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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09_0811_화요일_05:3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무이 GALLERY MUI 서울 서초구 서초동 1658-14번지 무이빌딩 1층 Tel. +82.(0)2.587.6123 cafe.naver.com/gallarymui
미술 작품을 언어로 설명한다는 것은 늘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김미라의 작품처럼 추상적이고 시각에 많이 의지하는 경우에는 그 작품을 글로 설명한다는 것이 더 어렵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피카소가 말하듯, 추상적인 미술은 지저귀는 새소리 듣듯이 보면 될까? 그런데 아마도 그 새소리가 모든 사람에게 같은 느낌으로 울리지는 않을 것 같다. 나는 이 글에서 단지 김미라의 작품 앞에 선 내 귀에 들리는 새소리가 어떤지를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 새소리가 어떻게 해서 내 귀에 그렇게 들리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까 한다. ● 김미라의 작품을 본 것은 내가 베니스 여행에서 막 돌아왔을 때였다. 나는 베니스 외에도 로마, 플로렌스 그리고 투스카니를 여행했다. 흥미롭게도, 여행을 마친 후에 내 기억 속에 남은 세 도시의 이미지는 각각의 색채였다. 로마의 고풍스러운 황토빛, 플로렌스와 투스카니의 적갈색, 노란색, 분홍색, 연녹색... 그리고 내 눈길을 사로잡았던 베니스의 아름다운 유리공예, 가면들, 무엇보다도 물에 비쳐 아롱거리는 햇빛을 잔뜩 머금은 도시의 풍경은 베니스에 대한 기억을 더욱 충만한 색채로 가득하게 했다. 베니스에 대한 내 시각적인 기억은 김미라의 작품과 쉽게 융합되었다. 하지만, 작품에서 베니스를 본 것은 그 여행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실 작가의 15년 지기인 나는 김미라가 유리공예에 큰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기억은 내가 베니스에서 본 유리공예품들을 연상시키며 중첩되어 다시금 그 여행을 떠올리게 한 것이다.
나는 여기 전시된 작품들이 각각의 관람자에게 무엇을 또는 어떤 기억을 떠올리게 할지 궁금하다. 작가는 "그저 사람들이 내가 그린 공간들을 '어딘지 모를 어느 먼 곳' 이겠거니... 하고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라고 말한다. 그것은 작가의 "기억이 스쳐가는 한 장소"이며, "그 기억이 멀어지며 거리를 만드는 원근법적 공간" 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들은 작가의 말처럼 "가까워질 수 없는 거리에 대한 안타까움" 을 나타내는 대상이다. 그렇다면, 시각적 이미지와 기억, 그리고 그 멀어지는 안타까움은 대체 무슨 관련이 있을까?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꿈의 해석』에서 우리의 정신을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기구, 장치에 비유한다. 그는 우리의 정신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마치 카메라의 렌즈들을 통과하는 빛이 하나의 상을 만들어 내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우리가 무엇인가를 의식을 가지고 지각하기 이전에 우리의 지각은 진정한 의미에서 지각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단지 외부에서 받은 시각적 자극이 무의식 속에 남아있는 상태에 불과하다. 그 무의식적 자극이 의식의 영역으로 들어와서 진정 지각되기 위해서는 먼저, 반드시 하나 또는 그 이상의 무의식적인 기억들과 결합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여 무의식적인 기억이 지각의 기본 형태를 갖추었을 때, 프로이트는 그것을 '사물 표상(thing-presentation)'이라고 일컫는다. 그 다음 단계는 전의식의 수준에서 이루어진다. 전의식은 언어라는 매개를 가지고 사물 표상을 결합하여 의식으로 나아갈 준비를 갖춘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 언어 표상(word-presentation)은 모든 사물 표상을 의식의 영역으로 가져가지 못하고 어떤 것들을 억압하여 무의식의 영역에 남겨둔다. 뿐만 아니라, 프로이트는 언어가 기억에서 지각적 속성을 제거하는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히스테리 연구』에서 그는 말한다.
"일단 환자의 기억에서 한 장면이 떠오르면, 환자가 장면을 묘사하는 과정 중에 점차 장면이 파편화되고 흐려져 간다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다. 말하자면 환자는 그 장면을 말로 바꾸어 놓으면서 제거하고 있는 것이다. ... 장면을 묘사했는데도 그 장면이 환자의 내면의 눈 앞에 끈질기게 남아있는 경우도 있다. 내 생각에 이 경우에는 환자가 그 장면의 주제에 대해 나에게 말해줄 중요한 무엇을 아직 갖고 있는 것이다. 환자가 그것을 말하자 마자 장면은 사라지고 만다. 마치 잠재워진 유령처럼...." ● 김미라에게 기억은 "일부는 사라져 불명확하고, 일부는 뭉뚱그려져 추상화되고, 일부는 생생한 이미지로 남아있으나 비연속적이고 단절적인" 것이다. 그 기억은 "어떤 장면이기도 하고, 어떤 시간의 느낌이기도 하고, 특별한 환영적인 공간" 이기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다 뒤섞여 형체가 불분명한 어떤 덩어리" 이다. 때문에 작가는 그 기억을 작품 속에 표상해 놓고는 그것을 한마디로 "어딘지 모를 어느 먼 곳" 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그 곳이 어디인가를 말하는 순간 잃어버릴 기억들을 안타까워 하고 있는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작가는 자기 작품의 관람자가 그 곳이 어디인가를 찾아내려고 애쓰는 대신, 그 나름의 어딘지 모를 먼 곳을 아득히 떠올리기를 바라는 것 같다. 전시된 작품 앞에 선 관람자에게 그 이미지들은 시각적 자극이 되어서 각각 나름의 무의식적인 기억들을 의식의 표면으로 건져 올리게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관람자가 "이 작품은 나에게 이러 저러한 것을 연상시킨다" 라고 생각하거나 말하는 순간, 김미라의 작품은 그 언어적인 분절이 담아내지 못한 어떤 기억의 덩어리들을 희미하게 떠올리게 하면서 관람자의 발길을 다시 잡아 끌지도 모른다. ● 글을 시작하며, 나는 김미라의 작품들이 베니스의 색채를 떠올리게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해놓고 나서, 나는 다시 작품들로 돌아올 수 밖에 없음을 느낀다. 이번에는 작품들과 베니스가 겹쳐지며 또 다른 것들이 떠오른다 ... 어떤 사람들, 공간들, 시간들, 사건들... 그 끊임없는 기억의 연쇄는 아득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며 "어딘지 모를 어느 먼 곳" 으로 향한다. ■ 조혜옥
Vol.20090811g | 김미라展 / KIMMIRA / 金美羅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