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구의 시간을 찾아서

최성환展 / CHOISUNGHWAN / 崔聖煥 / sculpture   2009_0227 ▶ 2009_0308 / 월요일 휴관

최성환_투구_혼합재료_25×31×50cm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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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30pm / 일요일_01:00pm~06:00pm / 월요일 휴관

소울아트 스페이스_SOULART SPACE 부산시 금정구 구서1동 485-13번지 Tel. +82.51.581.5647 www.soulartspace.com

최성환의 조각, 유물로 불러낸 투구들 ● 박물관의 유물들을 연상시킨다. 더욱이 전쟁기념관 같이 어떤 구체적인 사건을 주제로 기획된 연출 소재처럼 최성환의 작품은 쉽게 '사건'을 만든다. 오래된 유물들을 바라볼 때 우리는 케케묵은 시간의 때를 털고 '현재'에 박제된 것을 바라보게 되는데 최성환의 조각은 그런 박물관에서 작동하는 시각을 연출하려고 한다.

최성환_장군의투구_혼합재료_33×26×59cm_2009

고대의 투구, 일본 무사의 갑옷, 장수들의 모자,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의 군모 등이 전쟁에서 출토되어 발굴된 모양으로 놓인다. 그는 이런 유물이미지를 주로 모자에 국한 시켰고 대부분 전쟁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전투용 핼멧은 주로 그 기능이 형태를 결정하는데 과거로 갈수록 꼭 그렇지 만은 않은 것 같다. 작가의 말대로 모자는 당시의 신분이나 계급을 상징하기도 한다. 따라서 모자의 장식은 단순히 형태를 보기 좋게 꾸미는 데 끝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유물로서의 모자들은 그 모자 주인공의 사회적 지위를 암시하는 단서들로 충만하다. 오늘날의 모자들이 단순 기능을 넘어 패션과 악세사리의 역할에 충만해 있음도 그렇다. 최성환은 그의 모자들의 유물과 같은 연출을 단지 형태만으로 조작하지 않았다. 빛바랜 효과와 낡은 이미지를 적절히 가미함으로써 과거의 정지된 '시간'을 지시하고 있다. ● 그가 특히 이번에 주의를 기울이는 '시간'은 투구라는 징후들로 나타났고 그는 서슴없이 절편된 '역사'를 이야기 한다. 그의 조각 작품은 이렇게 갤러리에 전시될 것이다. 과거의 모자가 갖는 낯선 이미지와 장치는 적절한 눈요기를 제공해주는, '과거'를 현시점에 고착시키는 최상의 선택일지도 모른다. 작가 최성환이 단순히 이미지즘에 빠지지 않고 스스로의 조형이 사회적 담론으로 향하게 하는 비유법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에 주목하고 싶다. 작가의 그런 부분의 몰입은 최근 그의 작품에서 두드러진 특징을 이루는데 사물이 무엇을 말하게 하는 조작과 배치에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최성환_투구_혼합재료_28×26×28cm_2009
최성환_투구_혼합재료_30×30×41cm_2009

또 그의 작업이 필자에게 어필한 것이 있다. 그것은 '조형'이라는 것인데 어쩌면 새삼스런 것 이기도하다. 필자는 그가 여전히 조형에 함몰되어있는 젊은 작가라는 점을 눈여겨 볼 수 있었다. 많은 현대의 젊은 작가들이 이른바 '조형'을 포기했거나 외면했다. 이 말에 문제가 있는가?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미술 행위가 곧 '조형'이었던 절대적인 전제가 오랫동안 지배적으로 지속되었었다는 것에 동의한다면 다시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미술에서 형태 만드는 것을 포기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형태를 지어내지 않으면 어떻게 미술이 되는가?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일이라면 당대의 많은 (또는 일부) 작가들이 형태를 지어내지 않는단 말인가? 지금까지의 미술이 과거로부터 면면히 전통으로 이어온, '수법(手法)을 전제로 한 형태 만들기'-'조형'이 중심 맥락에 위치해 있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곧 미술행위가 '조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당대의 미술이라 하여 이른바 '포스트모던'한 것에 대한 일종의 추종이나 그렇게 닮아가고자 하는 작가들의 무/의식적 자기 억압은 어느 샌가 미술에서 '조형'을 빠뜨리거나 외면하는 수많은 예시들을 낳았다. ● 그러니까 '수법(手法)을 전제로 한 형태 만들기'의 '조형'을 중심 맥락에서 지워버렸다는 얘기이다. 미술에서 이제 화두가 바뀌었고 주제가 바뀌었고 작법이 바뀌어서 그러한 것이 과거에 그렇게 고집하고 강조해 왔던 이른바 손으로 그리거나 만들어서 물리적인 재료로 구체적인 형태를 지어내는 것이 미술 그 자체였던 거대한 동심원 위에 새로운 동심원이 그려지고 있다는 것. CD가 LP를 대체 했고 또 이제는 MP3가 지배하는 것처럼, 디지털 시계가 아날로그 시계를 대체 했던 것처럼 가히 혁명적으로, 엄청난 가속도로, '수법으로서의 형태 짓기'는 수많은 다른 작법으로 대체되거나 다른 패러다임에 스며들듯 희석되어가는 양상들을 흔히 목격한다. 이런 것을 보면 이제 작가들도 시대에 너무 빨리 균질화 되어가는 것 같다. 미술 작업에서 형태를 짓는 오늘의 많은 젊은 작가들이 자신의 조형행위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아이디어에 집중해주길 요청하는 것을 보면 '조형'이라는 중심 담론에서 다른 것으로 바뀌어가는 것이 일반화되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작가 최성환은 컴퓨터 보급세대를 격고 디지털 매체에 익숙하며 CD나 MP3음악을 듣는 청장년층 작가임에도 매체에 가공되지 않는 순순한 수법의 향수에 젖어있다. 그는 열가소성 수지라는 폐 플라스틱류 재료가 전통적인 조각의 재료가 아니듯 자신의 조형행위는 케케묵은 옛것이 아니라 이 시대의 것이라 변론한다. 폐 플라스틱을 토치 램프로 녹여 녹녹해진 상태를 기다렸다가 열이 식어서 굳기 전에 성형한다. 상당한 숙련이 필요한 공정이다. 때문에 최성환의 조형행위는 매체에 의해 가공된 이미지가 아니다. 최근 비엔날레 등 국제적인 전시에 중국 현대작가들의 조각이 마치 원색의 에나멜 가방처럼 광택이 나고 반질반질한 표면 가공이 일색을 이루는 것을 목격하면서 젊은 신진작가들의 무분별한 추종 징후들이 간간이 엿보였는데 최성환은 오히려 역행이나 하는 듯이 거칠고 광택 없는 표면을 선택했다.

최성환_투구_혼합재료_32×46×50cm_2009
최성환_투구_혼합재료_43×35×40cm_2009

옛 사물처럼 가장된 무엇이 과거를 현재에 고착시키고 특수한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 그러니까 최성환의 경우 마치 늙은 참전 용사가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의미심장함을 연출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그의 작품을 응시하고 있노라면 늙은 참전 용사의 영웅담은 '새빨간 거짓말'로 쉽게 탄로 난다. 그러니까 그의 가장은 감쪽같은 긴장감도 주지 않고 이야기 도처에 허구성이 드러난다. 말 그대로 넌 센스다. 최성환의 작품이 단지 '유물처럼' 잠시 보였지만 이내 미술 작품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다 쓰는 흔적의 덩어리 들이다. 가공된 플라스틱의 재료적 물질성이 강하게 드러나고 여기저기 채색의 흔적이 물씬 묻어난다. 그러니까 박물관에서 작동되는 특수한 시각성은 시도되기 전에 소멸해 버린다. 작가는 '감쪽같을 필요가 있을까?'라고 한다. 물론 감쪽같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쪽도 저쪽도 분명히 지시하지 않는 기표는 절묘하게 다른 기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냥 부유하고 있다는 것이 아쉬울 수도 있다. 그가 선택한 소재들, 다시 말해 과거 유물 이미지의 투구인 열가소성 수지의 가공물로 성형된 조각 작품이 유물일수 없는 새빨간 거짓을 금세 드러낸 채 작품으로 향하면서 과거의 응고된 시간을 발화 하도록 하는 장치사이에는 어떠한 개연성도 내포되어 있지 않아 별개의 것, 별개의 공정, 별개의 이야기, 별개의 이미지들이 따로따로 떠돌 위험을 다분히 갖고 있음을 지적한다.

최성환_투구_혼합재료_44×36×50cm_2009

최성환은 그의 작업에 조각이라는 존재감을 부여하려고 애쓰는 진지함이 그래도 보기 좋다. 여전히 그의 손놀림과 언술에서 미술의 순수한 본질을 믿고 찾아가는, 앞뒤 재지 않는 열정 또한 그렇다. 그리고 막연한 형태감으로서 시작하는 조각행위와는 구별 되는, 이야기와 비유법에 접근해 있다는 것. 사실 무엇보다도 그 이야기가 추상적이거나 환상이 아니라 사회적 담론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그의 이번 개인전을 통해 더 풍부한 상상력이 발현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풍부한 상상력이 그만의 '조형 행위'에 충분히 화학변화를 이루기를 기대해본다. ■ 김영준

Vol.20090227a | 최성환展 / CHOISUNGHWAN / 崔聖煥 / sculpture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