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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07_0824_금요일_06:00pm
송은갤러리 서울 강남구 대치동 947-7번지 삼탄빌딩 1층 Tel. +82.(0)2.527.6282 www.songeun.or.kr
어린이의 놀이 ● 고사리 같은 아이의 손가락사이로 섬세한 날개 조직들이 발버둥질한다. 지금과 같이 놀이문화가 발달되지 못했던 나의 어린 시절, 잠자리를 가지고 노는 것은 여름날의 흔한 놀이거리에 불과했지만, 잠자리는 꼼작도 못한 채,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날갯짓을 한다. 나의 유년시절 잠자리는 이렇듯 아이들의 놀이에 온몸이 찢기고 부스러져도 공격조차 하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였다. ● '잠자리에게 날개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아이는 꽁지에 실을 메달아 그 비상을 즐기다 무심코 잠자리의 날개를 뜯어낸다. 날개를 뜯어 버리는 행위는 놀이(play) 그 자체로 보면 칸트가 말한 대로 '무목적적'이다. 순수하다(innocent). 그러나 잠자리에게 그것은 '생명존엄'에 대한 무지(innocent)로 인한 엄청난 폭력이다. 잠자리에게 날개는 이동수단인 동시에 자신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상징이다. 즉 아이들이 놀이에 빠져 잠자리와 하나가 될수록, 단순한 미추(美醜)의 심미관에 의한 무차별적 폭력이 가해지고 존재와 삶이 파괴된다.
또 하나의 다른 해석 ● 잊고 있던 행위에 미안함과 죄스러움을 느낀 것은 시간이 꽤 흐른 어느 날, 삶의 소용돌이 속에 나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는 나약한 존재임을 느끼면서였다. 기존의 작업인『날개짓하다』는 어린 날의 자아상의 표현으로, 아이의 손끝에서 저항조차 못하고 죽어가던 그 존재들에 죄를 사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 속에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있는 대상물의 처절한 몸짓을, 때로는 더 이상 살아있는 것이 아닌 박제된 모습을 담아내어, 심상표현에 충실한 현대사회의 폭력성을 고발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유동성이 자유롭지 않은 삼합장지의 뒷면에서 수묵이 베어 나오고 얹히는 흔적들과, 운필의 묘(妙)가 아닌 강한 물리적 힘을 동반한 기계적인 선들에 의한 형상들은 보다 거칠게 표현되었다. ● 그러나 이번 전시인『가상의 날개짓, 또 하나의 다른 생(生)으로』속에는 이제 폭력에 의한 더 이상의 날개짓은 없지만, 화면 곳곳에는 여전히 거칠고 기계적인 선들이 교차한다. 오히려 어린 날 찢겨나간 날개의 흔적 속에 상상, 가상의 날개를 달아보았다. 어디론가 유유히 헤엄쳐가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고, 울창한 대나무 숲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화면 속에 작가의 상상과도 상관없이 어디론가 흘러가며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고 있는 잔상(殘像)을 그리려 했다. 이는 그 간의 작업을 통해 배채(背彩)에 의해 종이에 걸러져 묻어나는 종이 앞면의 흔적들을 순수의 결정체라 인식하게 되었는데, 이를 통해 작가의 상상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삶의 결정체를 표현해 보았다.
죽음-그 후의 다른 삶 ● 이렇듯 이번 전시를 통해 선보일 신작은 날개짓을 잃어버린, 날개 없는 잠자리들의 조형세계로, 죽음 그 이후의 영원한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미 생사의 기로에서 찢길 대로 찢겨진 그들의 애절하고 처연한 형상에서 날개를 없앤다는 것은 사실상 생명력이 없는 생의 마감, 즉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죽음은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이제는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지만 작가의 심상 속에서 살아나와 앞으로 영원히 존재해 나갈 그 후의 새로운 다른 삶을 그려 보았다. 그래서 화면은 수묵과 주묵(朱墨), 그리고 다양한 담색(淡色)들로 날개 잃은 몸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날개 없는 자의 날개짓.. 그들은 물질적인 단계를 떠나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으며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고 있다. 이제 그들은 어디에 있을까? ■ 남빛
Vol.20070826b | 남빛展 / NAMVIT / 南빛 / painting