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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08_0924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41-1 2층 Tel. +82.(0)2.736.1020 www.insaartcenter.com
분신과 함께 명승지를 순례하다 ● 이인청의 작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전형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노무자는 노무자다우며, 식당 아줌마는 식당 아줌마다우며, 경찰은 경찰다우며, 도둑은 도둑다우며, 복부인은 복부인다우며, 불량청소년은 불량청소년다우며, 왕따는 왕따답다. 만화에서처럼 말풍선 같은 것이 없어도 인물들의 표정과 제스처만으로도 그 정황이 쉽게 읽힌다. 노무자는 아들의 대학 등록금을 걱정하고, 식당 아줌마는 딸이 밥은 잘 챙겨먹는지를 걱정한다. 경찰은 복무수행에 여념이 없고, 도둑은 도둑대로 역할수행에 바쁘다. 복부인은 탐욕스러우며, 불량청소년은 껄렁하고, 왕따는 억울해 보인다.
작가는 이렇듯 인물들로부터 개성이나 인격보다는 사회적인 신분이나 계급을 강조함으로써 일종의 사회적 주체 혹은 사회화된 주체를 대변케 한다. 제도가 개개인에게 이데올로기를 부여함으로써 사회적 주체로 거듭나게 한다고 알튀세는 말한다. 따라서 개개인은 이념적 주체 혹은 이념화된 주체인 동시에 사회적 주체 혹은 사회화된 주체가 된다. 결국 이러한 사회적 주체들이 모여 동시대를 반영하는 삶의 풍속도가 그려지는 것이다. 주체들의 이러한 전형성과 반영성이야말로 리얼리즘 미학의 핵심이론임을 생각한다면, 이인청의 작업은 21세기 한국의 사회의 초상화 내지는 사회적 풍속화를 재현한 리얼리즘 미학에 연동돼 있는 것이다. ● 이러한 리얼리즘 미학의 이면에는 사회적 비판의식이 깔려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인청의 작업에서는 그 비판의식이 사회의 환부를 겨냥한 날카로운 칼날로 작용하기보다는, 오히려 넉넉한 웃음을 간직한 풍자와 해학에 가깝다. 웃음을 매개로 해서 민중(보통사람)의 건강한 변혁성을 일깨우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일종의 과장법과 극적 상황이 연출되는데, 그래서인지 작가의 작업은 흡사 현실이라는 무대에 올려 진 연출된 상황이거나 세팅된 무대를 보는 것 같다. 예컨대 일종의 이동식 혹은 휴대용 캐릭터(등신대 크기로 오려낸 압축합판의 전면과 이면에 그려진 사람)를 그 캐릭터에 걸맞은 현실의 장에다가 집어넣어 세팅함으로써 현실성을 부여하고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은행을 배경으로 세팅된 경찰과 도둑과 복부인의 캐릭터가 서로 좇고 좇기는 상황을 연출하고 재현하는 식이다. 한편으론 그 비판이 일종의 우화의 형식을 빌려 드러나기도 하는데, 수십 명의 늑대인간을 동원해서 오로지 앞만 보고 질주하는 현대인의 맹목과 집단무의식(혹은 집단최면)을 풍자하고 비판한 것이다.
이인청의 전작이 사회적 주체를 통해 한국현대의 사회적 풍속도를 그려낸 것이라면, 근작은 가족이나 이웃,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이나 동료작가 등을 대상화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자전적인 경향성을 드러낸다. 따라서 근작들에선 비판의식이나 풍자 대신에 일종의 회고적 성격이 묻어난다. 마치 서랍이나 장롱 그리고 사진첩을 뒤적여 기억과 회상의 조각들을 반추하는 듯 한 멜랑콜리에 젖게 만든다. 사회적 주체를 다룰 때와 비교해 보면 작가 자신에게 더 밀착돼 있으며, 자기를 형성시켜준 타자들과의 상호 유기적이고 영향사적인 관계에 대한 인식과 애정이 묻어난다. 이로써 관심의 축이 외부에서 일정정도 내부로 옮겨진 듯하며, 그만큼 자기반성적인 경향성이 강화돼 보인다. 그러면서도 이 일련의 그림들에 작가 자신이 구체적인 형태로 드러나 있기보다는, 기억과 회상과 애정 같은 감정과 정서의 형태로 녹아들어 있어서 그 실체를 겨우 가늠해 볼 수 있을 따름이다. 이러한 과정을 경유한 연후에야 비로소 작가는 자신을 가시적인 층위로 불러내고, 자신에게 물질적이고 구체적인 형태를 부여해준다.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마침내 주연을 맡게 된 것이다. 전작에서도 물론 작가가 삶의 주연이었지만(모든 그림은, 심지어 추상화조차도 주체의식과 자의식의 산물이다), 그 실체나 그 명분이 이때만큼 뚜렷하지는 않았다. ●「아줌마-셀카」로 명명한 일련의 사진작업에서 작가는 자신을 조망하면서 동시에 아줌마를 조망한다. 모든 존재는 어떤 개념으로 싸안을 수 없는 개별성과 특수성을 내장하고 있으며, 따라서 여하한 경우에도 아줌마로 환원될 수 없는 자기 자신을 아줌마라는 전형과 결부시키고 중첩시키고 동일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다시금 전형이라는 개념과 맞닥트리다 보니, 작가는 피할 수 없는 리얼리스트라는 생각이 든다. 여하튼 이로써 이인청의 작업은 자전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아줌마로 대변되는 보통 사람들의 현실과 꿈, 그리고 일상과 이상, 그 두 결을 드러내 보여준다.
이를 위해 등신대 크기로 오려낸 압축합판의 전면과 이면에다 이번에는 자기 자신의 모습(동시에 보통 아줌마의 모습이기도 한)을 그려 넣었다. 그러니까 이 오브제로써 종전의 사회적 주체를 묘사하던 캐릭터에서 일종의 자기분신인 아바타를 대변하는 것으로 변모했음을 알 수 있다. 작가는 이 이동식 혹은 휴대용 아바타와 함께 평소에 꼭 가보고 싶었던 명승지와 유적지를 찾아서 여행을 한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그곳을 배경으로 아바타를 세팅하고 사진을 찍는다. 이로써 이 사진들에서는 작가(정확하게는 작가의 분신)가 명승지를 순례하고 감회에 접어있는 모습이 느껴진다. 무심하게 보면, 그저 한 아줌마(작가)가 명승지를 여행하면서 이를 기념할 요량으로 찍은 흔한 사진일 뿐이다. 그리고 그 사진들로부터 관광객과 여행객의 생리에 대한 아카이브와, 일종의 기념비성이나 피상성(대개 관광객은 정작 그 장소가 아닌 자기 자신을 기념하기 위해서 사진을 찍으며, 따라서 장소는 다만 이를 위한 단순한 배경역할에 그친다는 사실에서 피상성을 동반한다)과 관련한 시선의 정치학과 같은 사회적 담론을 끄집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 그러나 작가의 작업은 그 이상이다. 더욱이 실사(실경)와 애니메이션을 연상시키는 아바타가 한 장의 사진에 중첩돼 있어서 한눈에도 작가에 의해 연출되고 의도된 흔적이 역력한 이 사진은 이러한 담론읽기를 방해하는 한편, 이와는 다른 지점이 있음을 종용한다. 그러니까 사진 속의 장소와 인물은 서로에게 동화되고 밀착되기보다는 오히려 이질감과 차이를 강조하는 듯 한 느낌을 준다. 나와 나의 분신이 차이 나고, 현실 속의 나와 사진 속의 내가 다르며, 의식적인 자아와 무의식적인 자아가 어긋나는 것이다. 나는 결코 나의 말 속에 들어있지 않으며 따라서 나는 지금 여기에 없다는 자크 라캉의 말은 이런 자아와 무의식적 자아와의 차이를 재확인시켜준다. 의식적인 자아가 말을 할 때 동시에 무의식적인 자아는 그 말을 번복하고 철회하고 수정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그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의 말 뿐이기 때문에 우리는 매번 그의 실체를 놓치고 만다. ● 영화로도 제작된 장정일의 소설『너에게 나를 보낸다』에서 너에게 보내지는 나는 실상 나의 상상이며 분신이며 무의식적 자아이다. 이처럼 작가는 분신을 저곳에 보내지만, 정작 자신은 사진 밖 여기, 현실에 속해있다. 아바타를 통해 (우회적으로나마) 꿈을 투사하고 이상을 실현한 것 같지만, 실상은 현실에 붙박인 나의 일상을 일깨워줄 뿐이다. 비록 작가가 아바타와 함께 사진 속의 장소를 실제로 찾았다고 해도, 그렇게 꿈과 이상을 실현했다고 해도 이러한 사실이 부정되지는 않는다. 이인청의「아줌마-셀카」시리즈는 나와 나의 분리, 나와 분신과의 차이를 드러냄으로써 자기분열현상이 보편화되고 있는 가상현실 속 자의식을 엿보게 한다. 셀카는 일종의 자신을 대상화시키는 놀이, 자신과의 놀이이며 분신과의 놀이이다. 그 놀이를 통해 나는 자신을 미화하기도 하지만, 이따금씩 이질적이고 낯선 무의식적 자아와 대면하기도 한다. ■ 고충환
이인청의 아줌마 - 셀카 ● 마흔 살이 된 작가는 어느덧 '아줌마'라는 특정 계층으로 분류되어 몰개성적인 집단으로 구분되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동안 그려온 인물군상에 이어서 자신을 닮은 아줌마 인형을 만들어낸다. 이번 '아줌마'인형은 모두 사진작업의 대상으로 사용되었지만 작가의 분신이라고 여겼으므로 '셀카'라고 부른다. 실제로 여행한 장소에 대한 경험의 기록인 여행지시리즈에서는 여행조건에 따르는 우연적 요소가 보이고 일상시리즈는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특정상황을 재현한 것으로 연출적인 성격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가 촬영 후의 과정보다 촬영 현장의 기록적 측면에 우선한 작업이다.「아줌마-셀카」는 '아줌마+관광명소'와 '아줌마+일상'이라는 스테레오 타입들의 조합으로 볼 수 있지만 여행지와 일상, 그리고 아줌마라는 진부한 조건 앞에 놓인 작가 개인의 심경을 대변한다.
여행지에서 아줌마 인형은 그림같이 아름다운 풍경 속의 '옥에 티'처럼 이질적이고 조화되지 못한 존재로 명소와 절경에 대한 감상을 깨뜨린다. 작가는 여행지에서의 자기모습이 그토록 낯설고 겉돌게 느껴졌다고 말한다. 결국 '관광지 기념촬영'이라는 흔하고 소박한 욕구에서 출발한 사진이 인물을 대신한 인형으로 '익숙하게' 빼어난 풍광을 낯설고 공허하게 만든다. 여행지에서 흔히 겪는 쓸쓸한 자아 성찰적 무드나 감상 따위가 생뚱맞은 인형의 삽입을 통해 우스꽝스럽고 어정쩡하게 보여 지는 것이다. 이러한 썰렁함은 촬영방법 때문에 더 강조되는데, 그것은 작가가 여행하게 되는 어떤 장소든 인형을 들고 가서 촬영하고 편집하지 않는다는 원칙의 한계 때문에 다른 구성사진들과는 작업의 질적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연한 상황이나 열악한 촬영 조건 등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며 작가와 인형이 그 곳에 있었다는 증명과 기록, 즉 '셀카'나 '직찍'의 기능이 모든 것에 우선하게 되는 것이다. ● 여행 사진에 비하면 일상 사진에서는 굳이 기념할 만 한 것이 될까 싶을 정도로 반복되는 지루한 살림살이와 그 속에서 일어나는 심드렁한 심정들이 엿보인다.「결혼식이 있던 날」에서 작가는 자신의 상황을 연기해줄 인형을 화장대 앞에 세우고 거울에 비친 모습을 찍는다. 외출을 앞두고 무엇을 입고 나가야할지 고민하는 인형의 모습은 꽤나 진지하다. 이 연출된 사진은 신디 셔먼의 무제 스틸 사진 시리즈를 상기시키지만 자신을 찍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셀프 포트레이트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신디 셔먼의 경우처럼 작가자신을 피사체로 사용한 자화상이 본인의 겉모습을 감추고 자신의 여러 페르소나들을 표현하는 것과 비교하면 이인청의 인형은 오로지 작가의 상황을 실제보다 더 리얼하게 드러내 보여 준다. 그 결과, 보여 지는 자기를 계산적으로 노출하여 관찰자의 시선의 권위에 도전하는 긴장대신 작가가 놓인 상황에 대한 정서적 혼란이나 갈등이 포착되고 감상자는 그 심정에 동화되는 것이다.「생활의 달인」에서는 흔히 접하는 아줌마적 특징인 산만함과 종합적인 일처리의 묘기가 경이롭게 묘사된다.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한꺼번에 들어 닥치는 여러 가지일들의 순환에 자신의 리듬을 맞추어 사는 아줌마의 생활양식을 잘 보여준다. 일의 체계와 합리성이 특별히 요구되는 요리가 주요업무인 아줌마가 한 손에 붓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두부를 찌개에 집어넣는다. 찜통에선 만두가 쪄지고 전골에 넣을 육수국물은 점점 닳고 있다. 설정 샷이긴 하지만 굳이 아줌마가 아니더라도 실제상황이 이보다 덜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라고 해서 주부로서의 일상이 낭만적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남들보다 특별히 고단할 것도 없어 보이는 이인청의「아줌마 셀카」에서 여성문제나 가사노동의 가치 따위는 떠오르지 않는데, 이점이 작품에서 '아줌마'의 문제를 설득력 있게 풀어내는 미덕으로 보인다. 되풀이되는 일상에서 오는 한숨과 삶의 덧없음에 관해서라면 남녀노소 직업불문으로 누구나 겪는 일들이지만 자잘한 일의 특성과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의 성과 때문에 아줌마의 일은 어느 직업군이나 계층에게서 보다 소모적으로 느껴진다. 일상의 허무와 그 안에서 마모되고 있는 개성과 자신의 모습에 대한 고민이 아줌마에게는 필연적으로 보이고 작가는 그러한 삶의 멜랑콜리를 오히려 유머러스하게 풀어나간다. 그의 인형들은 심통이 나 있거나 쓸쓸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다지 우울해 보이지는 않는다. 이전의 다른 설치작업들에서 보여준 것처럼 그의 사진에서도 여전히 삶을 여유 있고 낙천적으로 대하는 태도가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 희화되거나 비하되지 않으면 당당하자고 웅변하는 무수한 아줌마 논쟁 속에 왁자지껄 존재하는 인권문제나 자매애, 아줌마마케팅, 죽이기나 살리기 등의 자리매김 같은 거대한 젠더이데올로기 앞에서 개인으로서의 아줌마들은 다시 한 번 위축되거나 소외된다. 작가는 점점 비대해져가는 아줌마 담론보다 아줌마에 대한 무심하고 담담한 시선을 보여 주려한다. 자작극 같은 인형놀이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드러내는 이인청의 셀프카메라가 '아줌마'라는 전형 속에 자신을 가두게 될지 오히려 그것을 통해 아줌마라는 유니폼으로 규정 지워진 사회적 위치로부터 떨어져 나와 자기 자신과 마주하게 될 지를 실험하게 될 것이다. ■ 이유정
Vol.20080924f | 이인청展 / E, INCHEONG / 李仁淸 / photography.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