)가 뿜어내놓은 입김" 같은 것으로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 다. 그러기에 안개는 아무리 헤쳐나가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위력을 지닌다. 답답하고, 단조로운, 그리고 벗어나려고 해도 그럴 수 없는 무기력한 혼돈이 『아버지의 날』 전체에 드리워져 있다. "기억하지 않는 공간, 기억을 필요로 하지 않는 공간, 또는 끊임없이 기억을 삭제하려는 의도 속에 더 이상 아버지들의 언어는 기거할 곳이 없어졌다.(작가노트)"는 작가의 말은 (아버지의 언어뿐만 아니라) 자신의 언어를 상실한 자괴감에 찬 작가의 고백으로 들린다. 1960년대 윤희중이 겪었을 한국사회의 혼돈과 불안에서의 무기력과 부끄러움이 2009년 정재호에게 중첩된다. 그러기에 『아버지의 날』은 지금 여기서 말하지 못하는 것을 아버지의 목소리를 복원하여 내뱉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무진읍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 이대범
Vol.20091010f | 정재호展 / JUNGJAEHO / 鄭載頀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