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들의 산책 A Stroll of Painting Brushes

정경화展 / JUNGKYUNGHWA / 鄭景化 / painting   2008_1022 ▶ 2008_1028

정경화_필들의 산책Ⅰ(A Stroll of Painting Brushes)_143×219cm_한지에 수묵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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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08_1022_수요일_06:00pm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41-1 6층 Tel. +82.(0)2.736.1020 www.insaartcenter.com

필들의 산책-의경(意境)에서의 노님 ● 나는 현대미술을 보면서 곧잘『논어』의 "절실하게 묻고 가까운 곳에서 생각한다. 切問而近思"는 구절을 떠올린다. 그리고 종종 에세이를 쓸 때 이를 인용한다. 그것은 오늘날 현대미술이 가지고 있는 한계 때문인지 모른다. 현대미술이 비인간적인 상황으로 치달려 온 결과, 그 반성으로 근래에 와서 멀어졌던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소통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미술이 대중과 소통을 강조하면서 거리를 좁히려고 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나에게 현대미술에 회의를 들게 하는 것이다. 아마 겉으로는 소통을 내걸지만 밑에서는 자기만의 독백을 강조하여 차별화의 길로 계속 치달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현대미술의 문제는 재현이나 표현의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술에 대한 태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언제가 정경화는 내가 인용한 공자의 말에 상당히 공감을 표시한 적이 있다. 이후 나는 그의 작품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게 되었다. ● 정경화는 스스로 자신의 작품 과정에 대해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2001년 이후 자신의 작품은 새로운 경향으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이전의 "충실한 임모와 사생을 통한 실경 작업들"에서 무언가 "자신의 개성을 새롭게 표현하는, 미지의 세계를 찾아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자신의 작품 경향의 변화에 대해 말한 것 같지만, 사실은 미술사적인 경향에 대한 반성에서 일어난 것이다.

정경화_노란숲Ⅰ(Yellow Forest)_한지에 수묵채색_63×93cm_2008

우리나라 한국화에서 90년대 이후 유행처럼 번진 진경산수에서 진경은 실경이나 사실주의로 치우치는 경향이 일어났었다. 즉 현대 진경(眞景)의 추구가 우리 자연에 대한 사실적 묘사에 치우쳐 그것에 대한 진실한 감성의 표출이 소홀히 되었다고 본 시대적 실천에 대한 반성의 결과인 것이다. 사실 진경은 사실주의와 거리가 멀다. 진실한 감성의 표출을 위해서는 한편으로 대상의 진실한 접근도 필요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대상의 왜곡, 단순화, 과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대상의 묘사와 자신의 표현이 서로 충돌하는 가운데 서로 중화된 방법을 추구하되, 어디까지나 주체의 활동성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전통적인 동양화론에서 "비슷하면서 비슷하지 않는 가운데(似不似之間)" 주체성의 활성화를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정경화의 작품은 2001년 이후 이러한 여정을 보여준다. 『논과 밭-수묵의 표정』(2001), 『숲-바람-숨결』 (2003),『숲-부드러운 바람』(2005), 『숲을 노닐다』(2007) 등 일련의 개인전에서 중심 표제를 통해 알 수 있듯, 자연의 형상과 자신의 감정의 표출을 아우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감정의 표출에 더 중심을 두었다. 서로 대립되어 있는 대상과 주체에서, 대상에로 쏠리면 주체가 움츠러들어 정취가 부족하고, 반대로 주체의 표현이 강조되면 감정의 방종으로 흘러 이을 묶어 보편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대상이 소홀히 된다. 정경화의 작품세계는 2001년 이전에는 오랫동안 대상의 충실한 묘사를 바탕으로 대상의 세계에 경도되었다면, 이 이후는 주체를 자연스럽게 표출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정경화가 이를 위해 나뭇가지나 죽필(竹筆)로 인한 용필법을 적극적으로 구사하였다. 그러나 이는 또 다른 조형적인 한계들과 부딪혀야만 했다. 그 자신이 경험적으로 인식하고 있듯, 나뭇가지는 강경하고 빠른 묘필을 구사하여 순간적인 표상력을 높일 수 있지만, 나뭇가지에 먹이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짧아서, 간헐적으로 호흡이 끊어진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나뭇가지를 더욱 빨리 급박하게 구사할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되면 오히려 다시 화가의 의상(意像)에 대한 밀도를 떨어트리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결과적으로 그림이 날리고 산만하며 거칠어지기 쉬운 것이다. 따라서 화가는 내면적의 의기(意氣)를 일관되게 흐르게 하기 위해서는 먹이 손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을 길게 해야 하는 해결책을 강구해야 하였다.

정경화_노란숲Ⅱ(Yellow Forest)_한지에 수묵채색_130×194cm_2008

이것은 정경화에게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사실 그의 2001년 『논과 밭-수묵의 표정』에서 자신의 작품에서 습윤성(濕潤性)의 부족을 지적한 것도 이에 기인하는 것이다. ● 정경화는 나뭇가지보다 죽필(竹筆)에 치중하면서 해결책을 찾았다. 그러나 죽필(竹筆) 역시 나뭇가지에 비해서 호흡이 길고 먹의 습윤성이 뛰어날 수 있지만, 모필에 비하면 여전히 한계를 갖는다. 그러나 장점도 있다. 그것은 힘차고 적극적인 표현이 강조되며, 또한 선의 감각에서는 더 한국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그의 죽필의 선은 신석기 시대 토기의 빗살무늬나 신라 토기의 형상에 사용된 선을 연상시키는데, 이는 한국미술의 특징 중 하나인 주저함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표출되는 "생명력"에 가깝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정경화는 죽필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 표현력에 상당히 애착을 갖고 작업을 하는 것 같이 보인다. ● 이어서 열린 개인전 『숲-바람-숨결』(2003), 『숲-부드러운 바람』(2005), 『숲을 노닐다』(2007)에서 그는 죽필에 의한 감성의 표현적 가능성에 더 역점을 두고 다양하게 시도하였다.

정경화_어떤공간Ⅶ(Some Space)_한지에 수묵채색_194×650cm2008

물론 감성은 독립적이라기보다 대상에 흥기되는 상호적인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한편으로 대상의 형상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감정의 일관된 활동을 강조한 죽필의 표현력을 높이려고 하였다. 다만 보기에 따라 주체의 표현에 치우쳐 대상의 묘사가 화면에서 병렬적, 평면적으로 구성되어 구체적이지 못한 것처럼 보이나, 이는 자신의 표현력을 위해 의식적으로 선택한 것 같다. 또한 이전에 한계로 지적된 습윤성은 발묵(潑墨)이나 파묵(破墨)으로 통해 보안하면서 발전적인 진취를 이루어 내었다. 다만 발묵의 용묵과 죽필의 용필의 관계가 다분히 의도적이어서 획일화 되었다는 점에서 여전히 극복해야할 문제로 남아있었다. ● 무엇보다 새로운 발전은 개인전 표제에 맞게 일련의 산책, 또는 유람에 따라 시각, 촉각, 청각 그리고 이를 포괄하는 몸각(body-sense)에 따라 표출되는 일련의 정서적 흐름을 죽필로 표현하고자한 화가의 의도가 충분히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조형적으로 상당히 성공적으로 보인다. 감정의 표출로 대상의 평면적 배열적 묘사로 인해 입체적이지 못함으로써, 감성이 질적으로 깊이가 약하다는 한계를 갖고 있음에도 말이다. ● 정경화는 이번 다시 『필들의 산책』이라는 표제로 개인전을 갖는다. 기존 작품들과 일관성을 가지고 있지만 조용한 변신을 시도하였다. 먼저 눈에 띠는 것은 공간(여백)의 활용, 발묵에 의한 색면의 강조, 그리고 구성과 표현에서 있어서 허(虛)와 실(實), 소(疎)와 밀(密)의 긴밀한 상호관계에 신경을 많이 쓴 것을 들 수 있다.

정경화_어떤공간Ⅴ(Some Space)_한지에 수묵채색_100×100cm_2008

사실 이것은 이전 작품에서 보이는 한계 즉 감성의 질적인 깊이 부족과 관련된 것이어서, 필자로서는 정경화가 어떤 식이든 방법적 모색을 강구했을 것이라고 믿었던 결과이다. ● 또 다른 변화는 형상으로 회귀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이전의 형상과 다른 개념이다. 나 밖의 형상이라기보다 나 안의 형상 즉 의경(意境)의 표현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 명나라 화론가 이일화(李日華)는 산수화의 세계를 세 가지로 나누었다. 첫째가 직접 거주하는 곳, 둘째가 눈으로 보는 곳, 셋째가 의(意)로써 노니는 곳이다. 정경화의 경우 이전의 작품들이 많든 적든 첫째와 둘째에 머물러 있었다면, 이번 개인전은 "의(意)로써 노니는" 세계 즉 의경(意境)의 표출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 의경은 "용필로 귀결되어" 표현된다. 그래서 작가는 이번 주제를 "필들의 산책"이라고 한 것이 아닐까. ● 그런데 이 의경(意境)은 작가의 경험이 확충되고 창작실천이 강화되어야만 자신 있게 구현할 수 있다. 물론 그의 왕성한 작업의욕과 그동안의 작업양의 결과로 나온 것이지만 아직 작품의 포괄적인 감동이 모호하게 보인다. 그럼에도 이전의 작품에서 문제로 남았던 여러 가지 회화적인 한계를 충실하게 극복하여 가는 것이 너무나 좋다. 발묵의 용묵과 죽필의 용필이 조화되고, 공간(여백)이 살아남으로써 허(虛)가 실(實)을 규정하고 실(實)이 허(虛)를 활성화 하는 역동적인 관계가 엿보인다. 이것이 앞으로 더욱더 희망적인 작업과정을 엿보게 하는 것이다. ● 그러나 새롭게 주의해야 할 점도 있다. 그것은 자칫 의경을 강조하다보면 감정의 구체성을 잃고 추상적인 것으로 흘러버릴 소지가 많다는 것이다. 이일화(李日華)가 강조한 의경은 눈으로 보고 직접 거주하는 세계를 부정한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발전하는 것이다.

정경화_어떤공간Ⅰ(Some Space)_한지에 수묵채색_194×650cm_2008

"나는 마음을 배우고, 마음을 눈을 배우고, 눈은 화산을 배운다(吾師心, 心師目, 目師華山)"는 명나라 이론가 왕리(王履)의 주장으로 이를 보충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의경은 구체적인 자연을 초월하지만 또한 이에 근본하고 있다는 모순을 앉고 있는데, 분명한 것은 의경의 생동성은 자연과 긴밀한 관계에서 이를 반영하는 데에서 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물론 정경화의 작업 과정에서 볼 때, 그의 의경은 구체적인 자연의 충실한 묘사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손(나)-마음-눈-화산(자연 대상)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마음은 대상에 벗어나려는 방심이 있을 수 있고, 대상은 마음을 속박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긴밀한 배분과 조화가 필요로 한다. 이것은 아마도 작업의 일반적인 자세를 말하는 것일 수 있다. 따라서 화가가 작품에서 가지는 긴장감은 언제나 마음 놓을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바로 화가 자신의 문제이니 이보다 가깝고 절실한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공자가 말하는 "절실하게 묻고 가까운 곳에서 생각한다."는 것이 이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정경화의 작품에 대한 기대가 자꾸 가는 이유는 물론 진경을 진실한 감성의 유동적인 표현으로 해석하여 의경으로 나아간 것도 있지만, 그가 작업에서 "절실하게 묻고 가까운 곳에서 생각하는" 자세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조송식

Vol.20081024d | 정경화展 / JUNGKYUNGHWA / 鄭景化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