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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0513_수요일_05:00pm
공간화랑 재개관 프로젝트 - 담론의 구축 04
관람시간 / 10:00am~07:00pm
공간화랑_gallery SPACE 서울 종로구 원서 219 공간사옥 지하 Tel. +82.2.3670.3500 www.space-culture.com
변화는 소통이다. ● 전남 강진에서 출생한 정승운은 강진과 광주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학부에서 회화를 전공하였다. 그는 학부시절부터 왕성한 창작욕을 가지고 있었는데, 자유로운 그의 성향과는 대조적으로 1980년대 국내 화단은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가 매우 엄격하게 여겨지는 분위기였다. 경직된 이념의 무게로 인해 괴로워하는 자신을 토해내듯 표현해야만 했던 당시 그에게 창작은 화가를 꿈꾸었던 유년기의 예상과 달리 쉽지 않은 일이었다. ● 독일의 표현주의적 양식을 좋아했던 그는 90년대 초 독일로 유학을 떠나 십년 가까운 시간을 체류하게 된다. 처음 독일에 도착했을 때, 그는 두 가지 측면에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하나는 자신이 심취하고 즐겨 그렸던 표현주의적 기법이 독일 회화사의 스펙트럼에서 보았을 때 아주 협소한 일부분이었다는 것을 발견한데서 받은 충격이었고, 다른 하나는 침묵 혹은 반발과 같은 극단적 선택에서 벗어나 제한 없는 사고와 배경이 자유롭게 존재하는 사회적 환경에서 받은 충격이었다. 유학 초기의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졌다. 나를 둘러싼 껍질을 벗어버린, 순수한 나 자신의 생각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이어졌던 것이다. 이는 그동안 사회적 당위성의 무게에 억눌려있던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이기도 했다. ● 이 시기부터 그는 주변의 환경들과 그에 감응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스스로를 꾸준히 관조하기 시작했다. '나'라는 존재성의 확인은 내가 존재하고 있는 환경과의 소통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체험한 것이다. 이는 환경이 변할 경우 그 환경과 소통하는 나 자신의 변화도 자연스럽게 수반된다는 사실을 기본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그에게 사각형의 캔버스에 담긴 회화의 상상력은 여전히 매력적인 것임이 분명했지만, 그보다는 벽화와 같이 주변 환경과 결합된 작품의 형식이 더 큰 관심을 끌었다. 때문에 그가 출품한 작품들은 대개 전시되는 장소와 일정한 교감을 이루는 것들이었는데, 그러한 작업적 형식은 오늘날까지도 그가 견지하고 있는 특징이 되었다.
그는 전시가 결정되면 그 장소를 방문하여 받은 영감을 가지고 장소특정적인 형식의 작품을 창작하곤 했다. 건축물의 재료나 주변의 사물 등은 그가 주로 활용하는 재료였다. 특히 어떤 용도를 가진 물체들의 기능적 활용에서 탈피하여 물체의 시각적 특징이나 물리적 메카니즘에 주목하였다. ● 1997년 그리스 데살로니키(Thessaloniki)에서 있었던 『15+15』展에 에 출품한 작품은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오래된 건축물의 육중한 철문 두 개를 떼어 내어 그 윗면을 서로 맞대어 놓고 가운데에 석조건축물의 아치 꼭대기에 사용하는 쐐기돌(Keystone)을 끼워 놓았다. 그리고 그 문들의 아래쪽을 천장을 가로지르는 보에 걸쳐 놓아 전체 오브제가 공중에 떠 있는 듯 배치해놓았다. 금방이라도 떨어져 버릴 듯 긴장감을 자아내는 이 오브제는 사실 오랜 역사를 가진 건축적 요소가 가진 분명한 물리적 역학관계를 치환시켜 새로운 미학을 획득시킨 것이다. 무거운 그 철문은 묘한 분위기와 두근거림을 만들어내며 공중에서 완벽하게 존재하였던 것이다.
90년대 후반 귀국한 그는 2000년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다방에서의 개인전, 『HORIZON』展에서 향나무를 재료로 하여 전체 공간을 가로지르는 큰 오브제를 설치하였다. 향나무의 시각적 느낌뿐만 아니라 독특한 냄새와 담겨있는 가치가 마음에 들었다는 그는 목재판을 이용하여 관자의 눈높이와 비슷한 고도에 일종의 수평을 구현하였다. 이 목재판들은 사루비아 다방 공간 중앙에 있는 묵직한 사각 기둥을 둘러싸며 비대칭 사각형의 형태로 전체 공간을 활공(滑空)하였다. 이 목재판들은 못이나 접착제등으로 어딘가에 고정되었거나 부착된 것이 아니라, 서로 맞물려 있음으로써 발생하는 물리적 장력을 이용, 중앙의 기둥을 네 면에서 서로 밀어내는 힘의 작용을 이용하여 고도를 유지하며 존재하는 것이었다. 정승운의 이 개인전은 귀국 이후 자신의 작품 세계를 확실히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개인전 이후 정승운의 활동은 잠시 정체상태를 보인다. 추측컨대, 작가의 선굵은 형식적 특징과 쉽게 단정 짓기 어려운 의미들이 다른 기획자들로 하여금 정승운이라는 작가를 다소 난해하거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작가 본인도 장소와 교류하는 작업으로 인해 스스로의 운신의 폭이 오히려 좁아질 위험을 느끼기도 했다고 한다. 작업실에서 고민하던 이 시기에 정승운은 '집, 숲, 꿈' 연작을 구상하게 된다.
그는 우연히 '집'이라는 글자의 형상적 특징에 주목하게 된다. 사실 표음문자(表音文字)인 한글은 표의문자(表意文字)인 한자(漢字)에 비해 그 시각적인 미감에 주목하게 되는 기회가 적다. 특히 '집'이라는 단어는 동시대 한국사회에서 갖는 무거운 함의로 인하여 더더욱 그러하다. 작가는 '집'이라는 글자의 형상을 활용하여 '집'의 기의(記意, signifie), 혹은 이면의 의미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전환적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집'이라는 글자의 형상적 가능성을 실험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는 '숲'이라는 단어를 발견했고, '집'과 '숲'의 관계를 설정해 주는 '꿈'이라는 단어를 뒤이어 발견한다. ● 2002년 신사동 주택(이후 프로젝트 스페이스 집)에서 처음 '집' 이라는 작품을 내놓은 정승운은 한동안「집, 숲, 꿈」 연작을 발표하였다. 이에 대한 많은 주목과 평가가 있었는데, 그의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은 각각의 단어가 가진 기의의 속성에 주목하며 다양한 의미의 프레임을 중첩시키는 견해도 있었고, 단어의 의미보다는 형식적 속성의 변형에 주목하여 물리적인 공간 안에서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일련의 표현 과정에 무게를 두는 견해도 있었다. 정승운이 수년간 발표한 이 연작은 정승운 작품의 시각적인 유쾌함과 의미론적 논점을 제공하는 중요한 것들이었음이 분명하다.
한동안 지속했던 「집, 숲, 꿈」 연작을 이제 다른 차원에서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접어놓은 정승운은 금번 공간화랑에서의 개인전을 계기로 새로운 주제를 선보이게 되었다. 한동안 새로운 작업에 골몰하던 그가 내어놓은 작품은 '공제선(空際線, Skyline)'이다. 공간화랑에서의 개인전을 계기로 작업의 새로운 전환점을 모색하던 그는 서울과 강진을 오가며 유년시절 자신의 회화적 재현의 주된 대상이었던 고향의 풍경을 다시 바라보았고 자신이 현재 머무르고 있는 도시의 그것과 비교하였다. 이러한 행위는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존재해 온 자기 내면으로의 성찰의 과정이기도 하며, 자신에게 갖는 창작의 기본적 욕구는 무엇인지에 대한 반문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아울러 그는 공간화랑의 벽면에서 새로운 풍경을 발견한다. 벽돌 하나하나를 독립된 개체로 간주했던 그는 벽돌의 조합에서 수많은 개별 단위들이 집적되어 형성한 도시의 모습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그 개별단위들이 각각의 유기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 끊임없이 상승하는 도시의 욕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는 작가는 벽돌과 벽돌 사이를 매운 시멘트를 파내어 일종의 네가티브적 형식으로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재현했다. 이 작업은 전시장을 운영하고 있는 공간그룹이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그려가는 주도적 집단이라는 점에서 전시하는 장소와 일종의 의미론적 교류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 긴 양쪽 벽면에 도시의 풍경을 묘사한 공간드로잉과 대조적으로 화랑의 중앙에는 그의 고향 마을의 풍경을 형성하는 월출산을 비롯한 많은 산들의 능선을 재현하였다. 이 풍경은 지상에서 일정한 높이에 선들을 그려 놓고, 그 선들 위쪽을 오브제로 재현하는 방식으로 구현되었다. 풍경과 배경의 관계가 역전된 형태로 존재하는 셈이다. 산들이 형성하는 비정형의 선들은 도시의 그것들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데, 도시의 선들이 수시로 변하며 일방향으로 올라가는 속성을 지닌 반면, 산들의 능선은 오랜 세월 자연과 조응하며 변한 듯 변하지 않은 듯 자유롭게 존재했던 것이다. 거기에 작가는 종이를 이용하여 선들 위쪽의 공간을 무한대의 것으로 확장시켜 놓았다. ● 결국 공간화랑에 설치된 정승운의 공제선은 어린 시절 그가 그림으로 주로 재현했던 풍경인 고향 마을의 수려한 산들의 공제선과 오늘날 그가 거주하고 있는 이 거대도시의 건축물들이 그려내는 공제선이 맞닿아 존재하게 되었다. 이 두 가지 풍경을 병치시켰을 때 나올 수 있는 많은 생각의 단초들을 그는 열어보고자 했던 것이다.
정승운의 작업세계를 면면히 살펴보면 그는 늘 어떤 구체적인 메시지를 제기하는 것을 피해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본격적으로 창작활동을 시작하던 시절, 극도로 현실적이거나 극도로 비현실적인 양단(兩端)의 가운데에서 선택을 강요당했던 사회적 분위기가 스스로에게 매우 억압적으로 느껴졌던 것이었음으로 인해 생긴 반작용일수도 있겠다. 그러나 보다 큰 관점에서 볼 때, 그가 단정적인 메시지보다 어떤 생각의 계기를 제공하는 형식을 선호하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과 그를 둘러싼 환경과의 소통의 기본적인 전제를 '스스로 변화'한다는 것에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작업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 그 자체일 것이다. 공간화랑의 공제선들도 처음부터 그러한 듯,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존재하고 있지만, 이 또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과정이며, 이는 정승운이 보여주고자 하는 풍경의 의미론적인 핵심을 읽는 열쇠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 고원석
Vol.20090513f | 정승운展 / CHUNGSEUNGUN / 鄭勝云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