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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0514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카이스 갤러리-홍콩_CAIS GALLERY HONG KONG UG, 54 Hollywood Road, Central, HK Tel. +852.2527.7798 www.caisgallery.com
김지혜, 코리아 팝아티스트 ● "과거와 현재, 나와 타인, 곧 과거형이 될 지금 현재의 장면들이 상징하는 이미지들과 그 의미에 접근하고자 할수록 동그라미 쳐지는 공통분모들. 인생의 임시적 방식을 비추고 있는 기록의 프레임은 결국 처음부터 완전한 나의 소유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서로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어도 우리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도. 삶의 모습이란 어느 시대에도 놀랍도록 닮아있고 우리는 모두 시간을 잡아두고 싶어 한다."(작업노트 중에서)
김지혜의 그림은 흔히 조선시대 책가도나 화조화 그리고 산수화 등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간주된다. 만약 옛 그림들의 '현대적 재구성'이 가능하려면 무엇보다 옛 그림들에 대한 현실인식을 관통한 탁월한 분석력이 필요할 것이다. 김지혜의 작품이 주목받는 이유가 바로 현실인식을 관통한 탁월한 분석력 때문이다. ● 책가도(冊架圖)는 서가 모양의 격자 구획 안에 책갑으로 묶인 책과 선비의 여러 가지 일상품을 적절히 배치한 일종의 정물화다. 책가도는 '주문용'으로 주로 선비가 아들의 방을 장식하거나 선비의 서재에 비치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책가도는 방을 장식하는 그림이면서 동시에 선비의 욕망을 반영하는 셈이다. ●조선시대 책가도는 서가로 구획된 화면에 소재들이 좌우대칭을 이루어 균형을 이루다가 점차 자유로운 배치구도를 취하였다. 그리고 책가도는 보는 이가 그림을 바라보는 원근법(遠近法)이 아니라 그림이 보는 이를 바라보는 듯한 역원근법(逆遠近法)으로 그려졌다.
자, 그럼 김지혜의 책가도를 보자. 김지혜는 서가 모양의 격자 구획 안에 책과 선비의 일상품 이외에 현대적 일상품(핸드폰, 커피, 알약, 화장품, 목걸이, 노트북, 명품가방, 양귀비, 해골 등)을 역원근법뿐만 아니라 원근법도 혼용시켜 일종의 '현대판 책가도'로 재구성해 놓았다. ● 김지혜의 현대판 책가도는 조선시대의 '남성용' 책가도에 '여성용' 일상품을 삽입시켜 '중성용' 책가도로 확장시켜 남성적 권위를 조롱한다. 그리고 그녀는 '선비의 욕망'을 상징하는 책가도에 양귀비나 해골을 첨가하여 '죽음'의 상징으로까지 확장시켜 마치 한편의 블랙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또한 그녀는 역원근법과 원근법을 혼용하여 환상적인 책가도를 그려놓았다. 따라서 김지혜의 현대판 책가도가 현실인식을 관통한 탁월한 분석력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화조화(花鳥畵)는 꽃·나무 등 식물과 새를 조합하여 그린 그림이다. 하지만 새·꽃·나무들은 화조화로 정착되기 이전부터 등장한다. 그 소재는 형태의 아름다움에서 오는 장식적인 목적 이외에 조류(鳥類)와 수목 숭배사상과 연계되어 벽사(辟邪)와 길상(吉祥)의 대상으로 간주되었다. 이를테면 좋은 소식을 전한다는 까지나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봉황 그리고 장수를 상징하는 학·복숭아·소나무 등 말이다. 그러한 상징과 문인의 이념이 혼합된 화조화는 자연의 이치와 시정(詩情)을 느끼게 해주는 그림으로 애호되었다. ● 그 격조 높은 화조화를 마치 조롱하듯 김지혜는 '여자머리에 꽃단장'하는 화조화로 전이시켰다. 물론 화조화가 꽃과 새를 그린 그림이란 점에서 김지혜의 현대판 화조화에 사람은 부재하고 머리만 등장한다. 김지혜의 현대판 화조화는 마치 얼굴 없는 미인도처럼 보인다. 물론 김지혜의 화조화 중에 꽃과 나비 혹은 꽃과 새가 등장하는 화조화도 있다. 그러나 그 화조화에 그려진 꽃도 당신이 가까이 접근해서 보면 마치 한 땀 한 땀 자수하듯 그려진 꽃들이 사실 머리카락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연의 이치와 시정(詩情)을 느끼게 해주는 조선시대의 격조 높은 화조화를 비꼬듯이 김지혜는 성적 판타지를 느끼게 하는 화조화로 전이시켰다. 이를테면 김지혜의 현대판 화조화는 여자를 상징하는 꽃에 남자를 상징하는 새와 나비가 날아와 성적 놀이를 한다고 말이다. ●산수화(山水畵)는 산과 물, 즉 자연의 경치를 주제로 그린 일종의 풍경화이다. 하지만 산수화는 서구의 풍경화와 달리 음양(陰陽)의 조화, 즉 우주의 이치를 상징하는 그림이다. 산수화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경우 산수화의 요소들은 5세기경을 전후하여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하였다. 물론 독립된 회화로서의 산수화는 고려시대에 이르러 대두되었다.
김지혜는 자신의 산수화를 '미채산수(迷彩山水)'로 명명한다. 미채산수는 사람 ·무기 ·장비 ·시설 등의 구별이나 움직임을 상대방 적으로 부터 은폐하기 위한 수단으로 흔히 군사용어로 사용되는 일종의 위장(camouflage) 풍경화라고 할 수 있겠다. 대한민국의 산을 등산해본 사람이라면 '민간인 접근금지'라고 경고판을 만났을 것이다. 이를테면 당신이 멀리서 대한민국의 산을 보면 전통 산수화에서 볼 수 있는 평온하고 아름다운 산처럼 보이지만 그 산에 가까이 접근하면 부분 군사 보안지역으로 위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말이다. 김지혜는 바로 이 점에 주목하여 전통 산수화에 현대의 군복 패턴을 절묘하게 조합해 현실의 위장된 산수를 폭로한다. 따라서 김지혜의 미채산수가 현실인식을 관통한 탁월한 분석력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 김지혜의 신작 '미채산수'에는 십장생(十長生)이 등장한다. 중국의 신선(神仙) 사상에서 유래한 십장생은 장생불사를 표상하는 10가지 물상(物象), 즉 해·산·물·돌·소나무·달 혹은 구름·불로초·거북·학·사슴을 말한다. 그 십장생을 그린 그림을 십장생도(十長生圖)라고 부른다. 십장생도는 정초에 왕이 중신들에게 새해 선물로 십장생도를 하사하기도 했는데, 주로 상류계층의 세화(歲畵)와 기복용 그림으로 사용되었다. ● 김지혜는 상상의 선계(仙界)를 형상화한 십장생도에 위장 패턴을 이용하여 양귀비나 독버섯을 첨가해 놓았다. 만약 십장생이 매혹적인 양귀비나 독버섯을 먹는다면 '장생'은 고사하고 '즉사'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김지혜의 십장생도는 '장생'만을 기원했던 전통적인 십장생도를 조롱하듯 오늘날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위장 패턴을 이용하여 절묘하게 조합해 놓은 현대판 십장생도이다.
한국미술계는 20세기 초 (자의건 타의건) 서구미술의 수입으로 인해 '가문의 위기'를 맞이한 적이 있다. 해방 이후 한국미술계에 '가문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옛 선조들의 작품들을 참조하여 재구성한 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필자가 김지혜의 '현대판' 책가도나 화조화 그리고 산수화에 주목하는 이유는 우리 미술에 대한 자부심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한국미술계는 김지혜의 그림을 일명 '네오-팝아트'으로 부르곤 한다. 그런데 그녀의 그림은 60년대 미국의 팝아트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우리의 전통적인 그림을 차용하여 재구성한 '코리아-팝(K-POP)'이라고 불러야 한다. 그렇다. 김지혜는 '코리아-팝 아티스트'이다. ■ 류병학
Vol.20090524a | 김지혜展 / KIMJEEHYE / 金池惠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