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90910c | 김철환展으로 갑니다.
작가와의 대화_2009_1017_토요일_07:00pm
관람시간 / 24시간 관람가능
작은공간 이소 대구시 남구 대명3동 1891-3번지 B1 Tel. +82.10.2232.4674 cafe.naver.com/withiso
당신이 생산한 것 ● 현대사회라는 집단과 도시라는 복잡하고 바쁜 공간 속에서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것은 매우 좁고 단편적인 인식만이 존재한다. 왜냐하면 과정이 배제됨으로써 결과적인 물질이나 왜곡된 사건들이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전부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고기를 먹으면서도 그것이 한 생명의 죽음을 통해 얻은 것이라 느낄 수 없고, 매일 쌀밥을 먹으면서도 그 쌀이 오랜 시간 비바람을 견뎌낸 결실이며, 또 다른 생명의 씨앗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확인할 수 있는 법속의 증거만이 사건과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 잣대가 되고, 누군가의 죽음도 잠깐 스쳐가는 동정과 사건 이상이 되지 못한다. 책 속의 활자에서나 그 인식을 대신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경쟁 속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 외우는 답안이거나 인문학적 소양을 과시하기 위한 단편적인 지식일 뿐이다. 모든 것이 철저하게 과정을 은폐한 채 진열되어있으며 꾸며진 겉모습만이 우리를 자극한다. 버튼 하나로 해결되는 이토록 편리한 세상은 모든 과정과 순환의 인식으로부터 우리를 폐쇄시켜 버린다. 그러한 인식이 배재되어 버림으로써 우리는 사회가 일방적으로 만들어낸 이미지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삶의 의미는 사회에서 도태된 허무주의자들이나 내뱉는 허황된 이야기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 앞에는 마땅히 이루어야만 하는 사회적 위치와 재물만이 삶의 유일한 목표로써 덩그러니 놓여있다.
머리카락, 손톱, 성기털, 귀지, 껍질, 비듬, 각질... 누구나 한번쯤 눈살 찌푸리며 그러한 인체의 찌꺼기들을 치워본 적이 있을 것이다. 혐오스럽고 더러운 불순물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 찌꺼기들은 분명 우리 몸의 일부분이였고 인체에서 나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것들이다. 인체에서 떨어져나가는 순간 나와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 불결한 물질로 치부되어 버리는 것은 왜일까. 만약 머리카락 한 묶음이 일상적인 공간에 놓여있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면 우리는 수많은 상상을 하게 된다. 머리카락을 자른 행위, 머리카락이 잘리게 된 경위, 머리카락과 연관된 이미지, 상황, 사건들이 스쳐가고 상징화된 섬뜩함이나 공포, 불결함이 그 사람의 심리로 전달되게 된다.
그것은 머리카락 자체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기억되어진 사회적 이미지, 즉 살아오면서 굳어버린 습관적 인식이다. 작가는 머리카락을 귀중한 듯 보이는 함 속에 넣음으로써 이러한 여러 가지 사회적 이미지를 차단시키고 있다. 즉 불쾌한 사회적 이미지가 침투할 수 없는 특별한 의미의 사물로 탈바꿈시킨다. 손톱, 귀지, 껍질, 비듬, 각질 등과 같은 인체의 찌꺼기들도 마찬가지로 함 속에 들어가면서 섬뜩함, 더러움, 사소함, 쓸모없음의 굳어져 있는 사회적 이미지를 차단하거나 반전시키고 있으며, 이러한 과정에 의해 우리는 사회적 이미지가 아니라 작가가 제시한 사물 그 자체를 바라보고 되고 그 사물을 사유하도록 권유받는다. ● 대학시절 몇 날 며칠의 밤샘 작업 후 집으로 돌아와 씻으려고 욕실에 들어가 앉아있다 보니 향긋한 비누 향과 대조적으로 몸에서 나는 악취를 느꼈다. 그건 많이 배운다고, 착하다고, 부자라고, 부지런히 산다고 해서 안 나는 것이 아니란 걸 그때 깨달았다. 비록 왜 사는지에 대한 답은 얻을 수 없었지만, 그 답을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날 이후 알게 되었다. 그건 깨어 있는 정신으로 최선을 다해 살 때에만 가능하다는 것을 말이다. (김철환)
작가에 의해 권유받은 사유는 철학적 고민을 생산할 수 있는 특별함이라기보다 오히려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데 있다. 여기서 말하는 당연하고 자연스럽다는 것은 사회적 이미지를 걷어내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것, 세계가 돌아가는 공통된 움직임, 모든 것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일련의 과정과 그 사라짐이 또 다른 새로움을 만들어낸다는 어떠한 순환을 말한다. ● 순환은 작가가 말하는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작가의 예술행위와 작품 자체가 모두 그 순환의 과정 속에 위치한다. 이러한 특징은 작가의 이전 작업에서 선명하게 나타난다. 이전 작업 「봄을 보내며」, 「숲을 청소하다」, 「피라미드」는 모두 자연물을 이용하여 특정한 행위와 형상을 만들고 있는데, 만들어진 행위와 형상이 시간과 자연의 힘에 의해 사라짐으로써 어떠한 순환의 과정을 드러내고 있다. ● 그것은 세계를 해석하는 작가의 이야기이자 작품과 작가의 예술적 행위 자체를 그 순환의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최근 작업에선 조금 다른 양상을 띄긴하지만 여전히 그 형태를 간직하고 있다. 두 가지 과정, 즉 인체에서 생겨나는 찌꺼기를 끊임없이 기다리고 모으는 과정과 그것을 담기위한 함을 준비하는 과정은 동시에 이루어진다. (기다리는 과정에서 작가는 인체의 순환과정을 끊임없이 인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두 과정이 만나게 되는 지점이 작품이 비로소 완성되는 지점이다. 작가의 전시 타이틀 『내가 생산한 것』은 예술적 생산 활동과 인체의 생산 활동 모두를 포함하고 있으며 둘을 별개의 것으로 구분하거나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함 속에서 동일 시 되고 있다.
작가의 작품을 처음 봤을 때 언뜻 느낀 것은 이런 것들이 내 몸에 붙어있었구나 하는 새삼스런 인식이였다. 진열되어 있는 찌꺼기는 역설적으로 그것들이 몸에 붙어있었던 상태를 생각하게 하고, 생겨나서 떨어져나가고 결국엔 없어지는 순환의 과정을 인식하게 한다. 마치 우리가 누군가의 죽음을 접하게 되었을 때 그 사람과 그의 삶을 더욱 선명하게 곱씹게 되는 것처럼, 작가의 인체찌꺼기와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이 던지는 인식은 굉장히 닮아 있다. 물론 작가의 작품이 죽음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죽음을 깨닫고 얻을 수 있는 어떠한 인식을 가능케 한다. 죽음을 인식한다는 것은 죽음 자체를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순환의 과정, 즉 자신이 그 순환의 일부이고 언젠가는 자신도 없어질 존재라는 삶의 유한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삶의 유한성에 대한 인식은 유한적이지 않은 삶의 의미를 찾도록 한다. ● 순환과 삶의 유한함에 대한 인식이 제거된 사회, 그래서 일방적으로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작가는 삶을 되돌아보도록 권유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관객에게 직접 인체의 찌꺼기를 모으는 과정에 참여하도록 하면서 그 권유는 더욱 선명해진다. 당신이 생산한 것... 그리고 당신이 살고 있는 삶... ■ 작은공간 이소
Vol.20091009j | 김철환展 / KIMCHULHOAN / 金哲煥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