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나무에게 바치는 레퀴엠

이종희展 / LEEJONGHEE / 李鐘熹 / installation   2009_0826 ▶ 2009_0915

이종희_기억되는 숲_시멘트_가변크기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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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0826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관훈갤러리_KWANHOON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신관 Tel. +82.2.733.6469 www.kwanhoongallery.com

죽은 나무에게 바치는 레퀴엠 ● 사라져가는 자연. 파괴되는 환경. 이는 세계 공통의 이슈가 되었다. 많은 작가들이 이러한 환경문제를 작업의 주제로 채택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흔해져버린 주제설정 때문에 환경작업들이 때로 진부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이종희도 사라져가는 자연과 거기에서 비롯되는 아픔을 자신의 작품주제로 삼는다는 점에서 환경작가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작업은 정통적 조각어법으로, 대비contrast의 수사학을 구사하는 표현방식으로 인해 오히려 새롭다. ● 대개의 환경주의 작가들의 접근 방식은 아르테 포베라에서처럼 자연의 오브제를 그대로 가져다 쓰거나, 정크 아티스트처럼 폐품을 재활용한다든지, 또는 사이트-스페시픽에서와 같이 자연 속으로 직접 들어가서 현장 작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종희는 정공법을 택한다.

이종희_기억되는 숲_시멘트_가변크기_2009
이종희_기억되는 숲_시멘트_가변크기_2009

이종희의 작업은 모든 정통조각이 요구하는 것들; 무겁고 강건한 재료, 숙련된 기술, 고단한 육체노동을 부담한다. 그는 산이나 들판을 헤매며 쓰러진 나무를 찾아다닌다. 적당한 놈이 발견되면 그것을 작업실로 옮겨와서 시멘트로 떠내기 시작한다. 우선 시멘트 틀에서 원형이 되는 나무를 제거하여 외형(外型mould)을 만든다. 그다음 만들어진 오목형태의 외형을 다시 커다란 나무 거푸집 안에 집어넣고, 거푸집의 빈 공간을 모르타르로 가득 채운다. 며칠 후 모르타르가 굳으면 거푸집의 나무틀을 제거한다. 이렇게 하면 거대하고 육중한 시멘트 궤짝 안에 나무 형상의 빈 공간이 드러누워 있는 셈이 된다. 여기에 소요되는 시멘트 모르타르의 양이 전방부대의 벙커 몇 개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이 된다. 여기까지의 작업과정을 보노라면 그 절차와 분위기가 마치 죽은 나무의 시체를 염습(殮襲)하고 입관(入棺)하는 것 같다.

이종희_기억되는 숲_시멘트_가변크기_2009

이때 육중한 시멘트 덩어리는 영락없는 파라오의 석관이 된다. 이 영생불멸의 상징은 다시 석재공장으로 옮겨져 대형의 다이어몬드 원형 톱에 의해 규격화된 크기로 썰려나간다. 그러면 그곳 썰려나간 단면 안에 음각의 나무 형상이 기록되어 지금은 죽어 없어진 나무의 부재와 지나간 영화를 이야기한다. 같은 크기, 같은 모양의 토막들은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어 군대의 열병식(閱兵式)을 방불케 한다. 이때 그의 작업은 충실한 매스와 견고한 형태로 인해 고전적인 품위를 획득한다. 도열한 육면체의 시멘트 외형과 캐스팅에 쓰였던 실재의 잘생긴 나무가 함께 병치되면, 비극적 에토스는 더욱 증폭된다. 시멘트 외형의 네거티브 공간과 실제 나무의 포지티브 매스가 대비되어 나무의 실존을 생생하게 증거한다.

이종희_기억되는 숲_시멘트_가변크기_2009
이종희_기억되는 숲_시멘트_가변크기_2009

그가 나무를 화석으로 만드는 작업은 자연의 고고학이며, 죽은 나무에게 헌정하는 레퀴엠이다. 시멘트와 나무의 대비는 문명과 자연의 대비이며, 유클리트 기하학과 프랙탈 기하학의 대비이며, 모더니즘적 절도와 포스트모더니즘적 분방함의 대비이다. 모든 위대한 미술은 선대의 미술사를 요약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새로운 미술사가 출발한다. 이종희의 경우도 이와 같을 것이다. 그의 조각은 종래의 조각이 쌓아 온 정통적 어법들을 존중하면서도, 분명한 개념과 극적 서사를 가지고 이 시대의 이슈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 오상일

Vol.20090827d | 이종희展 / LEEJONGHEE / 李鐘熹 / 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