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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0623_화요일_06:00pm
후원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대안공간 풀_ALTERNATIVE SPACE POOL 서울 종로구 구기동 56-13번지 Tel. +82.2.396.4805 www.altpool.org
조현택의 'Boys, be ambitious'에 관한 메모 ● 어느 날 우연한 기회로 내 앨범을 보게 되었다. 그곳에는 아주 어릴 적부터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그리고 중 고등학교를 지나 대학과 군생활 할 때의 사진 등등 내가 살아온 시간들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었다. 사진을 찬찬히 보며 넘기던 중, 중학교 때 친구들과 태평사라는 절에 자전거를 타고 놀러 가서 찍은 기념 사진을 보게 되었다. 6명의 인원이 각자의 자전거에 올라 대열을 맞추고 찍은 사진을 본 순간 내 머릿속에 불현듯 스쳐가는 이미지가 있었다. 그것은 여러 매체를 통해서 한번쯤은 보았던 할리데이비슨 동호회의 기념사진이었다. …중략… 갖가지 의문을 품은 채 사진 속 친구를 찾아갔다. Boys, be ambitious 작업의 시작이었다._조현택 ● 1. 조현택의 'Boys, be ambitious'는 우연히 들춰 본 작가의 사진앨범에서 출발한다. 때때로 사진앨범은 잊혀져가는 과거의 기억이나, 사람들, 그리고 장소를 다시금 살아나게 한다. "어느 날 저녁..."이란 문장으로 시작하는 롤랑 바르트의 글(롤랑 바르트, 밝은 방 : 사진에 관한 노트 (La)chambre claire : note sur la photographie, 김웅권 옮김, 동문선, 2006) 역시 돌아가신 어머니의 사진앨범을 정리하며, 그가 느낀 것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그 글에서 바르트는 과거사진을 통해 어머니와 '다시 만났다'라고 표현하였는데, 조현택 역시 과거사진을 통해 소년기의 자신과 조우하고 있다. 사실 회상에 대하여, 과거사진이 주는 도움이란 '그것은-존재-했음' 에서 그치기 마련이고, 때로는 과거존재로부터 오는 고통이 더 크기도 하지만, 작가에게 이 고통이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흩어져있던 것들을 모아, 하나의 것으로 만들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조현택은 사진앨범에서 본, 중학생 즈음의 자기 모습에서 "지금보다 더 원숙미가 느껴지는 분위기에, 비장함이 넘치는 수컷의 눈빛"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어린 자기와 친구들을 그렇게 만들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의문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질문은 어렵지 않게 "한국 사회에서 답습된 '남성의 행위들'을 무의식적으로 행하고 있는, (청)소년 시기에 대한 조소"로 이어졌음을 고백한다. 그럼에도 조현택은 '비웃음' 보다는, 유쾌한 재구성에 더 초점을 두고 있으며, 잊혀가는 소년기의 기억을 불러내기 위해 시작된 이 이야기를, 이제 어설픈 조소에서 벗어나 정제된 발언을 꿈꾸며 마무리하고자 한다.
2. 조현택은 작업에 앞서, 자위행위로써 작업이 아닌 사회적 발언을 해야 한다는 고민을 거듭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그 고민의 끝에서, 가장 개인적이며 사적과거를 증명하는 사진앨범과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서, 스스로 품고 있던 고민의 답을 얻게 되었다. 또한 'Boys, be ambitious'의 이미지들은 온전히 자전적 이야기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 이미지들은 학원물이나 성장영화 속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촬영 아이템 스케치'에 적힌 각 장면마다의 줄거리를 보고 있자면, 여느 영화 시나리오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재미있는 것은 이 시나리오가 '뭔가 어설프고, 유치하며, 노골적이면서도, 재미있고, 촌스러우며, 날것'(열거된 7개의 형용사는 작가의 스케치 노트 상단에 적혀있던 '작업 지침'을 그대로 가져왔음을 밝힌다.)의 수작업手作業이라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전라도 나주를 무대로 하여, 도시에서는 낯선 것이 되어 버린 장소와 물건들을 직접 찾아 배경과 소품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조현택의 노력은 모델섭외에서 가장 빛이 나는데, 촬영 장소가 필요하여 찾은 모교에서 발탁한 후배들이 모델로 등장한다. 이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행동과 개구진 표정은 연기를 한다는 부담보단 그것을 놀이로써 즐기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에게 이 비법을 물었더니, 지시하는 감독이기 전에 아이들의 '큰형'이 되어주고 이성, 학업, 진로에 대한 고민을 들어주다보니 자연스레 친해졌다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비록 촬영을 위해 섭외한 아이들이었지만, 조현택은 그 아이들과 교우하며 부모나 선생이 채워주지 못한 부분의 조언자가 되려 노력한 것이다.
3. 자신의 유년시절에 대한 글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Berliner Kindheit um Neunzehnhundert)'에서 발터 벤야민은 '유년에 대한 회상은 단순히 개인적이고 사적 과거에만 매달리지 않아야 하며, 개인의 과거에 대한 감성적인 글은 공감하기 어렵다.'(발터 벤야민,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 Berliner Kindheit um Neunzehnhundert, 윤미애옮김, 도서 출판 길, 2007)고 말한다. 그렇기에 벤야민은 그 글을 통해, 유년을 회상하는 것 이상으로, 당대 망명 독일지식인들의 공감을 기대하였다.(발터 벤야민, 위의 책, 옮긴이 해제 : 유년시절에 대한 기억을 '역사적 경험'의 차원으로) 그렇다면, 'Boys, be ambitious'에서 작가가 기대하는 '공감'이란, 누구를 향한 것인가? 어렵지 않게 그의 사진 속 장면들에서는 작가의 또래들, 그 중에서도 특히 도시가 아닌 변두리나 지방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 하는 장치들을 엿볼 수 있다. 작가가 어릴 적 물가에서 고기를 잡던 추억에서 이미지를 떠올린 「잉어소년」과 주로 근처 공사장이나 야산에 파헤쳐진 땅을 배경으로 하여, 놀고 있는 아이들을 촬영한 「나무를 심는 아이」와 「사냥」 그리고 「탈출」이 그러하다. 이 장소들은 요즘 아이들이라면 가지 말아야 하는 곳이며, 동시에 PC방이나 오락실에 비하면 재미없는 곳이 되어버렸지만, 작가와 비슷한 시기에 유년을 보낸 이들에게는 어릴 적 즐겨 찾던 놀이터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소년기의 주요 관심사이며, 피해갈 수 없는 이야기 중 하나인 이성교제와 성性에 관한 솔직한 표현과 대담한 재구성도 볼 수 있다.
이렇듯 'Boys, be ambitious' 속 '소년들'이란, 아스팔트 깔린 길을 밟으며 밤늦게 학원에서 아파트로 돌아와, 유일한 취미로 컴퓨터 오락을 즐기는 '요즘 소년'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오히려 조현택이 불러내고 싶은 소년이란 자신을 낙오자(Looser)라 자청하는 요즘의 청년들, 그러니까'과거소년이었던'이들에 더 가까울지 모른다. 어쨌든 그 대상이 누구든간에 분명한 것은 하나이다. 작가는 자신일지도 모르는, 그들이 가졌던 야망(Ambitious)을 상기시키려한다. 나아가 그는, 소년기의야망이 원초적이며 마초적 행위에 가까운 '소년의식'임을 숨기지 않는다. 「여대생과 정사」를 꿈꾸는 중학생의 어린 욕정이나, 「아지트」나 「학교짱」의 치기 어린 행동들은 사실 어른들의 세속적 욕망을 답습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어른들의 욕망을 흉내 내고 있는 행동이 아닌, 아이들의 눈빛과 표정에서 천진무구한 유년의 에너지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 인상印象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장면 속에 숨어있는 간극을 발견하게 하는데, 이것은 단지 아이들의 철없는 행동과 그럼에도 순진한 눈빛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처한 현실과 유년시절 품었던 야망 사이에 이미 존재했음을 인지하게 한다.
이렇게 다소 거리를 두며 'Boys, be ambitious'의 화면을 감상하였을 때, 우리는 유년시절에 대한 향수를 감상적으로 느끼는 것 이상의 객관적 보기를 통하여, 단순히 사진 한 장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우리 자신이 놓여있는 '현실'을 보게 된다. 그렇기에 'Boys, be ambitious'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회상과 재현들은, 과거시간 속에 자신을 박제시키는 것이 아닌, '돌아봄'을 통해 현실의 자신을 마주하려는 작가의 '의지'에 가까울 것이다. 이제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는 속담이나, 격언처럼 익숙한 말이 되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소년소녀에게 권장하는 야망이 무엇인지 모른다. 오히려 '야망을 가져라'는 말을 하기가 '갖지 말아라'보다 더 힘들어졌다. 그것 때문일까, 조현택이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이 말은 어쩐지 달게 삼키지 못하고 여러 번 곱씹게 된다. 그리고 이제, 우리역시, 과거와 현실의 꿈을 곱씹으며, 자신 앞에 놓여있는 현실을 마주하려 해야 하지 않을까. ■ 김소영
Vol.20090618f | 조현택展 / CHOHYUNTAEK / 趙鉉澤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