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himsa

오숙진展 / OHSUKCHIN / 吳淑眞 / painting   2009_0926 ▶ 2009_1014 / 월요일 휴관

오숙진_gana_캔버스에 유채_116.7×91cm_2009 오숙진_gana and himsa 1_캔버스에 유채_116.7×91cm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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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숙진 인스타그램_@sukchin_oh

초대일시 / 2009_0926_토요일_03: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아트팩토리 헤이리 ART FACTORY Heyri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63-15 (법흥리 1652-134번지) Tel. +82.31.957.1054 www.artfactory4u.com www.heyri.net

Ahimsa : 비폭력 ● 간디의 비폭력주의는 당시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정치 이념이었지만, 사실 폭력에 대한 그의 정의는 매우 포괄적이다. 강자가 약자를 물리적으로 학대하는 일차적인 의미의 폭력뿐만 아니라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파괴 행위를 폭력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육신이 살아 움직이는 한 그 기능 속에 폭력이 내재되어 있으며, 생각하는 행위 속에도 폭력은 존재한다고 말한다. 결국 존재자의 숙명적 폭력성을 극복하려는 노력인 간디의 비폭력주의는 시대와 지역을 넘어서 인간의 보편철학이 된다. 나는 약자에게 자행되는 '상대적' 강자의 폭력을 보며, 그것이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법의 비호 아래 용인되는 것을 보며 환멸을 느껴왔다. 그러나 폭력을 휘두르는 이들에 대한 나의 경멸 속에도 또 다른 폭력이 숨어있었다. 나 자신도 폭력의 고리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그림에는 폭력의 순간과 함께 그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는 나의 태도가 담겨있다. 비폭력을 향한 나의 의지를 화면 속 이미지로 그려내는 과정에서 나는 붓다를 만난다.

오숙진_공격과 방어 3_종이에 과슈_32×52cm_2008
오숙진_공격과 방어 4_캔버스에 유채_97×145.5cm_2008
오숙진_ahimsa_캔버스에 유채_80.3×100cm_2009
오숙진_playground-battleground 5_종이에 과슈_40×49cm_2009
오숙진_playground-karma_캔버스에 유채_91×116.7cm_2009
오숙진_buddha_캔버스에 유채_70×70cm_2009 오숙진_buddha and mara 2_캔버스에 유채_70×70cm_2009

존재하는 이상 폭력이란 사라지지 않는 것이므로 붓다 역시 살아서는 결코 니르바나(열반)에 이를 수 없었다. 그러나 적어도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이후 붓다는 '최소한'의 존재가 된 것 같다. 자아를 버림으로써 나와 타인의 경계를 허물어뜨린 그는 무색무취의 인간으로 그려진다. 그에게는 더 이상 인간적인 면모, 즉 개성이 없으며 오로지 그가 추구한 철학으로 이해된다. 영웅과 천재, 특별한 인생에 매료되는 우리에게 투명한 존재인 붓다는 덜 매력적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매력이라는 것도 얼마나 무겁고 지루한 것인지 모르겠다. 감각의 즐거움을 버리고 자아가 가진 아집과 이기심에서 해방된 붓다는 더없이 가벼운 존재가 되었고, 죽어서는 모든 인간이 갈망하는 고통이 없는 초월적 세계에 이르렀다. 나의 그림 속에서 붓다는 목과 사지가 절단된 모습으로 그려진다. 인간의 신체 중 가장 표현적인 부분이며 그렇기에 가장 폭력적인 부분인 얼굴과 손발을 잘라냄으로써 그림 속 인물은 감각이라는 덫에 결코 빠질 수 없는 존재, 비인격적이며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된다. 그를 치장하는 화려한 색도 없으며, 그와 타인을 구별할 만한 특징도 사라진다. 그림 속 붓다는 하나가 아니다. 붓다와 붓다가 되고자 갈망하는 이들은 사지를 버렸지만, 여전히 자기 안의 망상인 마라로부터 무수한 공격을 받기도 한다. 그림은 또 다시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와 마라의 싸움의 순간은 화면 속에 정지되고 결과는 영원히 알 수 없다.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무수한 질문들이 화면 위를 부유하고, 그것은 나를 잠들 수 없게 하는 이유가 되고 에너지가 된다. ■ 오숙진

Vol.20090926f | 오숙진展 / OHSUKCHIN / 吳淑眞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