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61021c | 김형종 유리조각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9_0131_토요일_04: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리앤박 갤러리_Lee&Park gallery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1652-522번지 예술마을 헤이리 Tel. +82.31.957.7521 www.heyri.net
김형종의 익명인간, 흔들리는 시대를 사색하다 ● 예술은 시대정신의 산물이다. 그리고 미술은 시대의 가치관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결정체다. 이런 의미에서 미술가는 삶의 의미와 정체성을 탐구하는 연금술사 같은 존재다. 하지만 진정한 미술가의 전형이 자꾸 흐려지는 요즘이다. 2009년 1월 현재, 온 나라가 '미네르바'로 떠들썩하다. 고대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지혜의 신 미네르바가 마치 시대와 공간을 거슬러 대한민국에서 부활한 것처럼 말이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의 행보와 그로부터 비롯된 뉴스는 시시비비를 떠나 디지털로 대변되는 사이버 세계의 위력을 새삼 실감케 해주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일찍이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으로부터 SF영화에서 줄기차게 그려온 가상현실에 대한 상상. 그리고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같은 현대철학의 개념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일화와 이론은 마치 사이버 시대의 문화적 지형을 예리하게 통찰한 예언처럼 다가온다. 내가 나비인지 아니면 나비가 나인지 구분할 수 없는 불확실한 세계관. 가상과 실재가 뒤죽박죽으로 엉킨 무질서한 혼란. 가짜가 오히려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행세하는 불신과 의심. 우리는 이렇게 흔들리는 세상 위에서 표류하며 살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미네르바는 익명(匿名)의 그림자 뒤에 숨어서 분열된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런데 어디 미네르바뿐이랴. 우리는 이제 자기가 만든 올가미에 스스로 걸린 어리석은 밀렵꾼 꼴이 되고 말았다. 태어나면서부터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부여되는 주민등록번호를 비롯해 학번, 군번, 은행 계좌번호 따위의 인증번호는 물론이고, 스스로 생성한 아이디와 닉네임 그리고 통과를 위한 비밀번호 없인 그 어떤 일상의 소통도 불가능해졌다. 심지어 숫자와 기호로 암호화된 바코드 같은 확인장치는 때로 인간 본연의 정체성마저 무력화시키는 괴물로 진화하고 있다.
투명하게 각인된 자존의 메시지 ● 김형종의 이번 개인전 타이틀은 '무엇이 진짜인가?'이다. 앞서 말 한대로, 미술이 시대의 가치관을 시각적으로 상징한다는 정의(定意)가 아직 유효하다면, 그가 만들어낸 조형물은 단순히 물질로서의 존재를 뛰어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작품의 실체를 외형적으로 어떻게 규정하든지 그건 중요치 않다. 그것을 그림이라 해도 좋고, 조각이라 해도 좋고, 유리공예품이라 불러도 상관없다. 분명한 사실은 그것이 (미술)작가/김형종의 의식과 직관이 베어있는 독립적이고 자족적인 물질의 실체라는 점이다. 이렇듯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새로운 생명체로 태어날 준비를 한다. 그러던 어느 순간 관객과 호흡하며 온전한 생명을 부여받는다. 불특정다수와의 우연한 만남이 아닌, 작품을 바라보고 직접 만지며 경험하는 특정 관객과의 교감을 통해 비로소 생명력을 지닌 작품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김형종의 작품은 그 자체로서 작가와 관객사이의 소통을 위한 중매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김형종은 일찍부터 유리를 재료로 다루어 왔다. 그에게 유리는 물질로서의 특성 뿐 아니라, 자신의 메시지를 담아내는 가장 적합한 도구이자 무기처럼 여겨진다. 프랑스 유학을 통해 유리라는 새로운 재료를 접한 경험은 표현방식의 영역을 한층 넓히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 초에 발표한 작품은 유리라는 재료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과정인 동시에 다각적인 형식실험에 몰두한 과도기적 시기였다. 다시 말해 이 시기는 실용성과 기능성을 기본으로 한 공예의 본질과 한계를 뛰어넘어 순수조형에 대한 실험과 모색의 단계로 볼 수 있다. 이후 대규모 설치와 입체조형 작업은 작가의 숨겨진 역량과 가능성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재료의 특성과 장점을 극대화 시키면서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스펙터클한 이미지는 기념비적 성격을 강하게 풍겼다. 이어서 2006년 '실루엣'이란 타이틀로 발표한 6회 개인전을 전환점으로 작품에 담긴 메시지는 보다 구체적이고 선명해졌다. 이 시기를 전후해 트레이드마크가 된 인간 형상의 실루엣이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김형종은 인간의 외형을 단순하게 드러냄으로써 암시적으로 표현할 뿐 여전히 구체적인 설명을 숨기고 있다. 대문에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은 그것이 어떤 상황에 처한 인간의 모습이란 걸 짐작하고 상상할 뿐 이다. 이렇듯 김형종은 관객에게 이미지를 일방적으로 주입시키거나 단정적으로 전달하지 않는다. 관객으로 하여금 자유로운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은 고정된 시점이나 단편적인 상황으로 해석되지 않고 자율성을 획득한다. 바로 이 지점이 김형종의 작품을 이해하는 통로일지도 모른다. 또한 김형종의 작품이 서사와 내러티브를 지닌 소설이 아닌, 함축과 은유로 조합된 시어(詩語)처럼 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가 만들어낸 텅 빈 신체의 형상은 유리의 속살과 어울려 현대인의 고독과 허무를 은유한다. 사각 프레임 속에 갇힌 투명한 육체의 그림자는 흔들리는 현대인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김형종이 창조한 익명인간은 우리의 초상인 동시에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개인전은 또 다른 차원에서 각별하다. 도심에 있는 일반적인 화이트큐브 갤러리가 아닌 서울 근교의 대표적 문화특구로 자리 잡은 헤이리 예술인마을에 있는 갤러리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자연 환경과 건축물이 조화를 이룬 헤이리는 그 자체로서 예술적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색다른 장소다. 건축적 요소와 어울린 작가의 최근작은 도시인에게 잠시나마 사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김형종의 작품 앞에 선 관객은 유리의 따뜻함과 매끄러운 스테인리스의 차가운 표면사이를 오가며, 때론 스펀지처럼 포근하고 때론 번뜻이는 칼날처럼 냉철한 감정의 기복을 느낄 수 있다. 투명한 유리에 각인된 실루엣을 통과한 빛과 그림자의 흔적. 그리고 그 의미를 추적하는 시간. 그것이야말로 김형종이 우리에게 던진 질문 혹은 선물이 아닐까? ■ 이준희
Vol.20090205d | 김형종展 / KIMHYUNGJONG / 金亨宗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