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70917e | 장명근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1212_수요일_04: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학고재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0-5번지 Tel. 02_739_4937 www.hakgojae.com
Dream Inside, Life Inside ● 삶의 공간은 시간을 먹고산다. 모든 존재의 거소(居所)에는 삶의 시간이 켜켜이 퇴적되어 있고, 또 존재의 거소는 우리의 감정들을 부단히 멜랑콜리로 인도한다. 그러나 이때의 멜랑콜리는 추억이라는 이름의 눈물샘은 아니며, 또 낡고 오래되었다는 향수라는 이름의 노스탈지아도 아니다. 삶의 공간은 기본적으로 처절한 생의 공간이다. 살아가기 위한 공간이고 살아가기 위한 존재의 공간이다. 자국이 있고 상처가 있다.
장명근의 사진은 삶의 공간을 비춘다. 그 공간 속에 숨고, 잠기고, 주름진 시간의 나이테를 훑는다. 사진의 풍경들은 하나 같이 시간을 머금은 시간의 나이테로서, 생의 결로서, 그리고 삶의 흔적으로서 자리한다. 안뜰, 거실, 현관, 계단, 뒷마당, 욕실, 낮은 담장, 유리창에 부서진 햇살 한 줄기로부터 은밀한 비밀창고 같은 시간의 자국들을 포착하며, 그것들의 내밀한 시간의 기호를 읽고 그 기호로부터 삶의 무게들을 바라보게 한다.
공간은 스스로 자신의 시간을 말할 수 없다. 장명근의 사진처럼 오로지 사진을 통해서 자신의 시간의 흔적과 징후로서 말해진다. 그래서 과거형이거나 과거완료형일 수밖에 없다. 장명근의 사진은 삶의 공간으로부터 발견의 시간과 숨은 역사의 시간을 보게 한다. 그가 삶의 공간에서 시간과 공간을 만나는 방식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낯선 공간 속에 숨어 있는 시간을 발견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사라진 시간으로부터 어제의 역사를 보도록 하는 것이다. 전자가 시간을 현재화하는 방법이라면, 후자는 시간을 과거화하는 방법이다. 물론 이것들이 명료하게 구분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혼재되어 나타나기도 하고, 하나가 하나를 등에 업거나, 하나가 하나를 중첩시킨 과거, 현재의 동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장명근의 사진은 또 어떻게 침묵의 공간이 공간의 추억, 지구의 추억, 더 나아가 도시의 추억을 환기시킬 수 있는가를 보게 한다. 또 나아가 사진이 어떻게 그 공간이 새겼던 어제의 시간과 역사의 자국을 과거완료형으로 말할 수 있는가를 보게 한다. 롤랑 바르트가 말했다. "사진이 경이로운 것은 언제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바라보게 하는 시간의 동시성에 있다."고.
장명근의 사진은 사라진 시간, 사라짐이 예정된 시간 속에 있다. 그 시간 속에 사소한 사물들이 혹은 사소한 흐름(빛) 및 사소한 이미지(자국)들이 존재로서 드러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때의 존재감은 기호이다. 사진은 저마다 기호화된 이야기이고 사건이다. 때문에 그의 사진은 형식적 'view point' 못지 않게 시간을 바라보는 'historical point'가 중요하다. 그렇게 해서 익명의 존재들과, 그 존재들이 시간을 통해서 만들었던 어제의 시간의 나이테를 들춘다. 사람이 떠난 테이블, 말없는 정원, 수많은 사람들이 건넌 다리, 허름한 뒷골목과 이끼에 뒤덮인 분수대, 광장의 보도 블록, 침묵에 쌓인 숲과 공원 등은 침묵의 존재들과 만나는 방법이자 또 다른 세상과 대화하는 방법이다.
삶의 공간은 언제나 어제의 시간이 중요하다. 눈에 보이는 시간보다 보이지 않는 시간, 눈앞에 펼쳐진 공간보다 눈에 띠지 않은 공간이 중요하다. 장명근의 사진은 총체적인 그것들을 말한다. 모든 꿈은 감춰진 시간과 공간 속에서 피어난다. 또 그 속에서 잠든다. 삶도 보이는 곳보다 보이지 않는 깊은 곳, 드러나지 않은 안뜰 깊은 곳에서 피어나고 잠든다. 장명근의 사진처럼. ■ 진동선
Vol.20071211b | 장명근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