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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1110_토요일_05:00pm
갤러리 스케이프 / 2007_1110 ▶ 2007_1118 서울 종로구 가회동 72-1번지 Tel. 02_747_4675 www.skape.co.kr
대구 MBC Gallery M / 2007_1005 ▶ 2007_1028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1번지 대구문화방송 빌딩1층 Tel. 053_745_4244 www.gallerym.co.kr
작년 한수정의 개인전 전시작 이미지들을 웹상에서 먼저 접했을 때, 순간적으로 동명이인의 작품이 아닐까 잠깐 의심했었다. 그의 전작(前作)들에는 매체를 이리 저리 옮겨 다니면서도 일관되게 관통하는 몇 가지 지점들이 있었는데, 그러한 점이 눈에 띄지 않았다. 화면을 가득 채워 넘치고 있는 그의 울긋불긋한 꽃들은, 그 자체로 커다란 의문부호로 뇌리에 각인되었다. 작가로서는 작지 않은, 이러한 변화의 사실적인 계기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올해 다시 꽃을 그린 그림들로 개인전을 한다는 연락을 받고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전시자료들을 들추어보니 올해의 개인전은 물경 10회째가 되는 것인데, 어쩐지 2회의 개인전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 어쩐지 말로 꺼내기는 쑥스럽지만, 변화의 계기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말을 에두르거나 세간에서 회자되는 대단한 담론의 개념어들을 사용하거나 연막을 치는 법이 없는 그는, 다시 붓을 잡게 된, 그리고 꽃을 그리게 된 몇 가지 소소한 이유들을 말해 주었다. 전시가 계기가 되어 현장에서 가서야 완성되는 인스탈레이션 작품들보다는 작업실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완성되어가는 과정을 볼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어지더라는 이야기, 우연한 기회에 실내 벽화를 주문받아 그리면서 꽃을 소재로 삼아 그리고 싶더라는 담담한 이야기들이 있었고, 이유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생각되었다.
하지만 붓을 잡은 변화의 계기를 들었다 해서 그의 꽃그림에 대한 의문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지의 대칭성을 가지고 유희했던 그의 첫 개인전이나, 실크스크린과 목탄 드로잉을 이용한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 화랑의 흰 벽에 그림자를 만들던 테이프 작업들과 라인이 그려진 종이들의 끝을 차곡차곡 겹쳐 형태를 만들어내는, 가볍고 즐거운 게임과도 같던 이전의 작업들에서는 보이지 않는, 차고 건조하고 경직되어 있는 면이 분명 그의 꽃그림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꽃그림에는 온기가 없다. 나르시즘에 빠진 조지아 오키프의 꽃들과 비교해 볼 때 아름답지조차 않다. 실제의 꽃을 바라보고 빠져드는 감상의 시간에서 기인한 꽃그림이 아니고 사무적으로 취사선택된 이미지의 결과로 보일 뿐 아니라, 그것이 재현되는 방식도 은유가 개입될 여지를 남기지 않고 단지 고집스럽기만 하다. 그 속에는 현실도 유토피아도 없고, 기쁨도 슬픔도 없으며, 어떤 우아함도, 그렇다고 키치적 정서도 없다. 결정적으로 한수정 작품의 핵심이었던 유머가 없다. 현재 시점, 그의 그림에는 그린다는 것 그 자체에 대한 호기심만이 두드러져 보인다. 마치 다시 붓을 잡은데 대한 초기비용을 지불하는 것처럼 보인다.
요컨대 그의 그림은 심각해졌는데, 그 심각함은 불안감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그가 가진 개인적인 불안이 아니라, 현대미술의 흐름이 가지고 있는 미술의 존재론적 불안이다. 오늘, 미술의 불안감은 끝이 없고, 불안감은 미술 그 자체에 깊이 뿌리내렸다. 그는 그 불안감에 심각하게 접근하지만, 그 표현은 낙천적이다. 그는 그저 꽃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낙천성에는 역설적 깊이가 있다. 심각함과 낙천성 그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역설적 깊이는 다름 아닌 여유(餘裕)이다. 그의 꽃그림들은 여유만만하고, 올해의 그림들은 작년의 그림들보다 더욱 그러하다. 그의 꽃그림들에는 전작들이 가지고 있는 재기가 깃든 유머가 보이지 않지만, 배포와 여유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런 이유에서, 심각한 얼굴의 낙천적인 그의 꽃그림들 앞에서 어쩐지 미소를 짓게 된다. 그가 이미지를 다루면서 만들어내는 유머와 위트는 아직 전면에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그림들 어느 구석에 숨어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관객의 한 사람으로 그것이 얼굴을 드러낼 때를 즐겁게 기다린다. ■ 이윤희
Vol.20071117f | 한수정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